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많이 배웠습니다
‘한약재를 구분한다니?’
대체 어떻게 구분된다는 걸까.
의문과 함께 탕전실로 올라온 허준이 한약재들이 있는 창고로 향했다.
그러고는 한약재를 살폈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경맥처럼 눈에 뭔가 보이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조금은 실망스러운 허준이 괜히 한쪽에 있는 한약재인 영지버섯을 꺼내 들었다.
박용찬 어르신께 받아온 한약재들이 확실히 때깔이 좋긴 좋네.
이어서 냄새도 맡아보고,
손으로도 여기저기 만져본다.
‘대체 어떻게 구분한다는 거지?’
허준이 손에 들린 영지버섯을 내려놓고 다른 버섯을 들었는데.
그때,
‘어?’
손끝을 타고 묘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이 아닌가.
허준이 아까 꺼내 들었던 버섯을 다시 잡아 확인했다.
확실히 달랐다.
물론, 버섯마다 생김새나 무게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허준이 느끼는 것은 그런 감각이 아니었다.
이 느낌은 마치,
‘그래. 침으로 기가 흐르는 경맥을 느꼈을 때와 비슷한 느낌.’
그럼, 지금 손에 들린 이 약재가 좀 전에 있는 약재보다 가지고 있는 기운이 더 좋다는 뜻인가.
이걸 어떻게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없고.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겠군.
그럼, 일단 오늘 해야 할 탕약부터 달여보실까.
그렇게 탕전실로 돌아온 허준이 오늘 진료를 본 환자들의 탕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환자에게서 느꼈던 진맥이 떠오르면서 약재들을 꺼내 조합한다.
본능적으로 환자에게 맞춘 약재들의 가감이 이뤄지고,
허준 본인도 모르게 손은 약재 중에서 가장 좋은 약재를 찾아 넣고 있었다.
* * *
“자, 이때에는 여기에 힘을 주고~”
어눌한 한국말이 들려온다.
그 말의 주인이 엘레나였기 때문이다.
엘레나의 앞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앞에서 유민정이 엘레나가 알려준 대로 호흡하며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얼마 전에 허준의 부탁으로 밥이 비행소녀단의 보살핌을 맡게 되었는데,
그때, 유민정의 목소리를 들은 밥이 먼저 제의한 것이었다.
“지 팀, 아니, 지 실장님.”
“네?”
“댄스팀의 연습량을 줄여주셔야 할 것 같아요. 며칠 동안 만이라도요. 다들 몸의 관절들을 비롯한 근육에 무리가 많이 간 상태입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제가 그쪽 팀장과 한번 조율해보도록 할게요. 우리 아이들에게 문제는 없던가요?”
“네. 전체적으로 피곤해서 지친 상태인데, 금방 좋아질 겁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는데...”
밥의 말에 지영희가 되물었다.
“그게 뭔가요?”
“유민정 양의 목이 살짝 마음에 걸립니다.”
“아~ 목소리 잠기는 거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날씨도 춥고 건조한 탓에, 살짝 피곤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더군요. 그 정도야 뭐, 간단하게 약 먹고 푹 자면 다음 날이면 괜찮다고 하던데요?”
일반적이라면 맞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증상이 벌써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민정이 말할 때만이 아니라,
노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두 귀로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난 뒤에 내린 판단이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번 병원에서 검사했을 때에도 괜찮다고 했었지.’
그렇다는 것은 성대를 사용하면서 무리가 가해지고 있다는 뜻일 터.
매일 연습을 하면서 무리가 가는 이유는 목소리를 내는 법에 있어서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밥은 그쪽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심지어 음치에 가깝다.
이럴 때 원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밥이 잠시 고민했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하셨겠지.’
실제로 찾아온 몇몇 환자는 한의원이 아니라 정형외과로 보내시지 않으셨던가.
고민을 마친 밥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제 친구를 한번 불러서 도움을 받아봐도 될까요?”
“친구요?”
“네. 유민정 양이 노래하는 데에 있어서 무리하는가 싶어서요. 직접 듣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테니...”
