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77화 (177/230)

177화. 혜민한방병원 원장 박용준

“너희 오빠 TV 촬영하러 갔다면서?”

“어? 네가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기는? 당연히 용준 오빠가 인별그램에다가 대문짝만하게 갔다가 박아놨던데?”

“어휴~ 하여간 이 관종.”

박용준의 여친이 지겹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그런 박용준의 여친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친구들.

“너, 좋으면서 괜히 그러는 거 같은데?”

“아니야. 기분이야 좋긴 한데... 걱정돼서.”

“걱정?”

“응. 너희들은 몰라. 우리 오빠가 얼마나 관종인지.”

혜민한방병원 최연소 원장 박용준.

그는 말 그대로 관종이었다.

넘쳐나는 에너지와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너무나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

다만,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있고, 가진 직업 자체가 보수적인 분위기도 있는 데다가 보통은 환자들의 연세가 높은 편이었기에 철저하게 감추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도 종종 튀어나오는 본능은 과한 리액션이나 유쾌한 단어 등으로 승화시켰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오히려 친화력과 사회성이 좋은 한의사로 기억하게 되었다.

이렇게 평소에는 그것을 억누르며 살아왔는데,

촬영장에 들어서니.

화려한 조명,

사람들의 박수갈채.

‘이거지!’

벌써 두근거리는 심장.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관심을 끌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건강의 제왕 진행을 맡은 김철수입니다. 오늘도 재밌는 패널들을 모셨는데요~ 먼저 연예인 패널부터 인사하도록 하죠.”

진행자의 인사와 함께 시작된 촬영.

전문가 패널 맞은편으로 연예인들이 돌아가며 가볍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자, 그럼 전문가 패널들을 모셨습니다. 네~ 모두 익숙한 분들이지요? 다만, 오늘 처음 오신 분이 계시니 짧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용준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을 확인하고,

“안녕하세요. 혜민한방병원 원장 박용준이라고 합니다. 처음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와 함께,

진행자 김철수가 웃으며 답했다.

“네~ 박용준 원장님. 환영합니다. 그럼, 바로 진행해보겠습니다. 오늘 주제는~~”

김철수의 손짓에 따라 화면에 커다랗게 쓰인 글씨가 나타났다.

[설날을 건강하게]

“바로! 이겁니다. 앞으로 설 연휴가 얼마 남지 않았죠? 다가오는 설 명절을 대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작해주시죠!”

특별한 증상이나 질환이 아니어서인지,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식품영양학박사라 적힌 패널이 첫 순서가 되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 영양학박사.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영양학박사 오주현입니다. 매년, 이 명절 시즌이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참을 수 없는 것이 있죠? 바로, 기름진 음식이···.”

그 뒤로 이어진 정형외과 전문의의 이야기.

명절 간 장시간 운전을 하면서 뻐근하거나 피곤할 때, 도움이 되는 스트레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례는 마지막으로 한의사들의 차례.

첫 차례는 김윤아라는 한의사였다.

“혹시, 과식으로 속이 더부룩하거나 체한 느낌이 들면 바로 이 혈 자리를 이렇게 꾹꾹 눌러주면 좋습니다.”

박용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도움이 되는 혈 자리가 맞았으니까 말이다.

“자, 다음은 케이한방병원의 오준형 원장님 나와주시죠~”

오준형이 무대로 올라가 준비해온 주제를 꺼내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내용에 더해서 흔히 볼 수 있는 탕약이나 약재 중 하나를 활용하여 만드는 차를 소개했다.

드디어 마지막 차례가 된 박용준.

‘여태까지 참느라 혼났네.’

맨 마지막에 순서를 주다니,

아무래도 편집 각이 날카롭게 섰나 보다.

‘그럼, 하고 싶은 말 아무거나 다 해도 되겠지?’

무대로 올라간 박용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박용준 원장님? 괜찮으신-”

다년간 진행을 해온 김철수가 능숙하게 대처하려 했는데,

그 말을 끊으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밌네요. 소화 잘 안 될 때, 이 혈 자리를 누르라고요? 예. 맞습니다. 도움 되는 혈자리죠. 한 요만큼?”

