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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44화 (144/230)

144화. 진맥 Lv. 4

“성님, 성님도 참 대단하우. 성님 간다니까 여기저기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걸 보니, 아주 부러워 죽겠어.”

김명자 할머니의 주방을 맡은 최명숙의 말이었다.

그녀 말대로 며칠 동안, 손님뿐만이 아니라 인사를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부럽기는. 한 10년 정도 한 자리에서 장사하다 보면 다 그런 거지.”

“에이~ 그럴 리가. 골목에 있던 과일가게나 옷가게 여편네들 떠나갈 적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대체, 비결이 뭐요? 평소에는 시장 사람들이 깐깐하고, 막말한다고 싫어하는 것 같더니만.”

그 말에 김명자가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가 깐깐하고 막말을 할 때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으니,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한 동네에서 10년 가까이 살다 보면 동네 주민들이나 인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개인 사정도 어느 정도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

때문에, 이미 술이 흥건하게 오른 상태라면 가족들을 위해서 더는 술을 팔지 않고 따끔하게 혼내며 돌려보낸다거나,

또는, 어떤 고민을 안고 술을 마시러 오면, 조용히 그것을 지켜보다가 무심코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이 술을 마실 때는 기쁜 이유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 때가 아니던가.

그런 고민을 차갑고 날카로운 한마디가 날아와 꽂히니 그런 별명이 붙는 것은 당연한 법일 터.

“비결은 무슨. 정신 못 차리는 놈에겐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고, 술 취해서 개된 놈에게는 술 더 안 팔면 되는 게지.”

당사자가 들었을 당시에는 충분히 기분 나쁜 말들이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녀의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들 충분한 나이였으니.

흡사 웃어른이 조언을 해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때문에, 그런 그녀가 떠나간다고 하니,

이렇듯이 찾아오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바른말 그거 쉬운 거 아니던데.”

“살면서 쉬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

그때, 허준한의원의 김예진이 이곳을 찾았다.

한의원 진료가 끝나기 전.

그러니까, 김명자의 술집이 개시한 지 얼마 안 된 그사이의 시간이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김 선생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웬일이긴요. 우리도 소문 듣고 왔죠.”

“그렇구만. 허준 선생은 잘 지내고 있지?”

“요즘도 매일같이 바쁘죠. 뭐.”

“잘하고 있구만.”

김명자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 오늘 저녁에 태용한의원 사람들과 우리 식구들이 모여서 함께 간단하게 한잔할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아무 때나 와. 자리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줄테니.”

“감사해요. 참, 그리고 허준 원장님이 진료 한번 보러 오시라던데요?”

그 말에 김명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보다시피, 요새 내가 좀 바빠서.”

그때, 주방 이모 최명숙이 말했다.

“성님. 허준 선생 좋아하잖아. 내가 진료 보고 올 동안에 혼자서 보고 있을 테니, 이따가 다녀오슈. 정 뭐하면 저기 김 선생이나 다른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되지.”

“그럼 되겠네요. 제가 와서 도와드릴 테니, 다녀오세요.”

그렇게 그날 저녁.

허준한의원을 찾은 김명자 할머니.

“어서 오세요. 할머니.”

“허준 선생. 오랜만이야.”

“그러게요. 가끔 와서 진료 보시지. 그동안 왜 이렇게 안 오셨어요?”

“내가 좀 바빠야지. 게다가 여기 사람들 많아져서 이제 서비스로 핫팩도 안 해준다면서. 태용네는 아직 핫팩도 해주거든.”

김명자 할머니의 답변에 허준이 피식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하셔도 아마 다른 환자들이 신경 쓰여서 그런 것이겠지.

“그래도 좋아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박용준 원장이 진료 잘 봐주나 봐요?”

“어~ 그 친구. 실력이 아주 많이 늘었어.”

“할머니. 잠시만요. 2층 입원실에 진료가 아직 안 끝나서 후딱 다녀올게요.”

“그려. 가서 일 봐.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허준이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고,

진료실에는 김명자가 홀로 남았다.

