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진료비 받은 겁니다
허준은 강기훈이 건넨 편지를 꺼냈다.
빠르게 내용을 읽어나가니,
잘 보냈다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료비를 내겠다는 이야기도 함께 적혀있었다.
“진료비를 내시겠다고요?”
“네. 아버지께서는 늘 계산이 정확하신 분이셨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강기훈이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며칠 전,
“아버지!?”
“아버님!”
허준과 유도진이 사라지자,
강대준 앞으로 모여든 식구들.
처음의 놀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모두가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울지 마라. 이놈들아.”
“너무... 기뻐서요.”
“나도 기쁘단다.”
강대준이 웃으며 답했다.
동시에, 젊은 한의사가 속삭인 말을 기억해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고 했지.'
자신을 깨운것이 그였으니,
그의 말이 정확할 터.
아니,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미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
매일같이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 그동안 차마 나누지 못했었던 이야기들을 스스럼 없이 나누었다.
이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였을가.
처음에는 어떻게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가족들도,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소중했기 때문이리라.
“기훈아.”
“네. 아버지.”
“내가 너에게 늘 뭐라고 가르쳤었지?”
“세상의 모든 일에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하셨죠.”
“맞다. 잘 기억하고 있구나.”
강대준이 누운 채로 미소지었다.
흡족한 대답이었다.
아들만큼이나 애지중지하며 키워온 회사들.
그 대답을 들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내가 자식농사도 괜찮게 지었구나.'
“그래. 그럼, 내 진료비를 내야겠지.”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나중에 찾아뵐 생각이었습니다.”
“암, 너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네가 생각하기에 진료비는 얼마라고 생각하느냐?”
“그야...”
강기훈이 생각에 잠겼다.
'소중한 시간을 받았다.'
이 소중한 시간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하지만, 실은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실제로 시간은 돈으로 구입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기업과 기업 간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인수합병, 즉 회사가 다른 회사를 굳이 사는 이유는 그 회사가 가지고 있는 인력부터 시설, 장비, 시스템, 이미지 등등까지.
이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기에는 수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래서 강기훈은 답했다.
“시간으로 낼 생각입니다.”
대답을 들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강대준은 평온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큰일을 치르고 난 뒤,
강기훈은 허준에 대해 알아보고 결정했다.
“제가 선생님의 조사를 좀 해보니, 재밌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허준이 살짝 긴장한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을 보아 부끄럼 없이 살면서 딱히 잘못한 일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벌거벗겨진 기분이 살짝 들었기 때문이리라.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원을 개원, 시장 골목에서부터 시작해서 여기로 오기까지, 그 중심에는 혜민서라는 단체가 있더군요.”
강기훈이 흥미로웠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TV 출연 이후에 만들어진 단체로 매주 이어지는 봉사활동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면서 전국으로 확장. 그 이후에는 여기저기에 기부도 많이 받으면서, 때로는 기부를 하기까지. 게다가 한의사들에게 무료로 정보도 공유까지."
“네. 거의 정확한 것 같네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 혜민서가 커가는 시간을 진료비로 내기로. 마침, 우리가 운영하는 복지재단이 있으니, 연락이 갈 겁니다. 선생님이 원하는 세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벌어진 일이었다.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김예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메시지의 내용은 다름 아닌,
후원금이 들어왔다는 메시지.
‘세상에, 이게 0이 대체 몇 개야?’
한방병원에서 들어오는 기부금과 혜민서에 속한 몇몇 회원들의 기부.
여기에 더해서 여러 회사나 단체에서 종종 기부금이 들어온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큰 액수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단 한 번에.
‘도대체 누가?’
그때,
“팀장님. 우리 혜민서 앞으로 메일이 하나 왔는데요 한 번 직접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메일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한 복지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와 있었다.
대준 복지재단.
생소한 이름이다.
그런데, 메일의 내용은 지금 일어난 일과 연관이 매우 깊어 보인다.
요약하자면 오늘부터 복지재단에서 혜민서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겠다는 내용.
이렇게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는 것은,
최근에 있었던 일과 연관이 있을 터.
김예진이 최근에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병원 안에서 공공연하게 돌고 있는 소문.
‘일단은 허준 원장님을 만나서 확인부터 해봐야겠어.’
그렇게 찾아간 허준의 진료실.
마침, 치료실에서 시술을 끝내고 오는 허준이 김예진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세요? 아직 진료 중인데.”
“급한 일이 있어서, 잠시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이야기해도 되는 거죠?”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좀 전에 엄청난 후원금이 들어왔습니다. 이거에 대해서 아시는 거라도 있나요?”
허준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아~ 그거요? 진료비 받은 겁니다.”
* * *
낮에는 한방병원의 한의사.
밤에는 인터넷 방송을 하는 박용준.
박용준의 방송은 날이 갈수록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비록, 공중파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인터넷 방송에서는 먹히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의 진료를 볼때면 봉인해야 했던 그 끼는 방송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망아지처럼 날뛰는 한의사를 좋아했다.
덕분에, 처음 시작은 100명을 겨우 넘겼으나,
이제는 어느새 고정 시청자가 500명이나 될 정도.
여기에 더해서 유튜브 구독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엄청난 성장세였다.
그런 박용준에게 들어온 새로운 제의.
루미짱 : 선생님. 혹시, 합방할 수 있으실까요?
