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더 고민할 필요도 없겠어 >
124화. 더 고민할 필요도 없겠어
“혜민서요? 그게 무슨 무슨 단체인데요?”
최은진의 물음에,
허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음... 일종의 봉사단체라고 할까요?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진료 및 기부를 하는.”
그러니까 지금,
봉사단체를 방송에 내보내고 싶다는 이야기인 건가.
왜지? 후원금 때문에?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때, 허준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혜민서에 속한 선생님들에게 허물없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그런 단체입니다.”
“잠깐만요. 그럼, 그 말은 단체에 속하기만 해도 아무런 대가 없이 치료법이나 치료 사례를 나눠준다는 건가요?”
“맞아요.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단체에 속하려면 의료봉사에 참여해야 하지만요.”
“에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단체가 어디 있어요? 세상에 어떤 사람이 그런...”
최은진의 말이 줄어들고,
눈앞에 있는 허준을 멀뚱히 바라봤다.
“설마.”
“몇몇 선생님들과 합심해서 만들었거든요. 어차피, 작년 출연자들의 모습을 내보내는 거라면 ‘잘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 진수가 더 잘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오히려 혜민서가 방송에 나가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 줬으면 좋겠거든요.”
“잠시만요... 일단, 저희가 먼저 조사해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아무래도 확인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요.”
당황스러운 제안에 최은진은 확인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믿지 못할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시죠. 그리고 시간 되시면 듣는 것보다는 직접 와서 보시면 훨씬 이해가 쉬울 겁니다.”
그렇게 며칠 뒤, 작은 회의실.
최은진을 비롯한 제작팀이 한데 모였다.
“어때? 연락은 다 끝났어?”
“네. 대부분 연락은 다 끝났고, 촬영에 응했어요. 메인급인 서울역 센터장님이랑 김태현 씨의 협조도 받아놨고요.”
“김태현 씨라면.. 그때 그, 입 돌아갔었던 청년 맞지?”
“맞아요.”
“좋았어. 시청자들이 제일 궁금해할 사람 중 하나는 해결됐네.”
최은진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고는 반대편에 있는 팀원에게 물었다.
“그쪽은 어때?”
허준에게 들은 혜민서란 단체의 조사를 담당한 팀원이었다.
“여기는 사실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었어요. 팀장님.”
“그래?”
“네. 사이트에 그간의 행적부터 기록, 심지어 활동했던 사진까지 다 남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단체들 몇 군데에다가 전화를 넣어서 확인까지 했는데.”
“했는데?”
“다들 칭찬 일색이더라고요. 게다가 양로원이나 근처 센터들 말고도 군대에도 다녀갔던데요?”
“군대에?”
“예. 군부대에는 아예 신문에도 났고요. 그래서 저도 조사하면서 조금 놀랐어요. 이런 단체가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팀원이 처음 조사했을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런데,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그 부분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어요.”
여기서 그 부분은 바로 허물없이 지식을 나눈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최은진에게는 그리 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던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될 터.
“좋아. 지금부터 바로 촬영 준비해. 마지막으로 하나만 확인하고 들어가자.”
* * *
한편, 허준한의원에서는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다.
첫 진료를 시작한 밥 선생도 이젠 익숙하게 진료를 보기 시작했고, 진료환자들의 범위도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져 있었다.
「포인트를 2 획득하였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첫 화상 환자를 완치해내기까지.
이제는 허준한의원에서 충분히 한 사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바쁜 와중에 가장 변화가 큰 사람이 있었으니,
“윤 쌤. 괜찮으신 거 맞죠?”
“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아직 충분해요.”
“언제든지 힘들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윤 선생님의 배가 이제는 겉으로 보기에도 티가 많이 날 정도로 불러오기 시작했다는 것.
덕분에 같이 일하는 데스크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단골 환자들도 윤 선생님을 보며 한 마디씩 덕담을 건네었다.
“아이고~ 애 이름이 뭐라고?”
“쑥쑥 이에요. 건강하게 쑥쑥 커달라고.”
“그래. 쑥쑥아, 튼튼하게 자라다오~”
이것이 1층의 분위기였다면,
2층 입원실의 분위기도 달라져 있었다.