“애들이 보컬트레이닝을 잘 받고는 있는데... 흠, 좋아요. 한번 자리를 마련해 보시죠.”
그렇게 시작된 엘레나와 비행소녀단의 만남.
엘레나는 유민정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발성이 잘못되었어.’
저렇게 목을 사용하면 얼마 못 가서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바로 본인이 경험자였으니까.
그래서 시작된 또 다른 치료.
밥과 엘레나의 치료는 그녀들의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댄스팀 또한 마찬가지.
“언니. 허리 괜찮아요?”
“어. 며칠 쉬어서 그런지. 통증이 싹 가라앉았는데?”
“혹시, 그 케어해주러 오신 분이 엄청난 실력자인 거 아니에요?”
“에이~ 무슨. 우리 나이에는 이렇게 며칠 쉬면 금방금방 좋아지는 거겠지.”
“그런가...?”
여전히 밥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는 모습.
그것과는 별개로 비행소녀단과 함께하는 리허설 무대를 본 김강현이 지영희에게 찬사를 보냈다.
“훌륭해. 완벽한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뭐, 아이들의 노력과 한의원에서 파견 온 밥 선생님 덕분이죠.”
“그래? 그런데, 오늘 보니까 멤버들 중에서 목소리가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들던데?”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기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던데. 민정이야 워낙 처음부터 독특했으니까 그렇다 치고, 다른 멤버들은 다 어떻게 된 거야?”
“아~ 그건 저기 계신 저분께서...”
한쪽 구석에서 리허설을 구경하던 밥과 엘레나.
김강현의 눈이 그곳을 향했다.
밥 선생이야 한의원에 들렀을 때 종종 봤으니,
아마 지 실장이 가리킨 주인공은 바로 저 여인일 터.
“저 사람이 누군데?”
“알고 보니까, 밥 선생님 친구분이라는데. 목소리가 장난이 아니에요.”
지영희가 눈을 빛내며 속삭였다.
아이들에게 발성과 호흡을 알려주면서 보인 시범이 아직까지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때,
“엘레나 쌤. 노래 한번 해보실래요?”
“노래?”
“네. 쌤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꿈이었다면서요.”
어느새 친해진 아이들과 엘레나.
엘레나가 당황해서 양손을 휘저으며 거부했다.
“그러지 말고 한번 해봐요.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또 해보겠어?”
밥의 응원 때문일까.
엘레나가 조심스럽게 무대로 올랐다.
“아- 아--”
가볍게 목을 푸는 엘레나.
그리고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김강현이 지영희를 불렀다.
“지 실장. 밥 선생님 친구라는 분, 소개해줄 수 있겠어?”
온몸의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사람은 돈이 된다고.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허준한의원의 점심시간.
“올해의 신인상! 네. 축하드립니다! 비행소녀단!”
스마트폰에서 비행소녀단이 서로 얼싸안고 좋아하는 모습이 흘러나온다.
스마트폰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밥 선생이었다.
“이야, 우리 밥 선생 기분이 아주 좋겠어?”
“너무 좋습니다. 제가 너무 뿌듯해요.”
“선생님. 축하드려요.”
“축하합니다. 밥 선생님.”
그런 밥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식구들이 아니었기에,
모두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밥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우리 식구들이 아주 다들 장난 아니네? 유도진 선생은 카리스마 있다고 난리고, 밥 선생은 저기서 아이돌이 직접 이름까지 불러주고 말이야.”
“김 원장님. 우리는 언제쯤 불릴 수 있을까요?”
박용준이 살짝 서운하다는 듯이 말하자,
유도진이 답했다.
“방송에 나간다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자네 같은 사람한테만 통하는 이야기고.”
허준이 그런 식구들을 향해 말했다.
“뭐, 어쨌든 다들 조금만 더 고생해주세요.”
그랬다.
이제 정말 이 한의원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보다 정말 일주일은 푹 쉴 수 있는 거지?”
“아마, 일주일은 힘들고 한 3일 정도는 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어디야~”
이렇게 다들 그날을 향해 기다리고 있었고,
마침내 그날이 되었다.
