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221화 (218/230)

외전 2화. 한의사 유도진 (2)

정우한의원의 원장실 겸 진료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흔적이 있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김정우와 유도진이 마주 앉았다.

“그러니까, 여기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

그 대답에 김정우가 유도진을 바라본다.

비록, 환자와 한의사의 관계였지만,

한의사로 살아온 지 어언 30년이 넘은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본 김정우는 유도진이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눈빛과 별로 변하지 않는 표정.

그리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당당함과 우월함.’

“여기는 어떻게 찾아왔나? 자네같이 젊은 친구가 내 한의원에 오는 일은 드문데 말이야.”

“길을 가다가 우연히 보았습니다.”

김정우의 질문에,

유도진이 사실대로 말했다.

물론, 한의원 원장과의 처방을 두고 벌어진 일은 빼고, 이곳을 걷다가 보게 된 모습까지만.

“그렇군. 그럼 자네도 어렴풋이 짐작하겠지만, 여기 일이 보통 한의원보다 많은데 할 수 있겠나?”

“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단호하게 답한다.

그 모습에 자연스럽게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30여 년 전 자기 모습이 바로 그러했으니까 말이다.

동시에, 김정우의 머릿속에는 자신에게 한의학을 알려준 스승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스승님이 살아계셨다면 이 모습을 보고 껄껄거리며 이렇게 말하겠지.

‘이놈아 그게 네 업보다.’라고.

정말 그런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인연이라고 하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 터.

“좋아. 내일 아침 7시에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원장님.”

*   *   *

다음 날.

유도진의 첫 출근.

“안녕하세요. 유도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서 오세요. 유 선생님.”

“반가워요~”

데스크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쪽으로 따라오시겠어요? 제가 일단 정리는 대충 해놨는데..”

안내 받은 작은 진료실.

그런데,

‘어제 얼핏 보긴 했는데, 이정도일 줄은 몰랐네.’

진료실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침대가 없네요?”

“아, 네.”

“그럼, 여기 사용하시던 선생님께서 진료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저 그게...”

그때, 뒤에서 헛기침 소리와 함께,

김정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왔나?”

“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그래. 일단 가운 입고 원장실로 들어오게. 오늘 자네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줄 테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원장실.

김정우가 하얀 가운을 입으며 유도진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자~ 일단 이거부터 확인해봐.”

“네. 저, 그런데 원장님.”

“음? 무슨 할 말이라도?”

“예. 진료실에 침대가 없습니다. 그럼 진료를 보는 데에 있어서...”

“자네 첫 출근 날부터 진료 보려고?”

“물론입니다. 그러려고 왔으니까요.”

유도진의 대답에,

김정우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니야. 일단은 우리 한의원 분위기도 파악할 겸, 오늘은 원장실 옆에 붙어서 보조해 주시게."

얼마 지나지 않아,

진료가 시작되었다.

첫 진료환자는 가벼운 관절염.

단골 환자인지 원장님과 꽤 친한 사이 같아 보였다.

“아이고~ 또 오셨어?”

“이제는 몸뚱어리가 늙어서 조금만 움직였다 하면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니까?”

“쯧쯧, 핑계는. 어디, 무릎 말고 다른 데는 괜찮고?”

“괜찮아. 내가 여기만 좀 부실해서 그렇지. 또. 생각보다 튼튼 하다니까?”

“거~ 침 맞고, 좀 쉬다 가면 좋아지겠네.”

“고맙수다~ 선생. 역시, 우리 김정우 선생님밖에 없다니까?”

‘요즘에도 이런 한의원이 있다니.’

첫 진료 모습에 꽤 충격을 받은 유도진.

그리고 자연스럽게 원장의 처방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자신의 처방을 비교한다.

그렇게 하나, 둘.

순식간에 십, 이십.

‘이게 뭐야?’

무언가 이상했다.

이 작은 한의원에 환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그 찾아오는 환자들 중간중간에 보약을 맞추기 위해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여기에 더해서,

그날 진료를 끝내고.

