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오히려 좋은 일이지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좁은 화장실이지만, 안을 가득 채운 뽀얀 김으로 보아 샤워를 꽤 오래 하고 있음을 짐작게 했다.
“룰루~”
이어서 흥겨운 콧노래가 들려온다.
그 노래의 주인은 다름 아닌 김정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샤워를 하고 나서 매번 빠진 머리카락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휑하니 비어있던 정수리 부분에,
추운 겨울이 지나고 파릇파릇한 새싹이 자라나고 있었으니까.
어디 그뿐일까.
허준의 처방으로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탕약과 열기를 빼주는 침을 처방받은 그였기에,
'그럴 수도 있지.'
'누구나 실수는 할 수 도 있잖아?'
와같이 이전처럼 사소한 일로 인상을 쓰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덕분에 언제나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해, 살짝 화난 느낌의 표정이었던 김정훈의 얼굴은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허준의 진료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김정훈 씨. 어서 오세요. 얼굴을 보아하니, 좋은 일나 봐요?”
“아, 네. 엊그제 제가 면접을 보고 왔거든요.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좋아요.”
김정훈이 면접을 본 날을 떠올리며 답했다.
“김정훈 씨. 간략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XX대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아르바이트와 함께 자격증을 따면서 취업을 준비해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감 있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우리 회사에 지원한 동기가 뭔가요?"
“네. 물론입니다. 제가 차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전과는 다른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답하는 모습.
그때를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러나온다.
“잘됐네요.”
허준이 그 모습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러고는 일어나 김정훈에게 다가갔다.
“잠시 확인 좀 해볼게요.”
이어서 정수리 부분을 확인해보니,
휑하던 부위에 거뭇거뭇하고 빽빽하게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중이었다.
‘잘 자라고 있네.’
이 정도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더 없겠어.
그런 생각과 동시에 나타난 메시지.
「포인트를 2000 획득하였습니다.」
허준이 자리에 돌아가 김정훈에게 말했다.
“아주 잘 자라고 있네요. 앞으로 관리만 잘 해주시면 괜찮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요즘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에요.”
김정훈이 그동안의 감정이 터져 나왔는지 울먹이며 답했다.
가뜩이나 취업 문턱에서 미끄러지는 것도 서러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탈모까지 오다니.
그렇게 되면 취업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차피 여자친구도 못 사귈 텐데.’
여자들이 싫어하는 키 작은 남자부터 배 나온 남자, 피부가 나쁜 남자, 못생긴 남자 등등.
그중에서도 언제나 압도적인 1위가 바로 대머리였으니, 말 그대로 새 삶을 사는 기분인 김정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여자친구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얻었다는 이야기일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김정훈은 군대를 갓 전역했을 때의 바로 그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세상의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그 자신감과 함께, 한방병원을 나선 김정훈.
‘어서 빨리 이 소식을 동지들에게 알려줘야겠어!’
비공개였던 김정훈의 블로그에는, 탈모를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기록이 공개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댓글로 문의를 남기기 시작했다.
- 진짠가요?
→ 진짭니다. 꼭 한번 가보세요.
- 광고 아니죠?
→ 제가 이런 거 가지고 광고할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광고 아니라는 거에 제 머리숱을 겁니다.
- 이거 ㄹㅇ이네. 머리숱 거는 거 보니.
같은 처지였기에, 그 간절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김정훈이 문의 댓글 하나하나에 성심성의껏 답해주었고,
덕분에, 이 많은 댓글은 온라인상의 성지화 되면서 로 만들어 주는 중이었다.
이 내용이 여기저기 커뮤니티와 SNS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혜민서 멤버들 중에 그나마 가장 SNS와 친한 박용준이 이를 빠르게 캐치해냈다.
‘어? 이거 설마. 지난번에 허준 원장님이 치료하셨다는 그 사람인가?’
그런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전국에서 찾아올 기세잖아?’
"아닐거야..."
박용준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진료실로 향했다.
* * *
혜민한방병원 입원실에는 VIP 입원실이라 불리는 1, 2인실.
그리고 평범한 5인실과 6인실이 존재했다.
그중에서 수술 전 치료로 입원한 한수희의 입원실은 5인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방병원 선생들이 속삭였다.
“왜? 우리 김 팀장님 가족분이라면 당연히 1인실로 모실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저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혹시, 제한 같은 게 있나?”
“글쎄요?”
“그게아니라, 허준 원장님이 직접 추천하셨다던데?”
“그래요? 허준 원장님 생각보다 깐깐하신 분이신가봐요.”
등등의 이야기들.
하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은 혜민서의 멤버들은 단번에 허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그런 부분까지 신경쓰시다니. 역시는 역시입니다.”
“지금은 말이 많겠지만, 뭐 다른 사람들도 때 되면 알게 되겠지.”
“그나저나, 엊그제 제가 한번 만나 뵈었는데, 벌써 많이 좋아지신 것 같던데요?”
“그래? 잘됐네.”
“참, 허준 원장님이 그러는데, 다른 환자분들과 동등하게 일정을 잡으라고 하더라고요. 괜히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그때, 조용히 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밥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김 팀장님도 알고 계실까요?”
그 시각.
김예진이 허준의 진료실을 찾았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던 허준이 깜짝 놀라 김예진을 바라봤다.
“아니. 여기까지 웬일이세요? 그냥 전화로 부르시지.”
“원장님. 1인실이 아니라, 5인실을 추천하셨다고요?”
