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화. 한의사 유도진
“XX년 XX월 XX일 수요일, XX시. 김영순 환자분 사망하셨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의 말에,
주변에 서 있던 가족들이 흐느낀다.
그때, 그사이로 새어 나오는 고함.
“다 네놈 때문이야!”
“형님. 그게 아니라...”
“네가 그런 말을 하지만 않았어도 어머니가 이렇게 되시지는 않았을 거다! 보약을 먹으면 좋아질 거라고?”
원망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다.
그 말을 들은 남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냐? 너와는 이걸로 끝이야! 꼴도 보기 싫으니 썩 나가!”
“형님...”
“내 말 안 들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가족들이 나서서 말렸다.
“일단,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형수님.”
그렇게 밖으로 쫓겨난 한 남자.
기다리고 있던 부인과 아이를 바라보고는 괜찮다는 듯이 애써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부인이 한숨을 내쉬고는,
“여보.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세요.”
“알았어. 그럴게.”
“제가 여기서 도진이랑 기다릴게요.”
남자가 고개를 흔들며 밖으로 향했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가 잘못 한 거예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는 동네에서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던 의사 선생님이었으니까.
“아니야. 도진아. 너희 아빠는 잘못이 없단다."
“그런데, 저 아저씨는 왜 화를 내는 거예요? 아빠 친구라면서요.”
“그건 말이야...”
며칠 뒤,
도진이네 집 앞으로 한 통의 우편물이 배달되었다.
“여보...”
“걱정하지 마. 형님이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거니까. 내가 가서 잘 말해 볼게.”
이렇게 사람 좋은 생각과는 다르게, 동네에서는 사람을 죽인 한의사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아빠 친구라 불리던 아저씨네 집은 이 동네에서 대대손손 이어온 지역유지였으니까.
덕분에 한의원에 찾아오는 환자는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환자들의 발걸음이 끊어졌다.
나쁜 일은 한 번에 몰려온다고 했던가.
“유 선생네 부인 이야기 들으셨어요?”
“네. 어쩜 이런 일이.. 엊그제 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마주쳤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유도진의 어머니까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동네에 소문이 어떻게 났겠는가.
그렇게 힘든 시절을 보내며 사춘기를 맞이한 유도진.
“아빠. 도대체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아저씨한테 미안하다고 그러는 거예요?”
“도진아...”
“엄마는 아빠가 잘 못 한 거 없다고 그랬는데.”
“당연하지. 하지만, 도진아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없는 일들도 종종 있단다.”
사람 좋은 얼굴로 담담하게 답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차라리 잘못했다고 빌던가, 또는 잘못이 없다고 당당하게 화라도 내었으면 하는 답답함.
‘난 아빠처럼 살지 않겠어. 당당하게 말할 거야.’
그때부터였다.
유도진이 한의사가 되기로 한 것은.
그렇게 몇 년 뒤.
XX 대학교 앞 작은 술집.
무사히(?) 실습을 마친 한의대생들이 둘러앉아 메뉴판을 바라봤다.
늘 오던, 그런 단골집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이곳의 주력 메뉴는 피하고 싶은 그들이었다.
“야, 오늘은 간단하게 계란말이나 먹자.”
“그게 좋겠지?”
“당연하지. 도진아 괜찮지?”
유도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쟤는 묻지 마. 아까 보니까, 실습하면서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
“역시, 그 정도는 해야 유도진인가? 난 지금 생각만 해도... 우웁, 잠깐, 나 화장실.”
“말하지 말고 다녀와. 나도 떠오르니까.”
피 냄새는 아니지만, 그 냄새 대신에 포르말린 냄새가 아직도 머릿속에 지끈거린다.
이 이상한 기분을 빠르게 해결할 방법은 알코올이 가장 가성비가 좋을 터.
그래서였을까.
평소보다 빠르게 취해가기 시작한 대학생들.
그렇게 자리 잡은 학생들의 옆 벽면에는 청춘을 보내며 남겨둔 흔적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그 더러운 벽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한 학생.
“이거, 마치 우리가 배우는 한의학 같지 않냐?”
“저 벽이?”
