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화. 혜민한방병원에 사는 악마
“좋은 아침입니다~”
“어머~ 일찍 출근하셨네요. 부원장님.”
“네. 오늘도 모두 고생해주세요.”
혜민한방병원 데스크에 근무하는 직원 하나가 살포시 얼굴을 붉혔다.
자상하고, 젠틀하며, 외모까지 출중한 남자.
‘먼저 인사해주셨어...’
어디 그뿐인가.
이 커다란 한방병원에서 최연소 부원장인 데다가, 허준에게 배운 의술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으니, 여직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솔로인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비공식적인 팬클럽이 생겨날 정도로.
그런 최승원이 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하고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마주친 사람은 다름 아닌, 정형외과를 담당하고 계신 김형서 원장님.
“김 원장님, 안녕하세요.”
“아니? 이게 누군가. 우리 병원 아이돌 최 부원장 아닌가?”
“하하, 놀리지 마세요.”
“놀리다니, 내가 자네 나이만 됐어도. 라이벌... 어쨌든, 지금 출근하는 길인가?”
“네. 진료 전에 미리 준비할 것도 있고, 입원실에 신경 쓰이는 환자가 있어서요.”
그 대답에, 김형서가 피식 웃었다.
생김새와 말투, 억양 성격 모든 것이 달랐지만, 한 가지는 같았다.
지금 이 대화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
‘혜민서 선생들은 다 이렇다니까.’
물론, 그런 김형서 본인도 진료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오늘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원장님도 일찍 나오셨네요?”
“나야, 오늘 아침 일찍 수술이 있어서 미리 체크 좀 해보려고.”
“역시, 우리 병원 김 원장님 믿음직스럽습니다.”
최승원이 김형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 시라니까.
그때,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먼저 가야겠네. 수고하고, 점심시간에 보자고.”
“네. 원장님도 고생하십시오.”
정형외과가 있는 층에 먼저 도착한 김형서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뒤이어 몇 층 더 올라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최승원이 보이자,
데스크 선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부원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이 선생님. 그리고 양 선생님.”
두 사람의 가슴에는 양정숙과 이하윤이라는 명찰이 달려있었다.
“네. 좋은 아침입이에요.”
“참, 부원장님. 이거 한잔 드시고 하세요.”
이하윤이 최승원에게 커피를 건넸다.
“어? 저 주시는 거예요?”
“네. 진료 전에 늘 커피 드시잖아요. 오늘은 제가 오면서 미리 준비해 봤죠.”
“감사해요. 이 선생님. 다음에는 제가 이 선생님이 좋아하는 샷 추가한 라떼로 사드릴게요.”
“정말요?”
“당연하죠. 같은 식구끼리 이정도야 뭐.”
그 대답에 살짝 기분이 좋아져 살포시 웃는 이하윤.
그런 그녀에게 최승원이 한마디 보탰다.
“그런데, 오늘 무슨 약속 있으세요? 보니까, 머리 스타일도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아, 아니에요. 약속은 무슨. 그냥, 기분전환 삼아서...”
“지금 머리가 훨씬 잘 어울리는데요? 뭔가, 더 단정해 보인다고 할까?”
“그래요?”
“네. 선생님 같은 분이 데스크에 계셔서 다행이에요. 환자분들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 덕분에, 제가 마음 놓고 진료 볼 수 있으니까요.”
“아니에요. 부원장님.”
“이런, 진료 준비를 해야해서. 그럼, 오늘도 파이팅!”
“네 파이팅!”
“양 선생님도 파이팅!”
그렇게 최승원이 진료실로 들어가자,
데스크에 서 있던 이하윤이 옆에 있는 양정숙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지금, 보셨어요? 이거 지금, 분위기 좋은 거 맞죠?”
“글쎄, 최승원 부원장님 캐릭터가 원래 저래서... 우리뿐만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굉장히 친절하고, 저렇게 대답도 잘해주고 그렇거든요.”
“그건 저도 여기 오기 전에 들어서 잘 알죠. 그래도 뭔가 좀 느낌이 다르잖아요. 딱 봐도.”
