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200화 (200/230)

200화. 이거 진짜인가요

흔히 이런 말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는 10여 초간의 첫인상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짓는다고 하는 이야기.

이는 사회적인 만남에서도,

개인적이거나 이성적인 만남에서도 모두 통용되는 이야기였으니,

첫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력을 하던가.

괜히 외모지상주의란 말이 나오는 게 아니란 뜻이다.

이런 가운데에서 가끔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

“넌 어떤 스타일 좋아해?”

라고 물었을 때,

“난 분위기 있는 사람이 좋아.”

라는 추상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

갑자기 분위기 있는 사람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도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 한수희의 눈앞에 있는 이허준이란 한의사도 그러했다.

‘따듯하면서 자연스럽다.’

마치, 이 진료실의 일부인 것 같은 느낌.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렇듯 자신이 일하는 공간과 일체 같은 느낌이 들 정도라면, 업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장인이나, 명장 같은 수식어가 붙기 때문이다.

저런 수식어가 붙은 사람들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눈앞에 있는 허준이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쪽으로 앉아주시겠어요?”

허준이 한수희에게 평소처럼 친절하게 안내하며 그녀를 살폈다.

일단 얼굴에 황달은 보이지 않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황달은 대부분 말기에 나오는 증상이었으니까.

‘김 선생님 가족분이지만, 그것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고작 점 하나뿐인데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진료에 있어서 아주 사소한 부분으로 오판을 하는 경우가 나을 수 있었으니,

허준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료에 임했다.

그렇게 마주 앉은 두 사람.

한수희의 입이 먼저 열렸다.

“진료실에 사진이 꽤 많네요?”

“아, 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굉장히 유명하다고 하던데, 진짠가 봐요.”

“과찬이십니다.”

허준이 살짝 고개를 꾸벅이며,

“그보다 차트를 보니, 간암 수술 전 치료를 위해서 찾아오셨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먼저 수술 날짜를 알 수 있을까요?”

한수희가 정해진 수술 날짜를 허준에게 말했다.

허준이 그것을 차트에 기록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약 3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본래 수술 날짜만으로 보면 한 달가량이 있으나, 수술 전에 병원에서 다시 한번 검사도 하고 입원하면서 여러 가지 조율해야 할 사항이 있기에 1주가량을 제외한 것이었다.

“따로 불편하신 점은 없으실까요?”

“네. 뭐... 잠을 조금 못 자는 것 정도 있네요. 아무래도 갑자기 간암이라고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합니다. 찾아오는 많은 환자분이 그러셨거든요.”

이어서 허준이 몇 가지를 더 물으며, 검사 자료들을 받아 확인했다.

그렇게 얻어낸 결론들.

‘다행히 말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초기도 아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상황이었다.

간암 대부분은 통증이나 증상이 나타날 때쯤에는,

상황이 꽤 진척된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여유가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간암은 암중에서도 진행속도가 꽤 빠른 편에 속한 암이었으니,

‘바로 입원 치료를 시작해야겠어.’

그전에 일단 정확한 처방을 위한 진료가 필요하겠지.

문진을 대충 끝낸 허준이,

“이렇게 손을 올려주시겠어요?”

진맥을 위해 안내를 했고,

한수희가 두 손을 허준에게 건넸다.

허준이 한수희의 맥을 잡아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느껴져 오는 맥박.

‘전형적인 소음인 체질이다.’

이어서 느껴지는 감각.

비위가 허하고 간담이 습하며 열기를 띤다.

전형적인 간암 환자에게서 보이는 맥박이었다.

이어서 눈앞에 흐르는 기운들이 나타난다.

한의학적으로 간은 소설과 장혈의 기능을 하는 장부이다.

여기서 장혈은 피를 저장하고 온몸으로 보내는 것을 말하며,

소설은 전신의 기운을 쉬지 않고 움직이게 하는 것을 뜻한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육체를 발달시키고 힘을 준다는 느낌의 표현이다.

그래서였을까.

가뜩이나 기운이 약한 소음인인 탓에,

한수희 환자의 몸 안에 흐르는 기운이 전체적으로 약해져 있는 상황.

이 약한 기운을 쭈욱 따라가다 보면,

간에 흐르는 경락까지 느낄 수 있다.

‘역시나, 메마른 느낌이야.’

상황을 인지한 허준이 처방을 계획한다.

간은 담과 짝꿍이기도 하며, 담은 또 비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장부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바로, 몸 전체의 허한 기운을 먼저 채워주는 것이었다.

허한 기운을 전체적으로 채워주면서 간담의 습열을 제하는 것.

‘지금 한소희 환자에게 가장 좋은 보약은...’

십전대보탕이 좋겠군.

소음인에게 가장 좋은 보약인 십전대보탕에 약재를 가감하여 비위를 조금 더 보하면 되겠어.

여기에 더해서 침과 뜸으로 간의 습열을 제거하고 경락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할 터.

허준이 곧바로 처방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몸의 기운이 전체적으로 많이 빠진 상태네요. 우선은 이렇게까지 몸의 기운이 빠지면 면역력도 같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일단은 기운을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서 십전대보탕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여기에 비장과 위장에 도움을 주는 약재를 조금 더 가감할 것이고요.”

이어서 차트에 있는 인체모형에도 점을 찍으며,

“이곳과 이곳. 그리고 여기에 뜸과 침을 사용해 간의 안 좋은 기운을 제하려 합니다.”

