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99화 (199/230)

199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엄마. 농담이지?”

김예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갑자기 암이라니?

한수희가 고개를 흔들며 재차 답했다.

“나도 병원에 가서야 알았단다. 내가 간암 환자였다니.”

간암.

간암은 암중에서도 위암 다음으로 발생률이 높은 질환이다.

그리고 사망률 또한 폐암 다음으로 2위.

이는 간이 ‘침묵의 장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했다.

증상이 나타날 때는 이미 꽤 시간이 흐른 뒤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김예진이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이야기인가.

이 충격적인 소식은,

강철같은 김예진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어째서...”

그런 딸에게 다가가, 꼬옥 끌어안은 한수희.

이어서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마. 예진아.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니? 의사 말로는 수술받고 관리 잘하면 충분히 치료 가능하다고 하더라.”

“정말이지?”

“그럼~ 네 아빠와 이미 다 알아보고 이야기도 끝냈어. 너도 아빠 성격 알잖아?”

이 순간만큼은 평생 빡빡하고, 냉철한 그 성격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래서 입원하기 전에 얼굴 보려고 들렸어. 한동안 우리 제대로 이야기도 안 나눴잖니.”

한수희가 웃으며 말하고,

김예진이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군대를 전역한 이유에서부터, 한의원에서 일하게 된 일.

그 뒤로 혜민서를 맡게 되고 한방병원에서까지 근무하는 현재까지.

이 밤새도록 이어진 이야기에,

두 모녀는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한수희가 옆에서 잠든 김예진을 내려다보았다.

‘이허준 선생이라고 했던가.’

이야기 내내 제일 많이 등장하던 이허준이라는 이름.

그 모습이 떠오르니 피식하고 미소가 지어졌다.

얘는 지 성격이 제 아빠랑 똑같다는 걸 알기나 할까.

그래도 얼굴은 날 닮아서 다행이네.

잠든 김예진의 얼굴은 아까와는 다르게 평온한 모습이었다.

반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수희의 얼굴은 아까처럼 밝지 못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사실, 어느 누가 간암에 걸리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식의 앞에서 무너질 수 없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으니,

모두가 잠든 이때, 조용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한수희였다.

*   *   *

다음 날.

허준은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길에 나섰다.

‘이거 날씨가 많이 따듯해졌네.’

아직은 쌀쌀한 공기가 피부를 타고 느껴졌으나,

묘한 생기가 함께한다.

봄이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봄이 온다면,

‘비염 환자들이 늘어나겠네.’

이두철 선생에게 말해서 배농치료용 약을 미리미리 만들어둬야겠어.

그렇게 생각과 함께 출근한 허준.

한방병원에 들어서서,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원장님.”

1층의 인포 선생님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김예진을 발견하고 허준이 인사했다.

“어? 김 선, 아, 김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원장님. 지금, 출근하시는 거예요?”

“네. 그런데... 팀장님은 오늘 출근이 조금 늦으셨네요?”

평소 김예진의 출근 시간이 자신보다 1시간은 더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허준이었기에,

지금 이 시간에 출근하는 김예진이 낯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준의 날카로운 눈은 그녀의 변화를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살짝 부어있는 눈과 볼.

전형적으로 울거나 약한 알레르기 반응이다.

밤에 슬픈 드라마를 봤을 수도 있고,

몸에 안 좋은 무언가와 접촉했을 수도 있겠지.

진짜는 다름 아닌 눈빛이었다.

허준이 아는 김예진의 눈은 언제나 총명하게 빛났으며 굳건했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오늘은 왠지 모르게 그런 굳건함과 총명한 눈빛이 약해진 모습이다.

김예진이 허준의 물음에,

“별 일 아니에요. 차가 고장 나서.”

“아~ 그 비싼 차도 고장이 나나 보네요?”

“그, 그럼요. 고장나는데 비싸고 싸고가 중요한가요.”

“하긴, 그렇네요.”

