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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205화 (227/230)

205화. 진짜예요

다음 날 아침.

한 걸음 더 다가온 봄날의 기운 때문인지 나름 싱그러운 공기의 맛과 함께 허준과 유도은 함께 언덕을 오르는 중이었다.

‘집들이 정말 좋네.’

풍수지리상으로도 산의 기운을 받는다고 알려져서일까.

몇몇 집들은 영화에서나 볼법한 우아하고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오면서 유도진 선생에게 대충 들은바,

지금 만나러 가는 환자분은 과거 정우한의원에서부터 이어진 VIP의 소개로 찾아오셨다고 한다.

“여깁니다.”

앞장서서 걷던 유도진이 멈춰 섰고,

허준의 눈앞에 커다란 대문이 나타났다.

종을 누르자,

“누구세요?”

“유도진입니다.”

“아, 선생님? 들어오시죠.”

김정란이 두 한의사를 맞이했다.

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놀라는 눈치는 없었다.

이미, 어제저녁에 아침 일찍 찾아뵙겠다는 이야기가 된 상태였으니까.

“어서 오세요.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이쪽 분은?”

항상 혼자 방문했던 유도진이었기에,

김정란이 허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같이 근무하는 이허준이라고 합니다.”

같은 병원에 소속되어 있다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정란.

“따라 오세요.”

그렇게 안방으로 향하니,

침대에 누운 노인과 그의 몸에 달린 의료기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삐- 삐- 거리며 일정하게 소리를 내는 의료장비가 반갑다는 듯이 인사한다.

그런데, 묘하게 박자가 느린 것 같네.

그 앞에 서서 노인의 손을 잡은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허준과 유도진을 바라봤다.

장남 강기훈이었다.

“어서 오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유도진이라고 합니다.”

유도진과 눈을 마주친 강기훈.

한눈에 봐도 선해 보이는 인상.

물론, 풍기는 분위기는 살짝 차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몇 달간 먹어도 문제없었던 보약을 지은 한의사.

오히려 아버지에게 큰 도움을 준 한의사인데,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야기는 아내에게 들었습니다. 아버님의 보약을 맞춰 주셨다는 한의사분이시죠?”

“네. 맞습니다.”

“아침부터 이렇게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다 보니, 특히, 여동생이 충격이 큰가 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허준과 유도진이 정중한 남자의 인사에,

의외라는 듯이 바라봤다.

어제저녁에 탕전실에서 이야기할 때만 해도,

큰소리 또는 욕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왔었기 때문이리라.

“아닙니다. 어쨌거나 제 환자이니, 찾아뵙는 것이 환자에 대한 도리겠죠."

유도진의 대답에,

강기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된 사람이군.’

그래서 더욱 미안한 마음이 몰려온다.

이어서 유도진이 허준을 소개했다.

“이쪽은 이허준 원장이라고 합니다.”

“이허준입니다.”

‘이허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은데...’

강기훈이 왠지 모르게 낯익은 그 이름을 되뇌이다가 이허준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사업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기 마련.

그중에서 괜찮은 사람을 만나야 사업도 잘 이어나가는 법이었으니,

아버지인 김대준으로부터 가장 많이 배워온 것도 사람을 잘 보는 법과 다루는 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눈앞에 서서 인사하는 이허준이란 한의사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은 남달랐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선하고 밝은 얼굴과 표정은 중요치 않았다.

마치, 투명하고 맑은 눈빛은 그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허준이 강기훈에게 물었다.

“제가 잠시 환자분의 진료를 봐도 될까요?”

“갑자기 진료라니요?”

“한의학에서는 이런 가사상태나 혼수상태의 경우를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그중에서 기운이 막히거나,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습니다.”

“잠시만요. 그럼, 그런 상태라면 정신을 차리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허준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말의 가능성.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강기훈의 대답이 이어지기도 전에,

벌컥-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중에서 도끼눈을 치켜뜬 여자.

