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첫 강의
태용한의원의 박용준, 허준한의원의 고요한과 밥 그리고 도영철 선생이 마주 앉았다.
평소에는 입원실 근무로 얼굴을 보기 힘든 도영철 선생이었으나, 추석 연휴 내내 입원실 근무를 서고 이제야 휴가를 보내는 중이었다.
이렇게 모인 데에는 사실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박용준과 고요한이 꽤 친해진 사이였고, 고요한과 도영철 그리고 밥 선생이 친한 사이였기에 어쩌다 보니 모인 것뿐.
“그나저나 요새 허준 선생님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박용준의 물음에 밥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밥 선생이 허준의 진료를 참관하며 옆에서 보조를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느꼈어요.”
“그래? 난 잘 모르겠던데...”
입원실 도영철의 대답이었다.
하긴, 도영철은 허준이 진료하는 모습을 입원실에 있는 환자들을 치료할 때나 볼 수 있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고요한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데다가, ‘기록변태’라 불릴 만큼 혜민서 활동을 할 때도 꼼꼼하게 기록해왔기 때문이리라.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졌어.”
“고요한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셨어요?”
“당연하지. 예를 들자면 말이야, 그거 지난번에 기억나?”
고요한이 며칠 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혜민서 멤버들이 모여서 치료 사례들과 과정을 공유할 때였는데,
‘왜 저 자리에 침을 놓으시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원한 환자의 증상은 평범한 허리통증 환자.
익숙한 질환이었다.
이미 너무나 많이 경험했기에 참여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넘기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추나치료와 통증을 줄이기 위한 아시혈, 신장에 도움이 되는 혈 자리에 침을 높는 처방이 아니라, 전혀 다른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대체 왜?’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족소음경별이라 불리는 족소음신경에서 확장된 자리와 같이 올라가는 족태양광경별의 혈 자리에 침을 처방했다는 것.
물론, 그 자리들이 전혀 상관이 없는 자리는 아니다.
다만, 나 정도쯤 되면 그 자리들을 알고는 있으나, 일반적인 한의사들은 그다지 쓰지 않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허준 원장님도 여태까지 그러셨고.’
“그러게요. 저도 아직 이해가 안 된다니까요? 당연히 평소처럼 추나랑 통증에 좋은 침에 신장 정격혈에 침을 처방할 줄 알았는데.”
고요한뿐만 아니라 박용준도 의문스럽다는 듯이 말했고,
“그런데, 그분 허리통증이 마법같이 없어졌다면서 아주 만족해하시긴 했어요.”
진료실에서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본 밥이 답했다.
“그래? 신기하네... 대체 무슨 차이인 거지? 아무래도 나중에 원장님한테 물어봐야겠어.”
그리고 이런 내용이 바로 오늘 허준이 준비한 강의의 내용이었다.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경력이 얼마나 되었건 모두 한의사.
이전에 강의를 듣던 대학생보다 훨씬 수준이 뛰어난 상태였으니,
‘평범한 침 치료나 일반적인 사례의 나열로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할 터.’
그래서 흔히 볼 수 있는 질환들의 사례들이었지만,
그 치료과정은 평범하지 않은 것들로 준비해온 허준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곧 환자와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게 허준의 생각이었고.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의원의 특성상 단번에 귀신같이 낫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환자의 상태를 보면서 언제든지 치료법을 바꿀 수 있다는 것.
특히, 침이 가장 그러하지 않던가.
생각한 처방대로 치료해보다가 효과가 없다 싶으면 혈 자리를 바꿔서 처방하는 것만으로도 달라지는 게 바로 침의 묘미였으니까 말이다.
즉, 같은 증상의 환자를 치료할 때, 자신처럼 경맥의 흐름을 읽지는 못하더라도 머릿속에 이런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환자들은 그 치료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런 상황이 많을수록 환자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명성을 알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터.
“여기서 헤어져야겠군. 자넨 저기로 들어가면 되네. 우린 이쪽으로 갈 테니.”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강의실 문 앞에 섰다.
