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202화 (202/230)

202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정석현 님?”

“네~”

정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내에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사회생활을 하면 당연히 주기적으로 하는 건강검진.

진료의 의사가 결과를 바로 말해준다.

“검사결과 아주 깨끗하네요. 이상 없습니다.”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정석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느릿하게 되물었다.

“그런데,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손이 가끔 떨려서요.”

“그래요? 혹시, 컴퓨터나 스마트폰 많이 사용하시지 않나요?”

“네~ 아무래도 그렇죠~? 사무직이다 보니...”

“아마 그러면, 손목 쪽에 무리가 가서 그럴 겁니다. 푹 쉬어 보시고, 계속 그러시면 병원 가서 검사 한번 받아보세요. 가벼운 염증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주말을 푹 쉬고 난 정석현.

손의 떨림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다가 얼마 뒤,

다시 살짝 떨리는 손.

그 모습을 본 직장동료가 초콜릿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우리 늘보 대리님. 당 떨어지셨나 봐요? 요즘 야근 많이 하신다더니, 이거 하나 드시고 하세요.”

“고마워요~”

“이거 가지고 뭘요.”

이렇듯 회사에서도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정석현.

하지만, 처음 신입사원이 정석현을 만나게 되면 그의 답답함에 불만을 토로한다.

왜,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행동과 말 둘 다 느리고 거기에 더해서 눈치까지 없는,

일 처리를 할때면 언제나 규정과 규칙을 전부 준수하며 하는 그런 사람.

여기에 더해서 말까지 느릿느릿하니,

회사에서 그의 별명이 ‘정 늘보’라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석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다만, 이 손 떨림 만큼은 예외였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은데?’

병원에서 검사를 해봐도 멀쩡하고, 약을 먹어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기똥차게 진료를 본다는 한방병원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어서 오세요. 정석현 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허준이 정석현을 반겼다.

그러자 특유의 느린 말투로 인사하는 모습.

‘뭔가, 묘한데?’

일종의 육감이었다.

많은 환자를 만나본 만큼, 말이 느린 사람들도 많이 만나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정석현 환자는 무언가 독특했다.

“일단, 이쪽으로 앉아주시겠어요?”

“네~”

정석현이 느릿한 걸음으로 허준의 앞에 앉았다.

그 모습을 유심하게 관찰한 허준.

걸음걸이에서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것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정석현의 보폭이 그의 신장과 비교해 살짝 좁았기 때문이다.

원래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신가.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 더 살펴보니, 몸의 중심이 살짝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좌우가 비대칭인 자세로 틀어진 모양새를 보이기 마련인데,

정석현 환자는 이 좌우보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있었다.

“수전증 때문에 오셨다고요?”

“네~”

“자주 그러시나요?”

“매일 그런 것은 아니고~ 가끔 손이 떨리는 느낌이거든요~ 지금도 살짝 떠네요.”

“그래요? 혹시, 어디 부딪혔다든가 하는 외상은 없으신 거죠?”

“네~ 맞습니다.”

“병원에는 가보셨고요?”

"네~ 검사결과 이상이 없다더라고요. 약도 몇 번 먹었는데, 효과가 없었고요.”

허준이 차트에 간단하게 기록하며 물었다.

“원래 그렇게 말과 행동이 느린 편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선생님.”

정석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전에는 이런 질문이 꽤 불쾌했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제는 익숙한 질문이 되어있었다.

“그렇군요. 이 외에 다른 불편한 점은 없을까요? 예를 들자면, 잠을 잘 자지 못한다던가,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라던가? 혹은 잘 넘어진다던가 같은 사소한 것들이요.”

정석현이 골똘히 생각했다.

“없는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지금, 떨리는 손부터 이리로 올려주시겠어요?”

허준의 요청에,

정석현이 오른손을 올렸다.

덜덜 떨리던 손이 팔을 들어 올리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해진다.

허준이 그것을 날카롭게 관찰했다.

수전증은 말 그대로 손의 떨림을 말하는 것.

