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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25화 (126/230)

< 125화. 이번에는 무조건 내보내 드릴게요 >

125화. 이번에는 무조건 내보내 드릴게요

김예진과 최은진 두 여인이 2층에 올라가 있는 동안,

1층에 남아 있는 선생들에게 허준이 말했다.

“참, 선생님들. 여기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최인호 선생님이라고.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한 번 더 소개해 드리죠. 앞으로 우리와 함께 해주실 분입니다.”

“네?”

“정말요?”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정확히 세 가지 반응으로 나누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김형서 원장이나 밥 선생처럼 박수로 환영하는 사람.

그리고 이미 최인호가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

함께 하기로 했다는 것을 유일하게 먼저 알고 있던 김태식 원장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박용준 원장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런 김태식 원장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이 중에서 가장 티 나게 놀란 사람은 바로,

‘유도진 선생님의 저런 표정은 처음 보네. 사이가 안좋다더니.’

그때, 최인호가 나서며 인사했다.

“최인호라고 하네. 날 아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어찌 됐건 앞으로 잘 부탁하네.”

그렇게 파격적인 소식이 전해지고,

“그럼, 내년에 최 대표님도 함께 하는 거예요? 우와...”

이렇게 방정을 떠는 박용준 원장.

그리고 그런 박 원장에게 되묻는 순진무구한 밥 선생.

“최 대표님이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에요?”

“밥 선생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이 동네에서는 유명한 분이에요. 허준 선생님도 우리 최 대표님한테 추나를 배우셨다니까요?”

“그래요?”

이번엔 밥 원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하늘처럼 느껴지는 허준 원장에게 추나를 가르쳐준 선생님이라니!

“대단한 분이시지. 암, 대단한 분이야. 그리고 그런 최 대표를 영입할 생각을 한 허준 선생은 더 대단하고.”

한의원이건 사업이건 크게 차리면 크게 망한다는 법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당연히 초기 투자자본이 들어가는 게 클수록, 망할 때 날아가는 게 큰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허준한의원 식구들과 태용한의원 식구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최인호 대표까지 합쳐진다는 것은,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도 없는 조합이겠지.’

게다가 얼마 전 최 대표님의 기대해도 좋다는 말.

오히려 얼마나 커갈지가 궁금한 김태식이었다.

선생들이 수군거리는 와중에,

여전히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유도진.

당연한 일이었다.

정우한의원에서 일할 당시에 늘 적대감을 표현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위주로 묘한 신경전을 벌여왔으니까 말이다.

한의학을 순수한 학문으로 생각하여 그 본질을 깨우치고 병을 다스리고 싶은 자신과는 다르게, 한의학을 이용해 사업을 하는 자신과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

이것이 유도진에게 최인호라는 한의사였다.

그때,

최인호가 다가와 속삭였다.

“자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야기를 해야할 시점인 것 같은데 말이야. 물론, 자네도 나에게 궁금한 게 있을 테고.”

그렇게 텅 빈 진료실로 들어온 두 사람.

유도진이 여전히 묵묵히 최인호를 바라봤다.

“성격은 예전 그대로네. 여전히 날 좋아하지 않는군? 하지만, 어쩌겠나. 이제부터 우리는 같은 식구가 될 처지인데.”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최인호 원장님 같은 분과 같이 일을 하게 될 줄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답하는 유도진.

최인호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자네, 허준 원장과 김정우 선생님에게 한방병원에 관해서는 이미 들었겠지? 하지만, 자네의 태도를 보니 내가 그 병원의 결정권을 위임받았다는 소식은 아직 못 들었나 보네?”

“그게 무슨... 대체, 누가.”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자네의 스승. 김정우 선생님이지.”

충격적인 대답.

믿을 수가 없었다.

김정우 선생님이 대체 왜 이런 사람에게 한방병원의 운영을 맡긴단 말인가.

환자를 생각하는 허준이 아니라 최인호라면 오로지 수익만을 추구하는 한방병원이 될 것은 뻔할 터.

