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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210화 (229/230)

210화. 도움이 필요합니다

평생을 한의사로 살아온 김정우.

허준에게 허로증을 진단받아 공진단과 녹용대보탕을 처방받아 꾸준히 장복하고 있었는데,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몸의 상태가 나빠지더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식욕의 감퇴, 피로감, 그리고 변비 등등.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몸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 눈앞에 절친인 박진석이 앉아 있었다.

박진석이 김정우를 보며 혀를 찼다.

“이 친구가, 왜 바쁜 사람 불러놓고 말이 없어?”

“미안하네.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인데, 엄밀히 따지면 내가 형 아닌가?”

“형은 무슨, 우리 나이대쯤 되면 다 친구지, 누가 먼저 가는지 모르는 때 아닌가?”

“그렇군.”

김정우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진석이 그 모습에, 묘한 분위기를 느끼고는 되물었다.

반평생을 넘게 알아 온 사이. 이렇게 순순히 인정하는 성격이 아님을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으니까.

“자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미국에 가 있는 자식놈들이 또 막말하던가?”

예전에 미국으로 가서 사는 자식들이 돈 문제로 연락을 해와서 김정우를 괴롭히던 일이 떠오른 박진석이 물었다.

“그런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자식놈들 앞가림할 정도는 충분히 줬다고 생각하니까."

“그래? 그럼? 왜 그리 힘이 없어 보이는 표정인데?"

그렇게 묻더니,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마주쳤다.

“아! 혹시, 자네 아침에 보약 먹는 거 까먹은 건 아니겠지?”

김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오도방정 그만 떨고 자네 손이나 줘보게.”

“왜? 진맥이라도 잡아보려고?”

“당연하지.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우리 나이 때면 누가 언제 가는지 모른다고.”

“좋아. 오랜만에 어디 정우한의원 원장 실력이나 한번 봐볼까?”

그렇게 이어진 진맥.

김정우가 박진석의 맥을 느꼈다.

‘다행이다. 이 친구는 아직 멀쩡하구나.’

나이에 비해서 굳건하고 일정하게 뛰고 있는 맥들.

기쁘고, 안심이 된다.

“아직 팔팔하구먼? 자넨, 술이나 조금 줄이면 되겠어.”

“그놈의 잔소리는, 좋아. 그럼, 이젠 내 차례겠군.”

박진석이 김정우의 손을 낚아채듯, 잡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고 감각에 집중하니,

‘어...?’

이전과 뭔가가 달라져 있었다.

이 맥박은,

비, 위, 간, 담, 전부 허한 기운이 느껴진다.

보약을 먹은 뒤부터 이런 적이 없었는데.

놀라 눈을 뜬 박진석.

그런 박진석에게 김정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췌장암일세.”

“뭐...?”

그 대답에,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듯 박진석이 김정우를 바라봤다.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이란 말인가.

진지한 눈빛에 현실을 직시했다.

동시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박진석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어째서...”

“어째서긴 이 사람아. 자네가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우리 나이 때 되면 가는 데 순서 없다고.”

박진석의 눈이 흔들렸다.

장난스럽게 건넨 말 한마디가 너무나 미안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언제부턴가?”

“나도 잘 몰라. 엊그제야 알았거든."

“그래서... 치료는, 치료는 가능하다고 하던가?”

췌장암.

말 그대로 줴장에 암 덩어리 세포가 들어선 병이다.

췌장은 위의 뒤쪽에 있으며, 십이지장과 연결되어 있고 비장과도 인접해 있다.

머리, 몸통, 꼬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십이지장과 가까운 쪽을 머리라 부른다.

췌장이 하는 일은 소화를 돕는 소화효소인 췌액과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중에서 특히, 이 췌액은 췌장의 머리 부분에 있는 총담관이라 불리는 관을 통해 십이지장으로 나가는데,

여기서 총담관의 담은 웅담의 담과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즉, 간과 쓸개와 연결되어 있어서 마찬가지로 소화를 돕는 효소들과 함께 합쳐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위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곳에 암이 생긴다는 것은 굉장히 주변 장기들에 쉽게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며, 간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때문에, 통증이나 어떤 증상으로 인해서 찾아온 환자들은 대부분 초기가 아닌 말기가 되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수술부터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

여러 치료법이 있지만, 치료 이후 5년 생존율이 10%로 굉장히 낮았다.

김정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병원에서 여러가지를 제안하더군. 하지만, 자네도 이미 답은 알고 있지 않은가.”

그 대답에, 답답한 박진석.

대체 어쩌겠다는 건지.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시원하게 말을 좀 해보게.”

“진료받으러 갈 생각이네.”

“어디로?”

“혜민한방병원으로.”

“뭐...?”

박진석이 어이가 없어 김정우를 바라봤는데,

얼굴에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과거 진료를 본 불치병 환자의 사례를 말해줬을 때처럼.

그리고 그것으로 그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미친 친구 같으니라고.’

“그러니까, 자네 지금...”

“맞아. 난 이미 결정했네. 그래서 오늘 자네를 부른 거고.”

김정우가 박진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러니, 남은 일을 부탁하네.”

그렇게, 김정우가 손에 들린 번호표를 들고 진료실 문을 열었다.

*   *   *

허준이 진료실로 들어오는 김정우를 맞이했다.

‘진짜, 김정우 선생님이셨을 줄이야.’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오랜만이야. 진료실이 분위기가 좋군. 안락한 것이, 벽에 걸린 사진들이 많이 늘어났네?"

“어쩌다 보니... 일단, 이리로 앉으시죠.”

그렇게 마주 앉은 두 사람.

허준이 김정우를 바라봤다.

‘걸음걸이에서는 딱히 이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습관적으로 움직임을 확인하고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걸까.