12월 23일.
허준한의원의 마지막 진료.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준비하는 허준.
그런데, 묘한 느낌이 든다.
‘마지막이라니, 느낌이 싱숭생숭하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 것이기는 하나,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렇게 출근.
TV에서 허준의 얼굴이 꽤 알려진 탓에, 길을 가다 보면 가끔 몇몇 사람들이 허준을 바라본다.
물론, 젊은 친구들보다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지만 말이다.
텅 비어버린 건물들 사이로 허준한의원 하나만 달랑 남아있는 골목의 모습.
그것을 본 허준의 머릿속에 이곳에서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렇게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인사하던 사람들.
‘다들 잘 지내시겠지?’
그렇게 출근.
당연히 허준한의원의 분위기도 이와 비슷했다.
“어서 오세요. 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들.”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
진료 준비를 시작하는 허준.
허준이 식구들에게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 진료인 만큼, 평소처럼 모두 열심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탕약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네. 처방은 그대로 내려주세요. 한방병원에서 이미 탕약을 달이고 있는 이두철 선생님이 계시니까요.”
“아, 참. 그렇지?”
어쩌다 보니, 한방병원의 탕전실에 들어가 업무를 보는 이두철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시작된 마지막 진료.
그 때문인지 찾아오는 환자들은 많았으며, 많은 선물을 남기고 갔다.
물론, 그 선물이 뭔지는 워낙 바빴던 터라 아직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지만.
점심을 지나 저녁.
그리고 진료 마감.
치료실에서 허준이 마지막 환자의 진료를 끝내고 나오니,
한의원 식구들이 하나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허준이 그런 그들을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이 한의원에서 식구들과 함께 해왔던 일들이 떠오른다.
이제야 진료가 끝나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리라.
‘참,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네.’
그런 한의원의 한쪽에는 며칠 전부터 혜민한방병원으로 이전한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는데,
그건 그거고 지금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허준이 식구들을 불렀다.
“여러분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원장님이 제일 고생 많으셨죠.”
“특히, 데스크 선생님들도 정말 고생 많으셨고요, 우리 원장님들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눈이 마주친 식구들이 웃으며 고개를 살짝살짝 끄덕인다.
그들도 이곳에서 함께 해오며 느낀 감정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리라.
그때,
“어때? 오늘이야말로 진짜 마지막인데, 우리 다 같이 저녁이라도 할까? 다들 시간 괜찮지?”
김태식이 이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말했고.
“저야 좋죠.”
“콜입니다~”
“저도 참석하겠습니다.”
식구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 선생은?”
이어서 시선이 유도진에게로 쏠리자,
유도진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웬일이시지?”
“좋았어. 그럼 마지막은?”
이번에는 허준에게로 쏠린 시선.
그래. 여태까지 쉼 없이 달려왔으니,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허준이 웃으며 답했다.
“좋아요. 가죠.”
“좋았어! 모두 가자고!”
그렇게 허준한의원의 첫 회식.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고기와 술 한잔을 얼큰하게 마시고 있을 때,
허준과 마주 앉은 유도진.
둘은 술 대신에 음료수가 담긴 잔을 부딪쳤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유도진 선생님. 아니, 이제는 유도진 원장님이군요.”
“아닙니다. 원장님이 고생 많으셨죠. 덕분에-”
유도진이 허준과 함께 일하며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한의학으로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환자를 치료했던 일부터,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서까지 치료해야 했을까 싶은 환자까지.
찾아온 환자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과 호승심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는 그런 사소한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부끄러움 배웠다.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나 서슴없이 묻고 공부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연습.
도침으로 수술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 매일 늦게까지 연습하던 그 손놀림은 아직도 눈에 훤하다.
어디 그뿐인가.
침술을 위해서 환자를 직접 찾아가 무료로 진료를 봐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혜민서.
나아가 혜민서를 통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가르친다.
이것이 환자를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
차가웠던 유도진의 얼굴에 처음으로 환한 미소가 피어오르며,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