김예진의 대답에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4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혹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그럼,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허준이 내리면서 김예진에게 말하며 주먹을 꽉 쥐어 올렸다.

그렇게 문이 닫히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띵 소리와 함께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김예진이 내리지 않고 그대로 다시 4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그래.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모든 환자를 고쳐온 허준 원장이 아니던가.

적어도 한의원에서부터 현재까지 찾아온 환자 중에 예후가 안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다시 한번 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

4층에 도착한 김예진을 본 데스크 선생들이 맞이했다.

“어? 팀장님?”

“안녕하세요. 팀장님.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허준 원장님과 잠시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아~ 진료실에 계실 거예요.”

그렇게 허준의 진료실.

허준이 평소대로 스트레칭을 하는데,

문이 열리며 김예진이 들어왔다.

묘한 각도로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

허준이 헛기침과 함께 자세를 바로잡았다.

“원장님.”

“네?”

“도와주세요.”

‘역시, 무슨 일이 있었구나.'

“물론이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 팀장님이 도와달라는데.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어젯밤 엄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허준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간암과 수술 일정이 잡혔다는 이야기 등등.

그것을 전부 들은 허준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답했다.

“간단하네요. 그럼, 수술 일정 전까지 여기에 입원하시는 게 어떨까요? 수술 전 최고의 컨디션까지 끌어올려서 수술로 받는 데미지를 약화하고, 수술 이후에도 케어를 통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보는 거죠.”

아직 한의학으로 암을 치료한 사례는 공식적으로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현대의학에서도 보통은 암 치료 기본은 수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소우주와 같은 것이었으니.

‘혹 다른 방법이 생길 수도 있을지 모르지.’

망설임 없는 허준의 대답에,

김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한방병원에서 하는 수술 전후 치료 프로그램을 받기 위해서 많은 환자가 문의해오지 않았던가.

그만큼, 좋은 사례들을 많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도 잊고 있었다니.’

“죄송해요. 제가 어제 너무 당황했었나 봐요. 당연한 방법인데.”

“뭘요. 저도 아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침부터 감사해요. 원장님.”

“별말씀을.”

“참, 이제 곧, 진료 시작이죠? 그럼, 이따가 뵐게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김예진.

내릴 때와 다르게 눈이 빛나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가자마자 김예진이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전데요. 날짜가 언제라고 그랬죠?”

*   *   *

며칠 전.

한방병원 옥상정원.

“하아~ 요즘엔 영 낙이 없네.”

박용준이 점심을 먹은 뒤,

정원을 거닐며 중얼거렸다.

꽤 오랜 기간 방영된 건강의 제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종영했기 때문이었다.

기간이 기간인 만큼, 반복된 주제는 결국 낮은 시청률을 불러오는 것은 당연한 법.

덕분에, 한창 TV에 나가 자신의 관종끼를 발산할 수 있었던 무대가 사라져 슬픈 박용준이었다.

그렇다고 예능에서도 한번 불러준 곳은 두 번 불러주지 않았으니,

어디까지나 관종끼가 있었을 뿐, 진짜 연예인들이 가진 끼와는 달랐기 때문이리라.

그때,

“선배님.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인턴으로 들어온 먼 후배 최승원과 몇몇 일행이 박용준을 발견하고는 싹싹하게 인사했다.

“어, 너희들이구나? 여기 밥이야 늘 맛있지. 다만... 내가 입맛이 없다 요새.”

“왜요?”

“사는 낙이 하나 사라져버렸거든.”

그 말에, 최승원이 무슨 일인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꽤 친해져서 술자리도 가끔 같이했고, SNS에서도 서로 팔로우가 되어있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

물론, 이 일은 당연히 동기들도 함께 알고 있었다.

최승원의 친화력은 꽤 수준급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럼, 유튜브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 소리에,

박용준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유튜브?”

“네. 요즘 유튜브에 한의사나 의사들도 많이 찍어 올리잖아요?”