이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뭐야? 생각보다 엄청 사람이 많네?’
이게 처음 든 생각이었고.
그 뒤를 이어서 퀘스트가 나타났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대학교 강의를 다니면서 세웠던 가설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때보다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높아진 상황.
보상 : 포인트 2000
허준이 강의실 안을 한 바퀴 둘러보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허준한의원의 이허준 원장이라고 합니다. 모두 반갑습니다.”
짝짝짝-
“그럼, 강의 시작해 볼까요?”
* * *
“후우~ 올라오니까 아주 개운하네.”
“그러게. 진작 이렇게 좀 다닐 걸 그랬어. 물 있어?”
“있지. 여기.”
친구가 건넨 물을 받은 이재혁.
바로 허준에게서 신장결석의 조짐이 보인다며 치료를 받은 그였다.
물론, 조짐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크기는 작으나 검사결과 신장결석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이재혁은 허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생활습관을 바꿔나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주 좋아진 상태.
하지만 그동안 40여 년 가까이 함께해온 친구들과 조금 거리가 생긴 것이 유일하게 안 좋은 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절친 박철웅.
그도 한의원에 다녀온 뒤로 생활습관이 예전과는 다르게 많이 바뀌었으니,
둘이 주말이 되면 모여서 마시던 술 대신에, 이렇게 등산이라는 건강한 취미를 얻은 상황이었다.
“시원해?”
“물론이지.”
“참, 너 요즘에 물 자주 마시고 있는 거지?”
“야. 철웅아. 걱정하지마. 내가 더 잘챙기니까. 내가 너 따라서 한의원 다녀오고 나서 깜짝 놀랐잖아.”
박철웅이 씨익 웃었다.
괜히 뿌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됐고, 그래서 검사결과는 어떻게 됐어?”
“아~ 그거?”
이재혁이 잠시 뜸을 들이자,
성격 급한 박철웅이 인상을 썼다.
“알았어. 알았어. 괜찮대.”
“정말?”
“응, 병원에서도 조금 놀라더라.”
“역시, 그 양반이 보통 양반이 아니라니까? 너도 알지? 나 한의원 잘 안 믿는 거.”
“알지. 네 성격에 무슨 한의원이야. 진득하니 붙어서 진료받아야 하는 곳인데. 빨리빨리 좋아하는 네가 딱 싫어하는 곳이지.”
“그러니까. 근데 이게 딱 첫 진료 받고 나오는데 느낌이 왔다니까? 그 느낌 알지? 뭔가 다른 느낌.”
“뻥은..”
“진짜라니까? 너도 알잖아. 내 동물적인 감각.”
비단 친구란 이런 관계가 아니겠는가.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 사회적 시선이나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남아 있다는 것까지.
다른 등산객이 들었다면, 어느새 40대가 넘은 아저씨 둘이 유치찬란한 대화를 하고 있다고 했겠지만.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인제 그만 뻥 칠 때 되지 않았냐?”
“이게 무슨 뻥이야? 진짜라니까? 봐봐 그래서 어때. 너도 좋아졌지. 나도 좋아졌지. 이럼 뻥이 아니지.”
“됐다 됐어. 그보다 너 아들 동훈이 곧 수능 아니야?”
“아~ 말도 말아. 스트레스받으니까. 애보다 엄마가 더 난리야. 아주. 애가 고3인지 애 엄마가 고3인지 모르겠다니까?”
“그래? 그 정도야? 우리 애도 내년이면 고3인데...”
“야, 그러면 올해 하고 싶은 거 다 해둬. 내년에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도 소리 없이 움직여야 할 테니까.”
박철웅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진짜?”
“그럼, 진짜지. 참, 그리고 점수 좀 따고 싶으면 한의원 가서 총명탕 미리미리 주문해서 갖다 바치고. 사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애 엄마 말로는 그거 먹고 난 뒤로 애 점수가 조금 올랐다나?”
