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57화 (157/230)

157화.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

혜민한방병원.

김준일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자신이 만든 케이한방병원과 견줄만한 규모는 아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국적인 규모로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

단일 규모로는 지금 이곳과 거의 대등한 정도의 규모를 가진 초대형 한방병원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곧, 국내 최대규모의 유일한 한방병원이었던 케이한방병원과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아마, 내년에 오픈이라고 했었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웬만큼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겠지.’

시설부터 시스템 그리고 인원들까지.

거기에 관심이 생긴 허준이란 친구가 포함되었나 보다.

이 사소한 부분이 더해지자,

가뜩이나 신경이 쓰이던 김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실장이 그 굳어진 표정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함께 해온 지 꽤 오래되었으니, 어떤 맥락이 신경쓰이는 것인지 뻔했으니까 말이다.

“맞습니다. 혜민한방병원. 얼마 전에 보고드린 바로 그 병원입니다.”

“그래. 기억나는군. 규모가 큰 대형 한방병원이라고 했었지?”

“예. 시설만 봐도 우리와 경쟁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 아래쪽에 보시면 조금 자세히 적어둔 사항이 있습니다.”

김준일의 눈이 아래를 훑었다.

18층의 빌딩.

우리보다 1층 더 높네.

괜히 기분이 나쁘다.

그렇게 내려보는데, 원장이라는 공간에 적혀있는 이름 세글자. 최인호.

들어보지도 못해본 이름이다.

“최인호?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저도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최인호 원장에 대한 조사는 뒷장에 적어 뒀습니다.”

보고서를 뒷장으로 넘기니,

최인호의 이력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생각보다 젊은 친구로군.

학부 시절 성적은 우수, 몇 년간 현장에서 일을 배운 뒤에 개원. 그리고 그 이후에 빠르게 확장하기 시작해서 체인점화에 성공하고 최근에는 혜민한방병원의 원장의 자리까지.

확실히 이것만 봐도 사업적인 수완이 뛰어난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거기 보시면, 처음 개원한 자리가 지금, 허준 원장이 운영하는 한의원과 매우 가깝습니다. 아마 그때의 인연으로 혜민한방병원에 가기로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인연이라. 아주 풋풋하구먼, 젊음이 좋긴 좋아.”

김준일이 씨익 웃었다.

최인호의 경력을 보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능력은 있어 보인다만, 체급이 다른데. 쯧쯧. 욕심이 과했어. 그러다가 탈 나는 법이라네.’

이런 대규모의 한방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마어마한 금액의 초기 자본금이 필요하다.

더해서 인맥은 필수.

이런 기본적인 것을 다 가지고 있더라도 또 가장 중요한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바로 사람 문제.

특히, 그중에서도 원장의 능력은 첫 번째라 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핸들을 잡냐에 따라서 방향이 바뀌는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비유하자면, 대형한방병원의 원장은 항공모함의 함장이다.

작은 나룻배나 통통배의 선장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파격적인 인사같은데?”

“맞습니다. 아무래도 최인호란 분의 능력을 그쪽에서는 높이 산 것 같습니다.”

“그래? 차라리 우리에게는 잘 됐군.”

김준일이 눈이 빛났다.

그것은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이었다.

아무리 인연이 깊은 선원이라도 구멍이 난 배에서는 뛰어내리기 망정이었으니,

하물며, 가벼운 인연쯤은 배가 휘청이기만 해도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실장. 혜민한방병원에 대한 대책을 부서별로 확립하고 있겠지?”

“네.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좋아.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민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자고. 그리고, 하나 더. 이번 방송에는 오 원장 말고, 박 원장으로 가도록 하지.”

“박 원장 말씀입니까?”

이 실장이 박 원장이란 말에 의문을 표했다.

박원효 원장. 김준일 원장의 제자 중 하나로, 이 케이한방병원에서도 손재주가 좋기로 소문난 선생님이었다.

“종목 좀 바꿔보려고.”

“그 말씀은?”

“마음이 바뀌었어. 당근 말고 채찍부터 한번 사용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이 실장이 인사와 함께 원장실을 나섰다.

