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허준 원장님이 회진 중이세요
나이롱.
본래 발음은 나일론이라는 인조 합성 섬유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흔히, '가짜'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예전에는 좋은 섬유로 각광받던 나일론이 각종 천연 섬유 및 새로운 합성 섬유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안 좋은 이미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은 이 나이롱에 아픈 환자를 붙인 나이롱환자 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는데,
이는 보험금이나 휴가 등의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뜻한다.
요약하자면,
아프지도 않은데 아프다는 꾀병을 부린다는 뜻이다.
허준이 앞에 앉아 있는 김인철 환자를 바라봤다.
이미, 진단은 끝난 상황.
근골격계와 순환계 장부 거기에 경맥의 흐름까지.
그 어느 것을 따져봐도 환자라 할 수 없는 아주 건강한 상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입원 치료가 필요 없는 상태라 할 수 있겠지.’
그런데도,
“선생님. 너무 아파서 그래요. 입원시켜 주세요.”
계속 입원을 요구하는 환자.
허준이 그런 김인철을 바라봤다.
‘의원에서 병원으로 넘어오니 이런 환자들을 마주하게 되는군.’
흔히 동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XX 피부과 의원 XX 한의원 등등을 의원급 의료기관이라고 한다.
주 치료대상은 외래환자.
간단하고 흔한 질병에 대한 치료 및 예방과 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XX 병원, XX 종합병원 등이라고 붙은 조금 규모가 크고 입원실이 있는 곳들이 환자의 입원 치료가 가능한 병원급 의료기관이다.
당연히 의원에서 할 수 없는 수술부터 입원 치료를 동반한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한 곳.
물론, 이 이외에 더욱 고난이도 치료기술과 특수시설 및 장비가 있고 매우 희귀한 난치성 질환을 담당하는 상급종합병원이 있겠지만, 이는 제외하도록 한다.
한방병원은 병원급 의료기관에 해당했으니까 말이다.
허준한의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나이롱환자.
당연한 일이었다. 진상이라고 불리는 환자들은 있었을 지는 몰라도,
나이롱환자는 일명 ‘자보’라 불리는 자동차 보험 환자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까지 입원 치료를 원한다 이 말이지? 좋아. 원하는 대로 해드리지.’
괘씸한 생각이 든다.
입원실이란 환자의 공간은 한정적인 공간이다.
즉, 진짜로 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있어야 할 공간을 이런 나이롱 환자가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은 꼴불견이라는 뜻.
때문에, 결정을 내렸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기도 했고.
‘환자가 계속 아프다고 하면서 우기면 그것만 한 치트키는 또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입원하시죠.”
“감사합니다. 선생님.”
허준이 차트에 처방을 써내려가며 말했다.
“나가시면 우리 데스크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절차에 관하여 알려주실 겁니다. 입원절차 마치시고, 치료시간에 뵙도록 하죠.”
김인철이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고마울 것이다.
한방병원이 어떤 곳이던가.
우스갯소리로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케이한방병원에 입원하기만 해도 상대 쪽 보험회사에서 곧바로 전화가 온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다.
새로 생긴 이곳의 시설과 규모를 보면 비슷하겠지.
비록, 케이한방병원에서는 안 받아줬지만, 이곳은 오늘 첫 오픈한 병원이었으니,
김인철이 씨익 웃으며 진료실을 나섰다.
허준이 그런 김인철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족침으로 치료해드려야겠군.’
환자가 아프다고 했을 때, 치료거부를 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처방은 마음대로였으니까.
그렇게 이어진 진료.
허준의 이름도 이름이지만, 오픈빨로 모여든 환자들로 인해 바쁘게 진료가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때문에, 4층에서 같이 처음으로 손발을 맞춰 보는 데스크 팀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에? 또 메시지 와있어요?”
“네. 허준 원장님이세요.”
“박 쌤. 혹시, 아까 들어간 이분 누락된거 아닌가요? 한 번 확인해보세요.”
