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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43화 (143/230)

143화. 한 번 봐 드려야겠어

짤랑짤랑-

방울 소리가 들리며 김정숙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자,

“왜, 왜 그러세요? 보살님.”

진주목걸이에 금반지를 한 아줌마 하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조아리며 물었다.

“이짝에 있는 사주를 가진 사람과 저짝 친구는 영 안 맞아. 괜히 섣불리 집안에 들였다가는 자네도 고생길이 훤하고~ 상대 쪽 집안도 고생길이 훤하니. 애초에 시작하지 말아야 할 팔자라 이 말이야.”

“그, 그 정도로 안 좋은가요?”

“그럼. 본디 사람과 사람이 엮이는 인연이란 것도 균형이 중요한 법인데, 지금 이 두 친구 모두 불같은 성질을 가진 친구이니, 사이가 좋을 때야 같이 함께하며 따듯함을 느끼겠지만.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어떻게 되겠어? 온 집안에 불을 지르는 바로 그런 팔자인 게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벌써 상견례도 하고 날짜도 잡았는데...”

그 말에 김정숙, 아기보살이 헛기침하며,

촤라락- 하고 부채를 펼쳐 들어 올렸다.

“하지만, 방법이 꼭 없는 것도 아니지. 내가 부적을 하나 써줄 테니, 꼭 집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이도록 해. 이 부적에 있는 기운이 집안이 거덜 나는 것을 막아줄 테니까.”

그렇게 부적을 만들어 넘긴 김정숙.

그런 김정숙을 향해 아줌마가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인다.

이어서 주머니에서 두툼한 흰 봉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는데,

김정숙이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덧붙인다.

“아줌마. 김장하지 말아. 요새 누가 그렇게 김장한다고 그래. 그냥 사 먹어. 알았지? 이 말 꼭 명심해야 해.”

“김장이요?”

되물음에 답이 들리지 않지만,

김정숙의 표정을 본 여인이 대답했다.

“아,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보살님.”

“명심해. 그거 하는 순간, 부적도 소용없어.”

새로 터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도 이미 아기보살의 명성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만큼 용하게 잘 맞췄으니까.

그녀가 집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김정숙.

머릿속에서 아기보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언제 둘이 안 어울린다고 했어? 잘 될 거라고 했잖아.”

“아이~ 우리도 먹고살아야죠. 그래야 보살님 좋아하는 치킨, 햄버거 이런 것도 마음껏 먹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그, 그런가? 어쨌든 둘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알아서 잘 살 팔자인데...”

“그럼요. 잘 살거예요. 그런데, 보살님. 마지막에 갑자기 오셔서 김장하지 말라는 건 왜 그러신 거예요?”

“아~ 그거? 별건 아니고. 저쪽 아줌마네 집이 김장을 몇백 포기씩 하더라고.”

“예? 요즘도 그런 집이 있어요?”

김정숙이 놀라 되물었다.

김장을 몇백 포기씩 하다니, 아무리 잘 맞는다고 해도 저 정도면 싸움이 일어나고도 남겠네.

“그보다 준비해. 조금 이따가 손님이 찾아올 거야.”

“오늘 예약 없는데요?”

그렇게 점심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

김정숙을 찾아온 최은진.

최은진이 빨간 깃발이 걸린 작은 집을 발견하고 그대로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열려있으니까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진이라고 합니다.”

최은진이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김정숙이 그 명함을 받아들고는 최은진을 한번 스윽 바라봤다.

“음... 뭐가 그리 궁금해서 여기까지 이리 먼길을 달려왔을까~?”

그 물음에 최은진이 움찔거렸다.

뭐야 이거. 용하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더니 진짜인가?

실제로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꽤 먼 거리를 달려왔고 궁금한 게 있어서 그녀를 찾은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이거 소름 끼치네.’

왠지 모르게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허준 원장님의 영상을 발견했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김정숙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신기도 조금 있어 보이고, 감각이 조금 예민한 편이지? 사람도 잘 보고 말이야.”

“그, 그걸 어떻게?”

“보살님이 지금 말해줬거든요.”

최은진이 약간 어벙한 표정으로 김정숙을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여기 무엇이든 알려준다면서요?”

