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헛것이 다 보이네요
“네...?”
“선생님...?”
그 대답에, 가장 가까이 있던 환자들이 의문을 표했다.
허준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제가 병원 식당에 계신 주방 이모님들과 선생님들을 좀 꼬셔봤는데, 절대 안 오겠데요. 뭐, 아무래도 위치가 위치다 보니까.”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유다.
이런 곳으로 출퇴근을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숙식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으니,
‘오려는 사람이 없겠지.’
물론, 실제로 물어보지도 않았다.
양심에 조금 찔리기는 하지만, 이렇게 직접 숙식을 해결하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럼, 여기에 우리끼리만 있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환자들의 입에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할 때,
냉장고를 뒤져보던 한 환자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쌀하고 장류는 다 있네요? 고기와 야채들도 조금 있고, 재료는 충분한 것 같아요.”
“제가 기본적인 식자재를 준비해 두기는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 마당에, 제가 저녁을 준비해 볼까요? 이래 봬도 20여 년간 식당을 운영해왔으니, 먹을 만 할 겁니다.”
그 이야기에, 환자들이 다행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 맞아~ 우리 김영철 사장님이 식당 하셨다고 그랬었지?”
“휴~ 다행이네.”
“그럼 영철 씨만 믿을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 자~ 어디-”
그러다가,
“어..? 선생님. 불이... 없네요?”
김영철이 당황한 얼굴로 허준을 바라본다.
준비된 식기들과 조리도구들, 그리고 재료까지 완벽했는데,
‘가장 중요한 불이 없네?’
주방 어디에도 가스레인지나, 전기레인지와 같은 시설이 보이지 않았다.
허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여기까지 가스가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래도 전기는 들어오잖아요? 요즘, 전기레인지나 전기오븐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요.”
“그렇기는 한데, 하루 전기 사용량이 정해져 있어서요. 이 건물은 친환경적으로 지어져서 태양광 발전을 사용하거든요. 그래서 형광등과 온수 등으로 사용하면 거의 간당간당한 수준이라..”
이야기를 들은 김영철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허준을 바라본다.
물론, 등 뒤로는 주방에 같이 있던 다른 환자들의 따가운 시선과 함께.
김영철이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허준 선생에게 따질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그, 그럼, 우리 일단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게 시작이었다.
식사뿐만이 아니었다.
“선생님. 여기 방에는 보일러가 없는 것 같은데요?”
“아~ 저기 아궁이에서 주욱 연결된 온돌입니다. 아주 따듯하실 거예요.”
그렇게 센터를 둘러보는 일행들.
김예진이 허준을 불렀다.
‘원장님이 직접 다 하시겠다고 하더니, 이게 대체 뭐야?’
그 말을 믿고, 이곳에 공사 시작한 이후로 처음 온 것인데,
세상에 어떤 병원이 이렇게 불편하단 말인가.
입원하는 환자들에게 기본적으로 편안함과 안정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 그녀였다.
“원장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요?”
“말 그대로예요. 김태현 씨가 실수로 아직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건가요? 여기 물도 그렇고, 전기도 그렇고 환자분들이 너무 불편해하실 것 같아서요. 물론, 공기가 좋은 거는 알겠는데...”
“아닙니다. 지금, 이 모습이 완성된 상태입니다.”
허준이 전혀 아니라는 얼굴로 답했다.
김예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설명을 필요로 하는 그런 눈빛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
편안한 병원 생활에 익숙해져 있을 테니까.
아마, 지금쯤 함께 온 환자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간단합니다. 우선 여기 물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오히려 좋았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으니까요. 특히, 탕약을 달이는 데에도 그만입니다.”
“그래도... 다른 부분에서 환자분들이 불편해하실 만한 부분이 엄청 많은 걸요.”
“아~ 그건 일부러 그런 겁니다.”
“네...? 일부러요?”
휘둥그레지는 김예진의 눈.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김 선생님. 사람의 몸이란 말이죠. 너무 편하게 있어도 병에 걸리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시지 않았나요? 인간의 몸은 걷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말이죠”
“그 말은..”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겁니다.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과 환경. 그리고 움직이는 겁니다.”
지금 시대는 예전과 다르다.
예전에 왕이나 걸릴 법했던 병들이 요즘에는 대중적으로 만연해 있다.
시대의 변화 때문이다.
잘 못 먹는 시대를 지나고 지금은 오히려 너무 잘 먹고 편하게 지내서 병에 걸리지 않던가.
불치병과 난치병, 암 등의 병 또한 큰 범주 안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이 병들과 싸움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
이것이 허준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희귀난치병 센터는 이런 모습으로 탄생했다.
따듯한 방에서 잠을 자려면 불을 때야 하고, 나무가 떨어지면 땔감을 주어야 한다.
땔감을 줍기 위해서는 산을 올라야 하고, 그것이 곧 전부 몸을 움직이는 운동.
어디 이뿐인가.
음식 재료가 있다고는 했지만, 정확히 쌀과 고기 조금을 제외하고는 전부 뒤에 있는 텃밭에서 직접 키워야 했으니,
설명을 듣고 긴가민가한 김예진에게 허준이 말했다.
“그러니, 저녁 하는 거나 도와주세요. 김 선생님. 불 피울 줄은 아시죠?”
* * *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인다.
‘여긴...’
아 참, 그랬지.
산속에 있는 센터에 와있었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리니,
같은 방을 쓰는 환자가 눈에 들어온다.
박종천이라고 하는 어르신.
어제저녁 통성명과 함께, 불 꺼진 방 안에서 살아온 나날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희로애락과 성공과 실패.
