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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211화 (208/230)

211화. 혹시, 내일 시간 있으세요

김정우 선생님이 찾아온 뒤,

퇴근한 허준은 밤새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의학적인 자료들부터 시작해서 인터넷에 올라오는 신빙성이 낮은 글들까지.

물론, 여기에는 당연히 TV를 비롯해서 유튜브 영상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 말기 암 환자들이 겪는···.

- 아버지가 말기 암이시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의료 다큐멘터리 : 암과의 사투

넘쳐나는 온갖 이야기들.

그중에서 몇몇 사례에 관심이 쏠린다.

“대장암 4기를 진단받고, 병원에서는 6개월 정도 남았다고 했었죠. 그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괜찮으신 건가요?”

“그럼요. 선생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제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는 걸요."

‘말기 암 4기에 6개월 정도가 남았다고 했는데, 지금도 영상이 올라온다고?’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TV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저런 사람들의 자료는 흔히 말하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었다.

심지어 그중 몇몇 사람은 건강한 사람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정도.

허준이 그런 자료들 사이에서 무언가 알아낼 수 있었다.

기적과 같은 사례들의 공통점.

“비법이요? 글쎄요. 처음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제정신이 아니었죠.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 뭐라도 해보자고 시작한 거죠.”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고,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죠. 내가 벌써 죽는다니. 어떻게든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산에 오르내리며 기도를 드렸는데, 글쎄···.”

또 다른 누군가는,

“정말 평소에 좋아했던 음식부터 잠자는 습관까지 전부 바꿨습니다. 제가 옛날에 패스트푸드를 진짜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몸에 좋은 채소들을 위주로 먹습니다.”

이렇게도 말했다.

다른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변화.'

여기서 허준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변화였다.

이전까지 같은 생활습관과 환경에서 같은 패턴으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의 진단을 받고는 모든 것을 바꿔버린 것이었다.

몸에 나쁘다는 음식을 피하고,

하지 않던 운동을 했으며,

도시가 아닌,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생활한다.

여기에 더해서 영상에 있는 사람들의 굳건한 삶의 의지가 더해졌으니,

‘몸이 버텨낸 거야.’

물론, 그렇다고 암이 나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저 사람들이 진단을 받았을 때에는,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었을 테니까.

어쨌거나 이 자료들을 종합해보니,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한방병원의 시설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지만,’

모든 환경과 삶의 패턴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바꾸는 것이 곧 살길로 이어질 터.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허준의 대답에 최인호가 되물었다.

“네. 저는 우리 한방병원에 희귀병과 난치병 같은 질환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머, 뭐라고?”

대답을 들은 최인호의 눈이 커졌다.

물론, 다른 혜민서 식구들의 눈도 다름없었다.

“허준 원장님이 지금, 희귀난치병 센터 만들자고 하신 것 맞죠?”

“맞습니다.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최인호에게 모였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기 때문이리라.

언뜻 듣기에는 희귀난치병을 전문으로 하는 한방치료병원이 굉장히 의미가 있어 보이나,

실상은 이를 까보면 이보다 허무맹랑한 곳이 없다.

말 그대로 희귀병과 난치병 환자들이 주로 오는 곳인 만큼, 치료에 관한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덕에 욕받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자주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일반적인 한의원에서도 종종 진상이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희귀병이나 난치병 환자들이 기대와 다르게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돈이 되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희귀병과 난치병 클리닉이라며 진료를 보는 한의원은 있을지언정, 이것만 전문적으로 보는 한방병원이나 한의원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진심인가?”

“네. 이곳과 떨어진 독립된 시설이 필요합니다.”

“허...”

말을 잇지 못하는 최인호.

시장 골목에서부터 쌓아온 인연은, 허준이 가는 길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돈이 한 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여기와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시설이 필요하다니.

‘하지만, 선생님들이라면 흔쾌히 동의하셨겠지.’

“좋아. 자네가 한번 추진해 보게. 내가 뒤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애초에 그러려고 날 이 자리에 추천한 거 아니었나?”

그렇게 혜민서 멤버들 간의 이야기가 끝나고,

선생들이 허준에게 물었다.

“선생님. 정말로, 그거 하시려고요?”

“물론이죠.”

“여기가 더 좋지 않을까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대학 병원도 근처에 있는데, 왜 굳이 다른 곳에서 하시려는 거예요?"

그 물음에,

“간단합니다. 환자들의 병든 몸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겁니다. 여태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고.”

*   *   *

며칠 전.

서울의 한 사무실.

“아이고~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진짜 개운해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다음에 한 번 더 받으시면 더 좋아질 겁니다.”

“여기 받으십시오.”

사장님이라 불린 남자가 오만원권 몇 장을 지갑에서 꺼내 건넨다.

그것을 받은 남자의 이름은 이종호.

그런 그의 앞에는 기 치료 전문가라는 명함이 놓여있었다.

이종호가 나간 손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후~ 이러다가 내가 먼저 죽겠네.”

기 치료.

말 그대로 기를 이용한 치료법.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효과가 있는 것을 직접 경험한 그는 어릴 적부터 이 길에 빠져들게 되었다.

실제로 업계에서 몇몇은 꽤 많은 돈을 벌고 있으며, 소문에 의하면 어디 회장님은 땅을 주었다고도 한다.

가뜩이나 흥미로운 일에, 이런 이야기까지 겹쳐지니.

어찌 매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것이 첫 번째 실패의 요인이었다.

한국에서는 이것들 전부가 불법이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그의 기 수련과 치료를 하는 방법을 알려준 선생님이 말하길,

“물이 높은 곳에서 흐르듯이, 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안 좋은 환자들은 자연적으로 내 기운을 빨아들이죠.”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뭐, 대부분 큰 문제는 없습니다. 꾸준히 수련하고 명상을 하다 보면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회복될 테니까요.”