“그럼요, 복비만 낸다면.”

“여기요.”

이어서 준비해온 돈을 김정숙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여기로 이사를 오기 전에 계시던 시장 골목의 아기보살님 맞으시죠?”

“네. 맞아요.”

“거기 시장에 있는 허준한의원의 원장님과도 아시는 사이고요?”

“허준 원장님 말하는 거죠? 잘 알다마다요. 저도 원장님에게 치료도 받았는 걸요. 어찌나 실력이 좋던지. 얼마나 재주가 좋으신지 글쎄, 시장 골목에서도 용하다고 소문이 자자하시죠.”

최은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게 찾아온 듯싶었다.

“그럼, 그 소문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허준 원장님이 귀신이 쓰였다던가, 귀신을 본다든가 하는 그런 소문이요.”

김정숙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었다.

“그냥 소문이뇨 뭐. 허준 선생이 워낙 귀신같은 솜씨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거지. 헛소문이야 헛소문.”

“그럼, 김정숙 씨는 왜 한동안 피해 다녔어요? 또, 저한테 신기가 느껴진다면서요? 지금도 그렇고 허준 원장님을 볼 때, 가끔 이렇게 소름이 막 돋고 그러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세요.”

“하~ 이거, 딸랑 5만 원짜리 한두 장 가지고 대답해 줄 수 있는 게 아닌데.”

최은진이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몽땅 꺼내 탁자 위로 올렸다.

그 모습에 김정숙이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 이런 말 하기는 조금 뭐한데. 자 한 번만 알려줄 테니까 잘 들어야 해요? 허준 원장님 그분이 기운이 굉장히 세거든요. 우리 업계로 치면 잘못 엮이면 내 기운이 빠져나간다 이런 사람이에요. 그러니, 신기가 조금 있는 자네도 허준 원장에게서 그렇게 가끔 느끼는 게 당연한 거죠. 이제 이해가 됐지요?”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에 최은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안 되고 그 어떤 것으로도 증명할 방법이 없는걸.

한마디로 시간만 날린 셈이었다.

그 분함에 최은진이 탁상 위에 올린 현금을 집어 들고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그대로 떠나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김정숙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 맞죠?”

“암~ 괜히 그 할매랑 엮여서 좋을 거 없어.”

*   *   *

1년 전쯤.

허준한의원에서 총명탕을 직접 주문하러 온 고등학생 이민혁.

당시 히어로 오브 레전드의 챌린저 승급에 성공하는 것을 넘어서서 지금은 어엿한 프로게이머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첫 데뷔전.

대기실에서 팀원들과 코치 그리고 감독과 함께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며 작전 회의까지 끝낸 상황.

게임이 시작하기까지 10여 분이 남은 이 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런 이민혁의 손에 검은 액체가 담긴 한약이 들려있었으니까.

그렇게 화려한 데뷔전을 승리로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오니 그의 플레이를 본 팀원들이 환호했다.

“야~ 민혁이 오늘 폼 장난 아니네? 봤어? 원래 잘하는 놈이 오늘은 아주 미쳐 날뛰더라. 대체 비결이 뭐야?”

“맞아. 우리도 좀 알려줘.”

“운이 좋아서 그런 거지 뭐.”

그러나 프로게이머가 될 만큼 게임을 하다 보면 모두 안다.

운이 좋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혹시 저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누군가 이민혁이 마시고 놔둔 약봉지를 가리켰다.

평소에도 매일같이 한 봉씩 마시는 한약.

“그러고 보니 수상하네? 저거 뭔지 빨리 말해봐.”

“아~ 그런 거 아니야. 총명탕이라고 알지? 한의원에서 살 수 있는 거. 그냥 우리 동네에 있는 허준한의원데에서 사 온 건데, 나 챌린저 승급 때 저거 마시고 바로 연승으로 찍었거든. 일종의 징크스 같은 거야.”

“그래? 우리도 언제 한 번 가볼까?”

“아무렴 어때. 우리가 이겼는데.”

“그렇지. 오늘처럼만 쭉 가자 민혁아.”

그렇게 이곳저곳에서 허준한의원의 이름이 퍼져나가고 있을 때,

또 다른 남자의 손에도 그 약이 들려있었다.