유도진의 심각한 분위기를 느낀 탓일까.

최인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날 세우지 말게. 자네나 나나 방법은 달라도 추구하는 바는 같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김정우 선생님께 듣자 하니, 자네가 VIP 환자들을 맡고 있다면서?”

역시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김정우 선생님에게 소개받은 VIP 환자들을 이용해 매출을 올리려는 속셈이겠지.

그런데 그때,

“병원에 와서도 자네가 그대로 이어서 맡아주게. VIP 병실도 함께 말이야.”

“제가 말입니까?”

유도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초에 매출을 올릴 생각이라면 VIP 병실을 늘리고, 직접 개입하여 운영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일 터.

그런데, 그 매출을 포기하고 자신을 지목함에 의문이 든 탓이다.

“그럼, 매출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요?”

“뭐, 그럴수도 있겠지.”

대체 뭐지?

그 악명높은 최인호가 매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니.

“허준 원장은 어떻습니까?”

“아니. 난 자네가 맡아줬으면 하네. 허준 그 친구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결국 몸은 하나뿐이거든. 게다가 자네 실력이면 충분할거라고 생각하네만?”

이쯤 되니 오히려 유도진이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어째서긴 뭔 어째서야. 그게 효율적이니까 하는 말이지. 자네 창과 방패 알지? 이 운영이란 것도 똑같아. 당장 이 허준한의원을 보더라도 허준 그 친구가 창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새로운 치료법이라던가, 온갖 질환으로 찾아온 환자들을 치료해 내는 것. 그로 인해서 용하다는 소문이 나고 더 많은 환자가 찾아오게 되지.”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자네. 자네는 방패야. 단골 환자라던가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된 환자를 맡기도 하고, 심각하지 않은 질환의 경우는 오늘처럼 사례들을 익히고 배운 치료법으로 치료를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음양의 조화처럼 완벽히 균형을 이뤄야 하거든. 그러니 병원에서 가서도 그대로 균형을 맞춰 달라 이 말일세.”

최인호가 검지를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내가 보니까, 허준 그 친구는 약간의 덤터기를 씌우는 법조차도 모르거든. 자네는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내 이야기는 끝. 뭐, 따로 궁금한 게 있나?”

유도진이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앞으로 자주 볼 텐데, 잘 부탁하네.”

그러면서 자리에서 벗어나는 최인호.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말 사람이 바뀐 건가.’

어딘지 모르게 예전과 달라 보이는 유도진이었다.

*   *   *

최은진과 김예진.

둘은 김정남의 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암 환자 시라고요?”

입원실 끝쪽에 있는 방.

그곳에 들어오니, 이게 웬걸.

동상이나 화상 환자가 아니라, 세상에 무려 암 환자시란다.

그것도 위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할아버지신데.’

“심각한 거는 아니고 초기야 초기.”

“그래도 암이잖아요? 여기가 아니라 병원에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최은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내가 이 나이 먹고 몸에 칼 댔다가 괜히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게 더 골치 아프지 않겠어? 병원에 있는 동안에 자식들도 불편해할 테고.”

그 대답에 최은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의학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만난 사람 중에 종종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걱정하지 말아. 입원해 있는 동안에 많이 좋아졌으니까. 병원에서도 좋아졌다고 하던걸?”

“그래요?”

최은진이 반색하며 되물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번뜩 떠오른 최은진.

‘좀 전에 자신이 그렇듯, 암이라면 어마어마한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할 터.’

어느 정도 필터링을 거치고 다큐멘터리로 내보낼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소재가 또 있을까?

1년 전에 이슈가 되었던 한의사와 혜민서란 단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 환자까지.

온라인에서 욕도 많이 먹을 테지만, 뭐 상관있나?

어차피 마지막 다큐일지도 모르는데.

최은진이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할아버지. TV 한번 나가보실래요?”

“언니?”

잠자코 있던 김예진이 후폭풍을 걱정해 이를 제지하려 했지만,

“내가 TV에 나온다고?”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그럼요. 할아버지가 동의만 해주시면 나가실 수 있어요.”