바로,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자. 환자의 막내딸 강희윤이었다.

강희윤이 앞에 있던 허준에게 말했다.

“당신인가요? 우리 아버지에게 터무니없는 보약을 가져다준 유도진이라는 한의사가?”

“아닙니다. 제가 유도진입니다.”

강희윤이 대답이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 유도진에게 향했다.

“아주 당당하시네요? 아버지 저렇게 쓰러지게 해 놓고, 지금도 눈을 못 뜨고 계시는데.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이미 중년을 넘긴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막내여서였을까.

그녀의 억지스러움은 나이와 상관이 없나 보다.

‘마치, 막장 드라마에 나올 법한 캐릭터네.’

“희윤아 그만해.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오신 분들한테, 그게 무슨 말 버릇이냐?”

보다 못한 강기훈이 제지에 나섰다.

“그리고 내가 누누이 당부하지 않았니. 아버지께서는 약 때문이 아니라-”

“그걸 오빠가 어떻게 알아? 막말로, 그럼 왜 멀쩡하시던 아버지가 쓰러지셨냐고. 설명할 수 있겠어?”

“쉿. 여보, 그리고 아가씨. 아버님이 다 들으시겠어요.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김정란의 제지에 가족들이 방에서 나가고,

한심하다는 듯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김정란이 허준과 유도진에게 다가와 한 번 더 사과했다.

“죄송해요. 요 며칠 동안 계속 이런 날이었거든요. 우리 아가씨가 사랑을 워낙 많이 받고 자라셔서 그래요.”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 아까 진료 보고 싶으시다고 하셨었죠?”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잘됐네요. 아가씨가 있었다면, 아마 아버님 손끝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할 걸요?"

그 대답에,

허준이 유도진을 바라봤고, 눈빛을 받은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진료.

허준이 누워있는 노인, 강대준을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

허준이 두 손을 잡아 맥을 살폈다.

‘역시, 맥이 묘하게 느리다.’

머릿속에서 동의보감에 나온 맥에 관한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숨을 한 번 쉴 동안에 네 번 뛰면 정상이요.

한 번쯤 더 뛰는 것은 크게 탈이 없지만,

세 번 뛰는 지맥, 두 번 뛰는 패맥은 몸이 냉하고,

여섯 번의 삭맥, 일곱 번 뛰는 극맥은 열이 많다는 뜻이다.

···

‘숨을 두 번 쉴 동안, 한번 뛰면 사맥이라 했지.’

지금 느껴지는 맥이 사맥은 아니지만,

허준은 지금의 이 감각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과거 요양원이나 쪽방촌에서 삶의 끝자락에 계신 분들의 맥.

이건, 병이나 질환 같은 게 아니다.

자연스러운 이치일 뿐이었다.

단지, 그때의 상황보다 지금 이렇게 환자의 맥이 건강하게 뛰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몸안 여기저기에 아직은 기운이 조금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유도진 선생님이 만든 보약의 효과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남아있는 이 기운에 뜸의 기운을 불어넣고, 침을 사용하여 기운을 이끈다면,

환자가 정신을 차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바꿔 말하면, 지금 남아있는 기운을 이끌어 사용한 만큼 남은 시간이 짧아진 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였으니,

잠시 고민에 빠진 허준.

그러다가 이내 결정할 수 있었다.

만약에 나였다면,

다 같이 모인 가족들의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준의 눈이 향한 곳은,

* 보유 포인트 : 100031

10만 점이 넘게 모인 포인트들.

‘탕약을 먼저 올리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뜸은 모자란 기운을 잠시나마 복돋아 주고,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터.

그 약간의 차이로 인해 결과가 뒤집어 질 수도 있는 법이었으니,

허준이 그대로 포인트를 사용했다.

「‘구술 Lv. 9’에 100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구술 Lv. 9’가 ‘구술 Lv. max’가 되었습니다.」

[구술 Lv. max]

- 기의 흐름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이어서 나타난 메시지.