허준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네.”
“왜요? 1인실에 빈자리도 있었잖아요.”
“비싸니까요?”
따지는 물음에,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허준.
그런 허준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김예진이 노려보자,
“사실은 말이죠."
허준이 이실직고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첫 번째로 환자의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정신적인 건강이요?”
“네. 평범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야... 무섭겠죠?”
“잘 아시네요. 한수희 환자분도 마찬가지 상태였습니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식사도 못 하시는 중이었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잔다는 말에,
김예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같이 있을 때는 괜찮아 보였었는데...’
허준이 김예진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리 지어 살게 되어있죠. 이렇게 무리를 지으면 여러 좋은 일들이 생겨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겁니다.”
김예진이 무언가 이해가 간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자료를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로,
여태까지 허준이 수술 전/후 치료로 입원한 환자들에게 다인실을 권유했다는 사실이었다.
“환자를 위해서 그러셨던 거군요...”
“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예전에 허준한의원 입원실 기억나세요?”
“허준한의원 입원실이요?”
“네.”
김예진이 기억을 떠올렸다.
그곳은 이곳과 다르게 대부분이 동상이나 화상 환자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래. 맞아.’
같은 처지인 사람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앞서 좋은 예후를 거쳐 떠나간 환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입원실에 이틀 정도만 입원해도 사람들의 표정은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희망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기 때문이리라.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아요."
“맞습니다. 바로 그거에요.”
허준의 대답에,
김예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원장님. 제가 그런 줄도 모르고..”
“괜찮습니다. 누구나 선생님 같은 상황이라면 그랬을 테니까요."
그 시각 한수희가 입원한 입원실.
5명이 꽉 찬 입원실에는 전부 수술 전/후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 가관이다.
언제 봤다고 입원한 날부터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수희 씨. 오늘은 어때요?”
옆자리에 김난숙 환자가 물어왔다.
수술을 끝내고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환자로 수술 전에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괜찮은 것 같아요.”
한수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고,
김난숙은 그런 한수희를 바라보며 방긋 웃으며 화답했다.
이렇게 며칠을 이어나가니,
이제는 서로가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근데, 왜 여기 분들은 첫날부터 다 친하게 지내요?”
이어진 한수희의 물음에,
“그야 같은 처지니까 그렇지. 서로 어떤 느낌인지 잘 알잖아? 그래서 말 걸어 주는 거야.”
“암, 저 김 여사도 여기 처음 입원했을 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불안해서 이것저것 인터넷에 찾아보느라 잠도 못 자고 그랬었어.”
“아이~ 그게 언제 이었던 일인데. 아직도 우려먹어요?"
김난숙이 건너편에 있는 환자에게 농담을 건넨다.
밖이었다면 모두가 큰 수술을 앞두거나 수술을 겪은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마치,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듯이.
“우리가 서로 이해 못 하면 누가 이해하겠어?”
“암~ 그렇고말고.”
“하긴, 그것도 맞는 이야기네요.”
“그러니, 나 퇴원하고 다른 환자 들어와도 잘 대해줘.”
“물론이죠.”
그 덕분에, 한수희의 얼굴은 날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이곳을 스쳐 간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몸에 힘이 샘솟았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엄마? 이걸 다 드셨어요?”
김예진이 놀라 물었고,
“그럼, 그거 고작 해봐야 1인분이잖니. 밥맛 좋더라 여기.”
어느새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한수희였다.
그 모습에 김예진이 풉-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물론, 눈가가 촉촉해진 것은 비밀이다.
* * *
한편, 혜민서 멤버들은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
박용준이 짐작했던 대로, 전국에서 몰려든 환자들 때문이었다.
“또...”
박용준이 차트를 확인하면서 지겹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진료를 시작했다.
그렇게 마주한 환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
이건 해결할 수 없는 질환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럴 때면 늘 곤혹스럽다.
희망에 찬 저 환자의 눈빛에 실망이 드리울 테니까 말이다.
“어때요? 선생님. 이 정도면 별로 심한 편은 아니죠?”
“네... 그렇긴 하네요.”
박용준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답을 이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여기에서 치료는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이렇듯 희망을 품고 찾아온 환자들이 진료실을 나서며 실망하거나, 씩씩거린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런 일은 박용준의 진료실뿐만이 아니었다.
한방병원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으니,
실망한 채, 돌아간 환자들 반,
그리고 희망을 얻은 환자 반으로 나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진료실의 허준.
눈앞에 한쪽으로 주르륵 올라가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어서 눈이 아래로 향하니,
보유 포인트 : 42789
모인 포인트가 나타났다.
그와중에도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포인트.
‘생각보다 더 빨리 포인트가 모이네.’
아무래도 최근에 늘어난 탈모 치료 환자들 때문인 듯싶다.
그러고 보면,
‘사소한 질환이라도 무시할 수 없단 말이지.'
물론, 퀘스트로 얻는 큰 포인트는 어려운 질환이나 난치병이 훨씬 높았지만,
이렇듯이 찾아오는 환자들로 인해 얻는 포인트를 따지면 결과적으로 가볍고 흔한 질환이 훨씬 많은 포인트를 가져다주었으니까 말이다.
바꿔 말하면,
위중한 환자보다 가벼운 환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였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지.'
그런 의미로 이제 저녁도 먹었으니,
야간진료를 시작해볼까.
그렇게 다시 시작된 진료.
허준의 눈앞에 새로운 환자가 나타났다.
* 보상 : 10000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