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93화 (193/230)

193화.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궁금해지네

* 보상 : 포인트 10000

‘무려 1만 포인트짜리.’

허준이 자연스럽게 박세정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박세정 님. 이쪽으로 와서 앉아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모자를 푹 눌러쓴 박세정이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허준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천천히 살폈다.

이미 수많은 환자를 봐온 탓에,

이렇게 환자가 들어오는 걸음걸이만으로도 여러 가지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분위기상 이미 자신의 병증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병증을 잘 모르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마련이었다.

이곳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느끼는 초조함과 진료실 안으로 들어서면서 기대하는 기대감, 그리고 긴장감이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분위기다.

하지만, 박세정 환자의 경우에는 그런 조심스럽고 긴장한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 말은 즉,

‘이미 여러 병원을 돌고 왔다는 뜻일 터.’

그런 허준의 눈에 박세정의 걸음걸이가 눈에 들어온다.

걷는 모습이 특이하네.

분명, 차트에 적혀있는 증상에는 피부병이라 적혀있거늘.

왜 무릎이나 발목에 염좌로 찾아온 환자와 비슷한 걸음걸이를 보이는 것일까.

“피부병 때문에 찾아오셨다고요?”

“네.”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녀가 푹 눌러쓴 모자를 벗으니,

생각보다 심각하게 부풀어 올라 벌게진 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토피? 는 아닌 것 같네.’

물론, 아토피도 이렇게 부풀고 붉어지는 발진을 동반하지만.

지금 박세정 환자처럼 좌우가 대칭을 이루듯이 발병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얼굴에 좌우대칭의 발진.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때, 허준의 눈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더 눈에 들어온다.

다름 아닌 코와 입술 사이에 발진이 없다는 것.

‘설마...?’

이 특징적인 발진으로 허준이 병증을 알아낼 수 있었다.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인 루푸스였다.

같은 자가면역질환 이었기에,

과거 아토피 치료방법을 공부하다가 알게 된 질환이다.

여기서 루푸스라는 이름은 늑대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는데,

늑대에게 물리거나 발톱으로 긁은 자국과 증상이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가임기 여성에게 발병하며.’

눈앞에 있는 박세정 환자처럼 입과 코 사이를 제외하고 양쪽으로 좌우대칭의 나비 모양의 발진이 특징이다.

정확한 명칭은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얼굴의 피부뿐만 아니라, 근골격계, 내장, 신경 등등까지 광범위한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아까 그렇게 걸었던 거군.’

허준이 좀 전에 본 걸음걸이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박세정에게 말했다.

“루푸스로군요?”

“어, 어떻게 그걸?”

박세정의 눈이 살짝 커지며 말을 더듬었다.

아직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는데, 곧바로 정답을 맞혔기 때문이리라.

‘인터넷에서 하도 용하다길래 와봤는데.’

이렇게 바로 알아차릴 줄이야.

“맞아요. 진단을 받은 지는 꽤 되었어요.”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자가면역질환은 관리가 생명이니.”

흔히, 자가면역질환이라 불리는 질환들.

가장 쉬운 예로 아토피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서 당연히 처방을 받고 치료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생활의 변화가 아니던가.

이렇듯이 자가면역질환은 환자의 면역체계를 바로 세우면서 지속적인 관심으로 들여다보며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 질환이었다.

“아니에요. 저보다는 남자친구가 고생을 더 많이 했죠. 제가 꽤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거든요.”

허준이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의학에서 자가면역질환의 관리는 대부분 약에 의존하기에 이 기간이 길어지면 몸은 약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부작용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한의원을 찾아오는 대부분 환자가 약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지.’

무엇보다 가임기 여성이니, 임신과 관련하여 민감할 터.

그 때문에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겠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가면역질환 치료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꽤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먼저 몇 가지 질문부터 할게요.”

질문이 이어진다.

먼저 루푸스를 진단하고 관리해온 기간과 현재 몸의 상태. 이어서 생활 환경과 같은 요소들까지.

