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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42화 (142/230)

142화. 찾았어

“허준 선생님을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김강현 대표님한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요.”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김강현의 말 한마디면, TV에 출연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처음 최인호를 봤을 때부터 느낀 감각.

눈앞의 남자는 생각보다 더 뛰어난 수완을 가진 사업가다.

협상에 있어서 자신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것도 아주 정확하게.

“그렇게 해주시면 대표님이 원하는 식구들의 케어. 우리가 책임지도록 하죠. 아마 그 어디보다도 만족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김강현은 이런 사람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큰 이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역시, 김 대표님. 듣던대로 성격이 아주 호탕하시네요. 우리는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습니다.”

최인호와 김강현.

두 사업가가 한 번 더 손을 마주 잡았다.

그렇게 일단락을 끝낸 최인호가 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허준 선생. 진료는 마쳤나?”

“네. 이제 곧 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별거는 아니고, 지난번에 말했던 이야기 있잖아? 방송 출연에 관해서.”

“말씀하시죠.”

허준이 한의원을 나서며 답했다.

“아직 날짜는 미정이고, 스타 엔터랑은 협의가 됐어. 내년부터 우리 한방병원에서 케어해주기로.”

“그렇게 됐군요.”

“너무 걱정하지마. 자네가 직접 붙어서 진료를 볼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원장님께서 잘 해주시겠죠.”

“그건 그렇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어. 자네, 대학교 강의 말고 한의사들에게도 강의 좀 하게.”

“강의요?”

허준의 되물음에,

“그래. 강의. 자네가 잘하는 침술도 괜찮고, 추나도 괜찮고 아무거나 하고 싶은 대로 좀 보여줘. 말했잖아. 자네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한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한 발판이라고나 할까?”

허준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의견은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제안이었으니,

대학 강의 때에도 매번 퀘스트가 나오는 것처럼, 강의한다는 것만으로도 퀘스트가 나올 확률이 꽤 높을 터.

그리고 그것은 곧,

‘포인트와 명성.’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채울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자네가 다큐멘터리로 꽤 이슈 몰이는 했지만, 이게 방송 판에서는 또 이야기가 다르거든. 거기는 자네와 다르게 반 방송인 같은 전문가들이 자리하고 있어. 고정 팬들도 있고 입김이 강한 사람도 있지. 오히려 자네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도 있을걸? 그러니, 지금 자네가 할 일은 자네 말이 쉽게 무시당하지 않도록 하는 걸세.”

“저도 바라던 바입니다. 준비하도록 하죠.”

허준이 흔쾌히 답했다.

*   *   *

이렇게 허준한의원 식구들이 각자 바쁘게 연휴를 보내고 있을 때, 바쁘게 뛰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으니.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날카로운 눈빛, 무표정한 얼굴로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저택으로 들어섰다.

양손에는 보약을 들고서.

“아이고~ 우리 유 선생님 오셨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나야 늘 자네가 신경을 써준 덕분에 팔팔하지.”

“다행입니다.”

“그보다 자네. 추석인데 가족들 얼굴은 보고 왔나?”

노인의 물음에 유도진이 잠시 망설였다.

가족이라... 뭐, 보고 오긴 했으니.

“네. 만나 뵙고 왔습니다.”

“잘했네. 잘했어. 그럼 내가 조금은 덜 미안해도 되겠구만. 이렇게 추석 연휴 때 자네를 부르자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그러면서 탁자 위에 풀려있는 공진단을 하나 손에 들었다.

“햐~ 역시. 이 거지.”

솔솔 풍겨오는 향긋한 약재의 향.

그것을 그대로 한입에 넣고 씹으며,

“참, 그러고 보니 내가 엊그제 재미난 것을 봤는데 말이야. 혜민서란 단체가 있더라고. 자네 가슴에 달린 그거 혜민서 표시 아니야?”

“맞습니다.”

“허, 그럼 자네도 주말마다 봉사활동도 다니고 그러는 겐가?”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자네 실력만 좋은 줄 알았는데, 마음 씀씀이도 훌륭하구만. 그렇게 다니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과찬이십니다.”