그녀의 눈이 진료실 곳곳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벽에 걸려있는 많은 사진.

사진에 나와 있는 표정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다들 기뻐하네.’

그런 그녀의 눈이 자신이 1층으로 확장 이전했을 때 보낸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화려한 색의 꽃이 가득한 화분.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화분이라 할지라도 꾸준한 관리가 없었다면 저렇게 만개한 모습은 아닐 터.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진료실 문이 열리며 허준이 들어왔다.

“많이 기다리셨죠?”

“괜찮아. 그럼, 오랜만에 진료 한번 받아 볼까?”

“허리랑 등은 불편하시지 않으세요?”

“요샌 통증도 별로 없어.”

“그럼, 진맥 한번 잡아 볼게요.”

허준의 말에 김명자 할머니가 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허준이 진맥을 잡았는데,

‘뭐야...?’

맥이 없다.

어떻게 산 사람이 맥이 없을 수가 있을까.

맥이 뛰지 않는 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너무나 놀란 허준이 감았던 눈을 활짝 떴다.

이어서 손끝을 타고 느껴지는 기운.

낯선 기운인데, 어디선가 한 번은 경험해본 감각이다.

‘분명히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어.’

그때,

“뭐혀? 왜 그리 놀라? 나 어디 아픈 거야?”

“아, 아니에요. 할머니. 오랜만에 오셔서 제가 조금 긴장했나 봐요.”

“싱겁기는.”

동시에, 정상적인 맥박이 느껴진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아무래도 요새 좀 무리했나?

어쨌거나 지금 느껴지는 맥은 생각보다 더욱 건강하신 상태.

다행이었다.

“표정 보니 별 이상 없는 것 같네?”

“네. 아주 건강하세요.”

“그래? 그럼 오랜만에 시원하게 허준 선생표 침을 맞아 볼까나?”

그렇게 진료실.

엎드린 할머니의 등과 허리에 허준이 침을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할머니. 어디로 가실 생각이세요?”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참, 궁금한 것도 많다. 가뜩이나 다른 사람들 고치느라 바쁜 선생이 뭘 그런 걸 다 물어봐?”

허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다 각자 갈 길이 있는 게지. 그러다가 인연이면 또 만나기도 하는 거고.”

하긴, 맞는 이야기다.

어디로 가시든 소식을 찾고자 한다면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여기 시장골목 사람들의 무서운 점이기도 하고.

“맞는 말이네요.”

그때, 알람이 울렸고.

허준의 손이 움직이면서 침을 뽑기 시작했다.

그러자,

“역시~ 허준 선생이 제일 시원하다니까.”

만족스러운 김명자의 얼굴.

그리고 그것을 본 허준이 미소지었다.

“참, 여기 진료비.”

이어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건네는 김명자 할머니.

여전히 바뀐 게 하나도 없으시다.

“지금 바로 가실 거죠? 저도 바로 준비해서 나올게요.”

“급할 것도 없는데,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

허준이 진료실에 들어가 퇴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

몸 안에서 그동안 잊고지냈던 감각.

그 감각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것이었다.

‘이 기억은 뭐지?’

작년 그날의 기억.

될 대로 대라 식의 감정과 함께 막걸리를 사러 가다가 만난 김명자 할머니.

“허준 선생이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무슨 안 좋은 일 있나 봐? 왠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

“어... 할머니? 등이랑 허리는 좀 괜찮으세요?”···

했던 말이 떠올랐고,

이어서 아까 느꼈던 감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바로 이 기연을 얻었을 때의 느낌.

‘설마?’

한동안 잊고지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 같은 기분에,

허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온몸이 물이라도 먹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는,

“허준 선생. 지금처럼만 해줘. 사람들 아프지 않게.”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그 말을 끝으로 세상이 시커멓게 변했다.

그런 허준의 귓가에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어? 원장님?”

허준이 고개를 들어보니 김예진 선생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마, 여기서 주무신 거예요? 어제 안 오신 게 그러면 여기서?..”