여기서 떨림은 근육이 진동운동을 하면서 나타나는 증상인데,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힘을 사용하여 팔을 들어 올릴 때면 더 심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일 터.

그 손이 책상 위에 안착하니,

다시 살살 떨기 시작한다.

‘이건... 수전증이 아니다.’

현재까지의 증상만으로 보면 정확하게 파킨슨병, 또는 증후군에 해당했다.

모든 증상이 그 병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다만, 이런데도 환자가 인식하지 못한 이유는.

‘원래 말과 행동이 느린 편이라고 했었지.’

본인의 행동이 원래 느렸던 탓에,

정작 체감이 별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 때문에, 수전증으로 착각했을 테고.

병원에서도 아마 정석현 환자의 그런 모습을 보고 간과했을 가능성이 컸다.

“반대쪽 손도 이리로 올려주시겠어요?”

이어서 진맥을 잡은 허준.

장부들이 전체적으로 허했다.

하지만, 그뿐.

특별한 증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기운이 약한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뜻이다.

반면, 경락에 흐르는 기운들의 모습은 흥미로웠다.

마치, 느린 움직임에 적응이라도 했듯이 경락으로 흐르고 있는 기운들도 느긋하게 움직이는 중이었으니까.

“정석현 님.”

“네~?”

“파킨슨 같습니다.”

“파킨슨이요~?”

정석현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파킨슨이라니,

‘이게 웬 날벼락이야?’

아니, 그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고칠 수 있을까요?”

바로, 이것이었다.

인터넷에서 가끔 파킨슨병 어쩌고 이런 내용을 한두 번은 봤었기 때문이리라.

“아쉽게도, 파킨슨은 완치란 개념이 없습니다.”

허준이 사실대로 말했다.

실제로 파킨슨에 완치란 개념은 없기 때문이다.

파킨슨은 퇴행성 뇌 질환.

여기서 퇴행성은 결국 노화를 뜻한다.

생각해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파킨슨이란 질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 않던가.

왜냐면 대부분 나이가 들어 몸이 굽고, 몸의 허해서 손이 떨리는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육체의 노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지.’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을 개선할 수만 있어도 병이라고 하기에 모호할 수도 있는 질환이다.

그런 면에서 정석현 환자의 경우는 몸이 허하고 정체된 기운으로 인해서 증상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겠군.

“완치가 가능하냐고 물으신다면, 안됩니다.”

“그, 그럼...”

“하지만, 증상을 개선할 수는 있습니다.”

“그 말씀은~?”

“네. 일상생활에 있어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뜻이죠.”

느릿한 말과는 다르게,

정석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파킨슨이란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수전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손 떨리는 증상을 고칠 수만 있다면,

사실 자신의 삶에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허준이 진단을 내리면서 세웠던 치료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몸의 기운이 허한 부분이 있어서, 시호가용골모려탕이라는 탕약에 한약재를 가감하여 기운을 북돋고, 떨리는 손을 잡아보려 합니다. 그리고 양손의 이곳.”

허준이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의 두 번째 마디 쪽에 점을 찍었다.

“사봉혈이라고 하는 곳인데, 이곳에 뜸을 떠 신경에 도움을 줄 생각이고요. 마지막으로 침으로 팔꿈치 안쪽의 곡지혈, 그 아래에 수삼리, 정강이 바깥쪽에 있는 족삼리에 침을 사용해 면역력과 신경쇠약에 도움을 주고, 떨리는 손에 있는 합곡에 봉침을 사용하여 다스려볼 생각입니다.”

정석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준이 그런 정석현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참, 그리고 주기적으로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   *   *

혜민한방병원은 매일같이 바쁜 나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최근 SNS에 블로그의 열풍으로 찾아오는 수많은 탈모 환자들부터,

대만의 스케이팅 선수로부터 나온 미담에 찾아온 대만 환자들.

여기에 더해서 최근에는 축구 스타 조셉의 SNS에 적힌 말을 보고 찾아온 해외 환자들까지.

