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혜민한방병원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00
‘뭐야? 이전과 다르게 퀘스트의 이름조차 나타나지 않네.’
좋은 징조인지,
또는 나쁜 징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보상이 무려 5천 포인트나 된다는 것.
능력이 올라갈수록 보상으로 주어지는 포인트가 떨어졌는데, 5천 포인트나 되는 것을 보아하니,
‘난이도가 꽤 높다는 뜻이겠구나.’
그런 허준이 이동훈의 모습을 살폈다.
여전히 사방을 두리번두리번하며 불안해하는 모습.
그리고 푹 눌러쓴 모자와 긴장 탓인지 경직된 걸음걸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공황장애의 증상과도 비슷하지만.’
조금은 차이가 있어 보이네.
공황장애는 평소에는 괜찮다가 어느 순간 발작을 일으켜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 마련인데,
눈앞의 환자는 이 한의원을 들어오면서부터 지금까지 쭈욱 이 모습 이대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옆에 유 실장이라 불리는 사람의 행동이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허준이 환자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이허준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동훈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그런데, 그 방향이 허준과 반대 방향이 아닌가.
마치 눈을 마주치기라도 싫다는 듯이.
‘대인기피증?’
사회공포증이라 불리는 마음의 병으로, 사람의 눈을 쳐다보기 두려워지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연예인들 사이에서 종종 걸린다고는 하는데,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네.
언뜻 설명만 보기에는 다른 사람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절대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병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연예인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마음의 병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듯이, 연예인들이 사람의 관심과 환호를 먹고 사는 직업이기 때문이리라.
공황장애가 본인의 내면에 불안감을 느낀다면,
‘대인기피증은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바꿔말하면, 평소에 환호해주던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한다던가, 악성 댓글이 달린다든가 하면 더 크게 와닿는 것이 당연할 터.
그때, 옆에 서 있던 유 실장이 이동훈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김강현 대표님께서 직접 믿고 만나보라고 하신 선생님입니다.”
김강현이라는 이름이 꽤 믿음직스러웠는지, 그제야 환자가 고개를 살짝 돌려 허준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물론, 여전히 직접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이, 이동훈이라고 합니다.”
허준이 그런 이동훈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더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진료실로 가시죠.”
자리를 옮긴 세 사람.
진료실에 들어온 이동훈이 습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벽에 걸려있는 사진들 앞으로 걸어갔다.
“이, 이 사진들은...?”
“한의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입니다.”
허준의 대답에 이동훈이 찬찬히 벽면을 가득 메운 사진들을 하나하나씩 살핀다.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네.’
그리움 그리고 부러움.
예전에는 나도 이렇게 환하게 웃는 방법을 알았는데,
이제는 까먹었나 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동훈아. 이리로 앉아야지.”
유 실장이 이동훈을 불렀다.
허준이 그런 유 실장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보고 오셔도 됩니다.”
“대표님께서 바쁘신 분이라고 하셔서...”
“환자 보느라 바쁜 것이지요. 그리고 이동훈 씨는 오늘부터 제 환자고요.”
드라마 대사와 같은 이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진 유현중.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간단하게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동훈이가 대인기피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이 맞았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한의원에 들어올 때부터 하는 행동을 보고 짐작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유현중이 살짝 놀라며 답했다.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갔을 때야, 당연히 그 행동과 모습을 보고 쉽게 맞추었으나,
대부분 병원에서는 검사나 질문을 하기도 전에 맞춘 경우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시작된 겁니까?”
“그걸 누구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더욱 답답한 거죠.”
“그럼, 약은 어떻게 드시고 있는지요?”
“약은 유명한 정신과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몇 달 치씩을 먹어봤는데, 처음에 잠깐 효과가 있었을 뿐. 결국, 다시 저런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유현중의 설명에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과 약이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으나 나중에는 통하지 않았다라.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겠군.’
그때,
허준의 앞에 드디어 이동훈이 앉았다.
