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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71화 (171/230)

171화. 우리 것으로 만들어보자고

유도진이 말없이 허준이 건넨 약재들을 받아 살폈다.

‘대체 뭐가 더 좋아 보인다는 거지?’

허준이 건넨 녹용과 자신이 들고 있던 녹용.

겉보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둘 다 가장 비싸고 약효가 좋다는 뿔의 끝부분의 분골.

유도진이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확인해 봤지만,

‘모르겠군.’

수없이 많은 약재를 사용해온 그였음에도, 딱히 특별한 차이가 있음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느껴지는 것은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약재가 최상급이라는 것 정도뿐.

유도진이 물끄러미 허준을 바라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허준이 그 눈빛을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면서 답했다.

“아, 뭐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느낌이 좋았달까?”

그렇게 다음 날.

출근한 허준이 데스크 직원에게 인사를 하는데,

“원장님.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네? 무슨 이야기요?”

“그... 원장님께서 입원시키셨던 김인철 환자분 있잖아요?”

“네. 김인철 씨가 왜요?”

“아침에 출근해서 입원실 선생님들에게 인수인계 받는데, 어제저녁에 퇴원했다고 전달받았거든요.”

“어제저녁에 퇴원했다고요?”

“네. 그, 원장님과 면담하러 갔다 오더니 갑자기 바로 퇴원했다더라고요.”

“그래요? 그거 잘됐네요.”

“잘...된 거 맞겠죠?”

직원의 물음에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이죠.”

그렇게 시작된 진료.

확실히 한의원과는 다른 유형의 환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자동차 사고의 자보환자는 물론이요.

눈앞에 있는 이런 환자까지.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00

차트를 확인한 허준.

이름은 박민호. 얼마 전에 간암으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도 이식 수술을.

“이식 수술을 받으셨다고요?”

“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병원에서 검사결과를 보고 퇴원하라고 하셔서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거북한 느낌도 들고, 너무 피로하고...”

한의원에서는 보지 못했던 유형의 환자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발생한 퀘스트.

‘5천 포인트.’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군.

실제로 한방병원의 일부 환자들은 이렇듯이 수술 후 관리를 위해서 입원하기도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진료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죠.”

근골격계가 아니기에 먼저 진맥부터 잡았다.

오장육부의 조화로움이 역시나 깨져있다.

거기에 수술로 인해서 흐르는 경맥의 기운 또한 약해진 상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간을 이식받은 것도 모자라서 경맥이 흐르는 자리에 칼까지 댄 상태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리겠는걸.’

이어서 치료계획을 세운다.

지금 알 수 있듯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바로 간과 담의 허증.

현대의학적으로 세포끼리 붙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느낌은 마치,

‘무협지로 따지면 주화입마라고 할 수 있겠네.’

경맥뿐만이 아니라,

장부들끼리 서로 기운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침으로 장부와 경맥에 자극을 줘 기운을 유도해 흐르도록 만들어주는 치료를 해야겠군.

지금의 침술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둘 중에 어디든 먼저 트이기 시작하면서 회복에 가속도가 붙을 터.

허증은 뜸과 보약으로 다스려야겠어.

결정을 내린 허준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간을 붙이다 보니, 장부들의 조화가 깨져서 그런 것 같네요. 일단, 입원하셔서 침과 뜸 그리고 보약으로 치료해 볼 생각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환자가 오는 반면에,

때로는 정말 간단한 질환의 환자도 찾아왔다.

주로 간단한 염좌를 비롯한 근골격계가 대표적이었다.

다만, 한의원 때와 다른 것은 이들 대부분이 상당히 젊은 층이라는 것.

인근의 회사원들이라는 뜻이다.

“제가 출근하다가 발을 좀 삐끗해서요.”

“한번 보도록 할까요?”

허준이 꼼꼼하게 손끝의 감각으로 진단을 내렸다.

수없이 경험한 질환이었기에, 간단히 진단을 끝낸 허준.

