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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91화 (191/230)

191화. 오랜만에 휴일인데

“최승원 학생? 승원 학생이 여기에는 왜?”

“그야 당연히, 수련의 코스 따러 왔죠. 겸사겸사 선생님께서 작년에 약속하신 침술도 배우고요.”

작년의 약속이라니..

허준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다가 TV에 나가서 장침으로 디스크환자의 허리통증을 치료한 일침 치료가 떠올랐다.

그것이 매스컴과 유튜브에서 한때 인기몰이를 했고, 당시 대학교에 강의하러 다니던 자신에게 최승원이 다가와 알려달라고 했던 기억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하긴,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을 때에도 자신의 팬을 자처하던 그가 아니던가.

아무래도 한방병원에 부담스러운 캐릭터가 하나 더 늘 모양이다.

그래도 반가운 허준이었다.

최승원의 손재주는 당시 가르치던 한의대 학생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으니까.

쉽게 말해, 천재.

잘 가르치면 뛰어난 한의사가 될 수 있을 터.

허준이 웃으며 답했다.

“그거 배우려면 꽤 열심히 해야 할 걸?”

“걱정하지 마세요!”

최승원의 힘찬 대답에 허준이 피식 웃고는 그대로 진료실로 향했다.

그렇게 혜민한방병원에 신고식을 마친 최승원.

출근 첫날 오전이었기에 바로 진료실에 들어가거나, 치료실에 들어가기보다는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맞이한 점심시간.

“어? 최승원 학생?”

“자네가 여기 웬일이야?”

다들 나름대로 바쁜 탓인지, 또는 게으른 탓인지 서류들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나 보다.

식당에서 최승원을 알아본 선생들이 놀란 얼굴들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최승원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둘이 선배 후배 하면서 죽이 잘 맞는 박용준이었다.

“아이고 우리 후배님 왔네?”

“선배님. 아니 원장님. 잘 계셨죠?”

“물론이지. 허준 원장님한테는 인사드렸고?”

“네. 열심히 해야 할 거라고 엄포를 놓으시던데요?”

“당연하지. 안 그래도 할 일 많을 텐데. 그나저나 오전에는 어땠어? 여기 시설 죽이지? 한의원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말이야.”

“진짜 깜짝 놀랐어요. 듣기는 했는데, 이정도 일줄은 몰랐거든요."

“그뿐만이 아니야. 여기 밥도 맛있어. 그러니, 많이들 먹으라고. 이제부터 빡세게 굴려줄 테니까 말이야.”

박용준이 최승원과 인턴 선생들을 바라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원장님. 너무 겁주지 마세요.”

“장난이야, 장난. 그럼, 나중에들 보자고. 식사들 맛있게 하시고~”

이렇게 다들 친근하게 대하니,

최승원에게 쏠린 인턴 동기들의 관심은 당연할 터.

“최 선생님. 여기 계신 선생님들하고 친분이 있으신가 봐요?”

“아~ 작년에 같이 의료봉사 다니고 그랬거든요. 허준 선생님한테는 강의도 들었고요.”

그러자 동기들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허준의 특강이 꽤 유명했었기 때문이리라.

“최 선생님은 좋겠어요. 이렇게 선생님들 많이 알고 있으면 그만큼 편의를 봐줄 지도 모르잖아요.”

한 동기가 툭 뱉는 말에,

최승원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뱉었다.

‘편의를 봐준다니.’

아무래도 여기 선생님들을 한참 잘못 보고 있는 듯싶다.

혜민서 선생님들이 친근하게 대해주기는 하지만, 적어도 환자를 대하는 진료 때와 의료 행위를 행하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얄쨜도 없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교육한다고 하면,

박용준 원장님의 말처럼 빡세게 굴릴 터.

왠지 모를 불길해 보이는 최승원의 웃음에,

밥을 먹던 동기들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중에서 유일하게 최승원과 함께했던 황원철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혜민한방병원의 악명높은 수련의과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팀장님. 오늘 회식 어떻게...?”

“야, 너는 눈치가 없니~ 우리 팀장님 엊그제 아빠 되셨잖아. 오늘 퇴원이라고 하시던데. 지금 회식이 문제겠어?”

“아차~ 그랬지.”

김민준이 후다닥 짐을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회식은 산후조리원 들어간 다음에 하는 거로 하자고~”

“아니에요. 팀장님. 신경쓰지 마세요.”

그렇게 쏜살같이 퇴근하는 김민준을 보며,

팀원들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사람이 달라졌다니까?”