그때, 병원을 한 바퀴 돌고 있던 김예진이 4층의 데스크로 향했다.
“어? 김 팀장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4층 진료는 잘 돌아가고 있나요?”
“그게 저...”
그 물음에 데스크 직원이 살짝 난감한 얼굴로 말을 줄였다.
김예진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데스크로 들어가니,
“아무 일 없어 보이는데요?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게. 허준 원장님 진료실에 환자분이 좀 전에 들어가셨는데, 여기 메시지를 또 보내셔서요. 아무래도 잘못 보내신 것 같아서...”
“아~ 그거 잘못 보내신 거 아닐 거예요. 오히려 이정도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평소보다는 조금 느린 편인 것 같은데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하는 김예진과 두 눈이 휘둥그레진 데스크 직원들.
이런 일은 4층뿐만이 아니라, 각 층에서도 벌어지는 중이었다.
평소 업무 분담과 그로 인한 루틴까지는 완벽히 숙지했으나,
실제로 진료를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진료를 이어나가는 와중에,
허준의 진료실.
허준이 진료실로 들어오는 환자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건...
‘걸음걸이부터 심상치 않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근육.
덜덜 떨리는 몸.
한의학적인 관점으로 볼 때,
풍을 맞았다고 말하는 중풍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00
그런 그의 옆에는 나타난 새로운 퀘스트.
5000포인트짜리로 꽤 난이도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치료난이도에도 여러 가지 장르는 있겠지만.’
잠깐 얼마전 치료했던 치질 환자가 떠오른 허준이 곧바로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환자를 맞이했다.
차트를 확인하니,
이름은 백근수. 중풍이라고 적혀있었다.
“어서 오세요. 백근수 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 생각보다 발음이 어눌하지 않다.’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께서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풍을 맞으셨다고요?”
“네. 몇 년 전에 뇌졸중으로 한번 쓰러졌었습니다. 그때, 수술은 하지 않았고 약물치료를 병행했는데, 효과가 꽤 좋았습니다. 다만, 그 후유증으로 아직 미세하게 발음이 조금 어눌해지고 보시다시피 몸의 움직임이...”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갓 시작된 진료지만, 좋은 예후가 기대되는 환자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될성부른 잎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바로, 눈앞에 있는 백근수 환자가 허준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몇 년 전에 뇌출혈이 발생하고 후유증이 남았는데 이정도로 좋아졌다는 것은 분명히,
‘열심히 관리했다는 뜻일 테니까.’
즉, 회복기라는 뜻이다.
여기에 조금의 도움을 더해 속도를 올리면 될 터.
“몸 관리도 꾸준히 하신 상태이신 거죠?”
“아, 네. 맞습니다. 그날 이후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독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진료 들어가도록 할게요.”
그렇게 이어진 진료.
허준이 일단은 몸의 굳어진 부분을 먼저 묻고 손으로 파악했다.
이어서 진맥.
두 손의 맥을 잡으며 몸에 흐르는 경혈들을 한눈에 보아하니,
‘장부의 흐름과 조화도 원활하다.’
다만, 머리로 이어지는 경맥의 일부가 끊어진 것처럼 보인 허준.
저것이 문제로군.
이렇게 건강한 사람이 저곳을 시원하게 뚫어주기만 해도 금방 좋아질 것이 분명하다.
허준이 중풍 환자에게 치료하는 처방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청폐사간탕, 억간산 등등 여러 탕약이 있겠지만,
몸의 기운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 막힌 순환에 도움이 되는 탕약들이 잘 어울리겠군.
뇌출혈이란 것은 결국 뇌안의 혈관에서 발생한 문제.
‘중풍 회복기 환자에게 좋다는 조등산이 좋겠어.’
조등산은 혈관 확장 작용이 강력하여 혈류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세로토닌 수용체 조절 효과가 있어 정신적인 측면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더해서 침으로는 어혈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엄지발가락 옆의 태백혈과 엄지손가락 아래쪽의 태연혈.