「업적 ‘극한의 술사’를 달성하였습니다.」

「‘침술 Lv. max’와 ‘구술 Lv. max’가 합쳐져 ‘침구술 Lv. max’가 되었습니다.」

[침구술 Lv. max]

- 침술과 구술의 최종 형태. 가끔은 하늘이 돕기도 한다.

‘침구술로 합쳐지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좋아졌다는 뜻이겠지.

이어서 허준이 개의치 않고,

망설임 없이 뜸과 침을 꺼내 들었다.

발바닥의 용천혈을 침으로 자극하고,

타고 올라오는 혈 자리에 뜸을 올려놓아 기운을 북돋는다.

중간중간에 침으로 기운을 유도하면서 뜸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마지막 목표는 머리 정수리에 있는 백회혈.

그때,

김정란이 허준의 손에 들린 침을 발견하고는 놀라 외쳤다.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사모님. 진료 중에 난입하시면 환자가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유도진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어제저녁에 허준이 부탁한 일이었다.

“만약에, 침이나 뜸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유도진 원장님께서 잠시만 막아주시죠.”

“침이나 뜸을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혹시, 모르니까 말해 두는 겁니다.”

하지만, 목소리까지 막지는 못했으니.

“당장, 멈춰요!”

김정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에 문이 열리며 가족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처치를 끝낸 상황이었으니까.

“당신들, 이게 뭐 하-”

강대준이 눈을 떴다.

귓가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방안에 가족들이 전부 와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사는 첫째아들과 며느리는 물론이고,

둘째와 그 며느리, 셋째와 그 며느리 그리고 막내딸과 사위까지.

“다들, 웬일이냐? 전화도 자주 안하는 녀석들이.”

그 물음에 아무도 답하지 못하는 모습,

강대준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때,

가장 가까이 있는 한 젊은이가 답했다.

“며칠째, 의식을 잃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강대준은,

지금의 상황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허. 그렇게 된 거였구먼. 왜 안 깨우나 했더니...”

그러고는,

눈앞에 젊은이를 바라봤다.

선한 인상.

티 없이 맑은 눈빛.

“자네로군? 날 부른 사람이.”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고맙네. 내가 가는 길에 자네 같은 사람을 만나다니. 운이 좋은가 봐.”

강대준이 미소 지었다.

그야말로 기쁨의 미소였다.

허준이 그 미소를 미소로 받으며,

뒤로 돌아 유도진에게 말했다.

“우리는 나가 있도록 하죠.”

*   *   *

같은 시각.

회사에 출근한 정석현.

“정 대리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평소처럼 느릿한 말투였으나,

왠지 모르게 느릿한 느낌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인사였다.

‘선생님께서 발음을 조금만 교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본다고 말씀하셨지.’

진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느린 말투도 한번 물어본 것뿐이었는데.

그에 대한 처방까지 내려준 선생님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를 안 좋아할 수 있겠는가.

정석현이 자리에 앉으며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아직도 가끔 떨리는 감각은 있지만, 이전보다 현저히 줄어든 모습.

그런 그의 변화는, 아랫사람은 물론이요.

그동안 함께 수년을 같이 보내온 상사들이 더 크게 느꼈다.

“요새 정 늘보 녀석, 일 처리가 좀 빠릿빠릿해진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나도 좀 놀랐어.”

“에이~ 회사생활이 몇 년인데, 이제 능숙하게 일 처리 할 때도 되었지.”

“안 그래도, 요새 최 부장님이 은근히 맘에 들어 하는 눈치더라. 뚝심 있게 일한다고.”

“그래? 올해는 진급하겠네.”

그리고 혜민한방병원.

출근한 김예진의 손에 책이 하나 들려 있었다.

“팀장님. 그게 뭐예요?”

“한 번 보실래요?”

팀원 중 하나가 책을 건네받았다.

그러더니,

“이거... 진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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