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수호야 인사해야지.”
“안녕~ 하세요.”
엄마의 말에,
환자 정수호가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했다.
“이리로 오세요”
허준이 엄마와 함께 걸어오는 정수호를 관찰했다.
묘하게 절룩이는 걸음걸이.
게다가 얼굴에는 어디에 부딪힌 것인지,
밴드도 붙어있었다.
허준의 시선을 느낀 수호 엄마가 답한다.
“우리 애가 좀 허약해서 자주 넘어지더라고요.”
“그래요?”
“네. 그래서 보약 좀 지어 먹이려고요. 맘카페에서 여기가 원체 잘한다고 추천을 많이 받아서.”
‘확실히 덩치가 또래와 비교하면 조금 작긴 하네.’
허준이 앞에 앉은 수호를 바라봤다.
그때, 수호가 간지러운지 손을 들어 올려 눈으로 가져다 대니,
엄마가 재빨리 올라가는 손을 잡는다.
그러고는,
“엄마가 눈 자꾸 비비면 안 된다고 그랬지?”
“이거 눈 비비는 거 아닌데...”
“그러다가 너 눈병 난다?”
허준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잘 오셨습니다. 어머님. 그런데, 수호가 눈을 자주 비비나 봐요?”
“아~ 네. 애도 참, 어디서 나쁜 습관을 배워온 것인지, 요즘에 자꾸 눈에 손을 대더라고요.”
“원래, 애들이 다 그렇죠.”
허준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를 이어나갔다.
“그 외에 다른 증상은 없나요?”
“네. 뭐, 잘 먹고, 잘 자요. 낮잠도 종종 자고요. 애가 원체 허약해서 그런지, 낮에 잘 졸더라고요. 그렇게 잠을 많이 자는데 키는 왜 안 크나 모르겠어요.”
“이제 시작인걸요. 앞으로 쑥쑥 자랄 겁니다. 그런데, 들어오실 때보니까, 수호가 살짝 다리를 저는 것 같던데.”
“아~ 다리는 어제 넘어져서 그래요. 얼굴은 오늘 점심, 다리는 어제저녁.”
“저런.”
애들은 다치면서 크는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 다치기는 하지만,
그런데도 엊그제 넘어지고 아침에도 넘어졌다는 것은 가벼이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자주 넘어지나 봐요?”
“네. 그래서 보약 좀 지어 먹이려고요.”
“흠, 알겠습니다. 어머님. 그럼, 제가 수호한테 몇 가지 물어볼게요."
허준이 수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수호야 어디 아프거나 이상한 느낌이 드는 곳은 없니?”
수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음... 눈이요.”
“눈? 눈은 왜?”
“눈이 자꾸 감기는 느낌이에요.”
“눈이 감긴다고?”
허준의 물음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눈을 자꾸 비비는 거니?”
“비비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이렇게.”
수호가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밀어 올린다.
그것을 본 허준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자주 넘어진다.
낮에 잘 존다.
그리고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행동까지.
‘이 증상들만 놓고 보면... 중증근무력증일 가능성이 있다.’
중증근무력증은 10만명당 0~20명 정도만이 발병하는 희귀 질환이다.
원인불명의 병으로, 근력 약화와 피로를 특징으로 하는 신경근육질환이자, 자가면역질환.
근육과 가까운 부위의 신경 세포에서는 특정 화학물질이 배출되는데, 이것이 근육을 수축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중증근육무력증 환자는 자가면역반응으로 인해 특정 화학물질의 수용체가 줄어들어 있고, 항체가 생성되어 근육 수축이 잘 일어나지 않게 된다.
때문에, 근육이 쉽게 피로해지며 비대칭적인 일시적 근력약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심하면은 호흡 마비로 이어지기도 하지.’
여기에 대입해보면 모든 증상이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비대칭적인 근력 약화로 인해 균형을 잃어서 자주 넘어지고,
아침에는 생생하지만, 오후가 되면 피로도가 높아지니 조는 것이 당연할 터.
거기에 마지막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행동.
