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45화 (145/230)

145화. 꽉꽉 채워놨으니까

경맥.

기혈이 순환하는 통로.

한의원에서 주로 침을 놓는 자리들이 이 경맥에 위치한 혈 자리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소화가 안 돼서 한의원에 가면 손가락 사이와 정강이 부근에 침을 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곳과 이어진 경맥이 소화가 안 되는 위장에까지 이어져서 영향을 미치기에, 그곳에 침을 이용하여 자극을 준다거나, 또는 기운을 더하거나 빼는 보사로 치료를 한다는 개념이다.

이 경맥이란 것은 몸 안 곳곳에 있었으니,

한의학에서는 오장육부와 관련된 12개의 경맥인 십이경맥을 기본으로 보고,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십이경별이 존재한다.

또, 각 관절과 힘줄에 연계된 경맥을 십이경근이라 부르며, 오장육부가 아닌 뇌와 골수, 뼈, 등의 기항지부와 연관 있는 경맥을 기경팔맥이라 칭한다.

‘그런데 경맥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이건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으니,

여태까지 모은 5만 포인트를 진맥의 상승에 사용한 것은 결코, 아깝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을 터.

허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향했다.

진료가 마감되었기에,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바로 입원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진료를 보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입원실의 문을 열자,

도영철 선생이 허준을 반겼다.

“어? 원장님? 무슨 일로 올라오셨어요? 오늘 입원실 진료는 고요한 선생님이랑 밥 선생님 아니었어요?”

아무리 허준이 사람 좋기로 유명하고 인자한 성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원장은 원장.

입원실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도영철의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허준의 방문이 썩 달갑지 않은 것은 당연했으리라.

허준이 약간 놀란 얼굴을 한 도영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진료, 제가 보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도 선생님 어디 안 좋으세요?”

“아니에요. 밥 선생과 고요한 선생 대신에 원장님 오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어디 컨디션이 안 좋거나 아픈 곳은 없으시죠? 그러고 보니 도 선생님은 지난번에 한의원 식구들 진료 볼 때도 입원실 둘러봐야 한다면서 안 보셨었잖아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장님. 그래도 틈틈이 고요한 선생님이 진찰해 주고 있으니까요.”

하긴, 도영철 선생과 고요한 선생 그리고 최근에는 밥 선생까지.

이 세 사람이 꽤 친하게 지내고 있었으니 특별히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이네.

“그럼, 다행이고요.”

그렇게 입원실로 향한 허준.

허준을 본 환자들이 격하게 환영했다.

“아니, 오늘 원장님 오신다는 이야기 없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다들, 괜찮으시죠?”

“물론이죠. 원장님과 선생님들 덕분에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면 바로 시작해 볼까요?”

첫 환자는 50세가 조금 넘은 남자.

꽤 오랜 시간 이곳에 입원해 있는 환자였다.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에 비해서 회복력이 약하니 어쩔 수 없겠지.’

게다가 이곳에 찾아올 당시에 손에 꼽을 만큼 심한 상황이기도 했고.

다섯 개의 발가락 모두가 시커멓게 죽어있는 상태였던 그의 발가락은, 엄지발가락만이 죽은 색깔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금방 좋아지시겠네.’

그렇게 한 명, 두 명 빠르게 진료를 마치고,

드디어 허준이 기다리던 환자들의 차례.

바로 1인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었다.

허준이 이름이 적힌 문 앞으로 다가가 노크를 했다.

“네?”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환자의 이름은 최은영.

29세의 여성 환자로, 허준한의원에서 첫 자동차 교통사고로 입원한 환자였다.

사실 그녀의 증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특별하지 않았는데,

이미 교통사고 이후 골절된 뼈와 상처입은 근육들이 전부 회복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문제였다.

그녀가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바로 통증 때문.

진료를 본 허준이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결국 입원을 권유했던 것이다.

첫째로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맥과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추나치료를 할 때조차도 멀쩡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크게 나아지질 않았으니.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무협 소설이나 만화에서 보던 무공으로 내상을 입으면 이런 상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허준이 문을 열고 들어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옆에 나타난 퀘스트.

* 진행도 : 38%

* 보상 : 포인트 5000

바로 이것 때문.

처음 진료를 받으러 내원했을 때와 그 이후에 내원했을 때의 진행도가 같은 것이 문제였다.

치료를 받았음에도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는 뜻.

즉, 그만큼 겉모습과는 다르게 몸 안은 엉망진창이라는 뜻이었으니.

새로운 진맥을 사용해보기에 가장 완벽한 조건이 아니겠는가.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럼, 진맥 한번 잡아 볼까요?”

“여기요.”

최은영이 허준의 말에 순순히 두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두 손으로 잡고는,

눈을 감아 맥을 느끼기 위해서 집중하기도 전부터 허준의 눈에 무언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이 선들이 굳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한의학 서적들을 보고 또 보면서 익혔던 바로 그것.

경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경맥을 보자마자, 그녀의 상태를 곧바로 직시할 수 있었다.

외상으로 인해서 근육과 뼈는 회복했으나, 경맥까지는 아직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모습.

그래. 이런 상태라서 몸 곳곳에 통증이 일어나는 것이었어.

한순간에 그동안 세웠던 혹시나 했던 가설들이 마구마구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어서 지금, 이 순간.

가설이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면서 현실에서의 모습까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허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동안 손끝에서 느꼈던 것은 기감과 맥박 정도.

그것으로 환자의 현재 상태에 관한 아주 일부분 적인 지표를 얻을 수 있었을 뿐인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이것은 더 이상 일부분이 아니었다.

“선생님?”

평소에 눈을 감고 진맥을 보던 허준이 두 눈을 뜬 채, 자신을 바라보자 최은영이 허준을 불렀다.

“네?”

