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케이한방병원의 회의실.
그곳에는 원장 김준일을 비롯해 원장들을 포함하여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각 팀의 팀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 매출 보고서입니다.”
“매출이 조금 올랐네?”
“네. 아무래도 최근 여러 이벤트와 마케팅으로 인해 증가한 것 같습니다.”
김준일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딘가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러고는,
“강 실장. 이곳과 이곳 병원장들 회의 끝나고 연락하라고 전하게.”
지난 달보다 매출이 유독 떨어진 두 곳의 병원.
아무래도 채찍질이 필요할 것 같군.
이어서 보고서를 덮은 김준일이 회의실에 모인 인원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모두 늦게까지 수고가 많았어. 빨리 끝내도록 하지.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대로 세워온 대책들을 말해보게.”
누군가 마이크를 켰다.
“저희 마케팅팀에서는 혜민한방병원의 광고가 들어가는 옆자리에 그대로 박아 맞불을 놓는 전략을 펼치는 중입니다. 실제 온라인부터 시작해서 버스나 지하철 등. 최대한 노출을 시키는 중입니다.”
“나도 오가며 본 것 같군. 다음은?”
“네. 저희 경영지원팀에서는 매출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 보험사들과 협상 중에 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서 영업중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준일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겠군.
애초에 혜민한방병원에서 광고하는 대로 병원의 규모와 시설만 보자면,
엇비슷하게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은 달랐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앉아 있는 이곳과 비교한 것일 뿐.
이미 재단을 형성하고 전국적으로 확대된 케이한방병원의 규모와는 체급부터가 다르다는 뜻이다.
‘천천히 체급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지.’
인간의 몸도 급작스럽게 나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법.
본인도 모르게 작은 충격이 누적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것이 병이 되고 질환이 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이는 비단 인간의 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으니,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조직이나 기업에도 해당하는 것은 물론이요.
당연히, 이런 한방병원의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네들은 어떻게 잘 준비하고 있는가?”
“아, 네.”
김준일의 눈이 향한 곳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원장들의 자리였다.
그중에서 최근 허준에게 물을 먹고 돌아온 원장들이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최근에 허준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반대로 케이한방병원의 입김이 줄어들고 있었으니,
김준일이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럽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좋아. 믿어보도록 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장들이 눈을 빛내며 답했다.
김준일이 회의실 안에 있는 인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만 끝내도록 하지.”
“수고하셨습니다. 원장님!”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을 벗어나는 김준일과 그 뒤를 따르는 이 실장.
엘리베이터를 안에서 이 실장이 김준일을 불렀다.
“원장님께서 부탁하신 걸 조사하다가 재미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그게 뭔가?”
“다름이 아니라. 허준 원장의 혜민서란 단체에 근래 들어서 혜민한방병원에서 후원금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후원금?”
“네. 그것도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이미 지난번 조사에서 허준과 혜민한방병원 원장 최인호의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는 알아낸 김준일이었다.
‘그랬단 말이지...?’
그러니까, 같은 동네에서 있다 보니 당연히 자연스레 실력을 알아봤을 테고,
돈 욕심이 크지 않은 허준 원장이었기에,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위해서 봉사단체인 혜민서에 후원금을 보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이 실장도 비슷한 생각이었으니,
“아무래도, 허준 원장과의 관계를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워낙 돈 욕심이 없기로 소문난 사람이니까요.”
“그 이유는?”
“혜민한방병원 외에 한의사협회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후원금을 비롯한 이런저런 지원을 시작했더군요.”
“흥, 협회장 그 여우 같은 녀석이 눈치는 빠르군.”
김준일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도 우리 이름으로 후원금을 보내게. 혜민 쪽보다 많이.”
“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덕분에,
휴무 날 혜민한방병원으로 일 처리를 하러 나온 김예진.
“어~ 김 팀장.”
“안녕하세요. 원장님.”
“휴무 날인데, 이거 일이 많아서 미안하네.”
“아니에요. 제가 또 제 일을 제대로 끝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지니까 어쩔 수 없죠.”
“역시, 김예진 팀장이야. 내가 김 팀장을 시장 골목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지. 허준한의원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허준 그 친구의 능력도 있겠지만, 자네의 도움이 적지 않았을 거야.”
“별말씀을요. 그럼, 일단 조직 구성부터 마무리되는 대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좋아, 수고하게.”
그렇게 사무실에 도착한 김예진.
혜민한방병원의 조직을 구성하기 이전에, 먼저 혜민서에 올라온 사안들을 먼저 처리하기 시작했다.
혜민서의 대표자리를 맡은 뒤부터 휴무 날이면 매일 해온 일종의 습관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거액의 후원금이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케이한방병원에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잘못 들어온 거 아닌가.
‘아무래도 이건 허준 원장님에게 물어봐야겠는걸?’
* * *
평소와 다름없이 진료를 보는 허준한의원.
여전히 환자들은 찾아와 대기실을 가득 메웠고, 한의원 식구들은 휴무를 최소화한 채 진료에 투입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혜민한방병원에서 파견을 나온 한의사 선생들.
며칠이 지나서 꽤 익숙해진 모습이었지만, 늘 그렇듯이 익숙해진 만큼 보이는 법이었으니.
“이야~ 오늘도 환자가 끊이질 않네.”
“그래도 다행이죠. 여기서 경험해보고 같이 일하면 한결 수월할테니까요.”
“맞아요. 안 그래도 요새는 좀 익숙해진 것 같거든요.”
그중에서 한 선생이 이렇게 답하니,
다른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이 선생은 한방병원보다 여기가 훨씬 편할걸?”
“그, 그런가요?”
“당연하지.”