마주 앉은 동기의 물음에, 남자는 소주잔이 들린 손으로 벽의 한쪽을 가리켰다.
이니셜 SY와 KJ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하트모양을.
“봐봐. 자세히 보면 뭐 세연? 아니면 시영? 아무튼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랑 경준, 강재 뭐 그런 애랑 사귀면서 낙서한 거겠지. 어쨌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의미잖아? 마치, 공식처럼.”
“그런데?”
“그런데, 이쪽을 보면~”
낙서가 빼곡한 벽.
끝부분과는 다르게, 한가운데에는 빼곡한 낙서 덕분에 시커멓게 색칠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게~ 내가 배우는 한의학이다~ 이 말씀이야. 뭐 외우라는 게 이렇게 많은지, 게다가 실제로 환자들의 체질과 증상에 따라서 또 다를 수도 있다면서? 저 벽 같잖아. 뒤죽박죽 섞여서 아무것도 모르겠는.”
그 투정에 누군가가 동조했다.
“인정. 솔직히, 돈 잘 번다는 이야기만 아니었으면... 후~ 진짜, 대학교 와서 한문 외우느라 눈 빠지는 줄.”
그 벽을 바라보며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는 유도진.
얼핏 들으면 맞는 이야기다.
“도진아. 넌 어때?”
“나?”
“그래. 너.”
“자세히 보면 그래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유도진의 답했고, 학생들이 그런 유도진을 바라봤다.
“하여간, 누가 유도진 아니랄까 봐.”
“역시, 재수 없네.”
“그래~ 도진아 니 똥 굵다.”
* * *
한빛한의원.
면접을 보러온 유도진을 원장 김수형이 쓱 바라봤다.
‘듣던 대로 보통내기가 아니네.’
한의대 성적도 최상급에,
실력도 뛰어나다고 하더니.
다만, 눈앞에 있는 뛰어난 한의사에게 한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건 바로,
“유도진입니다.”
그의 말투와 표정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움.
한의원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이렇게 뾰족하고 날카로움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당연한 법이었으니,
‘그래도 재주는 좋다고 했지?’
지금 한의원을 확장해 나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터.
“김수형이라고 하네. 내일부터 잘 해보지 우리.”
“네. 원장님.”
그렇게 다음 날.
새로운 한의원으로 옮긴 유도진의 첫 출근.
다른 한의원에서 근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간호조무사 선생님들과 인사를 마치고,
진료를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아이고~ 오늘 새로 오신 선생님이신가 봐?”
“네. 유도진입니다.”
단골 환자 이정숙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유도진을 바라봤다.
대답이 저게 끝인가? 하는 그런 눈이었다.
보통은 안부라도 묻던가,
친근하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하지 않던가.
‘긴장해서 그런가?’
말투가 딱딱하다.
하긴 젊어 보이니, 그럴 수도 있겠네.
이런 생각과 함께 먼저 말을 붙이려는 찰나,
“손을 주십시오.”
유도진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렇게 두 손을 내민 이정숙.
그런데,
진맥을 잡으면서 감고 있었던 눈을 뜨자마자,
“탕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약을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허리가 아파서 침을 맞으러 왔을 뿐인데, 약을 먹으라니.
“약...?”
“네. 허리가 아픈 것은, 신허증으로 인한 신허요통입니다. 허증은 침만으로 다스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 원장은 침으로 꾸준히 맞으면 충분히 낫는다던데?”
“말씀드렸다시피, 침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단호한 대답.
이정숙의 눈이 유도진에게로 향했다.
‘원장이 약을 팔라고 시킨 건가?’
이렇게 잘 모를 때에는,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기에 충분한 나이였다.
“약은 됐고, 침이나 놔줘.”
“알겠습니다. 치료실로 가시죠.”
그렇게 치료실에서 유도진에게 침을 맞은 이정숙.
그런데, 침을 놓는 자리가 원장의 자리와는 다른 것이 아닌가.
원장은 나이와 생활 습관으로 인해서 허리 근육에 무리가 가 통증이 생긴 것이라며, 허리 근육 주변으로 침을 놔줬는데,
지금, 선생은 허리가 아닌 전혀 상관없는 손과 발끝에 찔러 넣었다.