이런 이야기들이 하나하나씩 포개지면서, 타인의 삶을 알게 된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온몸이 쑤셔온다.
‘어제 장작을 패서 그런가 보네.’
평생 해보지도 않은 장작 패기를, 이런 상황에서 해볼 줄이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흘러나온다.
“어~ 일찍 일어났네?”
“박 사장님도 잘 주무셨어요?”
“어우 어제 텃밭 일군다고 오랜만에 쟁기질을 했더니...”
“하하, 나도 그래요. 장작 패기를 했더니 등짝이 아파서 원.”
“그래도 재미는 있지 않은가?"
"재미요?"
“그럼~ 맨날 병실에 드러누워 있는 것보다야 이게 낫지.”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네요."
“그보다 오늘 아침은 누가 해주려나?”
이렇게 허준과 함께 시작된 희귀난치병 센터의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으니,
열악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빠르게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오~ 김 사장님 음식 솜씨가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가 한동안 밥을 안 했더니 사라졌던 손맛이 이제야 조금 돌아오나 봅니다.”
허준이 흡족한 얼굴로 밥을 먹으며 말했다.
그런 뒤쪽에서는,
“이상하게 여기는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 온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되었다고?”
“그러게 말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니.”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김정우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산속은 일찍 해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환자들이 어느새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잊었어.’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만큼 보람차고 즐겁다는 뜻이었다.
본래, 무언가 신경을 쓰면 쓸수록 스트레스도 따라오기 마련이었으니,
이렇게 자신이 아픈 환자라는 것을 잊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이 당연할 터.
‘어디 그뿐인가.’
이런 산속 한가운데 덩그러니 환자들만 모아두다 보니,
서로 간의 사이도 끈끈해지며 화목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공기가 좋아서인지 이곳에 온 뒤로, 기침한 적이 없군.'
현대의학이 자랑하는 검사장비가 없었지만,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김정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미소지었다.
* * *
며칠 전,
혜민한방병원.
출근한 김예진에게 병원 안에 있는 한의사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녀가 최초로 허준 원장님이 계시는 희귀난치병 센터에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팀장님. 어땠어요?”
“잘 모르겠어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 잘 모르겠다는 대답은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끌기에 충분했다.
여태, 그녀의 입에서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해는 하는데, 그게 진짜로 될까?’
의문이 앞선다.
그렇게 병원장실.
평소처럼 업무보고를 마쳤는데,
“김 팀장. 가보니까 어땠나? 보내온 사진으로는 아주 잘 만들어 놨던데.”
“아, 그게...”
다녀온 지난 이틀간을 생각하니,
장작 패기에 아궁이 불붙이기, 텃밭 일구기 등 온갖 잡일만 하다 온 것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온몸이 쑤시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던 그녀였지만,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니 알이 배기는 것은 당연한 법이었다.
“자네가 답을 망설이다니, 혹시, 문제라도 생겼나?”
“어... 그건 아니고... 병원장님께서 하루 날 잡아서 직접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서...”
“그 정도인가? 우리 김 팀장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더욱 궁금해 지는구만 그래.”
이렇게 김예진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혜민한방병원 전체에 돌기 시작했고.
허준과 친분이 두터운 혜민서 선생들에게도 중요한 이야기가 되었다.
“김예진 팀장이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네.”
“김 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진짜 궁금해지네요. 얼마나 잘해놨길래.”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박용준이 씩씩하게 답했다.
“잘됐네요. 마침, 내일부터 우리 휴무 다시 정상화 됐잖아요. 허준 원장님과 김정우 선생님 얼굴도 뵐 겸 해서 다녀와야겠어요.”
허준이 빠진 뒤 며칠 동안 휴무가 미루어지면서 진료 정상화에 힘쓴 혜민서 선생들.
이제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서 다시금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그 말을 들은 유도진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저도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렇게 다음 날.
아침 일찍 만난 유도진과 박용준이 허준에게로 향했다.
“허준 원장님이 가신 지 며칠밖에 안 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요즘은 병원이 낯설다니까요?”
“동감입니다.”
“아마, 우리가 이정도면 4층에서 진료를 보는 밥 선생님이나 최허준 선생님은 더 그렇게 느끼겠죠?”
조수석에 앉은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존재감이 컸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또, 허준 선생님이 가시겠다는데, 우리가 말릴 수도 없고. 희귀병과 난치병을 진료하러 가시겠다니. 아~ 저는 못 할 것 같아요. 원장님은 어떠세요?”
“사실...저는 가고 싶었습니다.”
“정말요?”
“네. 그런데, 허준 원장이 부탁하더군요.”
유도진이 며칠 전 허준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답했다.
“유도진 선생님의 생각은 이해합니다만, 당분간은 저 혼자서 진료를 보겠습니다.”
“어째서입니까?”
“환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선생님이 빠지면, 그 빈자리를 채워 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저 혼자 정도야, 혜민서에 있는 선생님들께서 채워주실 수 있겠지만, 선생님까지 자리를 비우면 분명히 무리가 올 겁니다. 그러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박용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허준 원장님다운 대답이네요.”
그렇게 어느새 차가 거의 보이지 않은 한적한 산길로 들어섰고,
한참을 더 가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 맞죠?”
“네. 그런데..."
차에서 내린 두 한의사의 눈에 이상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작두로 약재를 다듬고 있는 허준.
그리고 그 뒤로 입원실에서 보던 몇몇 얼굴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용준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 거리며 눈을 비볐다.
“요즘 몸이 허한가? 헛것이 다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