“진맥 안 보실 거예요?”

아니다. 맥은 이미 느끼고 있는 허준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경맥이요, 손끝에서 타고 들어오는 맥과 기감은 그대로였으니까 말이다.

“아니요. 제대로 보고 있습니다.”

“아, 죄송해요. 매번 눈을 감고 보셔서...”

최은영이 살짝 무안하다는 듯이 말을 줄였다.

허준이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처방을 조금 바꿔볼까 합니다.”

*   *   *

이렇듯 달라진 허준의 진료 모습은 한동안 사람들의 입방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한의학의 특성상, 웬만한 지병이나 질환을 한 번의 진료로 낫게 하는 경우가 없었으니,

“요즘 허준 원장님이 조금 달라진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진맥 보는데, 눈을 안 감더라고.”

“근데 또, 신기하게 예전보다 더 잘 맞추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비슷한 거 같은데.”

실상은 이전보다 훨씬 정교해지고 정확한 진단을 하는 허준이었지만, 이미 이들은 대부분 많이 좋아진 상태였기에 나오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이미 몇 번씩 진료를 받은 환자가 아닌 처음 온 환자들은 오히려 허준에게 진료를 받은 뒤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체질적으로 이 부분이 약하신데, 여기가 여기와 이렇게 연결이 되어있다고 보시면 되거든요. 그러면 아마 여기를 제가 이렇게 누르면...”

허준이 손끝으로 살포시 누르자,

환자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조금 아프시죠?”

“어, 굉장히 아프네요? 여기가 왜 이러지. 그냥 있으면 아무 느낌도 안 나는데...”

“그게 다 여기가 안 좋아서 이어져서 나타나는 증상들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도움이 되는 침과 뜸으로 처방해 드릴게요. 몇 번 정도면 금방 좋아지실 겁니다.”

이런 식으로 진료가 이루어졌으니,

허준의 이름이 찾아오는 환자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 진행도 : 59%

* 보상 : 능력치 포인트 1

업적 퀘스트인 명성도 꽤 올라가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인물이 한의원에 새로운 소문이 돌고 있었으니,

바로, 밥과 엘레나였다.

“뭐? 정말로?”

“내가 확실하게 봤다니까. 둘이 같이 살어.”

“그러니까 시방 밥 선생님과 그 외국인 처자가 한집에 산다 이 말이지?”

“그렇다니까?”

“에잉~ 그게 그 외국인들 뭐 룸메이트인가 하는 그런 거 아니여?”

“아니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 눈깔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잖아. 딱 보니까 남녀사이에서 오가는 그 눈빛이야.”

당연히 이 이야기는 허준네 식구들의 귀에도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고.

모두가 쉬쉬한 채, 그냥 지켜볼 뿐이었다.

‘어쩐지, 엘레나 씨가 왜 안 돌아가나 했더니.’

허준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에 이미 그녀에게 이제부터는 마음대로 노래를 해도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밥이 통역해 준 그 말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 그녀가 아니던가.

뭐, 다 큰 성인들 사이에서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입장은 아니겠지.

어찌 됐건 그때 퀘스트를 해결해 포인트도 얻었으니,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진료에 나선 허준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놀란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유도진 선생이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같이 근무뿐만이 아니라, 혜민서 활동을 통해 허준과 직,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진료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전에는 그저 한 발자국 앞서나간다고 느껴졌던 허준에게서 지금은 몇 발자국이나 앞서나간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특히, 요즘 들어서 환자의 진료 사례들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 큰 차이가 났다.

예전에도 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하는 허준이었으나, 한의학의 특성상 몇 번 처방을 내린 뒤에도 큰 효과가 없다면 처방을 바꾸기 마련이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일들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치, 환자의 상태와 그로 인한 모든 변화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후우-”

유도진이 크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휘둘릴 것 없다. 내가 가는 길을 그대로 가면 될 뿐.

잠시 멈춰있던 그의 손이 다시금 움직이면서 논문을 완성해나가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한층 성장한 유도진의 모습이었다.

*   *   *

추석 연휴가 끝나고도 이렇게 시간이 지난 만큼,

그동안 최인호도 여러 가지 일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어느새 공사 중인 빌딩으로 출근한 지 꽤 된 최인호.

그가 손에 들린 서류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어느 정도 해결하긴 했는데, 아직도 갈길이 멀었네.’

어느덧 날짜는 10월 중순.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이 참 빠르게 가는 중이었다.

일단 병원 운영에 필요한 인원도 반 이상은 모았고, 공사 진행도 80% 가까이 끝난 상황.

‘슬슬 허준 선생 강의도 잡야야겠는데?’

그래서 일단 허준에게 연락한 최인호.

“자네. 대학 강의가 평일에 잡혀있다고 했었지?”

“네. 맞습니다.”

“그럼, 일요일에 시간 좀 괜찮나?”

“물론이죠.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별건 아니고, 자네 강의 한번 잡아 보려고 그러지. 말했다시피 방송 타기 전에 커리어를 좀 쌓아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인 거죠?”

그렇게 일요일.

허준이 평소에는 잘 입지도 않은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는 여의도로 향했다.

‘진짜 오랜만이네.’

생각해보니 여기서 예전에 선생님들 강의 들으러 몇 번 다녔었는데.

이젠 내가 강의를 할 줄이야.

도착한 강의 장소에는 이미 최인호와 박진석 선생님이 도착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 박진석 선생님?”

“오랜만이야. 자네가 강의한다는 소리 듣고, 궁금해서 와봤지.”

“부끄럽습니다.”

“부끄럽기는. 자 올라가세.”

박진석이 앞장서고,

최인호가 뒤따르며 허준에게 속삭였다.

“기대해. 자네의 첫 강의인 만큼, 꽉꽉 채워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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