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222화 (219/230)

외전 3화. 그래도 포기 못 해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아파트.

그 아파트 방 하나에는 특이한 장치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컴퓨터 본체가 두 대.

그 위로 모니터가 세 개.

그리고 방안 곳곳에 설치된 조명과 그 뒤로 보이는 시커먼 스펀지들까지.

그 사이에서 한 남자가 마이크를 두드리면서 시스템을 체크했다.

“아~ 아~”

음, 세팅 좋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짓는 남자. 혜민한방병원의 박용준 원장이었다.

그는 휴일을 맞이하여 방송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쉬는 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왜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무언가를 활동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그런 사람.

박용준이 바로 그런 과였다.

덕분에, 이제는 가장 즐거워하는 일 중 하나가 이번 방송에서 어떤 콘텐츠를 할지 고민하는 수준이 되었을 정도로 말이다.

‘100번째 방송이 이정도는 되어야지.’

어느새 이번 방송이 100번째 방송.

꽤 재미난 그림을 그려놓은 박용준.

이거 잘 못 하면, 내일 또 아침에 또 병원장실로 불려가 한의사로서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등의 잔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는걸.

그래도 지금은 예전과 달랐다.

이제는 규모가 커져서 유튜브와 라이브 방송도 꽤 크게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오히려 TV 프로그램에까지 종종 섭외되는 중이었으니까.

덕분에, 자연스레 환자들이 찾아오게 되었고, 매출으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

그 매출 때문에 최인호 병원장님의 잔소리도 서서히 줄어들어 가는 중이었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박용준이 얻은 아파트 방 하나는 통째로 스튜디오가 되어있었다.

박용준이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세팅을 마무리 지어갈 때쯤,

스마트폰이 울렸다.

“선생님. 지금 도착했어요. 올라가면 될까요?”

“네. 비밀번호 알려드릴 테니 올라오세요. 14층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울리는 벨 소리.

박용준이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이윤경 씨.”

100번째 방송을 위해 도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비행소녀단의 리더. 이윤경이었다.

“와~ 선생님! 정말, 오래간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물론이죠. 요즘 스케줄 소화하느라 여기저기 바쁘실텐데, 예전보다 더 이뻐지셨네요?”

“다 선생님들 덕분이죠.”

“일단, 들어오세요.”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참, 애들은 오늘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아쉽게도 같이 못 왔어요.”

“괜찮아요. 윤경 씨만 하더라도 아마 다들 깜짝 놀랄 거예요.”

이윤경이 들어오면서 집을 한 바퀴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병원에서 이미지 생각하면 선생님 집에서는 한약 냄새라도 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네요?”

박용준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그럼요. 우리도 집에서는 한의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고요. 물론, 몇몇은 제외하고요.”

“아~”

이윤경이 그 ‘몇몇’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깨닫고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이런 데에 나오는 건 처음인데, 따로 뭐 준비해야 하는 게 있을까요?”

“아니요.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대충 제 방송은 몇 개 보셨죠?”

“네. 당연하죠.”

“제 방송은 편하게 이야기 하는 방송이거든요. 가감 없이. 오히려 방송에서의 모습과는 다른 안 꾸며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시작된 방송.

혜민서 박씨가 박용준의 아이디였다.

- 박-하 (박씨 하이라는 뜻)

- ㅎㅇㅎㅇ

- 소문 듣고 왔습니다. 여기가 박씨네 맞죠?

- 네 여기가 혜민서 박씨네 맞습니다~

···

채팅이 주루루룩 올라가고,

박용준이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아아~ 벌써 힘이 나는 것 같네.’

박용준이 대화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채팅창에는 3천여 명 가까운 사람이 보고 있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오늘이 제100번째 방송입니다.”

- 어...? 진짜네?

- 박씨, 100번째 ㅊㅋㅊㅋ

- 오자마자 수금타임인가!?

100번째 방송이라는 말에 짤그랑거리는 효과음과 함께,

[100번째면 100원 가능하죠?]

[100원 넣어 드렸습니다~]

[100번째 방송 축하드립니다.]

···

후원메시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후원금은 효과음 그대로 100원씩.