꽤 유명한 인터넷 방송인인 루미짱이었다.
게임부터 코스프레 그리고 가끔은 댄스까지.
‘나야 무조건 콜이지!’
그렇게 시작된 라이브 방송.
“하이하이~ 여러분 오늘 컨텐츠 미리 말씀드렸죠?”
- 루하~ 눈나 벌써 기대돼요.
- 루하
- 진짜 한의사랑 그 컨텐츠 하실 건가요?
···
그 아래로 빠르게 주르륵 올라가는 채팅창들.
이전부터 그녀가 제안한 이번 컨텐츠는 다름 아니라, 바로 한의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말을 순화시켜서 이렇게 설명한 것이지,
실상은 진짜 한의학이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라이브로 보여주겠다는 것.
“그래서 모셨습니다~ 요즘 가장 핫한 한의사. 박용준 선생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박용준입니다.”
- 한무당 딱 대. 누나가 기다렸다고.
- ㄹㅇㅋㅋ
- 진짜로 왔네?
- 저 사람 TV에도 몇 번 나왔던 사람임. 참고 바람.
20대가 주축인 시청자들은 곧바로 박용준에 대한 정보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혜민한방병원의 수련의들.
당직을 서는 최승원과 동기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수군거렸다.
“이거 정말, 이래도 되는 거죠?”
“아, 이제는 나도 몰라. 진짜 말렸는데.”
“이러다가 망하면 어떻게 해요?"
“모르겠어요... 우리도 일단 채팅이나 쓸까요?"
“기다려보죠. 상황 좀 지켜보고."
조마조마한 당직 시간을 보내는 수련의들이었다.
* * *
소문은 빠르다.
그리고 그 소문 중에서 가장 발이 빠르기로 따지면 아마, 부자들 사이에서 흐르는 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경기 흐름이 어쩌고란 뉴스가 나오기 전에, 부자들은 이미 소문을 듣고 투자를 할 정도로 움직임이 빨랐으니까.
보통은 나중에야 저 소문을 듣고 투자하게 되면 고점이었으니,
누군가 지켜본다던가, 귀신같이 내가 사면 내린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 도는 소문이 투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건강에 관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사모님. 며칠 전에 돌아가신 강대준 회장님 계시잖아요?”
“아~ 알죠. 그분이 왜요?”
“제가 거기 일하는 동생에게 들었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가셨었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듣기에는 호상이라고 하시던데.”
일하는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은 노년의 여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호상이 무엇이던가.
이 나이쯤 되면 누구나 평온하고 고통 없이,
남은 가족들에게 해가 되지 않으면서 삶을 마감하는, 일종의 목표이지 않던가.
때문에, 강대준 회장의 소식은 몇몇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상갓집에서 가족들이 편안하게 큰일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여기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더라고요.”
“그래요?”
“네. 병원에 가셔서 검사를 다 해봤는데, 결국 원인을 못 찾아서 일단은 다시 집으로 모셨대요. 그래서 끙끙대고 있었는데, 그때, 한의사 선생님 한 분이 나타나서 침을 놔서 벌떡 일으켜 세웠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이요?”
“그럼요. 제가 거기 일하는 동생한테 직접 들은 이야기라니까요?”
“그렇게 용한 곳이면 알아둬야겠네. 거기가 어딘데요?”
“쓰레기 정리하다 보니, 약봉지에 혜민한방병원이라고 적혀있었다는데요?”
이런 이야기들이 빠르게 퍼진 덕에,
혜민한방병원에서는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비싸서 꽤 비어있었던 1인실과 2인실이 꽉 찬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일명 VIP실이라 불리는 혜민한방병원에서는 재미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꽤 성공했던 사업가들이었으니,
“어? 형님!”
“어라, 자네도?”
사업을 하다 보면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이,
반갑다는 듯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종종 펼쳐지는 것이었다.
“아는 동생이야?”
“그럼요. 제가 예전에 말했던 부산에서 작게 물류 하는 동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박종두라고 합니다.”
“그래. 나는 예전에 작게 건설자재 했던 박용운이라고 하네. 자넨, 어디 박씨인가?”
“밀양 박씨입니다.”
“어? 나돈데. 반갑네 반가워!”
···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묵묵히 걸어가는 남자.
“이거 개꿀 빨 줄 알고 지원했는데...”
허준한의원에서부터 근무하던 도영철이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이 상황은 병원장 최인호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그동안 몇몇 환자를 제외하고는 찾질 않은 1인실과 2인실.
그 비어있던 곳들이 들어차니,
매출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법.
그리고 허준의 진료실.
초진환자의 진료를 주로 보는 그였기에,
요즘 들어 이전보다 대기실에 오는 환자들의 숫자가 조금 늘어난 기분이다.
그런데 특징이 있다면,
대부분이 건강하시고, 점잖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뿐만은 아니었다.
“혹시, 강대준 회장님이라고 아시나요?”
라던가,
또는 그의 아들인
“강기훈 사장님 소개로 왔습니다.”
같은 이야기들.
물론, 허준은 언제나 처럼,
“글쎄요? 제가 워낙 진료를 보는 환자분들이 많아서.”
라며 답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전부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며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진료를 이어나가는 와중에,
찾아온 한 환자.
나이는 10살.
이름은 정수호.
보약을 맞추기 위해서 왔단다.
그런데,
그 어린 환자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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