갑작스러운 발언에,

당황한 김윤아와 오준형.

“저 친구. 지금 뭐 하는 거야?”

“글쎄요. 저도 잘...”

박용준의 말이 이어진다.

“그 아까, 약재 끓여서 만드는 차. 그거 마시면 속이 쑥 내려간다고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대부분은 안 그럴걸요?”

“그럼, 원장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건데요?”

이 상황이 편집되지 않을 거라고 본능적으로 느낀 김철수가 받아쳤다.

벌써 자신부터 흥미진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명절에 체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건강하지 않으신 분들은 스스로 조절하시기 때문에, 과식으로 체하는 일 자체가 없을 테니까요.”

“그것도 그렇겠네요.”

“그럼, 평소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명절 때 많이 먹어서 속이 더부룩하다거나, 간단하게 체기가 생겼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저 같으면 당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겁니다. 백날 누워서 혈 자리 꾹꾹 눌러대고, 더부룩하다고 차 끓여 마시고 그런다고 뻥 뚫리겠어요?”

능청스러운 대답에 웃는 연예인 패널들과 청중들.

그 모습을 둘러보며 박용준이 말을 이었다.

“어떤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아플 일이 없다고. 이게 정답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몸을 조금 움직여주면 금방 좋아질 거에요.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다들 아시죠? 적당히 먹으면 된다는 거~”

···

대충 이렇게 방송에 나간 내용은,

여기저기에다가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방송 이후 온라인 댓글에서는,

- 저분 때문에 앞에 분들 표정 안 좋아짐ㅋㅋ

- 영상만 봤는데도 꿀잼임.

- 그런데,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님. 내가 손 따고 뭐하고 이런거보다 그냥 나가서 동네 산책하고 오니 금방 좋아지던데?

- 어차피 건강의 제왕 본방사수하는 사람 없잖아. 건강보조식품 팔러 나오는 곳인데.

- 저분 다른 선생들한테 욕먹을 듯.

···

불타오르고 있었다.

케이한방병원의 병원장실.

김준일이 앞에 서 있는 오준형을 째려봤다.

“죄, 죄송합니다.”

“한심한 친구 같으니라고. 쯧쯧. 나가봐.”

“네. 그럼..”

오준형이 병원장실을 나서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박용준의 인사하는 얼굴.

‘이 기본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예의 바르다며 좋아하던 그 날의 자신이 싫어지는 오준형이었다.

*   *   *

이 방송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박용준이 지나가면 수련의들과 부원장 그리고 한방병원 직원들이 수군거리기 일쑤.

허준도 예상치 못했던 일에 살짝 놀랐다.

물론, 다른 식구들도 마찬가지.

“허... 박용준 원장이 그럴 줄이야.”

가장 오래 같이 함께해온 김태식조차 당혹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그때,

“왜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요?”

“당연하죠. 기억 안 나세요? 혜민서 처음에 박용준 원장님이 맡아서 해왔잖아요.”

그 말을 들은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혜민서를 만들어서 활동하자고 일을 벌인 것은 자신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것저것 직접 지휘하고 하는 일은 전부 박용준의 몫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다른 모습이 있을 줄이야.

당장 김태식 원장의 표정만 봐도 꽤 충격을 받은 듯 싶다.

그때,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고요한 원장.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아직도 검색어 1등이네요. 박용준 원장.”

그랬다. 이 방송의 여파는 온라인에 올라온 영상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 널리 퍼져가면서 검색어 순위에 올라 내려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혜민서와 혜민한방병원 또한 검색어에 올라간 상황.

혜민서의 자유게시판에는 양쪽으로 나뉘어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 선생님.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선 넘으신 거 아닌가요?

- 맞는 말 하셨는데, 왜 그러시죠.

- 다른 한의사 선생님들도 생각해주셨어야죠.

와 같이 편으로 나뉘어 싸우는 댓글들.

여기에 더해서 아직 혜민서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관심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김예진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허준이 웃었다.

생각해보면 썩 나쁜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혜민서에 관심이 있어 오는 한의사들은 두 부류다.

첫 번째는 원래 의료봉사에 관심이 있던 한의사들.

당연히 숫자가 매우 적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젊고 경험이 모자란 한의사들.