“스트레스가 많으셨겠네요. 이렇게 심해질 때면 출근하기도 힘들 테니까요.”

“정말, 힘들었죠...”

박세정이 완전히 공감한다는 듯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준이 그 모습을 보며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관리도 잘 해오고, 회사생활도 할 정도면 치료에 관한 강한 의지는 의심할 필요가 없겠지.

‘그렇다면, 이제 순수하게 나의 차례겠군,’

“좋습니다. 손을 이렇게 올려주시겠어요?”

이어진 진맥.

허준이 손끝에서 느껴지는 맥과 눈으로 보이는 흐름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다.

한의학에서는 간과 신장에서 정혈이 고갈된 상태에서 열독, 혈독 등의 사기가 침범하여 발생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인지,

‘간과 신장의 기운이 허하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익숙하지만 조금 다른 기운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동상의 한기와 화상의 열기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군.'

게다가 오래 관리를 하면서 지친 탓인지,

전반적으로 몸의 컨디션이 떨어져 있었다.

이러니, 관절의 통증이 다시 재발한 것이겠지.

허준이 치료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궁극적인 치료는 혈독과 열독 등의 사기를 제하고 간과 신장 그리고 임파선 같은 면역체계를 바로 잡아주는 것.

여기에 더해서 몸의 기운을 끌어올려 주면,

그 뒤로는 컨디션 조절만으로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을 터.

다만, 어떤 일이라도 그렇듯이,

순서가 중요했다.

‘자가면역질환은 스스로 면역체계가 피아식별을 못 해서 벌어지는 질환.’

즉, 섣불리 장부의 허증을 치료한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선 침으로 사기를 빼고, 탕약으로 혈독과 열독을 다스려야겠군.

‘족궐음간경이 흐르는 방향에 맞춰서.’

시작하는 방향인 엄지발가락의 대돈혈과 그 위에 있는 행간과 태충혈에 침으로 사기를 뽑고, 경락이 끝나는 기문혈에 뜸으로 기운을 보하면 될 터.

그렇다면 빠진 기운도 다시 채워지면서 사기를 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약침을 사용하여 관절의 통증을 완화해주고,

‘탕약은...’

면역력을 높여주는 보중익기탕, 사물탕 등과 해독에 좋은 시호청간탕, 용담사간탕 등도 있지만,

아무래도 십미패독산이 좋겠군.

치료계획을 세운 허준이 박세정에게 말했다.

“한의학적으로 루푸스란 질환은 간과 신장에 건강한 혈이 고갈된 상태에서 사기가 침범하고 그로 인해 혈독과 열독이 올라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봅니다. 궁극적인 치료목표는 양약의 투약을 차차 줄여나가면서 몸의 면역체계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럼... 재발하지 않을까요?”

“아시다시피, 자가면역질환이란 것은 생활습관도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전적으로 박세정 님이 얼마나 신경을 쓰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허준의 설명을 들은 박세정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몇 년간을 악착같이 살아온 그녀였기에,

“그 정도는 걱정 없어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허준이 웃으며 처방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일단은 침과 약침 그리고 탕약으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관절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서 약침을, 침으로는 사기를 빼낼 생각입니다. 그 과정에서 뜸도 활용할 생각이고요. 탕약으로는 해독을 촉진할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치료실로 가실까요?”

그렇게 치료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세정이 있는 베드에 허준이 도착했다.

“자~ 편안하게 그대로 계시면 됩니다.”

허준이 말과 함께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이어서 순식간에 무릎과 발목으로 찔러넣고는, 그대로 약을 밀어 넣었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이물감을 느낀 박세정.

그런데, 그 이물감과 동시에 자신을 괴롭히던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어라?’

혹시, 약침이 아니라 마취제라도 놓은 걸까.

“약침은 끝났습니다. 이제 침을 놓을 텐데, 중요한 과정이니 절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네, 네...”

허준의 손이 망설임 없이 박세정의 발가락으로 향했다.

