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궁극의 침술
「‘침술 Lv. 9’에 100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침술 Lv. 9’가 ‘침술 Lv. max’가 되었습니다.」
[침술 Lv. max]
- 궁극의 침술.
이어서 나타난 설명.
언제나 그랬듯이, 설명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여간 불친절 하기는.'
동시에, 허준이 주변을 좌우로 둘러보았다.
혹시나 무슨 변화가 느껴질까 싶어서 한 행동이었다.
‘내심 기대했었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네.’
진맥의 레벨을 max까지 올렸을 때는,
머릿속에서 천둥이 치고,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온갖 경맥들이 그려지는 신비로운 광경을 보지 않았던가.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초자연적인 제3의 시각으로 인간의 몸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
그 짜릿한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던 허준이었다.
“쩝..”
아쉬움에 자연스럽게 입맛을 다시는 허준.
그때, 허준의 귓가에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탕약이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일단은 탕약 먼저 마무리 하고.'
새로운 침술의 효과는 내일 진료를 하다 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겠지.
그렇게 다음 날.
평소처럼 출근한 허준이 오전 회진을 시작했다.
“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바로, 가도록 할까요?”
허준의 대답과 함께, 네댓 명의 수련의들이 우르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환자는 동상으로 입원한 환자.
“주치의 선생님이 누구시죠?”
“접니다.”
한 선생이 살짝 손을 들어 올리며 답했다.
“특이사항은 없었나요?”
“네. 원장님께서 처방하신 대로 케어했습니다. 야간에도 특별한 일 없으셨고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도착한 입원실.
환자가 허준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했다.
“아이고~ 허준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시죠?”
“물론이죠. 선생님께서 그러셨잖아요. 통증이 느껴지면 안에서 회복되고 있는 증거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통증이 느껴지는 게 오히려 반갑다니까요?”
“다행이네요. 주치의는 선생은 어떤가요? 치료에 만족 하시는지?"
“그럼요. 여기 선생님들이 얼마나 친절하신데요? 설명도 잘 해주시고.”
“그렇군요. 지금 보니까, 처음에 입원했을 때보다 많이 좋아지셨네요. 혹시, 입원하시는 동안에 불편하시면 언제든지 바로 불러주세요. 그게 다 여기 있는 선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요."
이어나간 회진,
그 사이사이에서 환자를 세심하게 체크하며 허준이 몇몇 가지 지적사항을 이야기했다.
“여기 멍든 부분 보이시죠? 이 자국은 발침을 너무 빠르게 해서 그렇습니다. 침을 뽑을 때, 부모님께 시술한다는 생각으로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세요."
“이 환자분의 경우에는 피부가 연약한 편입니다. 뜸 치료시에 신경 써서 양을 조절해주시기 바랍니다.”
“수술 환자의 경우에는 탕약과 침, 뜸 그리고 추나까지 복합적인 처방이 필요합니다. 또, 시기와 날씨 등의 여러 가지 환경에 의해서 그때그때 잘 맞는 처방이 달라질 수 있으니 차트에 항상 신경 써주세요.”
···
각 주치의를 비롯한 수련의들이 허준의 피드백을 꼼꼼하게 귀담아들었다.
허준뿐만 아니라, 각 층에 있는 원장들의 피드백은 앞으로 한의사로서 활동하는 데에 있어서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수고하셨습니다. 당직 섰던 선생님들은 잠시 쉬다 오시고, 나머지는 진료 준비하도록 하죠.”
“네!”
회진이 끝나고 힘찬 외침과 함께,
혜민한방병원의 진료가 시작되었다.
진료실로 돌아온 허준.
첫 환자를 맞이했다.
엊그제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염좌에 걸렸다고 한다.
환부를 확인하니,
‘많이 부었네.’
꽤 심각한 편이다.
“많이 부으셨네요.”
“아, 네. 처음에는 안 아파서 좀 걸어 다녔더니...”