같이 파견을 나왔지만,
그는 수련의로서 혜민한방병원에 지원했다가 파견을 나온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의사가 나오는 드라마에서 보면 늘 머리가 떡이 진 채로 돌아다니는 의사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꾸벅꾸벅 졸다가 혼이냐는 장면의 주인공들이 바로 수련의의 모습.
이는 한방병원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그나마 잠시 파견 나와 있는 이곳은 따듯한 분위기와 입원환자가 없기에 퇴근이 보장되어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파견 나온 수련의 선생들이 익숙해져 갈 때쯤,
허준한의원에서는 새로운 모습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머? 어머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
“그럼요.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시장도 없어졌는데. 설마, 또 아프신 거예요?”
윤다희가 오랜만에 찾아온 박순자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 이거 받아.”
“이게 뭐예요?”
“뭐기는, 선물이지.”
“에이~ 어머니. 한의원에 이런 거 가져오시면 안 돼요.”
“왜?”
“법적으로도 환자에게 이런 거 받으면 불법이라고요.”
윤다희가 오랜만에 찾아온 박순자 할머니가 건넨 선물을 다시 건넸다.
그러자,
“나 환자 아닌데? 이거 그냥 내가 여기 선생님들한테 고마워서 주는 거야. 봐봐. 예전보다 얼마나 쌩쌩해졌는지.”
“그, 그래도...”
문을 닫는다는 허준한의원의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이렇게 환자들이 찾아와 선물이나 먹을 것 등을 주고 가게 된 것이었다.
평소 이런 일을 용납하지 못하는 허준이었으나.
“그... 찾아오는 분들이 진료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지나가다가 선물 주러 들리신 거라고 하셔서.”
이렇게 말하니, 딱히 말릴 수도 없지 않겠는가.
‘난감하네.’
그렇다고 이미 주변에 텅텅 빈 이 한의원까지 찾아온 사람들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 또한 예의는 아닐 터.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며칠 뒤.
반가운 얼굴이 한의원을 찾아왔다.
“어? 아영이 어머님! 그리고 아영아.”
허준한의원의 첫 화상 환자로 방문했던 아영이였다.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잘 지내셨죠?”
“물론이죠. 어쩐 일이세요?”
“에이~ 우리 맘카페에도 소문 다 났거든요. 이사하시기 전에 얼굴 한번 보려고 들렀죠.”
“감사해요. 아영이는 별일 없죠?”
“그럼요. 아영아 손.”
아영이가 부끄럽다는 듯이 손을 내민다.
이제는 억지로 찾아봐야지 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회복된 아영이의 손.
“다행이네요.”
“다행히 아니라 다 선생님들 덕분이죠. 그런데, 원장님은 바쁘시겠죠?”
“네. 보시다시피...”
김미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굳이 둘러볼 필요도 없을 만큼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원장님하고 다른 선생님들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영이뿐만이 아니었다.
허준한의원을 거쳐 가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동상으로 입원했던 환자들은 완치 이후 퇴원한 뒤에도 서로 형님 동생 하면서 잘 지내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다들 잘살고 있다, 일이 잘 풀리고 있다, 건강하게 살고 있다. 등등의 이야기들을 데스크 선생들을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구나.’
허준의 머릿속에 수많은 환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히, 진료실 벽에 환자들과 같이 찍은 사진들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허준이 그들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피식 웃으니,
진료실에서 보조를 맞추던 최허준이 그 모습을 눈에 새겼다.
평소에 원장님이 웃는 모습이긴 하시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얼굴은 처음이시네.
그 모습에 최허준의 기분도 같이 좋아지면서,
심장도 기분 좋게 쿵쾅이고 있었다.
* * *
혜민한방병원 원장실.
“여기 축하 선물로 난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난 이거 키우기 어렵던데, 이왕이면 좀 쉬운 거로 주시지 그러셨어요.”
“하하, 원장님도 참. 그래도 원장실인데 이런 난 하나 정도는 있어야 모양새가 나지 않겠습니까?”
최인호의 맞은편에 앉은 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김강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요새 분위기가 꽤 좋은 것 같던데요? 여기저기서 프로그램 제의 많이 받지 않으셨나요? 요즘 허준 선생님 정도면 한창 물 들어올 때인 것 같은데.”
“그럼 뭐해요? 본인이 하기 싫다는데.”
“왜요?”
“환자들 본다고 바쁘다고 하더군요.”
“허~”
그 말에 김강현이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역시라는 뜻의 탄식이리라.
“아쉬우시겠네요?”
“조금 그렇긴 하죠. 그래도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보다, 오늘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혹시, 허준 선생님이 봐주셨던 아이들 기억하시나요? 비행소녀단이라고, 우리 회사에 있는 아이돌-”
“아~ 당연히 알죠. 제 아들 녀석도 좋아하던 걸요.”
최인호가 기억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그 친구들에게 또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아니요. 문제가 아니라, 연말에 뮤직어워드에 참석하게 되었거든요.”
“그런 좋은 일이.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그래서 그 전에 아이들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물론, 아이들뿐만 아니라 같이 무대에 올라가는 댄스팀까지 말이죠.”
“뭐, 그런 일이라면.”
그렇게 연락을 받게 된 허준.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진료를 받았을 때 아이들의 상태를 떠올렸다.
‘모두 건강했었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을 터.
오히려 아이들보다는 댄스팀이 더욱 걱정되는 허준이었다.
매일같이 쉼 없이 춤만 추는 그들 또한 만만찮은 직업병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직접 가는게 가장 좋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맞지 않은 허준.
하지만 걱정은 없다.
아이들과도 친하면서 충분한 경험을 가진 한의사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밥 선생님.”
“네. 원장님.”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