“그러게요. 그래서 저도 팀장님이 다니셨다는 한의원으로 진료받으러 가보려고요. 안 그래도 요새 머리도 좀 지끈지끈하는 것 같고.”

“에이~ 무슨, 한의원에 갔다고 사람이 바뀌어?”

“그래도 모르죠? 그리고 그 한의사 TV에도 몇 번 나왔다던데요? 꽤 유명하더라고요.”

“그거 다, 광고야 광고. 알잖아? 나 한의원 꽤 오래 다닌 거. 그런데도 아직도 목디스크 그대로잖아. 안 그래?”

“그런가...?”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팀장이 대신 답했다.

“그래도 모르지? 진짜 바뀔지도. 왜~ 우리 팀장님 예전에 악명높았잖아. 까칠하기로. 그런데, 내가 엊그제 옆 팀 팀장님과 한잔했는데. 위에서 평가도 좋더라고. 아마, 곧 진급 발표 날 것 같던데?”

“정말요?”

이렇듯 김민준은 개발팀의 팀장으로서 개인의 능력뿐만이 아니라,

팀의 실적 그리고 팀을 이끄는 리더쉽도 인정받는 중이었다.

이렇게 바뀐 김민준이 향한 곳은 혜민한방병원이 아닌 인근의 제일병원.

산부인과, 내과, 소아청소년과를 전문으로 하는 꽤 오래되고 규모가 있는 병원으로, 혜민한방병원과 협력관계를 맺은 병원이었다.

그렇게 아내 윤다희가 입원해 있는 병실.

병실로 향하는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병실 안에 있는 윤다희의 앞에는 시어머니인 이선희가 웃으며 사과를 깎고 있었다.

“다희야~ 이것 좀 먹어. 오다가 과일가게에 들려서 산 건데, 맛이 아주 좋아.”

“감사합니다. 어머님~”

윤다희가 웃으며 사과를 집어 들고는,

“어머님 먼저 드셔야죠~”

“아니다~ 네가 큰일 치렀는데, 몸도 성치 않을 테니 먼저 먹거라.”

양보했고 이어서 다시 또 양보가 이어졌다.

화기애애한 모습.

‘예전이었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을 텐데.’

한때는 아이 문제 때문에 남편과의 사이는 물론,

시댁과도 삭막한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부질없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누가 문제냐, 누가 어떻더라 이러면서 서로 싸우기 바빴고 나중에는 대화조차 하지 않게 되는 순서를 밟고 있었으니까.

이 모든일의 변곡점은 그날이었다.

허준한의원이란 시장골목의 한의원에서 면접을 본 날.

‘그때는 정말 될대로 대라고 해본 건데.’

돈을 벌기 위해서도 일을 시작한 것도 있었지만,

가슴의 답답함을 풀기 위함도 있었다. 집에만 있으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둘도 없는 친구도 만들 수 있었고, 진료를 받으면서 부터는 가정에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아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바로 옆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기까지 있었으니,

‘세상에 나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감상을 채 다 느끼기도 전에,

남편 김민준이 병실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눈으로 인사만 한 채,

곧바로 아기가 들어있는 바구니로 다가간다.

‘저렇게 좋을까.’

그 뒤에야 마주친 남편의 눈.

눈빛이 흔들린다. 아마 아이의 검사결과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상 없데.”

“휴~ 다행이다.”

김민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긴장했기 때문이리라.

“퇴원 준비는?”

“다 했어.”

“민준아, 너는 진즉에 와서 같이 퇴원 준비를 했으면 얼마나 좋아?”

“엄마. 저 지금도 빨리 온 건데요..”

“하여간 남자들은 모른다니까. 그치?”

“맞아요. 어머님.”

이렇게 김민준이 기분 좋은 구박을 받고 있을 때,

진료를 받은 지 며칠 지난 이재웅이 안경을 쓰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지럽다?’

뽀얀 느낌이 아니라, 묘하게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마치, 학창시절에 눈 나쁜 친구들의 안경을 장난삼아 뺏어 썼던 그 느낌.

그리고 그 말은,

‘시력이 좋아진 건가?’

그래서 찾은 안경원.

굳이, 안경원을 찾은 이유는 하나였다.

안경원에도 웬만큼 시력 검사를 하는 장비는 다 있을뿐더러, 혹시나 안경에 문제가 있는 경우의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안경에는 문제가 없는데요?”

“그래요?”

“잘 안 보이셔서 그러세요?”