그 모습을 본 박용준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돈도 충분히 벌고 있었기때문에, 액수보다는 그저 지금의 이 상황이 즐거웠으니까.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지.’

“자자, 모두 감사하고요. 그래서 제가 오늘 준비한 것은! 짜잔! 나와주십시오!”

박용준의 사인에 맞춰,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이윤경이 나타났다.

그러자,

- ????

- !!??

- 어?

- 여기서 왜?

- 여태까지 연예인 썰 푼거 ㄹㅇ이었음?

···

글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

‘뭐야? 이거 기대 이상이잖아?’

당연한 일이었다.

비행소녀단은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명실상부 아시아권을 넘어서서 세계무대에서도 공연할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으니까.

“안녕하세요~ 비행소녀단에서 리더를 맡은 이윤경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그런데 인사가 끝나자마자,

빠밤- 거리는 효과음이 들려왔다.

“선생님. 이거 뭐에요?”

“이거요...?”

박용준이 당황스러워서 그것을 확인했다.

이 효과음은.. 무려 10만 원.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액수다.

‘야... 너희들...?’

[사랑해요. 눈나!]

그때부터였다.

시청자가 빠르게 올라가고, 평소에 듣던 짤그랑 거리는 동전 소리 대신에, 나팔 소리가 마구 울려대기 시작한 것은.

“선생님. 이거 원래 이런 거예요? 채팅이 너무 빨리 올라가서 읽지를 못하겠어요.”

이런 상황이 되니,

시청자들은 채팅 대신에 후원으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눈나! 팬이에요!]

[너도? 나도!]

[박씨는 잠깐 나가 있어. 우리 눈나랑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

이 웃지 못할 상황에 마주친 박용준.

그런 박용준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 옆에서는 어느새 적응해버린 이윤경이 자연스럽게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무슨 사이인가요?]

“아~ 당연히 환자와 한의사 관계죠.”

그리고 그 시각.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또 다른 남자.

“으이구, 용준아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연예인 옆에 붙여 놓으니, 힘도 못 쓰네. 쩝.”

그래도 식구인데, 내가 챙겨야겠지.

남자는 스마트폰을 들어 후원금을 충전했다.

빠바바밤!

[박용준 선생님. 100번째 방송 축하드립니다.]

“와~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100번째 방송 축하한다고 어떤 분이 선생님께 거금의 후원을 보내셨어요!”

“정말요?”

“네. 이것 보세요. 처음 보는 표시인데요?”

이윤경이 모니터에 뜬 메시지를 가리키며 말했고,

당연히 채팅창에는 난리가 났다.

- 헉? 뭐야? 박씨한테 100만 원을 태운다고?

- 이거 실화냐?

···

왠지 모르게 울컥한 기분.

액수 때문이 아니라, 다운됐던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갑자기 활기 넘치는 얼굴로 박용준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라고 외치며 카메라를 향해 크게 절했다.

이윤경이 갑자기 변한 그의 모습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고, 방송은 더욱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

최인호가 중얼거렸다.

“용준아. 그러라고 준 게 아니야.. 멈춰..”

갑자기 후회가 몰려오는 최인호.

한숨을 내쉬면서 한 번 더 중얼거렸다.

“그냥 보너스나 줄걸.”

*   *   *

- 국내 최대의 한방병원인 혜민한방병원이 케이한방병원에 도전하다.

- 혜민서와 손을 잡고 날개를 달은 혜민한방병원이 케이한방병원과도 협약을 맺다.

-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두 거대 한방병원이 손을 마주 잡다.

- 혜민한방병원, 국내 최대의 한방병원인 케이한방병원을 제치고 1위에 자리매김하다.

혜민한방병원에 관한 뉴스들이다.

뉴스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최근 한의대를 졸업한 한의사들 사이에서 가장 가고 싶어라 하는 병원이 되어있었다.

물론, 그 교육과정은 엄격하고 까다롭다는 수준이 아니라 버텨내야만 한다는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인턴 때부터 다른 곳보다 훨씬 넉넉한 급여와 전문의 과정을 끝내고 나오면 이곳 출신이란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었기에 한의사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커지는 혜민한방병원이었으니,

병원장실의 벽면과 책장 곳곳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주는 상장을 비롯해 트로피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최인호가 그것을 바라보며 허준을 떠올렸다.

