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76화 (176/230)

176화. 그래도 예의를 아는군

다음 날.

혜민한방병원의 로비에 들어서는 남자.

이름은 김태현. 이 혜민한방병원의 실내공사를 맡은 뉴라이프 디자인의 대표였다.

김태현이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살피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했지만, 진짜 잘 뽑긴 했네.”

사람이 없을 때와 지금의 느낌은 또 달랐다.

분명히 그때와 같은 따듯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지만, 지금과 같이 활기찬 모습은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나저나 병원장님이 갑자기 무슨 일이지?’

어젯밤에 갑자기 걸려온 최인호의 전화.

“내일, 오전에 잠시 만날 수 있을까?”

최근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런 갑작스러운 전화가 꽤 부담스러워진 상황이었지만.

어찌 이 호출을 뒤로 미룰 수 있겠는가.

회사가 이렇게 커지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도움을 준 곳이 바로 이 한방병원인데.

인테리어 회사는 곧 시공한 장소가 명함이자, 샘플.

때문에, 혜민한방병원이 오픈한 뒤부터 여기저기에서 호평이 쏟아졌고.

당연히 그 호평은 매출로 이어지면서 회사가 급격하게 커져 나가는 중이었다.

‘혹시, 어디 하자라도 생긴 건가.’

그렇게 구경을 하면서 병원장실이 있는 17층으로 올라가니,

엘리베이터에 내리자마자, 데스크의 안내 직원이 맞이한다.

“어떻게 오셨나요?”

“병원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은 되어있으신 거죠?”

“네. 김태현이라고 전해주십시오.”

데스크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는,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병원장실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랜만이야. 잘 지냈나?”

“병원장님과 어르신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야. 얼굴이 아주 좋아 보이는 군. 바쁜데, 부담 준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병원장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와야죠. 우리가 함께 만든 곳인데.”

김태현의 대답에 최인호가 맘에 든다는 듯이 웃었다.

역시 마음에 드는 친구야.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어디 하자라도 발생했나요?”

“에이~ 자네가 직접 팀을 이끌고 시공했는데, 그럴 리가. 그냥, 자네의 도움이 살짝 필요해서 말이야.”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완성된 새로운 입원실.

다른 층의 입원실과는 확실히 느낌부터가 달랐다.

“임신하신 분들은 다른 입원실에 있는 베드에서 불편함을 느낄 겁니다. 아무래도 무게와 체형이 많이 달라진 상태일 테니까요.”

그래서 침대부터 달라졌고,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프라이버시도 꽤 중요해질 테고요.”

6인실이 5인실로 바뀌면서 공간을 확보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놓인 칸막이들.

“감성적인 부분도 꽤 클 테니, 그건 전문가에게 맡기도록 하죠.”

이것이 허준의 주문이었으니,

이렇게 모든 공사를 마치자 뉴라이프 디자인의 또 다른 시그니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며칠에 걸쳐 완성된 입원실의 첫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윤다희 선생이었다.

“여기 정말 제가 입원해도 되는 거예요?”

“네. 병원장님께서 윤다희 선생님을 이곳에 첫 번째로 모시고 싶다고 하셨어요. 물론, 전액 지원으로 우리 병원 직원들의 복지라고 딱 잘라 말하시면서요.”

“그래요? 여기 꽤 비싸보이는데...”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곳.

게다가 침대도 보통 침대가 아니었다.

“조금요. 다 그동안 선생님께서 고생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혹시나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고요.”

김예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참,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바로 호출이 되거든요. 통증이 오면 10 여분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바로 이송되는 시스템이에요.”

설명을 들으면서 그녀와 눈이 마주친 윤다희의 눈가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이런 꿈같은 일은 생각조차 안 해봤는데.

허준한의원에서 면접을 보던 때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윤다희였다.

*   *   *

한편, 혜민한방병원 3층.

수술실 안에서 김형서가 수술을 마치고 나왔다.

“선배. 수술은 잘 끝났나요?”

“물론이지.”

후배 유재원의 물음에 김형서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한방병원에서 펼쳐지는 수술은 대학병원처럼 난이도가 엄청 높은 수술은 아니다.

때문에, 더욱 김형서의 능력이 빛나는 중이었다.

이런 간단한 수술은 경험이 꽤 많았으니까 말이다.

“참, 수술 끝나고 4층에서 연락 달라던데요?”

“4층이라면?”

“네. 허준 원장님이요.”

“알았어. 바로 연락해 볼게.”

그래서 전화를 건 김형서.

마침, 치료실에서 나온 허준이 전화를 받았다.

“아, 김형서 원장님. 수술 중이셨다면서요? 잘 끝나셨나요?”

“네. 물론이죠. 그런데, 무슨 일로?”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혹시, 점심에 잠깐 시간 되실까요?”

그렇게 만난 두 사람.

18층의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옥상의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여깄습니다.”

허준이 들고 온 커피를 건네며,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에 검사했던 박문식 환자 기억하시나요?”

“박문식 환자라면...”

김형서가 기억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결과 한쪽 팔에 변화가 생긴 바로 그 환자가 아니던가.

“네. 기억납니다. 그런데, 왜 그러신지?”

“아무래도, 원장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허준이 여태까지 봐온 박문식의 진료를 떠올렸다.

왼팔보다 오른팔이 3cm가량 길고 비틀어진.

거기에 더해서 관절과 힘줄 근육에 무리가 가서 변형까지 온 상태였다

통증을 억제하기 위한 약침과 침 그리고 뜸과 빠른 회복을 위한 탕약.

여기에 더해서 추나를 이용해 치료 중이었는데.

도저히 극복해 낼 수 없는 벽을 만났다.