치료법이나 논문 강의 등을 보고 배우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다. 이 또한 일부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도 저도 아닌 한의사들은?

당연히 현재 자리를 잡아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상태의 한의사들이다.

때문에, 새로운 한의사들의 유입이 줄어들고 있었는데.

여기에다가 박용준이 땔감을 넣어 불을 지핀 것이었다.

‘관심 없던 한의사들도 흥미를 보이겠지.’

그렇게 되면 성장이 멈췄던 혜민서의 규모도 지금보다 더욱 커질 수 있을 터.

덕분에,

“하여튼, 전 먼저 가볼게요. 박 원장님 때문에 갑자기 일이 늘어나서...”

“수고하세요. 김 팀장님.”

“우리도 이만 진료 보러 가죠.”

김예진이 먼저 떠나가며 오후 진료를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시각.

혜민한방병원 병원장실.

“아이고~ 우리 용준이가 아주 큰 일을 해냈구나~? 내가 오늘 받은 전화만 몇 통인지 알아? 케이한방병원에서부터 한의사협회까지 아주 여기저기서 난리다 임마.”

“죄송해요. 제가 방송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해서...”

“긴장? 표정은 그게 아니던데?”

최인호의 물음에,

박용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최인호도 그리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방송이 나간 이후로 이곳저곳에서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다.

예능에서부터 다른 건강프로그램까지.

허준이 방송에 나갔을 때도 제안이 왔던 동류의 프로그램은 그렇다 치더라도,

예능프로그램에서까지 제안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전까지 혜민한방병원을 대표해서 방송에 나간 사람은 허준과 유도진 그리고 김태식 원장.

당연히 단정하고 친절하며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파격적인 모습이 더 잘 먹혀들어 갔나 보네.’

흔히 이런 걸 스타성이라고 하던가.

참,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하지만,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한방병원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졌으니까.

“용준아, 이번에 네 방송을 보고 러브콜을 보내온 프로그램이 몇 군데 있는데, 어때 생각 있어?”

“죄송합... 네?! 정말요?”

“그럼, 내가 언제 이런 일로 농담한 적 있나?”

박용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혼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여기저기에서 출연 제의가 왔다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

“당연히 해야죠!”

*   *   *

밥의 진료실.

낯선 외국인 한의사에 놀라고, 이어서 완벽한 한국어에 또 한번 놀란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침을 맞고 난 뒤에 한 번 더 놀라는 환자들.

“오십견이라고 불리는 질환입니다. 치료법으로는 도침이라고 조금 길고 두꺼운 침이 있는데···.”

이제는 허준에게 도침까지 배워서 꽤 능숙하게 사용하게 된 모습.

그리고,

같은 부원장인 최허준.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진료실에 남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두들기는 중이었다.

“최 선생님. 일단은 이걸로 시작하시죠.”

허준이 건넨 인체모형이었다.

인체모형에는 허준이 직접 점을 찍어 둔 혈 자리들과 그 혈 자리들을 이어서 그린 경맥이 나타나 있었다.

그 옆으로는 허준이 유도진에게 부탁하여 건넨 자료들.

경맥과 혈 자리가 이어진 것을 정리한 자료였다.

‘으, 머리가 빠개지겠네! 정말.’

탕전실에서는 설날이 다가오자 늘어난 주문량으로 탕약을 내리는 유도진과 이두철.

탕약에 흥미를 느낀 이두철은 얼마 전부터 아예 유도진과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물론, 허준도 주문받은 탕약이 있었으나,

오늘은 유도진 선생님이 쓰신다고 하셨으니.

‘조금 빠르게 퇴근해볼까?’

그런 허준의 한쪽으로 메시지들이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포인트와 명성이 올랐다는 그런 메시지들이었다.

최근 방송의 영향이 크긴 한가 보네.

포인트는 그렇다 치고 명성도 오르다니.

언젠가 또 퀘스트가 나타나려나?

그렇게 짐을 챙기는 와중에 걸려온 전화.

발신자를 확인하니, 중의사 왕걸륜 선생이었다.

어색한 한국말이 들려온다.

“선생님. 왕걸륜입니다.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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