“참, 사람 인연이란 건...”

그리고 그때,

최인호의 호출을 받고 들어온 남자.

“병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 그래. 부병원장 왔나?”

“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신지?”

“아,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앉지.”

혜민한방병원 부병원장 김태식이 최인호와 마주 앉았다.

곧바로 시작된 이야기.

“자네. 요즘 매출이 아주 날아다니더군.”

“아, 예. 아무래도 제가 남성쪽으로 소문이 난것 같습니다.”

“뭐, 한의학적으로 따지면 결국 모든 것이 이어져 있는 법인데, 자네가 비뇨전문은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도 환자들이 예후가 좋아서."

“뭐, 어쨌든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하지. 자네를 병원장으로 올릴 생각이네.”

“네..?”

병원장으로 올라간다는 이야기에, 김태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최 병원장님이 은퇴를?’

종종 진료를 보고 싶다고는 하셨는데.

진짜로 떠나시려는 건가.

최인호가 혼란스러워하는 김태식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 놀랄 거 없어. 아직 은퇴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우리 병원을 확장하기로 했네.”

좋은 뉴스였다.

부병원장이었기에 다른 사람은 아직 모르는 비밀 중의 비밀.

“그 새로운 병원의 병원장 자리를 자네가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어떤가? 어느 정도 매출도 이끌 수 있고,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경험이나, 나이로 봐도 자네가 적임자인 것 같아서 말이야.”

“저야 영광이죠.”

“좋아. 그럼, 수락한 것으로 알고. 이거 받게.”

“이건...?”

“새롭게 만들어진 병원으로 옮겨갈 친구들일세.”

김태식이 리스트를 확인했다.

그러다가,

“병원장님...?”

“왜? 마음에 안 드나?”

“그건 아니고... 혜민서 멤버가 보이지 않아서요. 적어도 고요한 원장이나, 최허준 원장, 이두철 원장. 하다못해, 최승원 부원장 중에 한 명이라도...”

“자네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자세히 보면 붙여 줬잖나?”

김태식이 리스트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이곳에 없는 이름.

“설마...?”

“그래. 한 명 있지 않나. 자네와 단짝. 손발도 잘 맞고, 수완도 좋은.”

“안됩니다. 병원장님. 박 원장 그 친구 제가 감당 못 합니다. 엊그제 방송 보셨잖습니까? 인터넷에 뉴스도 조그맣게 났더니만요.”

“그래서 싫은가? 그만큼 매출이 올라가는 건데.”

“그렇기는 하지만...”

“여하튼, 그렇게 진행하는 거로 알고 있겠네. 나가보게. 참, 아직은 비밀이니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고.”

“네. 알겠습니다.”

병원장실을 나서는 김태식의 모습을 보며,

최인호가 통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김태식 이 친구야, 여태까지 박용준 편을 들었으니. 자네 업보라고 생각하게.’

그날 점심.

단짝으로 지내온 두 남자가 식당에 마주 앉았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맛있게 먹자고.”

“참, 부병원장님 아침에 병원장실 들어갔다 나왔다면서요?”

“어? 으, 응..”

“왜요? 혹시, 저 때문에?”

박용준이 살포시 물었다.

엊그제 방송이 기사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정도면 병원장실로 호출이 오기 마련인데,

아직 소식이 없으니, 한번 떠본 것이었다.

김태식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야. 그건 아닌데...”

“아닌데?”

“박 원장. 방송 좀 안 하면 안될까?”

“어라?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언제는 열심히 잘 해보라고 하더니.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나야 당연히 자네 편이지. 그래도 요즘에는 좀 너무하다 싶어서.”

“에이~ 부병원장님 왜 그래요? 병원장님처럼.”

박용준이 묘하게 바뀐 분위기를 캐치해냈다.

몇 년간 단짝이었기에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변화를.

“어...? 설마?”

김태식이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박용준도 기분 좋다는 듯이 웃었다.

“김 병원장님. 그래도, 포기 못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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