덕분에 밥 선생은 요새 얼굴을 보기도 어려울 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디 그뿐이랴.

VIP 환자들 중에는 이번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들도 있었으니,

한방병원 식구들 중 몇몇은 휴무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박용준의 휴무 날.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평소처럼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며 보내는 박용준.

그런 박용준의 얼굴을 본 여자친구가 물었다.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

“아니. 좋은 일은 무슨. 휴무라서 그래. 우리가 데이트할 수 있으니까?”

“아닌데... 분명히 뭔가 있는데?”

그간 함께 해온 시간이 꽤 길었기에,

박용준의 여자친구 김수미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살짝 째려보니,

“아니라니까? 아까 말했잖아. 요즘에 우리 병원에 환자들 엄청나게 몰려서 바쁘다고. 진짜 와서 보면 놀랄걸? 오죽하면 우리 김태식 원장님은 요새 휴무 날 되면 전화도 안 받아.”

김태식 원장의 이름을 들은 김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같이 저녁을 먹고, 데이트를 마친 박용준.

여자친구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는,

“내일 일찍 나가야 해서, 오늘은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 미안.”

“괜찮아. 운전 조심하고. 가서 연락해.”

“먼저 들어가. 들어가는 거 보고 갈 테니.”

박용준이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확인한 뒤에,

그대로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작은 방.

“시작해볼까?”

박용준이 눈을 빛내며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당연히 첫날은 어그로를 끌어야겠지.

<니들 라이언 조셉이랑 같이 밥 먹어봤냐?>

그리고 그 효과는 엄청났다.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반가워요~”

인사는 무시한 채, 들어오자마자 쏟아지는 채팅들.

거짓말하지 마라, 누구냐, 신입이냐, 어그로 장난 아니네. 등등.

그 수많은 채팅을 보며 박용준이 씨익 미소지었다.

‘이런 관심 기다렸다고!’

“100명 되면 썰 푼다. 듣고 싶으면 친구들 불러오든가.”

이렇게 박용준이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탕전실에서 탕약을 내리는 유도진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환자가 많아지고, 층이 달라지면서 예전처럼 자주 보지 못해서일까.

왠지 모르게 허준의 분위기가 살짝 변한 느낌을 받은 그였다.

분명히 의료봉사에서 침을 놓는 모습은 이전과 다름없으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고 할까.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했던가.

다른 혜민서의 식구들과는 다르게 최근 깨달음을 얻은 유도진만이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층의 입원실.

허준이 한수희와 보호자 김예진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수술을 위해 병원으로 입워을 하는 날짜였기 때문이다.

허준이 한수희에게 물었다.

“컨디션은 괜찮으세요?”

“네. 선생님. 아주, 좋아요.”

확실히 그래 보인다.

처음에 왔을 때처럼, 긴장한 느낌은 없고 이제는 오히려 여유가 흘러넘쳤다.

실제 당직을 서는 한의사 선생님들에게도 식사도 잘하시고, 잠도 잘 주무신다고 들었지.

하긴,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 저런 모습일 수 없을 터.

“그래 보이네요.”

“여기 밥이 맛있더라고요. 제 입맛에 맞아서 그런지. 호호.”

“아니, 엄마는 무슨 그런 걸 자랑해?”

김예진이 창피하다는 듯이 쏘아붙였고,

한수희가 능청스럽게 답했다.

“얘는? 그럼, 환자가 밥 잘 먹고 잘 싸는 게 자랑이지. 아픈 거로 자랑하리?”

그 말에,

입원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분위기 좋네.’

허준이 그 분위기를 느끼며 미소지었고,

김예진은 부끄럽다는 듯이 한수희에게 속삭였다.

“빨리 병원으로 가요.”

“알았어. 보채지 좀 말고, 인사는 하고 가야지.”

“됐습니다. 가서 수술 잘 받으시면 됩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정말 감사드려요. 금방 돌아올 테니, 이 자리 비워두셔야 해요?”

그렇게 수술을 위해 입원한 한수희.

수술 전 정밀 검사를 진행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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