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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78화 (178/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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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모르는 왕걸륜이 그 말을 끝으로,

딸랑 전화번호 하나를 건넸다.

‘그러니까 여기로 전화를 걸어보면 안다 이 뜻이겠지?’

그래서 통화를 누른 허준.

신호음이 이어지다가 다행스럽게도 중국어가 아닌 한국말이 들려온다.

“아, 안녕하십니까. 대만 대표팀의 통역을 맡은 김서진이라고 합니다.”

“대만팀이요?”

갑자기 웬 대만팀.

그것도 한국에?

“곧 동계올림픽이 있지 않습니까?”

그제야 이해한 허준.

평소 스포츠에 그리 관심이 없었기에, 동계올림픽이라는 말에 살짝 놀랐다.

사실 동계올림픽 자체가 일반 올림픽보다 좀 더 마이너하기도 하고.

어쨌든,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 미리 전지훈련에 와있는 대만대표팀이다. 이 말이로군.

“아, 이해했습니다.”

“이곳으로 직접 전화를 하신 것을 보아하니, 왕걸륜 선생님께 연락을 받으신 것 같군요.”

“네. 맞습니다. 저에게 부탁하시더군요. 제가 무얼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대표팀 선수 중 한 명이 훈련 중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대표팀이라면 팀 닥터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어디 대표팀뿐이겠는가.

프로팀 정도만 되어도 팀 닥터라 불리는 전문가들이 옆에 딱 붙어있기 마련이었으니,

“진웨이 선생님이라고 중의사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왕걸륜 선생님과 친분이 있으시고요.”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팀 닥터가 왕걸륜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왕걸륜 선생이 나를 추천했다. 이런 이야기군.

‘그리고 그 말은 곧, 이미 웬만한 검사는 다 거쳤다고 생각해도 될 터.’

현대의학이나 팀 닥터로 온 중국의 전문가가 해결하지 못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군요. 문제를 말씀해주시기는 어려우시겠죠?”

“네. 아무래도 제가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그럼 직접 진료를 봐야 알 수 있겠군요.”

“네. 선생님께서 이리로 와주시면 고맙겠다고 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나보고 오라는 건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불가능합니다. 그쪽에서 찾아오시죠. 제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단호한 허준의 대답에,

김서진의 대답 대신 전화기 너머로 중국어가 들려오더니,

“좋습니다. 저희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오시기 전에 미리 전화 주시죠.”

그렇게 통화를 끝낸 허준이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병원장실.

보나 마나 아직 퇴근 안 하셨겠지.

물론, 마음대로 덥썩 대만 대표팀의 진료를 이미 수락한 상태지만, 어찌 됐든 미리 말은 해놔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최인호가 퇴근 준비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퇴근하세요?”

허준이 들어와 물었다.

“자네가 이 시간에 여기는 웬일인가?”

“아, 보고드릴 게 있어서요.”

“보고?”

“네. 다름이 아니라-”

허준이 왕걸륜 선생에게 부탁을 받았고 그 부탁의 내용을 최인호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들은 최인호.

‘복잡하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니,

정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한국이 어떤 나라던가.

그 재미없는 축구도 한일전을 한다고 하면 기본으로 시청률을 깔고 가는 나라.

국가대항전에서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한국을 응원하는 그런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한국대표팀이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조차 없었겠지만,

대만 대표팀이라니.

‘안된다고 해야 하나?’

허준이 그런 최인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역시 저 자리에 가면 생각할 게 많아지나 보네.

‘이미 늦었어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어요.”

“뭐?!”

최인호의 눈이 커졌다.

벌써 오케이 했다고?

“환자가 찾아온다잖아요. 우리가 가는 것도 아니고, 환자가 직접 찾아온다는 데 무슨 수로 막겠어요? 돌려보낼 수도 없고.”

이어서 들려오는 허준의 말.

그래. 환자가 찾아온다는데 뭐가 대수랴.

‘요즘 고민이 너무 많아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나 보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최인호가 그제야 웃으며 답했다.

“자네 말이 맞아. 찾아오는 환자를 돌려보낼 수는 없지. 최선을 다해주게.”