그리고 직접 경맥을 뚫어주기 위한 자극을 위해 뒤통수에 툭 튀어나온 외후두융기 바로 아래의 오목한 자리인 아문혈과 소화기 경락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에 각 혈 자리를 치료하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입원이 필요하겠군.’
허준이 치료계획을 완성하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입원 치료가 가능하시겠습니까?”
“입원 치료요?”
“네. 침과 탕약으로 치료를 할 생각인데, 이 침 치료는 오전 7시부터 11시 사이에 치료 효과가 아주 뛰어나거든요.”
* * *
“선생님. 허준 원장님 이야기 들으셨어요?”
“무슨 이야기요?”
“그게 말이에요...”
첫날 근무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한방병원 안에서는 벌써 괴이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허준한의원에서 근무하던 선생님들의 엄청난 진료 속도에 관한 이야기.
허준뿐만이 아니라, 몇몇 선생님들이 독보적으로 빠르게 진료를 봤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바로, 한방병원에서 가장 유명한 한의사라고 할 수 있는 이허준 원장에 관한 이야기였으니,
“그 환자가 진료받으면서 교통사고 난 다음부터 잠도 못 자고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그랬는데, 허준 원장님이 계속 입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더라고요. 그냥, 통원치료하시면 된다고.”
“에? 뭐하러 그래요? 교통사고라면 자보환자잖아요. 오히려 땡큐 아닌가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여튼 그 자보환자가 입원실에서 다른 환자랑 간호 선생님들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다니나 보더라고요.”
“그런 실수를 하실 분이 아닌데...”
누군가 그럴 리 없다는 대답에,
“에이~ 사람은 누구나 긴장할 수도 있는 법이잖아요. 그리고 막말로, 허준 원장님이 TV에 몇 번 나오고 혜민서 멤버로 유명하시기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 논문도 전부 다른 선생님들이 쓴다던데요? 그럼 강의라던가 이런 것들도 전부 다른 선생님들께서 만드신 걸 수도 있죠.”
“그래요?”
그때,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한의사가 이해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허준 원장님이 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의원에서 진료 보시던 분이잖아요. 이런 커다란 한방병원에서는 일해보신 적이 없으니 당연한 거 아닐까요? 이전에 있던 한의원의 입원실은 대부분 동상이나 화상 환자 치료를 위해서 있었던 거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자보환자는 처음일 테닐까요.”
“제 생각도 비슷해요. 자보환자가 한방병원 먹여 살리는 주요 수입원인 줄은 모르고. 아주 귀한 분들이신데.”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병원 안에서도 눈치싸움이 시작되겠군요.”
“눈치싸움이라니요?”
누군가 모르겠다는 듯이 되묻자,
“아직, 이런 곳에서 일 안 해보셔서 잘 모르시나 보네. 조금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그 시각. 혜민한방병원 원장실.
최인호가 김예진이 올린 서류를 확인했다.
“호오, 이게 오늘 입원한 환자들이란 거지?”
“예. 총 83명으로 꽤 많은 환자가 입원한 상황입니다.”
“그래. 첫날부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그나저나, 허준 이 친구도 입원을 시켰네? 의외인데?”
최인호가 흥미롭다는 듯이 보고서를 바라봤다.
층별로 올린 입원환자들의 목록 중에서 허준이 처음으로 입원시킨 환자가 바로 교통사고 환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 환자 옆으로 김예진이 따로 표시해놨는데,
“이 표시. 내가 생각하는 그 거가 맞겠지?”
“네. 맞습니다.”
“그런데, 허준 선생이 이 환자를 입원시켰다고?”
“아무래도 환자가 워낙 입원시켜달라고 심하게 요구했나 봅니다.”
“그래? 그럼, 이건 아무래도 우리가 나서야 할 문제 같은데.”
그렇게 발걸음을 나선 최인호.
김인철이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하는데,
복도에서 신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최인호가 옆에서 인사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 원장님. 그게...”
간호사가 눈치를 보면서 말을 줄이더니,
“지금, 허준 원장님이 회진 중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