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82화 (182/230)

182화. 허공을 갈랐다

연예부 기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일 아직 안 겪어봤으면 연예부 기자라고 하면 안 되지.”

여기서 말하는 그 일은 이런 일이다.

어느 날 제보 전화가 온다.

연예부 기자이니 당연히, 배우, 아이돌, 래퍼 등등 연예인에 관련한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난 점은.

대부분이 이런 맥락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제보할 게 있는데, 아무래도 XX가 저를 스토킹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 XX는 연예인.

즉, 연예인이 자신을 스토킹하고 감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집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니까요? 확인해 보세요.”

“아예 우리 집 위층으로 이사를 왔어요.”

등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세상에 어떤 연예인이 위험을 감수하고 평범한 사람을 스토킹한단 말인가.

자신의 이미지가 곧 직업인 사람들인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 확인차 제보자의 주변을 살펴보고 탐문도 해보면 역시나 제보했던 일은 전혀 없던 일들로 밝혀진다.

그렇게 발바닥에 땀이 좀 나게 되어서야,

제보자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현대의학에서는 조현병.

한의학에서는 이를 전광증이라 한다.

‘예상대로다.’

허준이 최민형의 맥을 잡은 뒤에 확신할 수 있었다.

젊은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허한 장부들.

물론,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이 크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심과 담의 기운이 약하다.

이와 더불어 몸의 머리로 이어진 경맥들이 제대로 순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심허의 증상인 경계와 정충과도 얼추 비슷해 보이네.’

경계와 정충. 과거 공황장애를 앓던 환자의 치료를 해본 적 있는 허준이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점들을 빠르게 캐치해낸다.

공황장애는 공포를 느끼면서 호흡곤란, 어지러움, 빠른 맥박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면,

이 조현병은 망상과 환청, 환각 그리고 이상한 행동이나 대화 등이 주로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게 바로 환청.

그것도 누군가 지시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오는 것이 특징이다.

생각해보라.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귀에서 누가 계속 속삭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누구나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무언가를 적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들리는 노래 가사를 쓰는 경우 말이다.

이런 일을 시도 때도 없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행동과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밖에.

이것이 심화하면 나중에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면서 조종한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조현병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에는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렸었지.

허준이 천천히 손을 놓고 최민영에게 물었다.

“혹시, 정신과에는 가보셨나요?”

“정신과요? 아니요. 제가 미친 것도 아닌데 정신과 의원을 왜 가요?”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하는 최민영.

역시나, 이것 또한 예상했던 대로다.

‘어쩌면, 인정하기 싫은 걸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환자의 반응이었다.

설명하자면 꽤 어렵겠는걸.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민영 환자의 경우에는 아직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는 것.

그리고 잠잘 때만 환청이 들린다는 것이다.

이 말은 즉,

‘아직 정도가 심하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겠지.’

현대의학에서는 이를 유전적 요인 또는 뇌에 이상이 생겼다고 보나,

한의학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심장과 비위의 기능 이상으로 양기가 지나치게 왕성해지면서 담음이 몸에 쌓여 순환을 막는 경우다.

‘실제로 양기가 제대로 순환되지 못하고 있으니.’

양기의 흐름을 바로 잡는 것이 우선이다.

그 뒤에 근본적인 원인인 비허와 심허를 치료해야겠어.

허준이 치료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양기의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 먼저 침을 활용할 생각이다.

발끝에서 시작하여 머리까지 이어진 족양명위경.

위장과 이어진 경락으로 위는 비장과 짝꿍이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족양명위경을 활용하여 제대로 순환되지 않은 길을 뚫을 생각.

검지 발가락 끝부분에 있는 여태혈을 시작으로 양 눈의 아래에 있는 승읍혈까지.

‘혈 자리 전부를 사용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으니까.

현재 환자의 상태가 가벼우나 언제 중증으로 진행될지 모를뿐더러,

좀전의 반응으로 보아 환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환청을 먼저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질환이 시작된 비장과 심장의 치료도 할 수 있을 터.