“물론이죠.”

*   *   *

촥- 촥- 촥-

경쾌한 소리가 빙상장에 울려 퍼진다.

소리의 주인공은 스케이팅 대표선수 양쑨.

속도를 줄이고 두꺼운 허벅지를 두 손으로 잡은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컨디션이 돌아오질 않아.’

뭔지는 모르겠지만,

훈련 중에 생긴 부상 이후로 떨어진 폼이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기록으로 나타났다.

이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떨어진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그때, 짝짝 소리로 손뼉을 치는 코치.

“양쑨! 잘했어! 조금만 더 하면 금방 좋아질 거야. 아직 여유 있으니 천천히 끌어올려 보자고.”

“네. 코치님.”

“참, 오늘 진료 보러 간다면서? 진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준비하고 조심해서 다녀와.”

진료를 보러 출발하는 차 안.

대표팀 닥터 진웨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흥, 대체 얼마나 대단한 선생이라고. 우리보고 오라 가라야?”

전형적인 중국인의 마음가짐.

다른 나라를 업신여기는 모습이다.

게다가 중의사인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이 상황을,

이 작은 나라의 한의사가 해결한다고?

“그래도, 왕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분이시잖아요.”

“알아, 그래서 가고 있잖아. 지금.”

진웨이의 투덜거림과 함께 양쑨과 김서진을 태운 차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혜민한방병원.

진웨이가 커다란 병원의 모습을 보고는

한마디 더 툭 내뱉는다.

“겉만 번지르르하네.”

반면에,

김서진과 양쑨은 조금 달랐다.

“와...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더 크네요.”

“정말, 여기 맞아요?”

로비로 들어오니,

이미 많은 사람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환자도 많네요. 정말, 실력이 좋으신 분인가 본데요?”

“일단은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김서진이 로비로 다가갔다.

다가오는 김서진에게 로비를 맡은 데스크 직원이 친절하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처음 오셨나 봐요?”

“네. 이허준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이허준 원장님이요? 예약은 하셨나요?”

“김서진이라고.”

“아, 여기 있네요. 4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일행을 이끌고 도착한 김서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4층에 가득 찬 환자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모습에 진웨이가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뭐가 이렇게 많아?”

1층의 로비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이곳은 1층에비해서 훨씬 좁은 공간.

거기에 사람이 몰려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느껴진 진웨이였다.

그때, 한순간에 진웨이에게로 쏠린 시선.

갑작스럽게 들려온 중국말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번 쳐다보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다시 스마트폰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사람들.

김서진이 시선을 느끼고 속삭였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저기 번호표에 우리게 있네요.”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한 세 사람.

포근한 분위기와 추운 날씨를 잊게 만들 만큼 따듯한 공기에 몸이 자연스럽게 나른해진다.

물론, 둘과는 다르게 진웨이는 이곳에 있는 환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진료 속도.

그리고 이곳을 찾아온 환자들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느낄 수 있었다.

왕걸륜이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내가 본 한의사 중에서 가장 놀랍다고 할 수 있어.”

원래 성격이 시원한 친구였기에,

그저 흘러가는 칭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그때,

“어, 우리 차례네요. 들어가시죠.”

김서진이 들고 있는 번호가 전광판에 올라왔다.

그렇게 진료실로 들어간 세 사람.

허준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이허준입니다.”

“김서진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진웨이 선생님. 그리고 이쪽은 스피드스케이팅의 양쑨 선수입니다. 양쑨 선수가 잘 부탁드린다고 하네요.”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우선, 진웨이 선생님과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바로 시작하시죠.”

허준이 진웨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상황입니까?”

김서진의 입에서 중국어가 흘러나오고

다시 되받는다.

“양쑨 선수가 훈련 중에 부상을 입었는데, 폼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검사는 전부 받아보셨겠죠?”

진웨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허준이 그것을 확인하고는 양쑨에게 물었다.

“어떤 부상이었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팀 동료와 부딪치면서 미끄러졌다고 합니다.”

미끄러졌다라.

스피드스케이팅을 전문적으로 타본 적은 없는 허준이었지만,

그 엄청난 속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스피드스케이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허벅지였으니까 말이다.