“일단, 침하고 약침 한 방 처방해 드릴게요. 가능하면 많이 움직이지 마시고 자기 전에 냉찜질 해주시면 더 좋고요.”
“감사합니다.”
“치료실에서 뵙죠."
그렇게 치료실.
베드에 누운 환자 옆에 허준이 자리했다.
손으로 살짝 눌러 환부를 특정하고,
허준이 침을 꺼내 들어 순식간에 찔러 넣었다.
수많은 경험과 감각으로 이루어진 침술.
그런데,
‘이 느낌은...?’
평소와 뭔가 다른 감각이 타고 올라온다.
이전까지 침을 놓았을 때는 손에 들고 있는 이 침이 환자의 몸을 찔러 들어갔던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마치,
'침을 끌어들이는 감각.'
환부에서 침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본래, 인간의 몸이란 필요한 것이 땅기는 법이 아니던가.
지금 그것이 환자의 몸에서 침을 당기는 느낌을 준 것이었다.
본래 자신의 몸은 환자 본인이 제일 잘 아는 법인데,
허준이 그것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었다.
'과연 궁극의 침술이라 부를 수밖에.'
환자의 몸과 대화가 가능한 침술이라니.
허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이어서,
타이머를 맞춘뒤,
“그대로 편하게 계시면 됩니다.”
“네. 선생님~”
치료실을 벗어나 진료실로 향한 허준.
치료실에 있던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허준의 미소를 보며 속삭였다.
“원장님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
“왜요?”
“아니, 그냥 아침부터 웃으면서 나가시길래.”
“에이~ 원래 잘 웃으시는 분이시잖아요.”
* * *
그 시각.
출근 준비를 마친 박세정이 집을 나섰다.
‘이런 모습 오랜만이네. 그냥 평소처럼 하고 갈까?’
그동안 피부발진으로 인해서 매일같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니던 그녀.
거기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함께 사용해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다녀야 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완전히 180도 달라진 상태.
모자와 안경으로 가렸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당당하게 이마까지 깐 모습에,
발진으로 인해서 하지 못했던 화장까지 하니,
“누구세요?”
“여기 잘 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뭐...? 정말로 박 대리야?”
평일이면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 보던 사람들조차 못 알아보는 것이 아닌가.
다른 팀의 직원들은 당연히 그 정도가 더 심한 것은 당연했으니,
“대리님?”
“뭐야, 네가 동기 박세정이라고? 야 웬일이야 네가? 입사 때에도 모자 쓰고 온 녀석이.”
“그러게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야, 진짜 이 모습이 100배 낫다.”
“그러니까요. 완전히 못 알아봤다니까요? 대체 왜 감추고 다니셨던 거예요.”
박세정이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그냥, 오랜만에 한 번 해봤어요...”
출근 전에 했던 걱정은 이미 싹 날아간 상태.
그래도 앞으로 조심은 해야겠지.
“질환 특징은 박세정 씨도 잘 아실 테니, 이제부터 더 관리에 신경을 써주셔야 할 겁니다.”
며칠 전,
허준이 발진이 호전된 것을 확인하고 처방을 바꾸며 했던 당부가 떠오른 박세정이었다.
이 엄청난 변화에 관한 이야기는 당연히 회사에서 빠르게 퍼져나갔고,
자리에 앉아 그 소문을 들은 김민준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히 퇴근하다가 만난 후배의 고충을 듣고,
허준 선생을 추천해준 것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리라.
‘역시, 허준 선생님이 최고야.’
그나저나, 우리 애는 잘 있으려나?
까 똑!
경쾌한 음과 함께, 아이의 사진이 날아왔다.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김민준의 대화창 한곳에는 박세정이 감사하다며 보낸 메시지도 함께 있었다.
한편,
혜민한방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는 김정훈.
평소처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샤워하는데.
“어?”
무언가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욕탕 하수구에 걸려있는 머리카락.
이전에는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한번 갔다 와서 샤워하면, 한눈에 봐도 많은 양의 머리카락을 바닥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줄어들었어.’
그 숫자가 줄어든 것이 아닌가.
