< -- 4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나는 인류를 구할 영웅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게 아니면 어쩌면 이 여자를 구하는 일이 희망일지도 모른다고 느꼈을까?
아니, 무슨 이유나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무슨 생각을 깊이 하기 전에 마음 내키는대로 그녀를 우리의 아지트로 데려와 버렸으니까.
예상대로 우리 식구 들의 표정은 모두가 제각각이었지만 대체적으로 ‘미쳤냐?‘라는 반응 들이었다.
"야, 너 미쳤냐? 왜 워커를 집안으로 끌고와!"
역시....
평소에도 불같은 성식이가 극도로 흥분한 얼굴로 총구를 겨누었다.
순간 그 타켓이 나인가 싶었는데, 옆에서 바짝 웅크리고 있는 그녀를 조준한 것 같았다.
"워, 워 진정하시고. 내가 아무 생각없이 워커를 집안에 들이겠냐? 잠깐 내 이야기 좀 들어봐.
자초지종은 일단 들어봐야 할 거 아녀."
....
난 정말 무작정 데려왔는데 왜 이런 말 들을 자신있게 줄줄 쏟아내는 걸까?
"야 이 미친...."
"그럼 무슨 생각으로 데려왔는데?"
다행히 성식이가 소리지르기 전에 예선이가 얼른 입을 열었다.
물론 예선이의 눈빛 역시 싸늘했지만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겠다고 하니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야기 하는 건 좋은데 이거 하나만 알아둬."
"응?"
"만약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유라면 내가 너부터 쏴 죽일 거야."
"....."
아, 날 그대로 냉동시켜버릴 것만 같은 저 눈빛 너무 싸늘하다.
역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낀다고 하더니....
"단도직입적으로 이 여자는 워커가 아니야."
"뭐? 장난하냐?"
"이게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뭐 잘못 먹었냐?"
예상대로 너무 열정적인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애들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워커 들이 사람 들만 보면 어떻게 했냐?"
오히려 내가 반문하자 애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봐바. 이 여자는 오히려 너네가 자기를 해칠줄 알고 내 뒤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잖아."
"하지만 다시 공격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예선이의 말에 모두 들 고개를 끄덕이니 딱히 할 말이 없었졌다.
"그렇긴 하지만... 어쩌면 이 여자가 인류의 희망일 수도 있어."
"뭐?"
아이 들은 서로 쑥덕거리며 도저히 이해못하겠다는 표정 들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확신이 생긴것 같았다.
"어째서 이 여자가 인류의 희망인데?"
"왠지 실마리를 쥐고 있을 것 같아. 6개월 전 인류가 멸망 직전에 놓였던 이유를 말이야."
"아, 그것 참 기발하네. 니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낸다."
"넌 왜 자꾸 부정적인데!"
내가 소리를 지르자 예선이는 물론 아이 들이 놀랬다.
어떤 놈은 귀를 후비다가 손가락이 푹 들어가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성격하는 예선이가 내가 소리지른다고 움츠려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럼 니 말은 저 여자를 해부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아, 너 정말!"
나와 예선이 사이가 점점 험악해지자 애 들이 서서히 우리 둘 사이를 막아섰다.
그러는 와중에 예선이 뒤로 정말 낮익은 인간이 부시시한 머리에 깔깔이를 입고 슬리퍼를 질질끌면서 오는게 보였다.
"우아함~ 얘들아, 굿모닝~ 그런데 왜 아침부터 한따까리하고 그래? 친구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그 인간은 무한 하품을 쏟아내며 험악한 분위기 속을 미꾸라지처럼 파고 들었다.
딱봐도 폐인 생활에 도를 튼 놈이다.
더 기가막힌 건 저놈 부모님께서 폐인 생활을 마음껏 즐기라고 지으셨는지 이름도 ‘진자유‘다.
"뭐가 굿모닝이야? 너 지금 몇신줄이나 알아?"
예선이가 팔짱을 끼고 험악하게 노려봤지만 자유는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됐는지 잠이 덜 깬 눈을 비벼댔다.
"나참 아침부터 넌 또 왜 빡빡하게 굴고 그래? 사람이 자다가 눈을 뜨면 그게 아침이지, 뭐야."
"됐다. 내가 이런 어이없는 것 들을 상대하고 있으려니 머리만 아프네."
예선이가 씩씩거리며 가버지자 자유가 ‘오늘 그날이냐?‘라는 말을 내뱉었다가 풍성한 파마 머리에 슬리퍼가 꽃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지만 예선이가 가버렸다고해서 일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승철아, 예선이는 여기 리더야. 그리고 우리도 예선이랑 같은 생각이고."
성식이는 한층 누그러졌지만 사무적인 어조는 여전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 역시 아이들을 완전히 설득시킬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좋아. 그럼 내가 이곳을 떠나면 되겠네."
"뭐? 야, 승철아!"
아이들이 깜짝놀라 나를 붙잡았지만 이미 마음이 돌아선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멀리가겠다는 게 아니야. 일단 안전한 곳에 머물면서 노아에 따로 연락을 취할거야. 생각해보니까 아직 이여자 정체도
모르는데 여기 생존자 들하고 섞여 있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잖아...."
"너 정말 후회안하겠어? 물론 난 말리지 않을 거야. 네 놈이 한번 똥고집을 부리면 다들 말리기 힘드니까..."
이상하게도 성식이가 한층 누그러진 표정으로 내 의견을 존중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자유는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되나 보다.
"우와, 너 그럼 혼자 사는 거야? 예선이 잔소리 피해서? 그럼 나도 따라갈래!"
"넌 제발 여기에 찌그러져 있어라."
"아오 진짜 빡빡하게 굴지말고 나도 좀 데려가라. 나 4개월째 여기에만 짱박혀 있어서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다!"
"그럼 사냥이나 나가시던가."
"아, 진짜 이러기냐?"
나랑 자유가 옥신각신 하는 사이 아이 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쳐다볼뿐 더 이상 말리지는 않았다.
아이 들의 생각은 뻔하다.
누군가가 분명 실마리가 있다면 풀어주길 바라지만 불똥이 튀지않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지난 6개월간은 우리 생존자 들에게 충분한 지옥이었으니까.
"가자....구요..."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서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아이 들이 더욱 웅성웅성거렸지만 전혀 게의치 않았다.
그녀가 워커가 아니라는 확신이 내 마음을 모두 지배해버렸기 때문이다.
"......"
다행히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