마치, 단거리 육상선수와 비슷하면서도 말과 같은 허벅지.

그 엄청난 힘으로 마찰이 있는 땅 대신에 날을 세운 얼음 위에서 질주하니,

아무리 살살 부딪쳐서 미끄러졌다고 해도 충격이 보통은 아닐 터.

‘우선 어디가 문제인지부터 알아야겠군.’

“양쑨 선수. 혹시, 어디 불편하거나 따로 아픈 곳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답니다.”

“그럼, 문제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부상 이후에 몸의 느낌이 이전과 다르답니다.”

몸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

가장 까다롭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픈 환자는 아픈 곳부터 원인을 찾아 나가면 됐지만,

느낌이 다르다는 것에는 워낙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사람마다 표현이 다를 수도 있고.’

진웨이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진맥을 잡아 보겠습니다. 손을 이리로 올려주세요.”

양쑨이 두 손을 올렸고,

허준이 그 손을 받아 맥을 잡았다.

‘과연 건강하다.’

역시 운동선수답게 몸의 모든 기운이 넘쳐 흐른다.

장부가 모두 건강하며, 조화로움이 깨진 곳도 없다.

그래서 더욱 진단하기가 어렵다.

아프고 약한 사람은 그곳을 보충해서 균형을 맞춰 주면 되지만,

이렇게 장부의 조화도 괜찮고,

경맥의 흐름도 나쁘지 않다면...

‘잠깐.’

그때, 허준의 손끝에서 실처럼 뻗어 나간 감각이 묘한 무언가를 탐지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위치는 바로 머리.

‘찾았다.’

미약하지만 수승화강의 이치가 깨어져 있었다.

본래, 몸이 이렇게까지 건강하다면 머리는 차갑고 아래가 따듯하게 돌아야 하거늘.

아무래도 머리에 가해진 충격이 이것을 방해하는 듯싶군.

이 때문에 미세하지만, 머리에 뜨거운 기운이 쏠렸고,

‘그것이 몸을 움직이는 뇌와 신경에 작용했을 터.’

그래서 몸의 감각이 달라진 거다.

치료법은 우선 이 기운을 빼내는 것이다.

침을 이용한 사법.

머리의 기운은 두개골 한가운데에 있는 백회혈로, 아래 넘쳐나는 기운은 발바닥 한가운데의 용천혈 그리고 족삼리를 비롯해 합곡혈과 태충혈 등.

만병통치에 쓰일만한 주요 혈 자리들을 활용하면 되겠군.

결정을 내린 허준이 입을 열었다.

“머리 쪽에 기운이 쏠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기운을 전부 빼내고 다시 처음부터 채워나가면 금방 좋아질 겁니다. 그래서 이곳과 이곳. 그리고 이곳과 여기, 여기 등을 침을 놔 기운을 뺄 생각입니다.”

허준이 사람 몸이 그려진 차트에 친절하게 점을 찍으며 설명했다.

그러자,

“얼마나 치료를 받아야 하냐고 묻습니다.”

“글쎄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네요. 올림픽에 나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진웨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설명을 들으니 단번에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왜 진즉에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왕걸륜 선생님이 이곳을 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럼, 치료실로 가시죠.”

*   *   *

그날 저녁.

진료를 끝낸 허준이 탕전실에 올랐다.

‘오늘은 내가 다 쓰기로 했었지?’

이 커다란 탕전실은 보고만 있어도 든든했는데,

오늘은 거기에 더해서 특별한 일도 있었다.

바로,

보유 포인트 : 99671

오늘 탕약을 달인다면 포인트가 10만이 넘게 된다는 것.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된 탕약 제조.

이전과는 다르게 재료를 고를 때부터 느껴지는 감각과 직접 진료를 보면서 기록한 차트,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합쳐지면서 탕약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푸시식-

전자 옹기 탕약기에서 탕약이 하나 완성될 때마다 들리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메시지도 함께했다.

그렇게 10만 점을 넘긴 허준.

‘드디어.’

허준이 망설임 없이 포인트를 사용했다.

「‘진맥 Lv. 4’에 100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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