“아니, 저 아저씨가 진짜 암이라고요?”
“그렇다니까? 못 믿겠지?”
“네. 워낙 건강해 보이셔서. 그런데, 암이면 수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산책하면서 슬쩍 물어봤는데, 연세가 80이 넘으셨대. 그러니 몸에 칼 대기 부담스러우신 거지.”
“하긴, 저도 80 넘어섰으면 망설일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허준 원장님은 왜 입원시키신 것인지...?”
“이 친구 이거, 아직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믿음이 약하네.”
“그러게. 원장님이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이렇듯 허준이 우려하던 김정남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2층의 환자들도 어느 정도는 그 심정을 이해하고 있었으니,
어이구, 어쩌다가 그랬어?
참, 젊은 나이에 안됐어.
미안하지만, 이거 받고 그만 끝내지.
등등의 말을 대부분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동정하거나 하는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같이 입원해 있는 처지에, 화목하게 지내고자 말을 건네기 시작했으니.
덕분에 입원실의 환자들 사이에서 김정남이 함께 어울리기 시작하고.
* 진행도 : 29%
20에서 멈춰있던 진행도는 진료를 보러 올라올 때마다,
느리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무려 병원에 들러 검사까지 마치고 온 상황.
“병원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좋아졌다던데? 전이도 없고, 커지지도 않았다고.”
“다행이네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의 효과로 암세포의 활성화는 막은 상태.
그렇다고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저 겨우겨우 균형을 맞춘 상태일 뿐. 보다 완벽히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면역력과 체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
“몸은 좀 어떠세요?”
“아주 좋아. 밥맛도 좋은 것 같고.”
“잘됐네요. 입원실에 지내시면서 다른 불편한 곳은 없으시죠?”
“오히려 마음이 편해. 집에 있을 때보다 심심하지도 않고, 또 저기 입원실에 있는 젊은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기도 하거든. 집에 있어 봐야 종일 혼자 누워만 있었겠지. 저 친구들이 그러는데, 허준 선생이 하라는 대로하면 다 낫는다고 하던데?”
김정남이 웃으면서 답했다.
허준이 그 모습을 보며 미소지었다.
처음 김정남 씨를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고는,
“그보다 운동은 힘들지 않으세요?”
“처음엔 조금 버거운 것 같은데, 지금은 할 만해. 또, 힘들면 저 친구들이 부축도 해주고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돼.”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사실 2층 환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다고 해서 조금은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환자의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진맥을 잡은 뒤,
침과 뜸으로 오늘의 치료를 마친 허준.
‘최근에 뜸 치료를 추가하고 나서 확실히 조금 더 속도가 붙은 느낌이야.’
아무래도 구술의 영향일 터.
아직은 느리더라도 곧 회복에 탄력이 붙게 되리라.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오늘도 고마워.”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앞으로도 이렇게만 열심히 해주세요.”
뒤이어 다른 환자들의 진료까지 모두 마치고 내려온 허준.
그런 허준의 눈앞에는 혜민서의 멤버들이 모여있었다.
허준한의원의 식구들을 비롯하여 태용한의원 식구들 그리고 최근 업무를 인계받은 김예진 선생과 마지막으로 최인호 대표까지.
그리고 마지막 최은진 PD.
허준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 * *
허준의 말대로 허준한의원을 직접 찾은 최은진.
김예진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왔어?”
“어. 허준 원장님은?”
“아~ 먼저 식사 끝내시고 2층에 잠시 진료 보러 가셨어.”
최은진이 멤버들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초대로 온 최은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밥이 웃으며 반겼다.
뭐야, 외국인? 지난번에는 없었는데.
“언니. 이쪽은 우리 한의원 유도진 선생님과 고요한 선생님.”
“안녕하세요.”
유도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고요한은 반대로 환영했다.
“이야기 들었어요. 고요한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때, 뒤이어 등장한 HS정형외과의 김형서 원장.
“어? 새로운 분이시네. 이분은..?”
“최은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정형외과 김형서 원장입니다.”
외국인에 이어서 정형외과 선생님까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당연히 혜민서의 멤버는 한의사로만 구성되어 있을 거로 생각한 최은진이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태용한의원의 식구들과 최인호가 등장하고.