허준이 수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이렇게 두 손을 올려 볼래?”
“이렇게요?”
“그래. 그렇게. 잠시만 가만히 있으면 돼.”
“네~”
이어서 맥을 잡고,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확실히, 기운이 약하네.’
특히, 비장의 허함이 강하게 느껴져 온다.
근육은 오장 중에서 비장이 주관하며, 비가 허하면 활기를 잃어 기혈이 부족하고 근육이 무력해진다.
자연스럽게 치료계획이 떠오른다.
비장의 경락의 대도와 소부혈에 뜸으로 기운을 보해주고, 엄지발가락의 대돈혈과 새끼발가락의 은백혈을 사해 흐름을 원활하게 해준다.
여기에 더해서 봉침을 이용하여 모자란 면역력을 증가시켜주고,
마지막으로 탕약.
‘탕약은 강기건력음이 좋겠어.’
강기건력음은 중의학에 있는 탕약으로 보중익기탕에 오조룡을 가미하고, 당삼, 황기 백출의 양을 늘려 만드는 탕약이다.
여기에 수호의 체질에 맞는 약재인 인삼의 양을 조금 더 늘리면 되겠군.
허준이 보호자인 수호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님.”
“네?”
“보약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치료요?”
“네. 수호가 잘 넘어지는 것은 기운이 약해서가 아니라, 병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이요? 그게 갑자기 무슨..”
수호 엄마.
이희연의 눈이 커졌다.
“넘어지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눈을 자주 비빈다고 하셨죠? 사실은 그게 비비는 게 아니라,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 위한 행동입니다.”
“그럼...”
허준이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들은 이희연.
‘중증근무력증이라고?’
게다가 희귀병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정말로 수호가 하는 행동들과 똑같았다.
내가 왜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자괴감과 함께, 치료방법들을 검색해본다.
‘수술은 안 돼.’
남은 것은 약물치료.
하나는 면역억제제를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항 콜린에스터레이스 제제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을 투여하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단어.
부작용들.
설사, 구토, 메스꺼움, 떨림. 등.
갈수록 심각해지는 표정의 이희연.
그런데, 눈앞에 앉아 있는 한의사는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다.
‘별로 심각하지 않은 건가?'
그래서,
“저... 선생님. 여기서는 어떻게 치료하나요?”
"저는 침과 봉침 그리고 뜸과 탕약을 활용하여 치료할 생각입니다.”
“그럼 좋아질까요?”
좋아지냐고?
허준이 수호 옆에 있는 퀘스트를 바라보며,
“물론이죠.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지만요.”
* * *
며칠 전,
한방병원의 회의실에 혜민서 멤버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서 있는 최인호와 김예진.
“우리가 이렇게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중대한 사안이 하나 있어서 그러네.”
“중대사안이요?”
“그래. 자, 이걸 한번 봐보겠나?”
최인호가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며칠 전에 김예진에게 받은 책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읽어본 멤버들.
“오우... 이거 완전 우리 자료를 그대로 가져다 썼네요?”
“그러게. 대체, 누구지?”
“해도 너무하네.”
허준도 그 책을 확인했다.
확실히 비슷하네.
“그런데, 문제가 뭔가요?”
“아,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김예진이 나서며 말했다.
“이 책이 생각보다 많이 팔렸다는 겁니다.”
“요즘에도 책을 사서 본다고요?”
“네. 저도 몰랐는데, 생각보다 많이들 사셨더라고요.”
책이 많이 팔린 이유.
단순했다. 혜민서에 올라온 자료 중에는 심각한 질환의 사례라던가 치료방법 등도 있었지만.
단순하게 혼자서 할 수 있는 건강관리 방법이나, 궁합이 좋은 음식 등에 관한 자료들도 올라와 있었다.
이는 한의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이트에 오는 일반 사람들과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같은 일반인들을 위해서 올린 것들.