한수희가 허준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

자신감? 아니 자신감과는 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이건 자신감이 아니라,

‘마치, 당연하다는 눈빛이네.’

설명과 처방에 있어서 긴장감도, 흥분도, 그 어떠한 감정도 없다.

느껴지는 것은 그저 순수한 눈빛.

말 그대로 순수하게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래서일까.

괜스레 불안감이 사라지고 처방에 믿음이 가는 이유는.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아닙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프로그램에 따라 잘 와주셔야 하니까요. 그럼, 데스크에 입원 안내받으시고, 치료실에서 뵙겠습니다.”

한수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나섰다.

대기실을 가득 채우고 기다리는 환자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찾아오는지 알 것 같네.’

단순히 친절함, 또는 실력만이 아니었다.

진짜 진료는 바로 지금 느끼는 감정이었으니까 말이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것 같은 기분.

진료실에 들어갈 때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한수희였다.

*   *   *

여의도에 있는 커다란 빌딩.

그곳에는 태산이라 적힌 간판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빌딩 안에서 가장 높은 방.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커다란 방안에서 김태용이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나직이 말했다.

“지금, 몇 달 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이야기가 고작 이거냐?”

상대는 다름 아닌 자신의 딸. 김예진.

그녀도 지지 않았다.

“그럼, 그동안 아빠는 뭐 했는데요? 됐어요. 어차피 엄마랑 이야기 끝났어요. 엄마도 제 이야기에 동의하셨고요.”

“뭐라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사랑하는 아내가 암에 걸린 것도 모자란 데, 갑자기 뜬금없이 한방병원에 입원한다고 하다니.

게다가 더욱 문제는,

‘아내가 정했으면 돌리기 어렵겠지.’

라는 것.

이렇게 된 이상, 해결법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찾아온 혜민한방병원.

김태용이 곧바로 병원장실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처음 뵙겠습니다. 병원장 최인호라고 합니다.”

“김태용입니다.”

“일단, 이리로 앉으시죠.”

최인호가 자리를 권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묘한 약재의 냄새와 함께 뜨끈한 탕약 두 잔이 들어왔다.

“드시죠"

김태용이 탕약을 한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아내가 여기로 입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진료 날짜도 내일로 잡혀있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입원 치료 거부해주십시오.”

최인호도 탕약을 한 모금 호로록 마시더니,

느긋하게 웃으며 답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되겠습니다.”

김태용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순식간에 병원장실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양반 성깔 하나는 죽인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네.

최인호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평소처럼 커피가 아니라 이렇게 탕약을 준비했다는 것.

‘이럴 줄 알고 미리, 유 원장에게 청명탕을 내려달라고 했지.’

최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한 서류를 김태용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확인해 보십시오.”

그것은 다름 아닌 혜민한방병원에서 암 수술 전후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기록이었다.

정확하게는 환자 개인의 자료는 없이 치료 전후와 그 예후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라고 볼 수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김태용.

‘100%?’

그럼, 지금까지 입원 치료한 암 환자 중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온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뜻인가.

“김태용 대표님에 관한 소문은 저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공과 사의 구별을 칼처럼 하시는 분이 시라고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참, 그리고 그건 제가 아니라, 김예진 팀장이 대표님께 드리는 대답입니다. 물론, 제 대답 또한 마찬가지인 점은 변함없지만요.”

국내 최대규모의 로펌 중 하나.

승률 또한 최고라 볼 수 있는 자신의 로펌도 100%의 승률을 자랑하지는 못했다.

때문에,

‘반박할 여지가 없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니까.

그래서,

“만에 하나,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날카롭게 찌르는 김태용에게,

최인호가 너그럽게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 선생들을 믿고 있거든요. 그리고 정말로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병원장인 제가 져야겠지요.”

그 모습을 본 김태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압박을 했는데도, 이런 대답이면 더 말해봐야 결과가 달라지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공과 사뿐만 아니라, 상과 벌도 확실할 겁니다.’

“좋습니다. 한번 믿어보도록 하죠.”

김태용이 일어서며 짧게 악수하고 병원장실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최인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소문대로 무섭긴 무섭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나머지 일은 허준을 비롯한 혜민서 선생들이 맡아줄 터.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전혀 긴장되지 않는 최인호였다.

*   *   *

강원도의 한적한 시골.

이곳의 조그마하고 오래된 한의원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동훈.

이동훈이 침을 들고는 그대로 망설임 없이 찔러 넣었다.

물론, 찔리는 곳은 진짜 사람의 손이 아닌 모형 손이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허준 원장님이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

이렇듯 머릿속에 허준을 그리며,

촬영에 임하는 이동훈.

“와... 동훈 씨. 이런 배역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왜 저렇게 자연스러워요? 마치, 침을 놔본 사람처럼?”

촬영장에서 울려퍼지는 칭찬일색.

그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한방병원에서 공부한 덕에,

"조무사 선생님은 보통 이렇게 하시더라고요."

"데스크에서는 이런 느낌으로 계시면 되고요."

다른 배역을 맡은 배우들에게도 그 디테일을 바로바로 이야기해주는 중이었다.

덕분에, 본인의 배역은 물론이요,

다른 배우들과의 케미가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퀄리티가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new) 이거 진짜인가요?

new) 광고 아닌가요?

new) 비싼가요?

온라인상에서는 김정훈이 올린 정수리 사진과 함께,

블로그 방문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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