고개를 돌려보니 한의원 진료실이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몸도 가벼웠고, 머리도 그 어느 때보다 멀쩡한 상태.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이어서 어제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 허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김명자 할머니는요?”

“김명자 할머니요? 어제 진료 보시지 않으셨어요? 진료 다 받고 인사도 끝내고 오셨다던데?”

그제야 벽에 걸린 시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지금 어제저녁에 진료를 끝내고 아침까지 잠들었다는 이야기인가.

“아, 죄송해요. 제가 헷갈렸나 봐요.”

“원장님. 요즘에 너무 무리하셔서 그래요. 추석 때도 쉬지 않고 나오신 게 누적된 것 같은데.”

김예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고,

허준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그보다 김명자 할머니 전화번호 좀 불러주시겠어요?”

“아, 네. 데스크에서 바로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연락을 한 허준.

아쉽게도 연락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최명숙 씨에게 물어봐야겠어.’

김명자 할머니의 주방 이모인 최명숙 씨가 있었으니,

허준이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허준한의원 이허준입니다.”

“어? 원장님? 무슨 일이세요?”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김명자 할머니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해서요?”

“아~ 우리 성님? 성님, 오늘 아침 부로 고향 내려가신다고 하시던데요?”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그런 허준의 한쪽 시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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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모인 포인트가 보였고.

그것을 보니 풀렸던 맥이 돌아오며 다시금 몸에 힘이 솟아오른다.

‘다 각자 갈 길이 있는 게지. 그러다가 인연이면 또 만나기도 하는 거고.’

이어서 머릿속에 떠오른 한 마디.

그래. 내가 가야 할 길은 지금 김명자 할머니를 찾는 게 아니라, 진료 준비를 하는 거겠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만날 수 있을 터.

‘하던 대로만 하라고 했었지?’

*   *   *

“요새 원장님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그날 이후부터인 것 같은데.”

여기서 그날은 허준이 한의원 진료실에서 잠을 잤던 바로 그날이었다.

태용한의원과 허준한의원 식구들이 모인 이 회식 자리.

“아니, 근데. 허준 이 친구는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그러게요. 김명자 할머니가 그래도 옛날 허준한의원의 유일한 환자였다시피 했는데. 할머니 가신다는데 안 오실 줄은 몰랐죠. 제가 지금이라도 한번 가볼까요?”

박용준의 말에,

김명자가 안주를 내려놓으며 답했다.

“냅둬, 바쁜 일이 있는가 보지. 그래도 진료 보면서 얼굴 봤어.”

“아~ 우리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맞겠죠.”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각.

“우리도 이만 일어나죠. 내일 진료도 있는데.”

“하여간 허준 그 친구 배신이야 배신. 나중에 한마디 해야겠어.”

이런 이야기가 오가며 마무리된 자리.

하지만, 김예진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누구 하나 선뜻 말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출근해보니 진료실에서 앉은 채로 자고 있었다던데,

오히려 허준을 걱정하는 분위기로 바뀐 상황.

딱 그날부터였다.

엄청나게 달라졌다, 완전히 사람이 바뀌었다. 같은 느낌의 변화는 아니었으나, 분명히 이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모습.

물론, 당연히 좋은 쪽으로의 변화였다.

잠깐잠깐 진료시간에 만나는 환자들은 크게 느끼지 못했으나, 매일 같이 생활하는 식구들 사이에서는 확연하게 느껴지는 변화.

“뭐랄까... 마치, 이전보다 더 깊어진 느낌이랄까요?”

“오, 공감되네요. 그 표현.”

이런 분위기 속에서 허준의 눈앞에는 어느덧 5만 포인트가 넘는 포인트가 쌓여있었고,

잠시동안 고민한 허준이 그 포인트를 사용했다.

「‘진맥 Lv. 3’에 50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진맥 Lv. 3’이 ‘진맥 Lv. 4’가 되었습니다.」

[진맥 Lv. 4]

- 경맥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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