“발목이 이렇게 꺾이면서 안쪽에 염증이 생긴 것 같네요. 간단하게, 침 두어 번이면 금방 좋아질 것 같은데요?”

물론, 동상이나 화상을 비롯해 여러 환자가 찾아오기도 했다.

이는 허준과 허준한의원 식구들의 영향이었다.

이렇게 바쁘게 진료를 이어나가다가 점심시간이 되니,

“원장님. 병원장님께서 올라오시라는데요?”

“알겠습니다.”

칼같이 허준을 호출했다.

허준이 병원장실로 들어서니,

그곳에는 이미 최인호와 김예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잠시 시간 괜찮지?”

“네. 뭐, 어차피 점심시간이니까요.”

“그래. 다름 아니라, 엊그제 김인철 환자 퇴원한 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 테고.”

“네. 아침에 오자마자 들었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 그 친구 그쪽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더군. 여기저기 한방병원에 다니면서 드러누워서 합의금을 뜯는 그런 사람으로 말이야.”

“역시, 그랬었군요? 어쩐지 전혀 환자처럼 보이지 않더군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최인호가 그런 허준을 보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주게. 자네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한방병원을 위해서 말이야. 이곳이 고작 나이롱 환자를 받으려고 만든 곳은 아니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좋아, 그럼 이야기는 이쯤 하고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갈까?”

한방병원의 식당.

점심시간을 맞이하여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식사를 하는 와중에, 수련의들이 모인 테이블에서 이야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그 환자가 그대로 퇴원했다는 거죠?”

“그렇다니까요? 제가 아침에 데스크 선생님께 직접 들었어요.”

“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원장님과 면담한 뒤에 조용히 퇴원하다니.”

“뭐, 아무래도 오픈 초기이다 보니, 대충 이걸로 처리하지 않았겠어요?”

한 수련의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 의미를 이해한 수련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좀 전에 병원장실로 호출받아 올라갔다던데, 어떻게 될까요?”

“그건 좀 지나보면 알겠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TV에 나가는 것도 여기 병원에서 밀어줘서 나간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그래요?”

소문은 소문을 낳기 마련.

그리고 그 와중에 와전되는 것이 당연했으니,

막상 외부의 한의사들은 혜민서의 허준이라고 하면 다들 환호했는데,

같이 근무를 하다 보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이제 겨우 함께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자, 그만큼 허준에게 많은 관심이 쏠려있다는 증거였다.

한의원 식구들도 이것을 모를 리 없었으나,

굳이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에이~ 저 친구들이 아직 뭘 몰라서 그래. 그리고 뭘 같이 해봐야 알겠지.”

“그래도 저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박 원장. 우리도 처음엔 그랬잖아?”

김태식의 말에 박용준이 과거를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갑자기 옛날이야기는 왜 하세요?”

그때,

김형서가 중얼거렸다.

“원래. 뛰어날수록 깎아내리기 마련이잖아요. 괜히 나서서 뭐라고 하는 것도 그림이 우스워지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

“하긴, 허준 원장님이 워낙 뛰어나니. 어? 저길 좀 보세요. 우리만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곳에는 식사를 위해 내려온 최인호와 김예진 그리고 허준이 배식을 받고 있었다.

“그러게요. 괜한 걱정이었네요.”

그 모습을 수련의들 또한 모두 함께 보고 있었으니,

“저거 허준 원장님 아니세요?”

“네. 옆에 병원장님도 함께 계시는 것 같아요.”

모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신나게 떠들던 수련의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   *   *

며칠 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

“허?”

백발의 노인 하나가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보약을 한 모금 마시더니,

의문이 섞인 탄성을 가볍게 뱉어냈다.

“이 친구 보게?”

정우한의원의 오랜 단골이자 VIP라 분류되는 남자.

처음 보약을 지어 먹은 뒤부터, 여태까지 꾸준히 몇 년간을 마셔온 그였기에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김정우 선생이 직접 가르친 제자라고 하더니, 과연 다르긴 다르네.’