성큼성큼 다가간 박용준.

하얀가운을 입은 인턴의 두 어깨를 잡으며,

“넌, 천재다. 왜 나는 진즉에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러고 보면 한때 혜민서 영상도 몇 번 유튜브에 올린 적이 있지 않던가.

게다가 박용준의 머릿속에 한 번 더 번뜩인 좋은 생각.

‘유튜브는 라이브도 된다고.’

즉, 시청자와 내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

거기에 정규방송과는 다르게 규정이 훨씬 여유로웠다.

여태까지 한의사로 근무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에 MSG로 살을 붙일 생각을 하니,

갑자기 입맛이 싹 도는 박용준이었다.

“애들아, 고맙다!”

그렇게 겅중겅중 뛰어가는 박용준의 뒷모습을 보며,

최승원이 중얼거렸다.

“선생님들. 우리 대답 실수한 거 아니겠죠?”

“그럴걸요...?”

*   *   *

혜민한방병원 병원장실.

최인호가 올라온 서류들을 살피고 있었다.

“좋아, 좋아.”

기대 이상으로 매출이 올라가는 중.

특히, 비어있던 입원실이 차기 시작하면서 증가세가 뚜렷했다.

어차피 시설은 다 준비되어 있고 인력도 있으니 당연한 일.

이어서 층마다 매출을 한번 훑고는,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음 서류.

김예진이 종합하여 올린 서류로,

한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 직원의 복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가족들의 진료 신청서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응?”

거기에는 김예진의 서류가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간암 수술 전 치료라니.’

최인호가 김예진을 호출했다.

김예진도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네...?”

“네...그렇게 됐네요.”

“괜찮은 거지?”

“그럼요. 멀쩡합니다.”

“혹시, 쉬고 싶다든가 하면 언제든지 나에게 바로 이야기 해줘. 아니, 그냥 아무한테나 쉬러 간다고 말하고 가도 돼.”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원장님.”

“이정도 가지고 뭘.”

그렇게 그날 점심시간.

이미, 허준을 제외한 다른 혜민서 멤버들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뭐? 우리 김 선생님 어머님이?”

“그렇다네요.”

“아니, 어쩌다가?”

“그거야 모르죠. 어쨌든, 우리도 당분간 조심하자고요. 김 팀장님도 사람인데, 얼마나 신경이 쓰이시겠어요.”

“당연하지. 그보다 이거 허준 원장도 알고 있겠지?”

그 시각.

허준의 진료실.

「포인트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허준의 앞에는 박세정이 앉아 있었다.

얼굴의 발진은 완전히 사라져서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모습이었고,

“이게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눈에는 총기와 함께, 전신에서 여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웃고 있는 미소는 아름다웠다.

“아니에요. 박세정 씨가 잘 따라와 주신 덕분이죠. 저는 옆에서 그걸 거들었을 뿐이고요.”

“그런 말씀 마세요. 선생님 같은 분이 어디 있다고. 솔직히, 처음에는 기대를 별로 안 했거든요. 아차, 죄송해요.”

그 대답에,

허준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

“죄송은요 무슨, 괜찮아요. 많이들 그러시는걸요. 참, 가을에 남자친구분과 결혼하신다면서요?”

“네. 그렇게 됐어요.”

“축하드려요. 앞으로 다시는 볼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그러길 바라요.”

그렇게 박세정의 진료를 끝낸 허준.

새로 올라온 차트의 이름을 확인했다.

한수희. 초진.

김예진 선생님의 부모님.

간암 수술 전 입원 치료로 내원한 환자였다.

허준이 고개를 좌우로 한번 돌리고는 그대로 메시지를 보냈다.

곧이어 진료실 문이 열리며 단아한 머리를 한 중년의 여인이 들어왔다.

‘김 선생님하고 닮았네.’

“어서 오세요. 한수희 씨.”

“안녕하세요. 이허준 선생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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