책은 여기에 있는 이런 자료들을 사진과 함께 재미나게 풀어쓰면서, 종종 그로 인한 질환이나 치료사례와 방법까지 이어서 적혀있었으니, 누구나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이 책을 만드신 분과 만나기로 했거든요. 어떻게 할지를 아무래도 선생님들과 함께 이야기 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기록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애착이 있던 고요한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자료를 사용한 출처를 꼭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수익금에 관한 문제도 이야기를 해봐야겠고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아무리, 인터넷에 널린 자료일지라도 우리가 그동안 고생해서 만든 자료들인데.”
동의한다는 듯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허준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 포인트를 얻는 방법을 따지고 보면 자신이 직접 활동하는 것 외에,
‘치료사례와 치료법을 공유하여 다른 한의사들이 치료할 때도 포인트가 들어오지.’
그렇게 따지면,
이 책이 더 많이 팔릴수록 얻을 수 있는 포인트도 늘어난다는 이야기일 터.
특히, 나이가 드신 한의사 선생님들은 인터넷 자료들보다 책을 선호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니.
‘차라리 얹혀 가는 게 좋겠는걸?’
그래서 허준이 손을 번쩍 들었다.
“원장님. 하실 말씀이라도?”
“우리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얹혀 가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최인호 앞에 앉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남자, 김영호.
“김영호 씨라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김영호가 긴장한 얼굴로 깍듯하게 답했다.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송으로까지 가자면 어떻게 하지?’
한의원을 거하게 말아먹고 남아 있는 것은 빚뿐이었던 그에게,
남은 선택은 요양병원으로 들어가 근무를 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급여 조건이 좋은 곳을 찾아 들어왔건만.
그야말로 외딴 숲 한가운데 요양병원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곳이었다는 것.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혜민서란 단체였다.
한의사 카페에 배너가 걸려있기도 했고, 종종 그 단체를 두고 게시판에서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기 찬스를 빌려 구경해본 혜민서의 사이트.
솔직히 놀라웠다.
어마어마한 양의 방대한 자료들.
그리고 치료법과 치료사례들.
그 순간 무언가 번뜩였다.
이대로 강의나 책을 써도 되겠는걸?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책.
‘이제야 재미를 좀 보나 했는데...’
최인호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김영호를 불렀다.
“걱정하지 말게. 나도 그 책 재밌게 봤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김영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동업하는 건 어떤가?”
“죄송합- 네...?”
* * *
한방병원에서는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범인은 바로 다름 아닌 박용준.
“박 원장. 너...”
최인호가 말을 잇지 못하자,
“병원장님. 좋은 일 아닙니까? 저 때문에 뉴스 기사도 나고.”
루미짱에게 합방 제안이 왔을 때부터, 이미 어떤 컨텐츠를 할지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 박용준이었다.
덕분에, 진맥부터 시작해서 체질 그리고 침을 이용해 간단하게 치료하는 것까지.
이 모든 일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었으니,
- 쩐다..
- 이게 K 의술이다! 이게 K 의술이다!
- 와 진짜 저게 되네? 주작 아니지?
많은 호응과 함께 급속도로 여기저기로 퍼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초대형 유튜버와의 합방을 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하겠다?”
“물론이죠. 허준 원장님도 더 열심히 해달라고 하시던데요?”
“뭐?...그 친구가?”
최인호의 머리가 더욱 어지러워졌다.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거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네.’
지난번 책과 관련된 일도 그렇고,
사람이 너무 착해서 그런가.
물론, 이 모든 일은 전부 포인트를 얻기 위한 일이었으니,
여러 매채에서 노출되며 한동안 성장이 멈춰있던 혜민서에 가입하는 선생님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완연한 봄이 느껴지는 어느 날.
허준이 눈앞에 쌓인 포인트를 바라봤다.
보유 포인트 : 100000
‘드디어!’
탕제술이 올라갈수록 탕약을 만드는 그 순간이 얼마나 즐거웠던가.
그래서 망설임 없이 포인트를 사용했다.
「‘탕제술 Lv. 7’에 100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탕제술 Lv. 7’이 ‘탕제술 Lv. 8’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레벨이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