“눈을 잘 못 마주치시네요?”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죄송은요 무슨. 저를 보지 않고 대답하셔도 좋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무섭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를 바라보는 것 같고, 그래서 긴장하게 됩니다. 땀도 나고 손발에 힘도 떨어지는 것 같고요. 심할 때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힘드셨을 텐데, 상세하게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손을 이리로 올려주시겠어요?”
이동현이 두 손을 살포시 위로 올렸다.
허준이 평소보다 천천히 맥을 잡았다.
긴장하거나 공포감을 느껴 맥이 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손끝에서 느껴져 오는 이동현의 맥.
‘간이 허하다.’
옛말에 간을 배 밖으로 내놓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간담이 서늘하다는 말도 함께.
이렇듯 간과 함께하는 담.
이 두 가지에 더해.
‘심장의 기운도 약한 상태.’
이 두 가지 상황에서 먼저 진행된 것은 아마도 지금 경맥이 약하게 흐르는 간일 터.
즉, 간담의 기운이 약해지고 이어서 심장이 영향을 받아 몸의 조화가 완전히 깨지게 된 것이다.
덕분에 식욕부진과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으니 남은 장부들의 기운도 전체적으로 떨어진 상태.
때문에, 손끝에서 느껴지는 이 맥은 환자의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맥이었다.
마치,
‘연세가 많은 환자와 같다.’
이정도면 제대로 생활을 하고 있기는 한 건가.
허준이 이동훈에게 물었다.
“혼자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입맛이 없어서 밥을 먹지 않는다던가, 속이 더부룩하다던가. 또는 잠을 못 잔다든가 하지는 않습니까?”
“그걸 어떻게?...”
“옛말에 이런 말이 있죠? 간담이 서늘하다, 간을 배 밖으로 내놓고 다닌다. 같은 말이요.”
허준의 말에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한 말이었기 때문이리라.
“이 말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동훈 환자의 몸이 딱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한의학적으로 보자면, 간담의 기운이 많이 쇠퇴하면서 겁이 많아지셨고, 덕분에 그 스트레스가 심장을 압박한 것이죠. 아무래도 직업적인 특성상, 일반인들보다 훨씬 그 정도가 심하셨을 테니까요. 그래서 지금과 같이 심해진 상태에 이른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동현을 보며 허준이 생각한 처방을 말했다.
“하루아침에 바로 좋아지기는 어렵겠지만, 일단은 침과 뜸 그리고 보약을 사용해서 치료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대로 흐르지 않는 경맥을 흐르게 하며 신경계의 자극으로 긴장을 완화해줄 침.
그리고 몸의 순환을 높이고 혈 자리에 기운을 보하기 위한 뜸.
거기에 보약을 더해서 장부의 기운을 끌어올려 치료할 계획이었다.
“그럼, 치료실로 가시죠.”
* * *
다음 날.
「퀘스트 ‘친구를 가지고 싶은’을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5000 획득하였습니다.」
허준이 한쪽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바로, 소화불량으로 찾아왔다가 틱과 다른 여러가지 증상으로 진료받은 김현우 환자의 퀘스트였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던걸?’
틱은 물론이요.
그를 괴롭히던 여러 증상뿐만 아니라,
허준의 말에 열심히 노력하여 이제는 한층 자신감을 찾은 김현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게다가 최근에는 학교에서 친구도 사귀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완벽한 치료라고 할 수 있겠어.
‘이왕이면 좋은 친구였으면 좋겠군.’
아니면 인생의 쓴맛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제는 다 이겨낼 수 있을 테니까.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생각을 하는 허준이 올라온 차트를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여전히 허준한의원에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으니,
이렇듯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 시각.
한방병원에서는 대대적인 이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 그거 살살 좀 다뤄주게.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최인호가 가리키며 말한 것은 바로 고가의 의료장비.
한방병원인 만큼, 한의원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던 바로 그런 장비들이다.