감각을 집중하고, 경락이 흐르는 정확한 자리에 반대 방향으로 찔러 넣었다.

‘지금은 제삽법 보다는 뜸의 기운이 있으니, 같이 사용하여 사기를 빼는 방식이 좋겠지.’

가장 기본적인 사법.

경락의 반대 방향으로 침을 찔러넣어 기운을 빼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뜸이 보해주는 시간을 맞추면 될 터.

허준이 그렇게 침을 찔러 넣을 때,

이번에도 뭔가 이물감이 느껴지리라 생각한 박세정.

그런데,

“됐습니다. 이제 이 자리에 뜸을 놓을 테니. 주의해 주세요.”

벌써 침을 다 놨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허준이 뜸까지 자리를 잡아주자,

가슴에서 느껴지는 따듯함에 졸음이 쏟아지는 박세정이었다.

허준이 풀린 눈을 한 박세정을 뒤로하고 타이머를 맞춘 뒤, 진료실로 향했다.

*   *   *

“네, 이렇게 내쉬시고~ 들이쉬시고요.”

“후우~”

내쉬는 숨소리와 동시에,

덜컹거리는 카이로베드 소리와 함께, 손끝에서는 그 충격에 자극을 받아 화답하는 환자의 뼈마디 소리가 느껴져 왔다.

“네. 천천히 일어나시면 됩니다.”

“와~ 선생님. 정말 듣던 대로 장난 아니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어서 치료실로 가실까요?”

허준과 비슷한 말투와 억양.

그러나 이 진료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태식 원장이었다.

혜민서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특징이 없는 김태식이었기에 한방병원 안에서도 별로 언급이 되지 않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그 분위기가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고~ 선생님. 소문 듣고 찾아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제가 사실은-”

여기서 소문이란 다름 아닌, 바로 비뇨기과에 해당하는 환자들 때문.

오죽하면 환자들 사이에서는 ‘아침밥이 달라졌어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보통, 초진환자의 경우에는 허준이 아래에서 진료를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비뇨생식기 문제로 찾아온 환자들을 전담할 마땅한 한의사가 없었던 까닭이다.

유도진 선생이야 탕약과 보약 그리고 찾아오는 환자들로도 바쁘고, 고요한 선생은 다른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박용준 선생에게 맡기자니, 나이가 너무 어린 탓이다.

나이가 어리다 보면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이기에,

문진에 있어서 제대로 된 사정을 털어놓는 것이 어렵기 마련이었으니,

‘어떤 방면이든 둥글면서 경험도 풍부한.’

거기에 더해서 얼핏 보기에 50대는 되어 보이는 42세의 김태식 원장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언제 가부터는 완전히 전담되어버린 김태식.

하지만, 찾아오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였기에 나름 만족하는 김태식이었다.

‘진료를 볼때마다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것 같네.’

한편, 탕전실에서는 유도진이 탕약을 내릴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리가 아니라 감각에 집중하라고 하셨지.’

스승인 김정우 선생님의 조언을 떠올리며,

눈을 감은 채 허준 원장이 했던 것처럼 약재가 들어있는 서랍에 손을 넣었다.

그러다가 왠지 모르게 이거다 싶은 약재를 꺼냈는데,

한눈에 봐도 제일 질이 안 좋아 보이는 약재가 잡힌 것이 아닌가.

“음...”

이게 아닌가.

내가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실망스러움에,

그대로 꺼내둔 약재.

한 시간 뒤,

허준이 탕약을 달이기 위해 탕전실로 올라왔다.

그래서 약재들을 꺼내러 가는데,

누가 꺼내놓은 약재가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지?’

그런데, 이거 기운이 굉장한걸?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겉보기에는 별로인데 느껴지는 감각이 남달랐다.

“그럼, 내가 써야지.”

그 시각.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김찬용과 그 옆에 또 다른 남자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다고?”

“물론이지. 한번 가보면 너도 반할걸?”

“오케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궁금해지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