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72화 (172/230)

172화. 두 번째 비장의 카드

토요일.

한방병원 앞에 모인 허준을 비롯한 식구들.

“아이고~ 이 시간에 모이다니, 굉장히 낯서네요?”

“그러게. 매번 오전 진료 끝나고 후다닥 갔다가 후다닥 오기에 바빴는데.”

“그런데, 수련의 선생님들은 왜 이리 많이 온 거예요?”

박용준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물었다.

한방병원에서 근무 중인 수련의 선생들의 참여율이 기대 이상으로 높았기 때문이리라.

물론,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으니,

흔히들 직장을 다니다가 어느 주말에,

“자네들 주말에 뭐하나? 날씨 좋은데 우리 등산이나 한번 갈까?”

라고 부장이 말하면,

“좋죠. 자네들도 다들 시간 되지?”

당연히 그 아래에 있는 과장이 답하기 마련.

그렇게 과장, 팀장, 대리, 주임, 사원까지 줄줄이 나오지 않던가.

딱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들었어? 원장님이 토요일에 봉사활동을 가신다면서.”

“아이 씨, 이거 그렇다면 우리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내 피 같은 주말이...”

이렇듯 각 층에 있는 원장들이 참여한다는 이야기에,

부원장이나 수련의들이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김예진을 비롯해 의료진이 아닌 일반 직원 중에서도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러게요.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요?”

“뭐, 어찌 되었건 잘 된 거 아닌가요? 우리야 사람이 많을수록 좋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을 다 어떻게..?”

그때, 등장한 커다란 버스.

버스 앞에 당당하게 혜민서라는 글씨가 붙어있었다.

“저거로 가나 본데요?”

“버스로 이동한다고 하니까, 우리 굉장히 커진 것 같아요.”

말 그대로였다.

허준도 같은 느낌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혜민서는 전국적인 단체이지만, 현재까지 점조직 형태로 지역마다 나뉘어서 운영되고 있는 만큼 이렇게까지 큰 규모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상태.

그런데, 갑자기 많아진 인원에 버스까지 대절하다니.

체감이 확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버스 문이 열리며 나타난 김예진.

그녀가 손뼉을 한번 치고는 말했다.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 간단한 요깃거리는 안에 준비해뒀으니, 바로 출발하시죠.”

사람을 가득 채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시청 앞 광장.

이미 그곳에는 부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김 선생님. 아, 아니. 김 팀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박용준이 물었다.

이전까지 같이 혜민서의 일을 공유하면서 진행해왔지만, 이런 규모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번에 신청한 사람들이 꽤 많아서요. 게다가 올해 첫 행사인 데다가 병원장님이 약간의 홍보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요.”

“좋네요. 이거 우리 한방병원뿐 아니라, 저기는 치과랑 안과도 나온 것 같은데요?”

“맞아요. 진행하다 보니, 일이 좀 커졌네요.”

현수막에는 노년층과 취약계층부터 외국인 근로자나 다자녀 가족 등을 대상으로 의료봉사가 진행 중이라 적혀있었다.

“그런데, 환자들은 아직 별로 안보이는 것 같은데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오늘 행사의 백미는 주변에 있는 취약계층도 있겠지만, 수도권의 각 지자체와 동사무소 그리고 종교단체의 협조를 구해 기획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뜻이죠.”

김예진이 자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허준이 피식 웃었다.

‘진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는걸?’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가 그것을 대신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10000

“모두 내려서 팻말이 적힌 곳으로 가시면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해 주실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는데,

밥이 놀라 외쳤다.

“어? 원장님?”

그곳에 딱 하니 자리 잡은 커다란 부스.

그 앞으로 커다랗게 케이한방병원이라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저거 케이한방병원 아니에요?”

누군가의 물음,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요.”

“저 사람들이 왠일이래요?”

그 물음에는 김태식이 대신 답했다.