바로 인대가 파열되어 있었던 것.

이 인대파열이 그저 약간의 파열이었다면 자연적인 회복력만으로도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겠지만,

완전히 파열되었 있던 것.

‘현대의학의 힘이 필요하다.’

는 것이 허준의 결론이었다.

오른 팔꿈치 뒤쪽에 있는 인대.

그 인대를 제대로 고치지 않는 이상 오른손으로 세수를 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터.

“도움이라면?”

“수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팔꿈치 안쪽에 있는 인대가 오래 전에 완전히 파열된 것 같더군요.”

허준의 구체적인 대답에 김형서가 살짝 놀랐다.

그때, 단순하게 엑스레이나 한 방 찍었던 것 같은데, 감각만으로 그것을 알아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역시 허준 원장이네.'

하긴, 찬용이 때를 생각하면.

이건 그리 놀랍운 일도 아니지.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무슨, 같은 식구끼리.”

그렇게 진료를 받으러 온 박문식.

몇 번의 진료를 받은 뒤부터, 오른팔의 감각이 예전과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통증도 많이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가동 범위가 달라진 것이었다.

게다가 뒤틀린 부분도 어느 정도 교정이 된 것 같기도 했고.

성렬이가 정말 억울했겠는걸.

이 병원에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치질 환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여기 입원하면 웬만한 치질은 비수술로 다 치료할 수 있다던데요?”

“후기가 좋더라고요. 저는 인터넷 보고 찾아왔는데, 치료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그 부끄러움을 참는 것이라던데요?”

등등의 말들.

‘그래서 그때, 말하지 못했나 보군.’

가뜩이나 자존심이 강한 녀석인데,

그 부끄러운 일을 시시콜콜 설명하기 싫었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번호와 함께 들어선 진료실.

이제는 익숙해진 허준 선생이 자연스럽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박문식 님.”

“안녕하세요.”

“진료 이후에 팔은 어떠셨어요?”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대답도 잘하고 톤도 달라졌다.

이는 허준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니,

‘꽤 만족하고 있나 보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원래 약속했던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퀘스트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박문식이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치료실로 갈까요?”

이곳에 환자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알고 있기에,

바쁜 허준을 위한 배려.

그때,

“아니요.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다름이 아니라, 아무래도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술이요?”

“네.”

허준이 대답과 함께 박문식의 오른팔 팔꿈치를 눌렀다.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면 고통에 몸부림칠 테지만.

이미 오래전에 다친 곳이었기에,

몸이 어느새 적응하고 변화한 상태.

“안 아프시죠?”

“네. 그냥 누른 느낌인데요?”

“그런데, 여기 안에 있는 인대가 완전히 파열된 상태라서요.”

박문식이 의미를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끊어진 인대를 이어붙여야 한다는 뜻이겠지.

“그렇군요. 그럼, 다른 병원에서 수술하고 오면 될까요?”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도 수술이 가능하니까요.”

“네?..”

놀란 눈의 박문식에게 허준이 답했다.

“3층으로 가시죠.”

*   *   *

백근수 환자의 퇴원이 결정된 날.

허준의 오후 회진시간.

“백근수님. 좀 어떠세요?”

허준이 백근수에게 물었다.

중풍 후유증으로 찾아온 환자.

그에게서는 처음에 느꼈던 말의 어눌함이나 손의 떨림 같은 미묘한 증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얼굴에는 윤기가 돌고 눈은 생기를 찾아 빛나고 있다.

“아주 좋네요.”

“손을 올려보시겠어요?”

두 손을 올렸고,

허준이 맥을 잡았다.

‘맥과 경맥 장부들까지.’

처음과는 다르게 전부 조화로움이 이뤄져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퇴원하셔도 되겠네.

“백근수 님. 이제 퇴원하셔도 되겠는걸요?”

“퇴원이요?”

“네. 말의 어눌함도 사라졌고, 손 떨림도 거의 없네요.”

“정말요? 안 그래도 설날을 이곳에서 지내야 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러실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바로, 퇴원하시죠.”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

「포인트를 5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73519

허준이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느낌이 뭔가 묘했기 때문이리라.

포인트가 많이 모여서?

아니었다.

여태까지 포인트라는 것은 환자가 완치된 뒤에 바로 메시지가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허준이 직접 완치되었다는 판단을 내리자마자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던가.

‘뭔가 변화가 생겼다.’

불친절 한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 생긴 퀘스트에는 진행도도 나타나지 않았고.

이런 적은 처음이군.

아무래도 조금 지켜봐야겠어.

이렇게 허준이 진료를 이어나가는 와중에,

백근수가 지내던 입원실에서는 즐거운 이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러분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니에요. 어르신께서 우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겠죠.”

“어르신 덕분에 재미난 이야기들 많이 들어서 좋았어요.”

“퇴원 축하드립니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정이 들기 마련.

때문에, 이별하는 데에 있어서 섭섭한 표정을 지을 법도 하지만,

누구 하나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하며 축하해주는 모습.

이것이 혜민한방병원의 입원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보람과 따듯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   *   *

그 시각.

촬영장으로 향한 박용준.

박용준이 보이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박용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치는 케이한방병원의 오준형.

‘쯧쯧.’

지난번에는 말이 좀 통하는 친구가 나오더니,

오늘은 애송이 녀석을 내보냈나 보네.

이번에는 박용준이 다가와 오준형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이고~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혜민한방병원 박용준이라고 합니다.”

“오준형이라고 하네. 잘 부탁하지.”

먼저 찾아와 인사를 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오준형.

‘그래도 예의를 아는군?’

그때,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라는 외침과 함께 모두가 기분 좋게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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