건강하고 평범한 사람은 모를 차이지만, 민감한 김정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정수리 쪽을 거울로 바라보니,
이전보다 덜 비어 보이는 느낌도 함께다.
그리고 이 말은 곧,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뜻이었으니.
‘아직 설레발 치긴 이르지만.’
괜스레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김정훈이 머리를 조심스럽게 말린 뒤에, 자신의 블로그에 비밀 기록을 이어나갔다.
xx 년 xx 월 xx 일.
혜민한방병원에서 탈모 치료를 시작한 지 15일째.
샤워 후 확연하게 줄어든 머리카락의 숫자를 확인할 수 있었음.
온라인에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수많은 환자가 있었기에.
동병상련의 처지로 치료가 된다면 언젠가는 이 블로그를 공개할 생각과 함께.
* * *
혜민한방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친절하다.
물론, 당연히 병원이니까 화를 낸다거나, 목청을 높여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내복지 때문이었다.
“박 쌤. 박 쌤 부모님도 진료받고 가셨어요?”
“네. 안 그래도 요새 들어서 허리가 자꾸 아프다고 하셨거든요.”
“누구한테 받으셨어요?”
“저는 최허준 부원장님이요. 요새 소문을 들어보니까, 최 부원장님이 허리통증 잡는 데는 아주 귀신이라더라고요.”
“그래요? 우리 시어머니도 여기저기 아프시다고 하시던데, 한번 모셔와야겠네요.”
“그러세요. 원장님들에게 말하면 진료시간 이후에도 봐주실걸요?”
이렇듯, 쟁쟁한 한의사들이 근무하는 직원 외에 가족들까지 전부 진료를 받게 해주기 때문이다.
부모, 형제, 배우자 그리고 배우자의 가족들까지.
이는 다름 아닌 김예진의 주장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복지였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은 병원장 최인호는 애매모호한 얼굴이었다.
정확히는 굳이? 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건 좀 너무 나간 것 같지 않나?”
“아니에요. 병원장님. 꼭 필요한 복지입니다.”
“왜 그렇지?”
“이걸 보시면 바로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최인호가 그것을 받아들고는 되물었다.
김예진이 건넨 것은 다름 아닌 과거 허준한의원의 매출 기록.
물론, 허준에게 허락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록을 살피는 최인호에게 김예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과거 허준한의원에서는 직원 복지를 최우선 과제 중에 하나로 생각했어요. 왜냐면 규모에 비해서 몰려드는 환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죠. 일할 수 있는 인원수의 공간은 제한되는데, 익숙지 못한 사람이 들어온다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허준 원장님은 잘 알고 계셨거든요.”
최인호가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 복지뿐만 아니라, 급여 그리고 인센티브를 제외하고도 휴가만으로도 조건이 꽤 괜찮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들의 얼굴에 티가 나거든요. 아시잖아요? 때깔이 좋아야 맛도 좋다고, 직원들 얼굴에 근심·걱정이 서려 있으면 분명히 영향이 있을 겁니다. 게다가 혜민서 선생님들이 과잉진료로 보약을 마구잡이로 처방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흠,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 좋아. 자네 생각대로 하지.”
그 덕분에 혜민한방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얼굴에 밝은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일을 마치고 퇴근한 김예진이 집에 와있는 엄마와 마주했다.
“엄마? 웬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그냥. 딸 얼굴 보고 싶어서 와 봤지. 그보다 일은 할만하니?”
과거 한의원에서 일하는 것을 반대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시장골목에 있는 작은 한의원에서 일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혜민서란 복지단체의 대표까지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흥, 예전에는 그만두라고 하더니.”
“그때와 지금은 다르잖니.”
“그보다 엄마. 얼굴 보니, 무슨 할 말 있어서 온 것 같은데. 이번엔 또 뭐에요?”
김예진의 엄마.
한수희가 머뭇거리다가,
“예진아. 엄마. 수술해야 한대.”
“갑자기 웬 수술?”
“암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