탕약은 심허에 좋은 온담탕으로.

여기에 더해서 우황청심환과 비슷한 효과의 청심곤담환을 사용해야겠군.

입원할 수 있다면 입원 치료가 좋겠어.

계획을 세운 허준이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입원해서 치료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입원 제안에 최민영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입원하는 것을 생각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병원의 모습을 보니 가격이 꽤 비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입원은 사정상 안 될 것 같아요.”

“그렇군요. 일단은 쉽게 설명하자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피곤이 누적되서 심장과 담이 많이 안좋아져서 그런 겁니다. 그럼 몸안에 화기가 쌓이게 되는데, 그게 뭉치고 뭉치다 보면 환청이 들리는 거죠. 입원치료가 가장 좋지만, 안된다고 하니 우선은 침하고 약을 좀 지어드릴게요. ”

허준이 내용을 압축해서 말했다.

정신병이라고 말하면 보나마나 안들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 약먹고 침 맞으면 괜찮아질까요?”

“네. 다만, 최민영 씨가 해 주실 일이 있습니다. 통원 치료를 하시려면 몇 가지 지켜주셔야 할 것들이 있거든요.”

허준의 말에 최민영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지켜야 할 일이라니.

“어려운 건 아니고요. 두 가지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두 가지요?”

“네. 첫째는 늦어도 12시 전에 잠을 자는 겁니다.”

최민영의 눈이 커졌다.

가뜩이나 침대에 누우면 환청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는데, 12시 이전에 누워있으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허준도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말을 이었다.

“물론, 힘드시겠죠. 그래서 두 번째 지켜야 할 일이 있는 겁니다. 숙면을 위해서 하루 1시간 정도는 꼭 산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생각보다 꽤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침으로 경혈을 뚫고 몸을 이완시키고 담음을 없애는 약을 지어줘도 기운이 제대로 흘러야 한다.

즉, 제대로 잠잘 시간에 잠을 자지 않으면 기운이 제대로 흐를 리가 없다는 뜻이다.

“잠자는 게 치료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혹시, 시간이 안 돼서 산책을 못 할 때 반신욕이나 족욕을 해주십시오. 그것도 숙면에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허준의 이야기를 다 들은 최민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해, 해볼게요.”

“좋습니다. 그럼, 치료실로 가시죠.”

*   *   *

서울의 한 거리.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아이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빠, 저게 뭐야?”

“아~ 저거? 혜민서라고. 착한 사람들이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거야.”

“정말? 나도 할 수 있어?”

“그럼, 우리 다음에 같이 한번 해볼래?”

“응.”

이렇듯,

혜민서의 이름이 꽤 유명해져 가고 있는 와중에 가장 바빠진 사람은 김예진이었다.

혜민한방병원 총무실.

애초에 이야기한 데로 몇몇 직원이 혜민서의 업무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팀장님. 여기 이번에 추린 명단이에요.”

“수고했어요.”

“그나저나, 정말 여기저기에서 소문이라도 난 것인지 갈수록 사람이 늘어가네요? 팀장님 갈수록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은데요?”

“그래서 안 그래도 새로운 방법을 생각 중이에요.”

건네받은 자료를 살피는 김예진.

이제는 가족 단위뿐만 아니라, 여러 단체에서도 종종 지원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를테면, 종교에 속해있는 청년회라던가, 봉사단체 등등 말이다.

여기에 더해서 최근에는 중, 고등학교도 하나둘씩 참여하고 있었으니,

김예진이 머리가 달아오르는 것이 당연한 상황.

때문에, 혜민서의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느낀 그녀였다.

‘지역별로 쪼개서 각 지역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필요하겠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몸은 하나요.

조직은 이미 덩치가 커져서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니.

기획부터 행사 일정, 인원 등 전부를 일임할 생각이었다.

‘후원금과 지원만 여기서 분배하면 되겠지.’

이는 생각보다 꽤 효율적인 방식이다.

지역에서 직접 활동하는 사람이 그 지역의 상황을 가장 잘 알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새롭게 변모된 혜민서의 모습.