박철웅의 말에 이재혁의 귀가 쫑긋거렸다.
진짜건 가짜건 흥미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리라.
“그래? 그럼 준비해야겠네.”
고개를 끄덕이던 이재혁.
그런데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되물었다.
“야, 그런데 우리 곧 이사해야 하잖아?”
“그렇겠지?”
“그럼 한의원은?”
“어?...”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박철웅이 말을 더듬다가,
“뭐, 근처에 어디에서 다시 열지 않겠어?”
“그런가...?”
“그보다 땀 식기 전에 내려가자.”
이렇게 둘의 등산이 끝나갈 무렵.
허준도 강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짝, 짝, 짝-
박수 소리가 이어졌고,
강의를 들은 한의사들의 얼굴에는 각각의 표정이 담겨 있었다.
또 몇몇은 궁금한 게 있었는지 허준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악수도 나눴다.
그렇게 강의가 끝난 상황에서 한쪽에 앉아 있던 최인호를 찾는 한의사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최인호의 아래에서 일했던 한의사들과 같이 일할 한의사들이었다.
“자네들 강의는 잘 들었나?”
“네. 저 허준이라는 친구. 대체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이제 한 30대 중반쯤 되지 않았을까?”
“겨우 30대 중반이요?”
“왜? 놀랍나?”
최인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장난스러운 상황이 아니었으니,
“네...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저 나이에 이런 내용의 강의를 할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요. 대표님께서 왜 오라고 하셨는 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또 들으러 오던가. 나야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이렇게 인사를 하면서 묻는가 하면,
“저분이 우리와 같이 일할 선생님이라고요? 와 배울 게 정말 많겠네요.”
“저분 모르세요? 혜민서 허준 선생님이시잖아요.”
이렇듯,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는 참석자들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또 한쪽에서는 불과 지난주까지 침술 강의를 하고 있었던 박진석 선생님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라 수군거리는 중이었다.
박진석의 이름 세글자는 침술에 관한 강의에 있어서 꽤 영향력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그가 애송이라고 할 만한 허준의 강의를 듣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손뼉을 쳤으니,
강의를 들은 한의사들의 얼굴에 각자의 감정이 서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질투, 놀람, 존경 등등의 여러 감정들이 섞인 얼굴들.
최인호가 그들을 한 바퀴 쓰윽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예전에 추나 강의를 해본 적이 있던 터라, 이들의 반응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정도면 첫 강의치고는 확실하게 끝낸 셈이겠지.’
허준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최인호와 박진석에게 다가왔다.
“수고 많았어. 자네가 이런 강의를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박진석의 칭찬에 허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감명 깊게 들었어. 자네가 함께하자고 했을 때, 받아들인 내가 자랑스럽더군. 느껴지는가? 강의를 들은 한의사들의 시선이.”
최인호 또한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조금 낯서네요.”
“어찌 됐건. 훌륭히 마친 거 축하하네. 그건 그거고 이만 가볼까?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 하나 남지 않았는가.”
“그래? 둘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라니, 중요한 일이겠구먼. 그럼 내가 먼저 가볼테니, 편하게 일들 보라구.”
박진석이 손을 흔들며 이별을 고했다.
보나마나 병원에 관련된 일일 테니까 말이다.
“들어가십시오. 선생님.”
그렇게 강의장을 나선 허준과 최인호.
그들이 오늘 만나기로 한 또 다른 사람은 바로,
“아이고~ 원장님 오셨습니까?”
“오랜만입니다. 김명훈 대표님.”
“대표님이라니요,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원장님이 이러시면 제가 부담스럽다니까요.”
“그럼 그럴까요? 참, 이분이 바로 관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던 분입니다.”
허준한의원과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받는 MH짐 대표 김명훈.
김명훈이 최인호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김명훈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최인호입니다. 여기 이 친구가 김명훈 대표님을 참 좋아한다더니, 이제야 이유를 알겠네요.”
최인호가 우락부락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선한 눈빛을 가진 김명훈을 보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