이전까지의 보약은 처음 먹었던 그대로의 느낌이었지만,

이번에 가져온 것은 확실히 무언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만족스럽다는 듯이 보약을 마시는 노인.

이런 일은 이곳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거 정말 유 선생이 가져온 거 맞아?”

“네. 어르신. 엊그제 직접 다녀갔잖아요. 왜요? 맛이 조금 이상하신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혼잣말 좀 해봤어.”

그리고 이 이야기는 유도진의 귀에까지 직접 들어오게 되었다.

전화와 메시지가 여기저기에서 와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도진이 그것들을 확인하고,

직접 통화까지 마치고 나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그저 평소처럼 똑같이 보약을 달였을 뿐인데.

환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것도 아주 좋은 쪽으로.

무려 청출어람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평소 무표정한 유도진이었지만, 그의 입가가 묘하게 씰룩이고 있었다.

‘드디어 앞으로 나아간 것인가.’

왠지 모르게 한 발짝 더 나아간 것 같은 이 느낌.

이렇게 만족스러워하는 유도진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였다.

잠깐, 그러고 보니.

허준 원장이 약재를 건넸었지.

‘설마, 그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음식의 기본은 재료의 신선함이듯, 보약이나 탕약의 기본도 약재가 좋아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오죽하면 물도 가려 써야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이곳의 약재는 모두 최상급.

게다가 허준 원장이 심마니나, 사슴농장의 주인도 아니고 어떻게 좋은 약재를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이는 비단 허준 원장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의사 대부분은 녹용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사슴을 만난 경험조차 없을 테니,

‘과연 녹용뿐만일까, 한약재들의 원래 모습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거늘.’

유도진이 괜한 생각을 했다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진료를 이어나갔다.

그 시각. 김예진의 사무실.

김예진이 혜민서의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참여 신청을 한 인원을 확인하는데,

‘뭐야 이게?’

생각지도 못한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바로, 케이한방병원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혜민서와 함께 봉사 행사를 진행하고 싶다는 이야기.

김예진이 이 사실을 허준에게 알렸다.

“원장님. 잠시 통화할 수 있으실까요?”

“네. 말씀하시죠.”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혜민서 행사에 케이한방병원에서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을 보내와서요.”

김예진이 받은 메일의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했고,

그것을 전부 들은 허준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좋네요. 우리야 사람이 많으면 좋죠.”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뭐, 어때요?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하고 싶다는데.”

“그럼, 일단 진행하도록 할게요.”

통화를 끝낸 허준이 피식 웃었다.

유명한 선생님들 그것도 케이한방병원의 선생님들이라면 혜민서의 이름을 더욱 크게 알려줄 수 있겠지.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혜민서의 이름도 훨씬 높아지면서,

포인트도 더욱 빨리 모을 수 있게 될 터.

지난 번에는 후원금을 보내오더니,

이번엔 사람도 보내주네.

“이거 토요일이 기대되는걸?”

*   *   *

케이한방병원 원장 김준일.

그가 원장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자네들 봉사활동을 다녀오는 게 어떻겠어?”

“봉사활동이요? 갑자기 무슨...?”

“우리도 여러 단체에 후원도 하고 행사도 종종 참여하기는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듯싶어서. 그러니, 자네들이 토요일에 쉬는 친구들 좀 데리고 봉사 좀 다녀오지?”

“아, 알겠습니다.”

원장들이 마지못해 답했다.

가뜩이나 진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황금 같은 토요일 휴무 날 봉사를 다녀오라니.

속에서 열불이 터질 일이지만,

그 말을 한 상대가 누구던가.

‘끙...’

김준일이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자네들이 갈 곳은 혜민서라는 봉사단체야.”

“혜민서라면...?”

“맞아. 허준 원장이 있는 단체지. 최근에 규모가 꽤 커지고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바로, 그 단체. 알아보니 그곳에 한의사협회와 혜민한방병원이 후원을 꽤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우리도 참여할 생각이야.”

그러고는 눈을 빛내며,

“혜민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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