‘지난번에는 오 원장에게 잘 챙겨 주라고 하더니, 이번엔 망신을 주려나 보네.’

늙은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   *   *

허준한의원의 진료실.

허준의 앞에 윤지웅 환자가 앉아 있었다.

만성위염으로 위산 억제제를 달고 살던 그는 이제 어엿하게 약을 끊었고,

위염 또한 완치된 상태.

오늘은 혹시나 해서 들려 봤단다.

“아주 좋습니다.”

허준이 진맥을 마치면서 말했다.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속 쓰림은 물론이요, 소화불량과 두통까지 모두 사라졌으니,

매일 인상을 쓰던 얼굴에는 여유가 도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게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관리해서 이 진료실에서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

연인관계에서는 서운하고 슬픈 말이겠지만,

‘환자와 의료인의 관계에서만큼은 예외지.’

그렇게 진료실을 나선 윤지웅.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허준의 한쪽 시야에서는

「포인트를 3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5 획득하였습니다.」

···

꾸준히 메시지가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전보다 훨씬 속도가 빨라진 것 같네.’

요즘에는 하루에 환자의 진료와 탕약 그리고 이렇게 혜민서를 통해 퍼져나간 치료법으로 얻은 포인트가 어림잡아 1000 포인트 가까이 되는 듯싶다.

이는 이전보다 배는 늘어난 것 같은 느낌.

역시 방송의 힘은 강력하네.

그렇게 다음 날.

허준의 휴일.

대학교 강의가 있는 날이었기에,

발걸음을 옮겼는데,

교내에서 허준을 알아본 학생들이 반갑게 허준을 맞이했다.

유튜브에서 그의 영상을 본 까닭이었다.

“선생님! 사진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길을 가다가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이요.

마주친 교수들 또한,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우리 허준 원장님 아닙니까.”

다들 악수를 할 정도.

특히, 가장 친한 도준혁 교수는 입꼬리가 귀에 걸려있는 상황이었다.

허준 선생을 이 대학교의 강사로 부탁한 것은 연이 있던 다른 선생님이시지만,

어디까지나 내부적으로 추천한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는 그만큼 자신의 안목과 위상이 드높아진 셈이었으니,

“허준 원장. 내가 자네를 보는 순간부터 알아봤다니까? 자네는 역시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해. 스타성이 있다고나 할까?”

“감사합니다.”

“학생들도 아주 난리더군. 자네 벌써 이 학교에서는 유명인사라고.”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면서 있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오늘 강의도 잘 부탁하네. 내가 요즘 자네 때문에 출근할 맛이 나.”

그렇게 시작된 강의.

당연히 이전보다 훨씬 열정적인 것 같은 학생들을 볼 수 있었고.

허준 또한 그에 만족할 수 있었다.

물론, 강의로 인한 포인트는 덤.

당연히 학생 중에서도 가장 난리인 것은 최승원 패밀리였다.

“선생님!”

“최승원 군.”

“저 그 영상보고 감동 받았습니다. 역시 선생님은...”

언제나 최승원의 눈빛은 부담스러웠지만,

오늘따라 유독 그러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던 겁니까? 궁금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그렇게 궁금한가요?”

“네. 당연하죠. 너희도 그렇지?”

“물론이지.”

허준이 그들에게 웃으며 답했다.

“국가고시 끝나고 알려주도록 하죠. 물론, 떨어지면 무효고.”

“선생님~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러면서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학교를 벗어났다.

‘이런 기분 썩 괜찮은데?’

*   *   *

토요일.

한의원 진료가 끝나고 모인 혜민서 멤버들.

“이야~ 이렇게 다 함께 모인 게 얼마 만이에요?”

박용준이 신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박용준을 김태식이 나무랐다.

“박 원장. 우리가 지금 소풍 가는 줄 알아?”

“에이~ 기분만 내자는 거죠. 기분만.”

그 뒤에는 유도진과 허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논문은 완성해서 올려 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유도진 선생님.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혜민서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아닙니다. 저도 완성하면서 많은 공부가 되고 있는 걸요. 참, 방송은 저도 잘 봤습니다.”