대표인 김예진의 아래에 각 지역의 장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다.

이는, 김예진이 직접 만나본 사람 또는 가장 활동을 오래 한 사람 위주로 추렸고.

덕분에 혜민서는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회진을 마친 허준.

「포인트를 2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 획득하였습니다.」

···

보유 포인트 : 32417

최근 양쑨 선수와 박문식 환자 그리고 박민호 환자까지.

퀘스트로 얻은 포인트 외에도 벌써 꽤 많은 포인트가 모여 있었다.

‘조직 개편 이후에 포인트의 수급이 훨씬 빨라진 느낌이네.’

역시, 김예진 선생이야.

허준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혜민서 식구들을 바라보며,

“시작해볼까요?”

혜민서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시각.

케이한방병원의 병원장실.

월 매출 보고서를 본 김준일이 이 실장에게 물었다.

“설 연휴도 껴있었는데, 이번 달 매출이 왜 이런가?”

말 그대로 설 연휴가 껴있었음에도,

매출이 생각보다 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게...”

이 실장이 말을 줄였다.

사실 이유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차마,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하면 노발대발할 것이 뻔했으니까 말을 줄였을 뿐이었다.

“이 실장. 우리가 같이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냥 말해. 그래야 나도 대책을 세울 것 아니야?”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혜민한방병원 때문에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혜민한방병원?”

“네.”

“자세히 말해봐.”

“혜민에 유도진이란 한의사가 약을 잘 짓는다고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서...”

“그래서 우리쪽 고객들이 이탈했다 이말인가? 쯧, 우리 원장들은 일을 안 하나 보지?”

김준일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혀를 찼다.

최근에 방송에서도 몇 번 밀리는 모습에 입소문까지 탄 한의사, 허준이란 침술이 뛰어난 한의사까지.

이 모든 것이 전부 아주 조그만 바람에서 시작된 것.

그것이 커지고 커져 결국에는 이렇게까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김준일의 감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거 잘못하면 바람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겠어.’

그래서 직접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김준일이 이 실장을 불렀다.

“최인호 병원장이라고 했던가? 같이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하지.”

“알겠습니다.”

*   *   *

한편,

부산의 한 야구장.

여기저기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을 감독인 김성곤이 뒷짐을 쥔 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이러다가 완전 나가리 되겠는데?”

그러자,

뒤에 있던 코치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감독님. 아직, 워밍업 중이라...”

“워밍업은 무슨, 당장 나랑 자네들 다 갈릴 판인데.”

그랬다.

야구팀 중에서도 최약중에 한 팀.

덕분에, 최근에는 아예 야구팀을 해체하자는 이야기도 언뜻 들리는 중이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쓸만한 선수들은 전부 다른 팀에 팔아넘기고 이제 남은 선수들은 백전노장 또는 햇병아리, 아니면 부상당한 선수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때, 팡, 팡 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오는 곳.

자연스럽게 시선이 간 김성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성렬이 쟤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좋아 보이는데?”

그 물음에 코치 박문식이 답했다.

“요즘에 폼이 올라와서요. 덕분에 투수 종천이의 컨디션도 성렬이가 같이 끌어올리는 중입니다.”

“그래? 확실히 그전보다 좋아진 것 같네. 그런데, 그러면 뭘 하나. 어차피 야구 포수랑 투수 둘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야구는 팀 경기.

한 명의 선수가 월등히 잘한다고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됐어. 코치들은 가서 애들 훈련이나 봐줘.”

“네. 감독님.”

그렇게 하나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코치들.

그런데 박문식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뭐해? 박 코치. 애들 봐주라니까.”

“감독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

“그게... 우리 애들 다 같이 한방병원에서 진료 한번 받아보는 게 어떨까요?”

“한방병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김성곤이 코웃음을 쳤다.

뜬금없이 한방병원이라니.

‘사촌이 취직이라도 했나?’

그때, 박문식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굴러다니는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야, 박 코치. 지금 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문식의 공이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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