이 장비들을 가져온 사람은 바로,
시장 골목 대로변에 있던 HS정형외과의 김형서 원장.
김형서가 최인호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최 원장님.”
“시간 딱 맞춰서 왔네? 김 원장. 아니 이제부터는 김 과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편하신 대로 부르십시오. 참, 옆에는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유재원 선생입니다.”
“잘 부탁하네. 최인호라고 하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원장님.”
눈치 빠른 유재원이 재빨리 최인호의 손을 잡았다.
최인호도 그 모습이 썩 나쁘지는 않았는지, 허허하고 웃었다.
“그보다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번과는 완전히 또 다른 느낌이네요.”
김형서가 다시 한번 이곳을 둘러봤다.
이곳에서 처음 미팅을 했을 때를 떠올리면서.
‘그저 허준 원장이 함께하자고 해서, 작은 한방병원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거대한 곳일 줄이야.
게다가 급여는 또 어떠한가.
HS정형외과에서 제대로 벌지 못하고 쫓겨났는데,
여기서는 대출받은 것까지 포함해도 조금만 열심히 하면 금방 메울 수 있을 정도의 후한 급여다.
물론, 그에 따라 여러 조건이 함께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참, 허준 원장 TV에 나온 거 봤습니다. 유튜브에서 조회 수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알고 있어. 덕분에 태용한의원이 생각보다 빨리 문을 닫아버렸지만 말이야.”
그렇게 이어진 이사는,
저녁 때가 되어서야 설치를 비롯해 시험가동까지 전부 마무리되었고.
“그럼, 김 과장이 이쪽은 책임지고 잘 체크해주게. 나는 양방 쪽은 잘 몰라서 말이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나는 먼저 들어가 보겠네.”
최인호가 인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뒤에서 들려오는 안도의 한숨 소리.
“선배. 우리 봉 잡은 거 맞죠? 이거 황금 동앗줄 맞는 거죠?”
“쉿, 조용히 좀 말해. 그리고 제발 너는 여기에서 입 좀 조심하고. 이젠 내 병원도 아니라서 커버 못 쳐준다.”
“걱정하지 말아요. 선배. 내가 눈치 하나는 또 끝내주니까.”
“그럼, 우리도 이만 퇴근할까? 오랜만에 한잔 어때?”
“좋죠. 이렇게 기쁜 날엔 마셔줘야죠.”
둘이 나서는 한방병원의 건물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혜민한방병원 1.1 오픈]
* * *
케이한방병원의 원장실.
원장 김준일이 자리에 앉아 이 실장이 가져온 보고서를 읽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혜민서라는 단체에 속해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처음 만든 게 이 친구라 이 말이지?”
“네. 맞습니다.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진료자료를 공유해 주면서 온라인으로 강의까지 하는 그런 단체라고 해서 젊은 한의사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 친구 행보가 꽤 흥미롭구먼. 역시 보통이 아니야. 거기에 공개된 자료들은 어떤가?”
“제가 그것까지는 전부 알 수가 없어서...”
이 실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한방병원에서 일한 지 오래지만, 한의학적인 이론까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깐, 이거 정말 사실인가? 1년 전에 매출이 안 나와서 망해가던 원장이었다고?”
김준일이 살짝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성적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던 사람이 1년만에 이런 일을 다 벌일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네. 실제로 그 동네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귀신들렸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니까요.”
“귀신?”
뜬금없는 귀신이라는 말에 김준일이 이 실장을 바라봤다.
설명해보라는 뜻이었다.
“아, 그게... 귀신처럼 잘 고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라고 합니다.”
“귀신처럼 잘 고친 다라. 더욱 탐나는 친구로군. 그래. 아직은 재개발 들어간다는 그 자리에서 진료하는 중이고?”
“네. 올해 안에 아마 정리할 것 같기는 한데, 그 뒷장을 보시면.”
김준일이 뒷장을 넘기자,
‘혜민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