“네. 혹시, 괜찮으시면 시력도 한 번 봐주시겠어요? 이상하게 오늘 오후부터 잘 안 보이네요.”

그렇게 시력 검사를 하니,

“안경알을 바꾸셔야겠는데요? 지난번보다 시력이 좋아지셨어요.”

“그래요?”

시력이 좋아진 것이 아닌가.

분명히 지난번에 맞췄던 안경인데.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지다니.

‘그럼, 정말로 그 양반이 말한 것처럼 간이 문제였다는 말이야?’

“허...”

이재웅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떠오른 허준의 말.

“시력이 좋아지시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그래.

시력이 좋아지면 알려달라고 그랬었지.

다음 날 아침.

진료를 위해 언제나처럼 혜민한방병원을 찾은 이재웅.

데스크의 선생이 이재웅을 알아보고는 되물었다.

“이재웅 환자님. 들어가실게요~”

허준이 진료실로 들어온 이재웅을 반갑게 맞이했다.

표정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네.’

매일같이 진료를 보아온 데다가,

워낙 이런 경우를 많이 겪었기에 단번에 그 변화를 알아차린 허준이었다.

“어서 오세요. 이재웅 환자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목소리부터 다르다.

그리고 이어진 이재웅의 말,

“어제 진료받고 오후에 느낌이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검사를 해봤더니, 시력이 좋아졌습니다.”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들어오시는데, 표정이 밝아 보이셨거든요.”

“그, 그런가요?”

허준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 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젠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있을 테니,

‘다음 처방을 내려야겠지.’

“그래서 말인데, 이제는 치료과정에 있어서 보약이 필요할 것 같네요. 괜찮으실까요?”

“선생님께서 그러시다면 그게 맞겠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바로 진맥부터 잡아보죠.”

*   *   *

김정우와 박진석이 혜민한방병원을 찾았다.

“어? 선생님. 여기에는 어쩐 일로.”

“아~ 다름이 아니라, 허준 원장과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 해서.”

“물론입니다. 마침, 탕전실에 있을 시간이니, 바로 호출하겠습니다.”

탕전실에서 탕약을 내리던 허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탕약 내리는 시간인 줄 알면서, 전화를?’

“병원장님? 저, 지금 탕전실에 있습니다.”

“알고 있어. 그런데, 김정우 선생님과 박진석 선생님이 자네를 좀 보자고 하셔서 말이야.”

두 선생님이 직접 찾아오다니, 아무래도 중요한 일인가 보다.

그래서 허준은 탕전실 한쪽에서 열심히 탕약을 내리던 이두철에게 부탁했다.

“이두철 선생님. 여기 제 것도 좀 봐주실래요?”

“네? 제가요?”

“네. 잠깐이면 되요. 금방 내려올게요.”

얼떨결에 탕전실에 있는 탕약기들을 전부 맡게 된 이두철.

예전 같았으면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르나, 이미 탕약을 달이는 데에서는 도가 튼 그였다.

‘뭐, 이정도쯤이야.’

그렇게 허준이 병원장실로 올라와 두 선생에게 인사했다.

“선생님들. 그간 잘 지내셨죠?”

“오랜만이네?”

“예전보다 널널한가 봐? 얼굴이 아주 훤한데?”

“아닙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워낙 잘해주셔서 그렇죠.”

“안 그래도 우리 같은 노인네들 귀에 여기 한방병원의 이름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 자네들이 함께 잘 해주고 있다는 뜻이겠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허준의 질문에,

김정우가 답했다.

“자네 휴무 날. 하루 정도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시간이요?”

“응. 자네가 갈 곳이 있어서 말이야.”

“혹시,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설명하기 좀 복잡한데-”

그렇게 며칠 뒤,

허준의 휴무 당일.

스마트폰에 적혀있는 주소를 확인한 허준이 목적지로 가는 유일한 길 앞에 섰다.

차로는 들어갈 수 없는 길.

그 길너머로 커다란 봉우리가 여러 개 보인다.

“여기로 올라가야 하나 보네.”

사람이 다닌 길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깨끗하게 정비된 그런 길도 아닌 누가봐도 완벽한 산길.

그런 허준의 뒤에서,

“원장님... 정말, 올라가시려고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가야죠. 바로, 출발해 볼까요?”

허준이 대답과 함께 그대로 씩씩하게 산길로 들어섰다.

그런 허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오늘 오랜만에 휴일인데...”

최허준이 원망스러운 눈빛과 함께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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