“글쎄...? 내가 볼 땐...”
“에이~ 양 선생님이랑 우리 때랑 시대가 달라서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제가 볼 땐 확실해요. 이거. 느낌이 딱 왔거든요.”
즐거워하는 이하윤의 모습에,
양정숙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말해 줘도 듣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괜히, 기분 좋아 하는 사람한테 옆에서 초를 칠 필요는 없겠지.
그 시각.
진료실의 최승원.
최승원이란 세 글자가 박혀있는 하얀 가운을 걸치고는,
“하나, 둘, 하나, 둘-”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이것이 허준 선생님의 가르침이었으니까.
‘선생님께서 진료 전에는 언제나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셨지.’
그것이 감각에 많이 의존해야 하는 한의사들의 숙명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스트레칭을 마친 최승원.
받은 커피를 음미하고는 눈을 번뜩였다.
좋았어. 진료 시작해볼까.
우선은 입원실부터 다녀와야겠네.
최승원이 입원실로 향했다.
* * *
혜민한방병원의 인턴 생활은 고달프다.
아니, 양, 한방을 가리지 않고 세상 모든 병원의 인턴 생활이 그럴 것이다.
첫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이요.
둘째는, 그 상황에서 공부와 환자의 케어까지 해야 한다는 것. 즉,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기라도 한다면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바로, 사람 관계.
사회생활을 할 때도 그렇지 않던가.
윗사람으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회사생활의 난이도가 달라지는 것은 진리였으니,
“너희 오늘부터 입원실 맡게 된다면서?”
레지던트 1년 차, 박홍규가 올해 들어온 새로운 인턴 선생들에게 물었다.
“아, 네.”
“맞아요. 선생님.”
“잘 할 수 있지?”
그 물음에,
새로운 선생들이 힘차게 답했다.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그래. 씩씩하네. 잘 부탁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배님.”
그때, 한 인턴이 수줍게 손을 살포시 들었다.
“응? 최미진 선생.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해봐. 알려줄 수 있는 건 다 알려줄 테니.”
“다름이 아니라... 소문에는 여기 엄청나게 빡세게 굴리는 악마가 있다고 하던데...”
“아~ 너 정보가 좀 빠르다?”
박홍규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당장,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도 시달렸으니까 말이다.
“아닙니다.”
“좋아, 좋아. 소문 중요하지. 어차피 차차 알게 될 테고. 차마, 내가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 아무래도 내 입장도 있으니, 이해해줘. 다만, 한 가지 충고를 하자면.”
모여있는 인턴들이 박홍규의 입에 집중되었다.
누군가 꿀꺽거리며 침을 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
“너희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중에 있다는 것만 알아둬. 그럼, 난 이만. 오후에 진료실 들어가 봐야 해서.”
“네. 들어가십시오. 선배님.”
그렇게 남아 있는 인턴들.
그들도 대부분 아는 소문이었다.
“그 사람한테 찍히면 얄짤 없다던데.”
“그런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어?”
“그렇다니까? 애초에 그 사람이 수문장이래. 작년에도 인턴 하던 선생님 두 분이나 그만뒀다고 하잖아.”
“제발... 내가 배정받은 입원실에만 안왔으면...”
그때, 모여있던 인턴 중 한 남자가 말했다.
가슴에는 유준영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다들, 소문만 듣고서 너무 걱정하는 거 아니에요? 소문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인데.”
“그런가?”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괜히 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잘 해보죠.”
그의 말에 한결 편안해진 인턴들의 표정.
그때, 하얀 가운을 걸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어? 선생님들 여기서 뭐 하세요?”
“안녕하세요. 최 부원장님.”
“네. 안녕하세요. 아~ 오늘부터 당직 시작이신가 봐요?"
최승원이 선생들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보고 물었다.
익숙한 종이였기 때문이리라.
“네. 맞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들이 얼마나 신경을 써주시느냐에 따라서 환자들의 상태가 달라지는 거니까요.”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참, 이렇게 만났는데, 시원하게 마실 거라도 사드릴까요? 파이팅 하자는 의미에서.”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을 내밀었다.