노인이 그런 유도진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여전히 차갑고 쌀쌀맞은 성격은 그대로지만, 그 차가운 가운데서 따듯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아니, 이 친구야. 그런 좋은 일을 하고 다니면 진즉에 나에게 말을 했었어야지. 섭섭하군. 받게.”

“이건...?”

“이쪽은 보약값. 그리고 이쪽은 자네들이 이뻐서 주는 후원금이라 생각하게. 뭐, 후원금 쓰기 싫으면 자네가 써도 그만이고.”

노인이 말하며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굳이 요즘 시대에 계좌이체 같은 편한 방법이 있었음에도 이렇게 직접 현금으로 주는 이유는 그저 예전부터 이래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계좌이체는 물론이요, 말해둘 테니 이쪽으로 연락을 달라고 명함을 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어찌 됐거나, 이렇게 가는 곳마다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었으니,

추석 연휴를 마치고 출근한 유도진.

오늘은 김예진 선생이 한 발 더 빠르게 출근해 있었다.

“유도진 선생님? 연휴 잘 보내셨어요? 그건 뭐예요?”

김예진이 유도진이 손에 들고 온 상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것이 허준한의원이라 적힌 보약 상자였기 때문이리라.

“아, 이거. 받으세요.”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아뇨. 혜민서에 보내는 후원금이라던데요.”

“그게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정우한의원에 다니시던 환자분들이 주셨어요. 좋은 일에 써달라고.”

김예진이 보약 상자를 열자,

현금이 가득하게 담겨 있었다.

‘세상에, 이게 다 얼마야?’

유복하게 자란 김예진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많은 현금을 직접 본 일은 거의 없었으니.

잘 놀라지 않는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어서 든 생각은.

이거 혹시 불법적인 일에 연루된 거 아니야? 하는 의심.

많은 사람이 이렇게 현찰 다발을 상자째로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이런 이야기 아니겠는가.

“저... 유도진 선생님. 이거 원장님에게 말해도 되는 돈 맞죠?”

“물론입니다. 참, 이것도 받아 주세요.”

“이건 또 뭔가요?”

“명함들인데, 그쪽으로 연락해보면 아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입원실 진료가 있어서.”

“그, 그러세요.”

그렇게 허준의 출근.

오랜만에 식구들이 전부 출근해서인지, 유난히 묘한 분위기를 느낀 허준이었다.

“아, 원장님. 오셨어요?”

“김 선생님. 연휴 잘 보내셨죠? 근데, 무슨 일 있었어요? 이상하게 분위기가 어수선한 느낌인데.”

“그게...”

김예진이 허준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했다.

허준도 살짝 놀란 부분이 있었으나,

‘정우한의원에 있던 VIP 환자들을 유도진 선생님이 맡고 있다고 했었지.’

얼마 전에 최인호 원장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게다가 이어진 김예진의 이야기.

“안 그래도 방송 나가고 난 뒤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후원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더라고요. 이것도 다 유도진 선생님이 아시는 분들이 보내온 걸까요?”

거의 확실했다.

아무래도 유도진 선생님이 연휴 동안 쉬지 않고 일했나 보다.

“아마 그런 것 같네요.”

“그럼, 정말로 혜민서 후원금으로 사용해도 되는 거 맞겠죠?”

“물론이죠. 유도진 선생님이 조금 차갑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짓을 하는 분은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원장님 말대로 할게요.”

이 사건으로 인해서 유도진에 관한 소문이 하나 생겨났다.

알고 보니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부잣집 도련님이었다는.

물론, 유도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지만.

어쨌거나 그 소문으로 까칠하고 차가운 반응을 이해가 간다는 환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허준한의원 식구들이 모이자,

연휴 기간보다 훨씬 힘이 넘치게 돌아가기 시작한 허준한의원.

특히 이제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늦게나마 총명탕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 또한 많았다.

오죽하면 프리미엄 총명탕을 위해 어머니가 학생의 손을 잡고 찾아올 정도였으니,

허준이 눈을 감고 느껴지는 것들을 떠올렸다.

‘스트레스로 인해서 열기가 위쪽에 뭉쳐있네.’

이럴 땐 제대로 순환을 시키기 위해서 물꼬를 터주는 것이 필요한 법.