고개를 돌리며 설명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이 기운이란 것이 모자란 곳에 딱딱 채워가면 좋겠지만, 안 좋은 곳에는 나쁜 기운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 기운이 치료자의 몸안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마치, 물에 검은 잉크가 떨어지듯이 말이죠. 그래서 기 치료를 하고 난 다음에는 꼭 이런 방법을 통해서 사기를 빼줘야 하고요. 하루에 2명 이상은 받지 않는 게 몸에 좋을 겁니다.”

라는 이야기.

그런데, 입소문이 난 탓일까,

처음에는 사람이 없어서 죽는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스마트폰이 종종 울리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마다 몇십만 원씩을 손에 쥐여주니,

얼씨구나 좋다고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종호 씨, 요새 매일 명상과 수련하시죠?”

“물론입니다. 선생님.”

“그런데, 지금 몸 안에 사기가 많이 쌓여있네요. 쉬지 않고 이렇게 계속하면 탈이 날 겁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지난 몇 년간 돈을 벌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돈이란 너무 달콤한 유혹이었으니까.

덕분에,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명상과 수련을 해도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무언가를 본 이종호.

“이 사람이라면...”

다름 아닌, 허준의 기사였다.

기 치료에서도 냉기와 화기를 빼내는 치료를 하지 않던가.

그렇게 다른 기사들을 찾아보니,

확실히 평범한 한의사가 아닌 듯싶었다.

그래서 찾아온 허준의 진료실.

“이종호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허준 선생님 맞으시죠?”

“네. 제가 이허준입니다.”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저 좀 살려주십시오.”

대뜸 살려달라니.

“일단 이리로 오시죠.”

허준이 이종호를 살폈다.

그냥 멀쩡해 보이는데,

“어디가 불편해서 찾아오셨습니까?”

“사실은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이종호가 명함을 건넸다.

기 치료 전문이라 적혀있는 직사각형의 종이.

‘기 치료?’

보통 한의사 앞에서 이런 명함을 당당하게 내밀지는 않지 않던가.

이런 일들이 전부 불법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요새 사람들이 많아진 탓에, 몸 안에 탁한 기운이 너무 쌓였습니다. 양손이 너무 아파요. 선생님께서 침으로 그것을 좀...”

“일단은 알겠습니다. 손을 이리로 올려주시겠어요?”

그렇게 잡은 진맥.

잡자마자 허준이 손끝을 타고 맥박과 동시에, 묘하게 따끔따끔한 감각을 느꼈다.

정확히는 감각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느끼지조차 못할 따끔함이었지만,

허준은 그것이 환자가 말한 사기임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렇게 심하다니?’

허준이 곧바로 침을 꺼내서,

이종호의 손에 찔러 넣었다.

침은 기운을 빼는 데 제격이었으니,

제삽을 이용한 사법.

여러 번의 침이 빠르게 찔러지며 기운을 빼내자,

이종호가 놀랍다는 듯이 허준을 바라봤다.

‘장난 아닌데?’

오길 잘했어.

예상이 맞았다.

동네 한의원에 몇 번 찾아갔었지만,

제대로 효과를 보지도 못했는데.

여기서는 단 한 번의 치료로 양손에서 느껴지는 불쾌하고 따끔거리는 묘한 느낌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아닙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기 치료 때문에 이런 겁니까?”

“네. 그게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이종호가 간단하게 자신이 배운 원리를 설명했고,

그것을 들은 허준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직접 환자의 장부에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는 소리네.'

그때,

“혹시, 선생님도 한번 배워보시겠어요? 선생님 같은 분이 하시면 진짜 엄청나실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쉽네요... 하여튼 정말, 감사드려요. 몇 번만 더 오면 금방 좋아질 것 같아요.”

“네. 언제든지 오시죠.”

그렇게 진료실 안에서 끝낸 치료.

이후로 몇 번을 찾아오는 동안에 이종호는 기분이 좋아지는 듯이 말문이 트였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우리 쪽으로도 암 환자분들이 종종 찾아오시거든요.”

“암이요?”

“그럼요. 그냥 암이 아니라, 손 쓰지 못하는 분들이죠 말기 암이라서. 그분들이야 뭐,  병원부터 한의원까지 다 다녀보고, 방법이 없으니까 혹시나 싶어서 찾아오시죠. 그런 분들 기 치료하고 나면 그 날은 아주 그냥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며칠은 쉬어야 해요. 아시죠? 제가 지난번에 말했듯이, 사람들이 아픈 곳에서 기운을 쫙쫙 잡아당긴다고요."

예전과는 다르게 이종호의 말이 청산유수다.

어쩌면 기치료가 아니라 이 대화로 치료하는 걸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번 더 주제가 바뀐 이종호의 입에서 묘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예전에 어떤 사장님이 물 좋고, 공기 좋고, 기운이 좋은 터를 찾아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전국을 돌다가 딱, 찾았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곳을. 그런데, 사장님이 해외로 나가버리신 거예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런 것도 하실 줄 아세요?”

“그럼요. 우리 쪽에서 수련 좀 했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하죠. 책에서 보면 이게 또 막, 좌청룡 우백호부터 해서 수맥이 흐르고 기운이 고이고 이런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그런 곳 가보면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거든요. 그럴 때, 이제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가서 이야기 해주는 거죠.”

물 좋고, 공기 좋고, 기운도 좋다고?

틈틈이 희귀난치병 센터의 자리를 찾던 허준이었기에,

‘내가 찾던 곳이잖아?’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있어요?”

“어? 선생님도 이런 쪽에 관심 있으세요?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냐면-”

그날 저녁.

허준이 김예진을 찾았다.

“김 선생님. 혹시, 내일 시간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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