“여기요. 먹고 싶은 거 다 드시고 나중에 제가 있는 층 데스크에 가져다주세요.”
“정말요?”
“그럼요. 이정도는 해드릴 수 있죠. 우리 같은 식구인데.”
“잘 먹겠습니다~!”
“그럼, 전 진료가 있어서 이만.”
호쾌하게 떠나가는 최승원.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인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저분이지?”
“맞아. 혜민한방병원 최연소 부원장. 그 혜민서의 허준 선생님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있다더라고.”
“그래?”
“어, 잠깐. 그러고 보니 병원장님도 최 씨잖아? 혹시...?”
“에이~ 아니겠지.”
그리고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몇몇 선생들까지.
“너무 자상하시다.”
“그러게 내년에 인턴 끝나면, 최승원 부원장님 있는 층으로 배정받았으면...”
그렇게 그날 저녁.
각자 배정받은 입원실의 첫 근무.
유준영이 배정받은 곳은 다름 아닌 교통사고 환자들이 모여있는 입원실.
‘다행이네.’
다른 입원실에 비해서 큰일이 날 확률은 매우 낮았으니까 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당직을 맡은 간호사 선생님과도 통성명하고,
입원실이 익숙해져 나가기 시작했다.
‘할 게 정말 없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꿀일지도?
그렇게 2시.
몸이 무겁고 눈이 감긴다.
그럴 만도 하지.
온종일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이야기도 듣고, 입원실에서 해야 할 일도 교육받고 그랬으니.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찬물로 세수하니 한결 낫네.
시간은 흘러 5시가 넘은 시각.
눈이 반쯤 감긴다.
몸이 나른다하다.
하필, 여기 온도도 딱 잠들기 좋게 설정된 거 같네.
그럼, 조금만..?
···
귓가에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라는 거지.
“유준영 선생?”
“네, 네?”
눈을 떠보니,
자신을 내려다보며 미소짓고 있는 최승원 부원장이 보였다.
“부, 부원장님?”
유준영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이~ 놀라지 말아요. 이해하니까.”
“아, 그게 아니라, 저...”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나마 다행이었다.
평소 사람 좋기로 소문난 최승원 부원장님한테 걸렸으니까.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보다 유 선생님. 침구 전문의 따러 오셨다고 하던데 맞나요?”
“아... 네. 제가 침술에는 조금 자신이 있어서요.”
“그래요? 마침, 잘됐네요.”
'잘 됐다니? 뭐가?'
그때, 최승원이 한쪽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오며 말했다.
“혹시, 좋아하는 숫자 있어요?”
“저는 러키 세븐이요.”
“세븐이라.. 좋은 숫자죠."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호침을 꺼내어 두루마리 휴지에 찔러 넣었다.
“무슨...?”
“뭐긴요? 세어보세요. 7장일 겁니다.”
유준영이 휴지를 뜯어 세어보니,
정말로 7장에서 호침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와... 정말이네요?”
“자~ 시범은 보여줬으니, 다음 주까지. 아니면 아웃입니다.”
“네...? 아니, 잠깐만요 부원장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설명이 어려웠나 보네요? 알아듣기 쉽게 한 번만 더 말할게요. 유 선생. 첫날부터 우리 병원에서 당직 첫날부터 쳐자는 꼴통은 오랜만이거든. 다음 주까지 못 해내면 바로 퇴출이야. 다행인 줄 알아. 난 그래도 능력주의자라서 기회를 준 거니까. 이제 이해 됐죠?”
“아...네.”
“그럼, 수고.”
최승원이 유준영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는 씨익 웃으며 지나쳐갔다.
유준영의 눈에 비친 그 미소는 악마와 다름없어 보였다.
‘진짜 있었구나...악마.’
1년 뒤.
인턴과정을 마친 유준영이 교육을 끝낸 인턴 선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뭐 궁금한 거 없어?”
“있죠. 여기 소문에는 악마가 있다던데. 진짜인가요?”
그 물음에, 유준영이 허탈하게 웃었다.
지난 1년간의 기억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가는 중이었으니까.
“그거 다 과장된 이야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