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할 일은 불을 켜는 것이다.
나는 손전등을 켜고 분전반으로 발걸음을 옮긴 후 비행기 렌딩 기어같은 전력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자 금새 주위는 환해졌고 나와 담식이는 문을 열고 매장안으로 들어섰다.
"으음... 우선 통조림부터 구하자."
1층 의류 코너에서 2층 애완견 용품 코너로 올라가려면, 매장 구석에 위치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했다. 전원을 최대한 아껴야하므로 에스컬레이터를 구동시킬 전력은 사치나 다름없기
때문에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왈왈!]
담식이는 자기 밥을 구하러 가는 걸 아는지 나보다 먼저 뛰어올라갔다.
3개월 전 같았으면 펄쩍 뛰고 놀랄 일이지만, 워커 들이 줄어드는 마당에 기쁘다는
담식이를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다.
"야. 천천히 가."
2층에 올라서자마자 담식이는 개사료 코너에서 달려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뒤늦게 도착한 나는 담식이를 쓰다듬고 소고기 간식 통조림을 가방 속에 쓸어담았다.
"너도 하나줄까?"
담식이가 내 손이 움직일 때마다 뚫어져라 쳐다보니 부담감이 느껴졌다.
왠지 통조림 하나를 주지 않으면 평생 괴롭힐 기세다.
"옛다! 맛봐라."
내가 통조림 하나를 따주자 담식이는 걸신 들린 듯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으음... 그만 챙길까?"
담식이 먹는 걸 보니 나도 무척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가방 안을 살펴보니 사료와 통조림도 넉넉히 챙긴것 같았다.
"담식아, 그만 가자."
내가 목줄을 잡아당기자 담식이는 뭐가 아쉬운지 통조림 뚜껑을 입에 물고 졸졸 따라왔다.
만약 마트에 사람이 있었다면 당장 뺏었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애써 무시했다.
"흐음. 뭘 담아볼까?"
지하 식품 매장으로 내려온 나는 건과류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요즘 식품 들은 유통기한이 길어서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는 사치를 아직까지 누릴 수 있었다.
-부스럭
순간 주위에 정적이 흘렀다.
방금 감자칩을 집으려던 나의 손은 그대로 멈췄다.
담식이 역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몸을 잔뜩 웅크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담식아. 절대로 움직이지마."
난 조용히 담식이를 타일렀다.
하지만 머릿속은 절대로 그럴리 없다는 말만 되풀이 되고 있었다.
마트의 모든 문은 철저하게 잠겨 있다.
내가 들어온 문 역시 자동으로 닫힌다.
그렇다면....
나는 등 뒤로 맨 M16 소총을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고 꺼내들었다.
제발 그러질 않기를 빌었지만 확실한 준비는 해둬야했다.
끔찍하게도 놈 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능마저 높아지고 있다고 노아에서 경고했었다.
때문에 더욱 신중해져야 했다.
-크르륵!
익숙하고 역겨운 숨소리가 귓속을 파고 들자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몇 놈이 들어왔을까?
들어왔다면 도대체 어디로....
"담식이는 어디있지?"
자꾸 혼란스러운데 설상가상 담식이마저 보이질 않았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은 이때 쓰는 것일까?
-왈왈!
그 순간 담식이 짓는 소리가 매장 안에 가득 울려퍼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곳으로 무작정 뛰었다.
내게 가장 두려운 일은 놈 들을 상대하는 것이지만, 담식이를 잃는 건 더더욱 싫었다.
가족을 모두 잃은 내가 담식이마저 잃는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어...어떻게?"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담식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만 드러낼 뿐 으르릉거리기만 했고....
워커, 아니 그 여자는 매우 두려운 눈으로 과자 진열장에 찰싹 달라붙어있었다.
-크르륵, 크르륵!
여자는 아주 애처로운 신음 소리를 내며 나와 담식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내가 들고 있던 M16 총구는 이미 땅바닥을 향해 내려간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난 내 눈앞에 벌어진 일 들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그것은 내 머릿속에 뿌리 깊게 자리잡힌 워커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문명을 거부하고 자란 원시인의 모습에 더욱 가까웠다.
-크르륵
내가 한발짝씩 다가갈 때마다 여자의 눈에 두려운 빛이 가득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붉게 충혈된 눈이라던지 식육을 즐기던 끔찍한 이빨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긴장의 끈을 늦추지는 않았다.
나는 총구를 다시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단단히 걸친 뒤 잠시 상태를 주시하기로 했다.
-크르륵..크르륵...
-철컥!
갑자기 손에 힘이 풀려버렸다.
그 바람에 M16 소총이 땅에 떨어져 버렸지만 상관없었다.
"살아있어...."
워커, 아니 그녀의 피부는 아직 칙칙한 회색빛이 감돌았지만 눈동자는 갈색이었고,
여기저기 상처난 피부는 서서히 아물어가는 흔적이 남아있었다.
나는 내 눈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직접 손으로 만져보기로 했다.
-왈왈!
내가 손을 뻗어 만지려고하자 담식이가 신경질적으로 짖어댔다.
평소같았으면 담식이를 진정시켰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말, 말은 할 줄 알아?"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담식이를 두려운 눈빛으로 번갈아보며 어떻게든 피하려는 것 같았다.
"난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냐...그리고 얘는..."
나는 아직도 으르렁거리는 담식이를 앞으로 끌고왔다.
그리고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내 유일한 가족인 담식이야."
-끄덕끄덕
놀랍게도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넌... 넌 도대체 어떻게 된거니?"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검지와 엄지를 쥐더니 좌우로 끄적였다.
그건 누가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펜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
난 바로 펜과 수첩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평소에는 스마트폰으로 모든걸 해결했지만, 요즘은 수첩과 펜이 기록하기에 빠르고 좋았다.
아무튼 그녀는 펜을 들어 수첩에 무언가를 힘들게 적어나갔다.
"다 적은 거야?"
그녀는 펜을 멈추고 수첩을 내밀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치 그것을 보물인양 조심스럽게 받아 보았다.
[우린 아직 죽지 않았어....]
"........"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녀가 나에게 필사적으로 남긴 말은 우리 생존자 들의 신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