“오늘 수고했네. 유도진 선생. 하루 옆에서 있어 보니, 어떤가?”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유도진이 순수하게 감탄하며 답했다.

“그래? 잘됐네. 그럼, 약재 정리 좀 해주겠나? 요리가 맛있으려면 재료가 좋아야 하듯, 약도 약재의 관리가 중요하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약재 정리 끝내고, 퇴근하게. 내일 보도록 하지.”

사람 좋은 얼굴로 초과근무를 시키는 김정우.

요즘 시대에 누가 직접 이렇게 약재를 관리한단 말인가.

업체에서 다 진공포장으로 배송이 되어 오거늘.

특유의 고집인지, 옛날 방식으로 인해 일은 많아 몸은 힘들고,

게다가 급여는 짰으니,

‘엊그제 다른 선생님이 그만두겠다며 뛰쳐나간 거로구나.’

그래도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한의원은 처음이야.

유도진이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약재 창고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퇴근길에 올랐다.

*   *   *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유도진은 여전히 진료실 옆에서 처방을 적어 나가며, 보조로 일하고 있었다.

“진료는 아직 이른 것 같네만?”

원장님이 직접 그렇게 말하니 어쩌겠는가.

그 덕분에, 보조 업무와 약재 관리를 하고 있었으니.

평소에는 그저 봉지째로 넣어 사용하던 약재들의 생김새와 향을 비롯한 특징들이 몸에 익기 시작했다.

‘이것도 아마 옛날 교육 방식이겠지.’

유도진이 이 고전적인 방식과 잡무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아무런 말이 없는 이유는 하나였다.

며칠 동안 지켜보니,

무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한의원.

수없이 많은 환자가 찾아오는 데에도 한의원은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중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있고 없는 것은 중요치 않다.'

덕분에 며칠이 지난 뒤에야 깨달은 사실은,

김정우 원장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금 자신은 진료를 전혀 보지 않는 상황.

원장님 혼자서 이 많은 환자의 진료를 수월하게 해나가고 있었으니까.

‘여태까지 만나본 원장님들과는 내공이 다르다.’

진료실에 오가며 수군거리던 환자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역시, 용하시다니까?”

“그럼. 당연하지~ 김정우 선생님인데.”

“엊그제 우리 앞집에 여편네가 와서 변비도 약 먹고 싹 나았다잖아.”

“침은 또 어떻고~ 내가 이 동네 한의원 다 돌아다녀 봐도 여기 아니면 안 돼.”

옛날 한의원이었기에,

인터넷에는 올라오지도 않는 그런 한의원.

‘배울 게 너무 많다.'

자신이 익힌 것 만으로도 진료를 보는 데에 있어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에 오니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었다.

자신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경험으로, 환자들의 상태를 이미 꿰고 있다는 듯이 진료하는 사람.

그것이 이 정우한의원의 원장 김정우였다.

'어쩌면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의문을 풀 수 있을지도.'

그래서,

“선배. 좋은 자리 났어요.”

“요한아, 괜찮다. 한동안 일할 곳을 정했거든.”

단번에 거절하고 마음을 굳힌 유도진이었다.

그렇게 어느 날 한의원을 찾아온 한 환자.

유도진이 차트에 적혀있는 증상을 확인했다.

‘반위?’

실제로는 처음 보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질환이다.

과거 호형호제하며 지내던 이웃집 아저씨네 할머니가 앓고 있던 지병이었으니까.

현대의학 용어로는 위암.

대화를 들어보니, 말기였다.

“요샌 좀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지어주신 약을 먹고 많이 편안해진 느낌이에요.”

“다행이네요. 그럼, 진맥부터 잡아보도록 하죠.”

김정우가 맥을 잡았고,

유도진이 그 모습에 집중했다.

자연스레 과거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김정우가 눈을 뜨고는 입을 열었다.

“지난번과 같은 처방을 내려드리겠습니다.”

“네~ 선생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시겠죠.”