“보나 마나 뻔하지. 이렇게 크게 행사를 진행한다고 하니, 한 자리 끼어보겠다 이거 아니겠어? 우리 한방병원도 신경이 쓰일테고.”

“그래도 애초에 혜민서는 병원과 상관없는 단체잖아요.”

“우리야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어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저게 대체 다 뭐람?”

부스 안에는 케이한방병원의 마크가 달린 여러 가지 물건들이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꽤 준비를 많이 해온 듯 싶다.

그때, 그곳에 서 있던 한 중년인이 허준 일행을 보고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이허준 원장.”

케이한방병원의 박원효 원장.

그리고 그 어깨너머로 방송에서 만났던 오준형, 백일승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박 원장님. 잘 지내셨죠?”

“물론이지. 참, 한방병원 개원 축하하네. 이거 서로 바빠서 미처 축하한다는 말도 못했구만.”

“아닙니다. 참, 이쪽은 우리 혜민서 김예진 대표님입니다.”

허준의 소개에,

박원효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아이고 이거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박원효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혜민서 김예진입니다. 이렇게 참여해주셔서 감사해요.”

“죄송하네요. 우리도 급하게 나오느라, 새로운 부스를 준비할 시간이 모자랐거든요.”

눈에 뻔히 보이는 변명이었지만,

김예진이 웃으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어디 병원이냐가 중요한가요? 이렇게 큰 한방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겁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   *   *

케이한방병원 부스.

박원효가 모여 있는 한의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우리도 슬슬 시작해보자고. 수련의들은 돌아가면서 원장들 잘 보조해주고, 원장들은 하루 고생 좀 하겠지만, 열심히 해주게. 병원장님께서 직접 신경 많이 쓰신 일이니까 말이야. 오늘은 특별히 이 값비싼 탕약과 약침들도 이렇게나 지원해주셨거든.”

“이거, 정말 의료봉사용으로 사용해도 되는 겁니까?”

“물론. 마음껏 사용해도 돼. 우리 케이한방병원이 어떤 곳인지 한 번 보여주자고.”

“알겠습니다!”

우렁찬 대답과 함께 시작된 진료.

환자가 들어왔다.

옆에서는 병원 직원 중 하나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뭐, 늘 그렇듯이 홍보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그런 일이었다.

진료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이뤄졌다.

특별한 질환을 앓고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큰 고통이나 이상을 느꼈으면 어떻게든 병원부터 먼저 달려갔을 테니까.

그렇게 순조롭게 진료가 이어져 나가고 있었는데,

보조를 맡은 한의사들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게 대체 뭐야?”

“뭐야? 벌써 끝난 거야?”

박원효가 옆에 있던 한의사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아, 저 그게...”

“뜸 들이지 말고 말해봐.”

“원장님께서 그냥 나가 보시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박원효가 환자에게 침을 놓고는, 타이머를 맞춘 뒤에 밖으로 나가니.

건너편 부스에서 환자들이 빠르게 회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지?’

길게 늘어선 줄.

마치 영화에서 보던 다이너마이트의 심지가 타들어 가듯이 그 줄을 태우는 것처럼 빠르게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었다.

박원효가 발걸음을 옮겨 안내하는 봉사자에게 물었다.

“여기 무슨 일입니까? 환자들이 너무 빠르게 회전하는 것 같은데.”

“아~ 이쪽에 있는 부스들의 진료 속도가 워낙 빠르셔서요.”

“진료가 빠르다고요?”

“네. 혜민서에서 나오신 선생님들인데,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보네요. 아까 다른 봉사자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설마 그게 진짜일 줄이야...”

박원효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부스 쪽으로 걸어가 살며시 들여다봤다.

노란 머리와 파란색 눈을 가지고 있는 한의사.

‘아까 봤던 그 친구군.’

허준 원장과 함께 있던 일행 중 하나임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이어진 진료.

간단하게 증상을 묻고 진맥으로 이어진다.

여기까지도 굉장히 빠른 진행속도.