보약은 지난번에 유도진 선생님이 가져다드렸다고 했고,

차트에도 딱히 적어주시지 않았으니.

이렇게 생각을 이어나가는데,

김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진료 안 볼텐가? 지금 여기 자네 진료실인데."

그 날카로운 이야기에,

퍼뜩 정신을 차린 허준.

‘그래. 이곳은 환자와 나만이 있는 공간.’

“아, 죄송합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어디가 안 좋으셔서 오셨나요?”

“요즘들어서 식욕이 떨어지고, 소화도 덜 되는 것 같고, 변도 영 시원치 않고. 거기에 속이 더부룩해서 말이야.”

그때, 허준이 날카롭게 눈을 번뜩이며 무언가를 찾았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묘하게 다른 것이 있었으니,

‘살이 빠지셨네?’

걸어 들어올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이전과 비교해서 살이 빠져있었다.

식욕감퇴와 소화불량 변비 등의 증상을 가지고 있으니, 살이 빠지는 게 당연할 터.

아무래도 확인이 필요하겠어.

“이리로 누워주시겠어요?”

허준이 촉진을 할 생각으로 김정우를 카이로베드로 안내했다.

그렇게 카이로베드에 누운 김정우.

허준이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며 복부를 살짝살짝 눌러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단단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주 살짝 눌렀을 뿐인데, 이 압력이 가해질 때마다 김정우 선생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시 앉으셔서, 두 손을 올려주시겠어요?”

이어진 진맥.

허준이 김정우의 맥을 잡았는데,

‘이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오는 것이 아닌가.

이건 마치 죽어가는 사람의 기운이었으니,

'보약이 효과가 없었다는 건가?'

허로증을 치료하기 위한 공진단과 녹용대보탕으로 이렇게 허한 느낌이 나다니,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허준이 조금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느껴진 감각과 몸에 새겨진 감각들이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고,

머릿속에 그려진 해부도에 위치한 장부를 확인한 허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자리는..

‘췌장이다.’

허준의 머릿속이 재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체중감소, 식욕감퇴, 통증, 변비 등등.

허준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환을 무시한 채,

김정우를 불렀다.

“선생님 혹, 췌장에 문제가...?”

김정우는 오히려 허준의 물음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대의학의 장비 도움 없이, 이렇게 병을 진단해낼 줄이야.

동시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찾아오길 잘했군.

“역시, 자네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네. 그런데, 직접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군.”

“이게 대체...”

“별일 아니니,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자네도 알지 않은가?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는 것을.”

“그래도... 다른 선생님들은 알고 계신 겁니까?”

“아직 모르네. 박진석 그 친구를 제외하면 자네가 처음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제 곧 알게 되겠지.”

김정우가 담담하게 답했다.

허준이 그런 김정우의 마음가짐을 얼핏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성격상, 여기까지 찾아오신 이유는 아마도.’

우리에게 진료를 볼 귀중한 경험을 제공해주기 위해서이실 터.

허준이 김정우를 바라보며 답했다.

“입원 치료 시작하시죠.”

*   *   *

김정우 선생님이 입원한다는 소식은 한방병원에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혜민서의 멤버들이 모이는 날.

“그러니까, 정우한의원에 계시던 김정우 선생님이 입원하신다고요?”

“그렇다니까?”

“저... 죄송한데, 선생님들 김정우 선생님이 어떤 분이세요?”

최허준의 물음에,

박용준이 속삭였다.

“유도진 선생님 스승님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요.”

“네!? 그런 분이 어째서...”

최허준이 놀라, 말을 줄였다.

이름은 몰랐으나, 같이 근무하는 한의사 선생님 중에 유도진 선생님만큼 탕약으로 유명한 선생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과거 스승님에게 직접 전수받은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니,

따지고 보면 그 소문의 주인공이 바로 김정우라는 선생님이 아니던가.

“그래서 저희도 당황스러워요.”

박용준이 시무룩하게 답했다.

“아니, 예전에 보약 먹고 좋아지셨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러게요. 어쨌든, 곧 알게 되겠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실에 모인 혜민서의 모든 멤버.

병원장인 최인호와 휴무를 맞이한 유도진과 밥 선생까지 모두 모여있었다.

허준이 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이야기는 들으셨을 거로 압니다.”

“네. 선생님께서 직접 처방하셨다던데?”

“예. 김정우 선생님께서는 췌장암을 앓고 계십니다. 그래서 내일 오전 부로 입원하실 예정이고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루 정도는 입원 준비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서 잡은 스케줄이었다.

유도진이 손을 들었다.

“저는 김정우 선생님의 입원에 반대합니다. 병원에서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아무리 우리가 한의사라고 하지만,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

그때,

“나는 좀 생각이 다르네. 우리 병원을 찾아온 암 환자들은 전부 만족스러워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실제로 최근에는 말기 암 환자들의 입원 치료도 생각하는 중이었고.”

최인호의 대답이었다.

그 대답에, 유도진이 다시 반문했다.

“하지만, 그건 완치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내가 자네에게 묻지. 자네가 말한 방법으로 김정우 선생님의 병을 완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말을 잇지 못하는 유도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지금, 말하는 이 주장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

그때, 허준이 살짝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일단은 같은 생각입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최근에 우리 병원에 항암치료 및 수술 전후 입원 치료를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을 많이 보셨을 거라 봅니다. 김정우 선생님도 그것을 알고 찾아오신 것이고요.”

회의실에 앉아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아직 크게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처방을 내리기 전에, 선생님께서 정하신 겁니다.”

“정말입니까?”

유도진이 되물었다.

허준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네. 그래서 제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허준이 병원장 최인호를 바라봤다.

최인호가 손가락으로 자신이 맞는지 확인했다.

“병원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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