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39화 (140/230)

139화. 오빠 TV 나오는데

밥 선생의 말대로였다.

이두철이 좀 전에 보고 느낀 것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대체, 이 선생님들 뭐하시던 분들이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은 대학병원에 붙어있는 한방병원이나, 대형 한방병원에서나 할법한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이 작은 동네의 한의원 원장들이 아니던가.

얼마 전의 자신과 같은 원장이란 뜻이다.

눈앞에서는 선생님들의 치료 사례들과 그에 대한 질문 또는 다른 사례들로 넘어가며 열정적인 토론을 하는 중이었고,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허준이었다.

“이번에 발표할 사례는 선생님들께서 기다리신 초기 위암 환자입니다.”

“오.. 드디어!”

모두가 궁금해하던 그 일이 허준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행해왔던 치료부터 과정까지.

“그러다가 결국 입원 치료로 전환했습니다. 아무래도 연세도 있으신 데다가, 선생님들께서도 아시다시피 환자분들의 생활습관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치료횟수를 늘리고 입원실 규정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잠정적으로 검사결과를 확인한 뒤, 통원치료로 다시 전환했습니다.”

이렇게 발표가 끝나면 어김없이 선생들의 질문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에 대해서 허준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낱낱 하게 사실대로 대답하고, 그 대답을 들은 선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은 치료 사례가 많지 않아서, 뭐라고 확립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네요. 그래도 한의학으로 완치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암세포의 활동이 멈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치료 효과가 있다고는 생각됩니다.”

“내 생각도 같아. 물론, 언제든 다시 재발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겠지만. 그래도 이거 듣고 보니 정말 굉장한걸?”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가 끝나고,

귀갓길.

“이 선생님. 오늘 어떠셨어요?”

“솔직히... 이런 모임인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사례공유와 진료에 관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

“그래요? 어떻게, 내용은 괜찮으셨어요?”

“네. 정말 놀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쩌다 운 좋게 얻어걸린 치료 사례들을 모아 발표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대답에 박용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자신도 그랬으니까.

예를 들어 한의원에 찾아온 환자의 증상을 보고 똑같이 처방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 환자가 감사하다고,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하면서 인사를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이런 일은 모임이나 친구들끼리 만났을 때,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기 마련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던가.

‘옛날 생각이 나네.’

“선생님도 자주 참여하시다 보면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앞장서서 길을 터주는 선생님들이 계시니까요.”

그때, 옆에서 걷던 김태식이 말했다.

“이 선생.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푹 쉬어. 내일은 아마 더 놀랄 테니까.”

“내일요?”

“응. 자네도 최 원장님께 들었지? 봉사활동에 관해서 말이야.”

“아, 네. 알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내일이거든.”

그렇게 다음 날.

진료가 끝나고 선생님들을 따라나선 이두철의 눈앞에 생소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어제 겪었던 일들로 허준 원장이 엄청난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두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조금 무뚝뚝하고 날카롭게 생겼지만,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는 유도진 선생.

그 옆에는 정확한 발음으로 환자의 진료를 이어 나가는 밥 선생.

‘어제와는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아.’

특히, 가장 충격적인 것은 같이 근무하는 두 원장이다.

엄청난 진료 속도.

‘정말, 내가 알고 있던 두 원장님이 맞나?’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저렇게 서슴없이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그만큼 엄청나게 많은 임상경험이 있다는 것일 터.

그뿐만이 아니다.

두 원장에게 진료를 받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환자의 태도나 표정에 변화가 나타난다.

환자가 진료에 아주 만족했다는 뜻.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는 이두철이었으니,

‘부끄럽다.’

그저 자신과 같은 한의사 선생님들이라 생각했었는데, 어제의 충격적인 일에 이어서 직접 진료를 보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제야 면접 때 왜 이 봉사활동을 참여하라고 하는지에 대해서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

이두철이 다짐과 함께 앞에 앉은 할머니를 맞이했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그의 모습이 어느새 다른 선생들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   *   *

한편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도 혜민서의 이름 아래에 모인 사람들이 활약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곳 중 하나에 도착한 최은진과 촬영팀.

“와~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었네요?”

“그러게. 나도 얼핏 듣기는 했는데, 이정도 일 줄은 몰랐지. 참, 오늘 촬영 협조해주신다는 선생님이 누구셨지?”

최은진의 물음에 막내 박슬기가 답했다.

“고영웅 선생님이라고, 이쪽 동네에서는 꽤 유명하신 분이래요.”

“그래?”

“네. 저 아래에서 작은 한의원 하시면서 혼자서도 오래 봉사하셨더라고요. 그래서 XX동의 허준이라고 불린대요.”

그 말에 카메라를 들고 있던 김종훈이 피식 웃었다.

요즘 들어 왠지 모르게 낯선 느낌 때문이었다.

“왜 웃어?”

“아니에요. 아직도 적응이 안 돼서요.”

“뭐가?”

“그렇잖아요. 옛날에 한창 사건 사고 파헤치면서 고발하려고 인터뷰 따러 다닐 때는 세상에 나쁜 놈들이 이렇게 많나 싶었는데. 요즘에는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 착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최은진이 웃으며 답했다.

“나도 그래. 그래서 왠지 모르게 더 힘이 난다고 할까?”

그때, 한 젊은 한의사가 촬영팀을 마중 나왔다.

그가 한의사임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가슴에 달린 혜민서 배지 때문이었다.