최은진의 말에 김정남이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완벽한 소재까지 확보하여 시작된 첫 촬영.

강남에 있는 커다란 대형 한의원에서 이뤄졌다.

“아이고~ 최 PD님~”

“오랜만이에요. 원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화장까지 한 김진수가 최은진을 비롯해 촬영 팀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이날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까지 해놓은 김진수.

원장실에는 온갖 듣도 보도 못한 한의학책으로 가득했다.

오죽하면 북한에서 사용하는 한의학책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깔끔함까지.

“준비 많이 하셨네요?”

“준비라니요? 이정도야 당연히 기본이죠.”

“하하, 그런가요?”

“그럼요~ 우리한의원 광고 못 보셨어요?”

“물론 봤죠. 바로 들어갈게요.”

말이 길어질까 봐 바로 촬영에 들어간 최은진.

카메라를 든 팀원이 한의원으로 들어서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지난 1년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예. 뭐, 평일에는 늘 진료 보고 주말을 쪼개 종종 여기저기로 봉사하러 다녔죠.”

“역시, 대단하시네요.”

“아닙니다. 세상에는 힘든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렇다고 저도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픈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니, 아플 때는 언제나 찾아오십시오. 최선을 다해 진료하겠습니다.”

‘대사도 다 준비한 건가.’

대체 연습을 얼마나 한 것인지, 홍보인 듯 아닌 듯 자연스럽게 대사가 이어진다.

하긴,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뭐.

그런데, 최은진의 눈에 무언가 자꾸 걸렸다.

분명히 뭔가 있는데.

그러다가 문득, 며칠 전에 허준한의원에서 만난 선생들이 떠오르며 그 존재를 찾을 수 있었는데,

김진수의 가슴에 혜민서 배지가 조그맣게 매달려 있었던 것이었다.

‘저건..?’

혜민서로 활동하는 회원들에게 나눠준다는 바로 그 표식.

그럼 정말로 봉사활동을 하긴 했다는 거였어?

그렇게 촬영이 조금 더 이어지다가,

“컷!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최 PD님.”

“아니에요. 원장님이 고생하셨죠.”

촬영이 끝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잘 좀 내보내 주세요. PD님. 작년에 진짜 기대 많이 했다니까요.”

김진수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고,

최은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무조건 내보내 드릴게요.”

*   *   *

그 시각.

허준은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탔다.

허준한의원 식구들이 모두 휴가를 다녀온 뒤에 마지막으로 떠나는 휴가.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지.’

환자들이 마음에 걸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의 허준한의원 식구들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물론, 김정남 환자가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최근에 많이 좋아졌으니, 하루 이틀 자리를 비웠다고 나빠지지는 않을 터.

그리고 엄마 진료도 한번 봐야 할 때가 되긴 했지.

덕분에 허준의 배낭에는 왕뜸기와 쑥뜸 그리고 침 등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기차에 올라타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도착한 부산.

택시를 타고 부모님이 계시는 치킨집으로 향하니,

“아들!”

“너는 여름 다 끝나가는데 휴가를 오고 그러냐? 올 거면 좀 진즉에 오지.”

“하하, 제가 좀 바빠서요.”

“얼씨구? 바쁘기는 맨날 바쁘데.”

“여기요. 이거부터 받으세요.”

허준이 챙겨온 공진단을 먼저 건넸다.

그런 허준의 눈에 60이 조금 넘어간 진행도가 함께했다.

'많이 좋아지셨네.'

“마침, 잘됐네. 딱 떨어질 때 즈음 됐는데. 그런데, 이거 비싼 거 아니야? 우리 동네 한의원에서 봤더니 한 알에 몇만 원은 하더라고.”

“엄마. 저 요새 바쁘다니까요? 이 정도야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일단 앉아서 잠깐 기다려. 마감하고 가서 밥먹자.”

자리에 앉은 허준이 한쪽에 있는 TV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얼마 전 한의원을 들락날락하던 아이들이 한껏 꾸미고 데뷔 무대를 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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