‘이거, 정말 제대로 놓은 것 맞아?’
그런 걱정은 침을 뽑고 치료실에서 나오는 첫걸음을 디뎠을 때 사라졌다.
시큰시큰하게 허리에서 올라오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정숙이 살짝 놀란 얼굴을 한 채, 데스크로 향했다.
“저기..”
“아, 어머님. 침은 잘 맞으셨어요? 계산-”
“그게 아니라, 새로 오신 선생님 좀 만날 수 있을까? 유 무슨..”
“유도진 선생님이요?”
“그래. 그 선생.”
진료실 문이 다시 열리고,
이정숙이 유도진에게 말했다.
“아까, 약 먹어야 한다고 그랬지?”
* * *
며칠 뒤,
이정숙 환자의 상태는 완전히 좋아졌다.
허리에 침을 맞으러 늘 오던 단골이었기에,
그녀의 이야기는 환자들에게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그래? 정숙 씨가 새로 온 선생한테 약 처방 받아서 싹 나았다고?”
“그렇다니까? 진맥을 잡자마자, 약 먹어야 한다고 하더래.”
환자가 누가 들을세라,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런데, 진짜 대단한 것은 여기 원장이 정숙 씨한테는 침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랬다는 거야. 그러니 지금 한의원 분위기가 말이 아닌 거지.”
말 그대로였다.
환자의 상태가 좋아졌지만, 반대로 한빛한의원의 원장인 김수형의 표정이 갈수록 안 좋아졌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유 선생.”
“네.”
“자네, 꼭 그래야만 그랬나?”
“무슨 말씀이신지.”
“처방 말이야, 처방. 요즘 환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좀 웃기게 들려오잖아? 마치, 내가 잘못 진료를 본 것처럼 말이야. 그냥, 처방전에 나와 있는 그대로 처방만 하면 될 것을.”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넸다.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게.”
유도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한빛한의원을 나서는 유도진.
저녁 바람이 시원하다.
‘또 군.’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를 진료하는 데에 있어서 틀린 것을 바로잡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도진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전화를 걸었다.
절친한 후배인 고요한이었다.
“선배. 저에게 전화를 먼저 주셨다는 것은..”
“맞아.”
“또요?”
“한의원 분위기를 흐린다고 하더군.”
“그러니까요. 선배. 제발, 부원장이면 원장님이랑 부딪치지 말라고요.”
“나도 최대한 노력했어.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고, 틀린 건 틀린 거잖냐.”
“알죠. 아주 잘 알죠. 선배 말이 백번 맞는 말인데, 그래도 제발 그 성격 좀 죽이면 안되요?”
고요한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도진이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바꾸고는,
“됐고, 어디 부원장 구한다는 곳 없어?”
“대학병원 사건부터 소문이 여러 개 나서... 좋은 자리는 시간이 좀..”
“그래도 좀 알아봐.”
그러면서 전화를 끊은 유도진.
눈앞에 오래된 한의원 간판이 들어왔다.
[정우한의원]
‘진짜 오래된 한의원같네.’
그때, 한의원 문이 벌컥 열리며,
두 남녀가 뛰쳐나왔다.
“김 선생님. 정말로 그만두시려고요?”
“네. 김정우 선생님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은 좀 아닌것 같아요.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단호한 대답에,
차마 잡지 못하는 여인.
“그래도 우리 선생님 정말, 대단하신 분인데...”
그런 그녀의 뒤로,
하얀 가운을 입은 노인이 나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갔구만. 어쩔 수 없지. 싫다는 데 억지로 가르칠 수는 없지 않겠나.”
“선생님... 그러니, 화를 좀 줄이시는 게... 벌써 몇 번째에요?”
“이 사람이! 진료를 하는데 있어서 실수는 곧,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는 일. 하물며 약재를 다루는 것은 오죽할까. 사람 죽여놓고 이해해달라고 할텐가?”
“그건 그렇지만...”
“됐고, 들어가서 마무리나 하세.”
하얀 가운을 걸친 한의사의 말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어렸을 적 일이 떠오른 것은.
유도진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정우한의원이라 적힌 곳으로 향했다.
당분간 좋은 자리도 없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