아무래도 침 치료로 그 물꼬를 터주고 총명탕 안에 들어가는 원지를 조금 더 넣어야겠네.

“아드님이 스트레스가 많으신 것 같네요. 총명탕은 내일모레 찾으러 오시면 될 것 같고, 오늘은 일단 가볍게 침 한두 군데 맞고 가시면 한결 편해지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밥 선생님. 안내 좀 부탁드릴게요.”

“네. 원장님.”

그렇게 치료실에 다녀온 허준.

어디 다음 환자도 확인해볼까.

아니나 다를까.

또 10대의 어린 친구다.

그런데,

‘총명탕이 아니네?’

속이 더부룩하다.

설사가 잦다?

아무래도 추석이 껴있다 보니,

배탈이 났나 보군.

이런 증상에는 뜸 한방이면 금방 좋아질 터.

허준이 곧바로 데스크에 메시지를 보냈고,

그렇게 진료실로 들어온 모자.

동시에 허준의 눈에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났다.

<친구를 가지고 싶은>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00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야?’

허준의 눈이 한 번 더 환자 김현우에게로 향했다.

육중한 체구와 여드름이 가득한 피부를 가진 학생.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 네. 어머님.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죠.”

그렇게 두 모자가 허준의 앞으로 오는데,

김현우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다시 휙 하고 돌아오는 모습

‘틱 증후군?’

그제야 무언가 이해할 것 같은 허준.

“죄송합니다. 선생님. 놀라셨죠?”

“아닙니다.”

“우리 애가 틱이 조금 있어서요. 약을 먹고 있기는 한데, 아직도 가끔 씩 저러더라고요.”

“약 먹은 지는 오래됐나요?”

“네. 한 1년이 조금 넘은 것 같아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결코 가벼운 증상은 아니라는 것일 터.

“소화가 잘 안 된다고요?”

“현우야 선생님께 말씀드려.”

엄마의 말에 김현우가 답했다.

“속이 더부룩하고, 배가 싸리하고, 가끔 토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알겠습니다. 혹시, 다른 일로 병원에 갔던 적은 없습니까?”

“다른 병이라면..?”

“간단하게 무좀이라던가 하는 것들이라도요.”

그 물음에 김현우 대신 엄마가 답했다.

“아 몇 달 전에 수막염을 앓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어릴 때는 물사마귀 때문에 고생을 조금 했고요.”

“그렇군요. 그럼, 진맥부터 한번 잡아볼까요?”

그렇게 허준이 김현우의 양손을 잡고,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증상대로 위장, 대장이 안 좋다.

거기에 더해서 폐까지.

‘생각대로네.’

환자의 체질은 태음인.

애초에 대장과 폐가 약한 체질이다.

거기에 더해서 수막염과 물사마귀.

이것은 전부 면역력에 관계된 질환들이었으니,

‘몸의 면역력이 낮다는 뜻일 터.’

즉, 림프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림프는 몸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처리해주는 하수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으니까.

이런 노폐물 처리가 제대로 안 되면 나중에는 근육경직이 생기고 나아가 신경질환까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틱이 생겨난 것이겠지.’

온기탕을 통해 몸의 활력을 불어넣는 거로 시작하는 게 좋겠어.

폐와 대장의 경락에 침과 뜸치료를 병행해야겠군.

결정을 내린 허준이 눈을 뜨며 말했다.

“아무래도 소화불량이나 배가 싸리 한 것 그리고 틱 증후군까지 전부 몸의 균형이 깨져서 나타난 증상입니다. 조금 자세히 설명해 드리자면···.”

허준의 설명이 이어졌고,

증상과 원리가 딱딱 들어맞았기에 쉽사리 이해한 김현우의 보호자.

“선생님.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바로 투약을 금지하면 틱이 오히려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온기탕을 같이 사용하면서 반응을 보고 서서히 투약량을 줄여나가기로 하죠. 그리고 침과 뜸을 병행해 치료할 생각입니다.”

*   *   *

추석 연휴가 끝나고 방송국.

출근하는 최은진을 보자마자, 한 여인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아침부터 뭐야? 징그럽게.”

“선배. 선배가 부탁한 김숙자 씨. 찾았어.”

“뭐!? 어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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