강남의 재수학원.

검정고시, 재수생 등등이 모인 이 반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있는 장본인.

바로, 산악인이었던 박상준이었다.

그가 반에서 1등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데도 그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고 한 이유는 하나다.

기초반에서 지금, 이 최상급 반까지 몇 달 만에 쭉쭉 치고 올라온 괴물이었으니까 말이다.

나이도 그리 적지는 않은 편이었기에, 어느새 같은 반에서 맏형이 되어있는 그의 손에는 늘 같은 보약이 들려있었다.

‘허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시원하게 한 포 들이키고, 몸을 좀 움직이니 금세 멀쩡해지는 정신.

최고의 컨디션으로 그가 모의고사에 임했고, 그의 기록을 또 한 번 갈아치우는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형. 진짜 대단하다.”

“아니 진짜 예전에 산만 탔던 사람 맞아? 사기캐 같으니라고.”

이렇듯 여기저기에서 직, 간접적으로 허준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포인트는 쭉쭉 올라가 어느새 3만을 넘어서고 있었고.

무엇보다.

「당신의 명성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명성 퀘스트의 진행도가 조금씩 상승하는 중이었다.

‘좋아.’

허준이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다음 환자를 맞이했다.

이재혁. 신장결석으로 수술한 뒤에 속이 더부룩하다며 찾아온 환자였다.

그런 그의 옆으로는 진행도가 나타나 있었는데,

80%가 넘은 상태.

한의원에 내원한 이후, 잘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통증이 사라지고 더부룩한 속의 불쾌감이 마법같이 사라진 그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연휴는 잘 보내셨죠?”

“그럼요.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진맥 한번 잡아 볼게요.”

그렇게 맥을 잡은 허준.

이전에 느껴졌던 열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장부들의 기운도 아직 완전치는 않지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각 장부와 이어진 맥도 모두 건강하게 뛰었고, 손끝을 타고 느껴지는 기운 또한 마찬가지.

‘금방 좋아지겠는걸.’

아마도 조만간에 완전히 회복된 컨디션으로 돌아올 터.

본래 치료도 그렇듯이 첫 시작이 어려울 뿐, 회복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가속이 붙는 것이 인간의 몸이었으니,

“좋네요. 잠을 잘 못 주무신다거나, 다른 불쾌감은 따로 없으시죠?”

“네. 요즘에는 아주 그냥 푹 잡니다.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그 체육관도 퇴근하고 꾸준히 다니는 중이고요.”

“잘하셨어요. 그럼, 치료실로 가실까요?”

*   *   *

이렇게 다들 추석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는 와중에, 시장 골목에서도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었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태용한의원 박용준 원장.

김태식이 출근하자마자 박용준이 진료실로 달려들었다.

“원장님.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박 원장.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해? 이제 막 출근한 사람한테.”

“김명자 할머니 이사가신대요.”

“김명자 할머니?... 뭐?! 시장 골목에 있는 우리 단골집?”

“네. 거기요.”

그러자,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두철이 물었다.

“유명하신 분인가 봐요?”

“아, 자네는 모르는 게 당연하지. 정말 많은 추억을 나눈 분이지...”

김태식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있었던 곳인 데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종종 혼자서 마시던 마음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

이는 비단 김태식뿐만이 아니었다.

박용준에게도 마찬가지인 장소였으니까 말이다.

아니, 시장 골목에서 장사 좀 해봤다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오죽하면 한의원은 김정우 선생님, 술집은 김명자 할머니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안 되겠네. 오늘 진료 마치고 인사라도 드리러 가자고.”

“당연히 그래야죠. 허준네 선생님들한테도 연락할까요?”

“당연하지.”

그렇게 연락을 받은 허준네 한의원.

당연히 그 이야기는 허준의 귀에도 들어갔다.

‘김명자 할머니가 떠나신다고?’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지만, 막상 닥치니 괜스레 울컥한 감정이 올라온다.

김명자 할머니가 누구시던가.

아무도 없는 파리 날리는 한의원을 꾸준히 찾아준 유일한 단골 환자였던 분이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진료 보러 안 오신지도 한참 되었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진료부터 한 번 봐 드려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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