그렇다고 환부를 확인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전부 꼼꼼하게 체크하는 모습.

‘생각보다 능숙하게 진료를 보네?’

문제는 그다음에 이어졌다.

침을 꺼내 들고는 놓고 놔두는 것이 아니라, 보사 법을 사용하여 빠르게 시술을 끝냈기 때문이다.

침술에 일가견이 있는 박원효였기에,

침을 놓는 모습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미 많은 경험을 거친 숙련된 침술을 구사한다는 것을.

문제는 이런 부스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굳이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늘 이곳에 온 한의사들은 우리병원이 아니면 혜민한방병원에 있는 선생들뿐이었으니까.

‘이 친구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그런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환자들이 회전되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한 박원효의 눈에 그 주인공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허준 원장.

그런데, 자신이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무슨...’

지금의 모습은 방송을 촬영하면서 봤던 그런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리라.

온전히 진료를 보는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

특히, 침을 놓는 모습에서 박원효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박원효의 눈에 지금 허준이 찌르는 침은,

‘가히 아름답다’라고 할 수 있었다.

침을 찌르고 튕기고 돌리는 보사 법은 둘째치고,

평소에는 잘 활용하지 않는 혈 자리.

환부 주위의 아시혈뿐만이 아니라,

손끝과 발끝 심지어 귀와 얼굴에도 서슴지 않고 침을 찔러 넣는다.

마치, 사람 몸속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한 침술.

‘이 무슨 괴물이란 말인가.’

순수한 감탄.

이 순수한 감정 앞에서 김준일의 말은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   *   *

「포인트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47302

많은 포인트답게,

찾아온 환자들 또한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함께했으니까.

‘역시 사람이 많은 게 최고야.’

게다가 오늘 일로 혜민서의 규모는 더욱 커지겠지.

마지막 진료를 마친 허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부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다.

바람도 꽤 쌀쌀하네.

“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고생 많으셨죠.”

허준이 웃으며 답했다.

그때, 묘한 시선을 느낀 허준.

고개를 돌리니,

박원효를 비롯해 케이한방병원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대체 무슨 일이지?’

“원장님. 마지막으로 다 같이 사진 한번 찍고 가시죠.”

“사진이요?”

“네. 병원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혜민서 단체 홍보용으로도 써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엉겁결에 한자리에 모인 두 한방병원 식구들.

허준의 옆에 박원효가 자리했다.

그러더니,

“이허준 원장. 앞으로 잘 부탁하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 손 내밀고. 웃으라고~”

엉겁결에 내민 손을 잡은 허준.

“자 하나둘 셋!”

소리와 함께,

사진을 찍은 뒤, 박원효가 속삭였다.

“그... 촬영 때는 살살 좀 해주게.”

*   *   *

한편, 혜민한방병원 병원장실.

최인호가 일주일간의 매출을 확인했다.

‘나쁘지는 않지만, 예상했던 것에 비하면 모자라는군.’

이정도 크기의 규모는 그야말로 항공모함.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먹는 하마라 할 수 있다.

개원 효과를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적자라 봐도 무방했으니,

아무래도 대책이 필요하겠군.

현재 한방병원의 기본적인 전략은 외래진료에 저 마진을 책정하여 진료의 질을 높여 입소문으로 환자의 수를 늘리는 박리다매.

여기에 더해서 모자란 부분은 결과만 있다면 돈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VIP들에게 진료를 제공하여 메운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서 모자란 부분은 크게 한 가지다.

바로, VIP들의 숫자.

이것을 당장에 늘릴 방법은 없었다.

한방병원이 입소문이 타고 여러 사례들로 인해서 실력의 증명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지금의 모자란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새로운 매출을 만들어내야 할 터.

‘조금 이르지만, 비장의 카드를 사용해야겠어.’

판단을 끝낸 최인호가 전화기를 들었다.

“김형서 원장. 우리 잠시 이야기 좀 하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