이어진 것은 저녁 식사.
“여기 받아.”
“오늘 혜민서 모임 있는 날 맞지?”
“맞아. 나도 오늘 처음인데, 이야기는 많이 들었거든.”
“여기서 원래 이렇게 도시락으로 먹나 봐?”
“이거 2층에 입원실로 배달오는 도시락이랑 같은 거야. 우린 점심에도 이거 먹는걸.”
설명을 들으며 도시락을 먹는데,
맛이 썩 괜찮았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짧은 감상평과 함께 저녁 시간이 끝나고,
미리 저녁을 먹고 입원실 진료를 끝낸 허준이 나타났다.
“다들 오셨네요?”
“자네 기다리느라 아주 목이 빠질 뻔했어.”
김태식 원장이 농담을 건넸고,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요?”
허준이 대답과 함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가볍게 자신들이 치료한 환자들의 사례 교류.
처음에야 동상 화상이 대부분이던 이 사례들이 이제는 축농증이나 비염, 알레르기와 피부병을 비롯해 냉방병과 여름에 특히 민감해진 장부들까지 이어진다.
참여한 이들도 이제는 제법 숙련되어 있었으니,
아주 짧고 간략하면서 요지만을 뽑아내기에는 충분한 수준.
물론, 밥 선생은 그것을 꼼꼼하게 받아적기에 바빴고, 최인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임이 이렇게까지 발전했을 줄이야.
‘이거 생각보다 다들 수준들이 높잖아?’
그리고 한쪽에서는 박용준과 김예진이 이야기를 나누며 이렇게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알려주고 있었다.
가져온 사례들을 종합하여 요약하는 것부터,
이어진 허준의 진료에 관한 동영상 녹화까지.
다음으로는 새로운 진료법 및 치료사례.
허준이 이번에 준비한 것은 하지정맥류였다.
진료 시의 특징들을 나열하고,
그에 따라서 생각해야 할 요인들과 처방법 등을 설명했다.
‘한의학이란 거 이렇게 들으니 되게 체계적이잖아?’
그 설명을 들으며 두루뭉술하게만 알았던 오장육부의 관계라던가,
침과 뜸 그리고 한약이 오장육부에 어떤 작용을 하여 치료가 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 최은진.
이렇듯, 한의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최은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설명이었으니, 한의학을 잘 아는 다른 선생들은 그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활동이 끝나고,
이 모든 것을 직접 지켜본 최은진이 허준에게 물었다.
“정말로 이렇게 찾아와서 참여만 해도 배울 수 있는 거라고요?”
“잘 보셨어요? 네. 맞아요. 그리고 온라인으로도 배울 수 있죠. 물론, 실제로 배우려면 이렇게 직접 찾아 오는 게 최고지만요.”
그때, 김예진이 끼어들었다.
“언니가 의심이 원래 많아서 그러니, 제가 입원실이라도 한 번 보여주고 올까요?”
“그건, 김 선생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이제는 김 선생님이 어엿한 대표니까요.”
“뭐!?”
“일단 따라와.”
그렇게 2층에 오르자,
사진상으로만 보던 동상이나 화상 환자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런 환자들이 이렇게 많다고...?’
올라오기 전에는 이렇게 많은 환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한 최은진.
그런 그녀의 눈은 손끝, 발끝이 검게 변한 환부를 드러내놓은 환자와 김예진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아까 우리 허준 원장님이나 다른 한의원 원장님들이 발표한 치료 사례들은 전부 완치한 환자들이야.”
그 말인즉슨,
이 혜민서의 활동으로 많은 환자가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때,
“어, 김 선생님이 여기는 웬일이세요?”
“아~ 입원실을 궁금해하는 분이 계셔서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우~ 여기 입원실 아주 좋아요.”
“그럼 그럼, 안락하고 사람도 좋고. 게다가 밥맛도 좋고요.”
“또, 선생님들이 친절하시고 잘해주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터져 나오는 환자들의 칭찬.
물론, 지금 최은진에게는 그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이건... 더 고민할 필요도 없겠어.’
그때, 최은진의 눈에 들어온 1인실.
옆에 서 있는 김예진에게 물었다.
“저기는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