유도진이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본래 성격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제 이정도로 놀라기에는 워낙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다 왔네요. 와, 오늘도 같이하실 선생님들이 많이 와계시는데요?”

운전대를 잡은 박용준이 미리 도착해 있는 인원들을 보며 말했다.

“병원에서도 나왔나 보네요.”

그렇게 차에서 내린 허준.

허준을 보자, 많은 사람이 다가와 둘러쌌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팬입니다.”

“선생님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의원에 찾아온 동상환자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존경합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주실 거죠?”

···

혜민서에 올라온 논문과 영상 등으로 진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한의사들.

허준이 그들을 둘러보며,

“선생님들이 열심히 해주신 만큼, 저도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식적인 말이지만,

허준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병원쪽에서 나온 선생들은,

“유도진 선생님 오셨어요?”

“박용준 선생님 저 기억하시죠? 지난번에 병원에서 본...”

각기 다른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휴무 날에 한방병원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오픈준비를 하면서 안면을 튼 선생들이 함께했기 때문이리라.

‘바람직한 모습이네.’

이렇게 인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활동.

야말로 순식간이라 할 수 있었다.

인원수가 많은 데다가, 최근 방송으로 인해 몰려든 환자들의 진료를 보면서 허준한의원 식구들의 폼이 절정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진료를 지켜보는 허준이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다들 정말 많이 늘었잖아?

매일 같이 홀로 진료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식구들의 실력은 허준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쩐지 요즘 들어서 포인트 수급이 많아졌다 했더니.’

그런 허준의 시야 한쪽에는 어느새 메시지가 나타나 있었다.

퀘스트를 완수했다는.

「포인트를 1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50034

좋아.

드디어 5만 포인트를 모았군.

그때, 허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최인호 원장이었다.

“원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 미안하네. 지금 진료 중인가?”

“아니요. 이제 끝내고 정리 중입니다.”

“그래? 마침, 잘됐군.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

“물론이죠. 제가 그리로 가도록 하죠.”

허준이 통화를 끊으니,

옆에 있던 박용준이 물었다.

“최 원장님이에요?”

“네. 만나자고 하시더군요.”

“에이~ 오늘도 물 건너갔네. 이렇게 빨리 끝난 기념으로 가볍게 한잔하자고 하려 했는데.”

“언젠가 기회가 있겠죠.”

“됐습니다. 우리끼리 가도록 할게요. 어차피 술 안드시잖아요. 그럼, 가는 길에 내려드리면 되는 거죠?”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그렇게 도착한 혜민한방병원 원장실.

가구까지 다 들어와 이제는 제법 태가 나는 중이었다.

“왔나?”

“방 좋네요?”

“그래도 명색이 원장실인데. 이정도는 해줘야지~ 쩝, 이게 다 돈이긴 하지만.”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아, 다름이 아니라. 내일 촬영 준비는 끝냈나?”

“네.”

건강의 제왕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패널들의 특성상 일요일에 촬영이 잡혀있었다.

의사나 한의사들이 대부분 일요일에는 그나마 쉴 수 있었으니까.

“준비 많이 했을 텐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서 미안하군. 갑작스럽게 주제가 바뀌어서 말이야.”

“주제가요?”

원래 이번 주 주제는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라고 들어서 준비해놓은 허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제가 바뀌다니.

“그래. 아무래도 누가 힘을 좀 쓴 모양이야.”

“에이~ 그럴 리가요? 그래서 바뀐 주제는 뭡니까?”

“허리디스크.”

“디스크라면...?”

“침을 놓는 것도 허용한다고 연락이 온 것을 보아하니, 보나 마나 침을 놓고 환자가 좋아지는 장면을 내보내려 할 거야.”

“그럼, 저도 준비해야겠군요.”

“준비는 무슨, 자네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최인호가 웃으며 답했다.

허준의 침술이라면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이 인위적으로 급작스럽게 바뀐 주제.

따라서 최인호도 준비한 것이 있었으니,

“그리고 자네에게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

“선물이요?”

“그래. 내일 촬영장에 가보면 알 수 있을 걸세.”

최인호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그것을 본 허준.

‘지금, 웃고 계신 거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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