“오늘, 촬영하러 오신다고 하신 분들 맞으시죠?”

“아, 네. 최은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최승환이라고 합니다. 고 원장님께서 보내셔서 마중 나왔어요.”

“이쪽은 카메라 담당 김종훈, 저쪽은 막내 박슬기라고 해요.”

“모두 반가워요. 그럼, 가시면서 이야기하실까요?”

그렇게 최승환을 따라가는 최은진네 팀.

당연히 이동하는 와중에도 질문이 이어졌다.

“최 선생님도 혜민서 회원이신가 보네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 배지 때문에요.”

“맞습니다. 알아보시네요?”

“그럼요. 혜민서 관련 차 촬영하러 왔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혜민서 활동한다고 주말에 오시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

“당연히 힘들죠. 그런데 막상 하다 보니까 계속 나오게 되더라고요.”

머쓱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하는 최승환.

그런 그에게 최은진의 물음이 이어졌다.

“왜요?”

“사실은 이 동네에서 고 원장님 혼자서 봉사를 하고 계셨거든요. 저야 뭐, 혜민서 가입해서 영상 좀 보려고 참여했는데, 사람이라는 게 아무래도 정이 있잖아요. 그날 끝나고 다음에도 또 올 거지? 라고 웃으며 물으시는데, 거기다 대고 아니라고 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보니 이렇게 됐네요.”

선하게 생긴 그의 모습대로 정많은 성격인 듯 싶다.

“그럼 혜민서 회원으로 활동을 하고 나서 좋은 점들이 있었나요?”

이어진 최은진의 물음.

그리고 그 뒤로 돌아가는 카메라에 이 장면들을 모두 담고 있는 김종훈.

“좋은 점들이라... 말로 설명을 다 할 수가 없네요. 진짜 많았거든요. 일단 환자분들이 좋아하세요. 그러다 보니까, 제 실력이 조금 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부심이죠.”

최승환의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촬영팀은 고영웅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웃으며 인사하는 고영웅 원장.

기분 좋은 미소, 인자한 얼굴, 그리고 깨끗한 눈빛.

그 모습에 최은진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느낌을 이미 받아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닙니다. 오늘 바쁘실 텐데, 촬영에 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오히려 우리가 더 감사하죠.”

“바로 시작해 볼까요?”

“네. 그러시죠.”

“인터뷰는 선생님께서 편할 때, 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촬영.

카메라에는 한의사 셋과 그 세 한의사를 반기는 환자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뭔가 아름답네요. 가족 같은 분위기 인걸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루 이틀 하신 게 아닐 테니까요.”

피를 나눈 형제 가족은 아닐지라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왔으니 가족과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몇 시간 뒤,

인터뷰가 이어졌다.

“XX 동의 허준이라고 유명하시던데요?”

“과분한 호칭이죠.”

“그러기에는 어르신들께서 선생님을 완전히 아들처럼 대하시는걸요?”

“아무래도 함께해온 세월이 있으니까요.”

“그동안 홀로 이렇게 해오셨다던데.”

“맞아요.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죠. 오시면서 보셨겠지만. 동네가 동네이다 보니까요.”

최은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그럼, 이번에는 혜민서에 관련해서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물론이죠. 혜민서라는 단체는 전국적으로 이렇게 주말이 되면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혜민서란 단체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어쩌다 가입하시게 되었나요? 이미 그전에도 혼자서 잘 해오고 계셨잖아요.”

고영웅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사실, 저도 사람이라서 지치고 힘들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막 도망가고 싶고, 그만두고 싶고. 그러다가 혜민서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죠.”

이어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허준이란 선생을 만나고 그날 있었던 사건, 그리고 그 일이 이후로 생겨난 일들까지.

“그래서 지금은 혜민서 회원인 친구들이 번갈아 가면서 이렇게 참여하는 중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저는 기쁘죠. 아마, 이런 일이 전국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 있으실까요?”

“얼마나 많은 분이 이것을 보실지 모르지만, 여러분들께서 봉사활동에 참여 하지 않아도, 후원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냥 응원만 해주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   *   *

이렇게 각자가 바쁜 나날을 맞이하면서 어느새 추석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허준한의원과 태용한의원 모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여기요 원장님.”

김 선생이 휴가계획표를 허준에게 내밀었다.

“데스크 선생님들 다 포함된 거죠? 도영철 선생님 이름이 안보이네요?”

“도영철 선생은 추석 연휴 간 그대로 당직 서주기로 했어요. 대신에 추석 연휴 끝나고 휴가를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이대로 가도 문제 없겠네요.”

“그런데, 원장님은 휴가 안 가세요?”

그 물음에 웃음으로 대답한 허준.

김예진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분명 대답한 거야.’

그렇게 추석 연휴가 되었고.

한의원에는 허준과 밥이 남아 진료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TV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강남의 고층 오피스텔에서 커다란 TV를 바라보며 와인을 들이키던 김진수가 눈이 빠져라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엔 분명히 확실하게 내보내 준다고 했지?’

다른 건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나오냐가 중요할 뿐.

그렇게 다큐멘터리가 이어져 나가고,

여러 인터뷰와 함께,

혜민서란 단체가 드러나게끔 연출된 모습.

김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혜민서가 여기서 왜 나와?’

그러더니 드디어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데,

기껏 준비한 대사와 배경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한 장면만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이익!”

분에 못 이겨 시뻘게진 얼굴.

동시에, 다른 곳에서는 다른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엄마. 오빠 TV 나오는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