환자는 김정우에게 모든 걸 맡긴 것처럼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환자가 나가고,

“유 선생.”

“아, 네.”

“차트에 기록된 처방전 잘 확인했지?”

유도진이 차트에서 이전의 처방을 확인했다.

어찌 이 처방을 잊을 수 있을까.

과거 아버지가 처방했던 그 처방전과 한치도 다름없는 한문의 약재들이 적혀있었으니,

‘옛날에 아버지의 처방과 같다.’

“물론입니다.”

“좋아, 지금 나간 환자는 반위. 즉, 요즘으로 따지면 위암 환자일세. 이미, 말기지. 자네의 눈치를 보니 이미 아는 듯하구먼.”

“네. 문진 때에 들었습니다.”

“그럼, 반위 환자가 한의원에 찾아오는 일이 얼마나 흔치 않은 일인지는 잘 알고 있겠군. 그러니, 꼭 처방을 기억해 두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왜? 무슨 질문이라도 있는가?”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유도진의 되물음에,

김정우가 유도진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 처방으로.. 정말, 고칠 수 있는 겁니까? 아니, 효과라도 있는 겁니까?”

듣고 싶었다.

효과가 있다고, 고칠 수도 있다고.

아버지가 틀린 것이라고.

그 물음에,

김정우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효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

애매모호한 답변.

여태까지 속 시원하게 알려주던 그런 답들과는 다른 답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세상 모든 병을 고치는 약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건... 그렇지만. 효과가 없다면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지. 환자가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한 것이 우리의 의무일세.”

“원장님. 만약에 말입니다. 환자의 가족들이 따지고 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물음에,

김정우가 담담하게 답했다.

“그것 또한 우리가 짊어져야 할 것이 아니겠나.”

“저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유 선생. 나중에 말이야, 언젠가는 자네도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날이 올 걸세.”

그렇게 시간이 흘러,

본격적으로 진료를 보기 시작한 유도진.

“유 선생님도 잘 보시네.”

“그러게, 말이야. 좀, 말이 짧고 딱딱하지만, 용하다니까?”

“아무렴? 김정우 선생님이 직접 몇 년 동안 가르쳤으니, 당연한 일이지.”

“근데, 허준 한의원 이허준 원장 이야기 들어봤어? 거기가 요새 장난 아니라는데?”

“에이~ 거기 TV 나와서 그래.”

점심시간이 되어서,

김정우가 유도진에게 물었다.

“자네, TV에 그거 봤나?”

“어떤 거 말씀이신지.”

“왜? 그 젊은 한의사 친구 나와서. 이쪽으로 오라고 환자들한테 소리치는 장면 말이야.”

“아, 네. 봤습니다. 이야기 들어보니, 저 건물 2층에 있는 한의원 원장이라고 하더군요.”

“맞네. 그래서 하는 이야기야. 왠지 자네랑은 정반대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TV에서 대본 써준 것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럴 수도 있지. 들게.”

김정우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   *   *

혜민촌.

희귀난치병센터.

유도진이 스승인 김정우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허준 그 친구는 요새 어디에 있나?”

“외국으로 나가서 돌고 있다고 합니다.”

유도진이 웃으며 답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든 따듯함이었다.

“그 친구 답 구만. 유 선생.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올라서 그런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선생님.”

“자네 기억나나? 예전에 나한테 물었던 물음. 위암 말기 환자에게 처방한 한약을 보고 정말, 고칠 수 있는 거냐고, 효과가 있는 거냐고 했던 물음말이야.”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지금, 자네라면 뭐라고 답할 텐가?”

“글쎄요...”

유도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기도 하지만,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환자가 원하니까요.”

이허준 원장이 입에 달고 다니던 바로 그 말.

‘왜 그때, 스승님께서 그렇게 답하셨는지 알겠군.’

아마, 아버지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당당하게 말하고, 화내고 하는 것이 사실은 당당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한의사는 그저 환자의 상태를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뿐.

“저도 선생님과 같은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유도진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김정우도 유도진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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