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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23화 (124/230)

< 123화. 거기가 어떨까 싶네요 >

123화. 거기가 어떨까 싶네요

김예진이 허준을 빤히 바라봤다.

갑자기 혜민서를 맡아달라니.

허준과 가장 오래 일했던 만큼, 혜민서란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는 이미 알고 있는 그녀였다.

실제로 몇 번은 직접 행사에 참여한 적도 있었고.

“제가요?”

“네.”

“태용한의원 박 원장님이 잘하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박용준 원장이 잘하고 계시죠.”

“그런데 왜요?”

“물론, 지금은 잘하고 계시지만, 과연 내년에도 그럴 수 있을까요?”

“내년이라면...”

김예진이 무언가 이해했다는 듯이 아- 하고 소리를 내었다.

재개발로 인해서 내년에 다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상태.

지금이야 태용한의원의 환자들이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이지 허준한의원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으니,

만약 같이 일을 하게 되면 진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당장 첫 진료 때의 고요한 선생님이나 밥 선생님의 모습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때, 허준의 말이 이어졌다.

“혜민서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겁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겠죠. 저는 김 선생님이 앞장서서 혜민서를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공정하고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시거든요. 그래서 가장 신뢰하기도 하고요.”

허준이 김예진을 가장 신뢰하는 이유.

여태 같이 일해왔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돈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물론, 동료들을 위해 대신 대표로 나서서 말한 적은 있었으나, 그게 전부였을 뿐.

게다가 어떤 환자가 오더라도 똑같이 같은 환자로 대했고, 불의를 보면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기도 했으며, 일 처리는 또 어떤가.

기계와 같이 효율적이고 신속, 정확하다.

그야말로 혜민서를 이끌어 나가기에 가장 완벽한 인물이었다.

허준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김예진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알겠어요. 원장님. 해볼게요. 뭐부터 하면 될까요?”

“김 선생님이시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우선은 천천히 박 원장님에게 인수인계부터 받으시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따로 연락해 볼게요.”

그렇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만난 김예진과 박용준 원장.

“김 선생님. 허준 선생님께 이야기 들었어요. 혜민서 맡아주시기로 하셨다면서요?”

“네. 원장님이 부탁하셔서.”

“잘됐네요. 안 그래도 저도 김 선생님이 딱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단, 이리로 오시죠.”

그동안 박용준이 해왔던 일들을 자료와 함께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김예진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아진 일들에 놀라고 있었다.

일단은 후원금.

이어서 행사 규모와 인원을 비롯한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는 신청들이 빼곡했다.

여기에 더해서 온라인으로 공개된 강의나 논문까지.

‘이거 완전 규모가 예전과는 다르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의 혜민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혜민서가 되어있었으니까 말이다.

“예전보다 신경써야 할 일이 엄청 많아졌네요?”

“그럼요, 지금은 전국적으로 확산해 나가는 중이니까요. 아마 앞으로는 더 커질걸요?”

그리고 혜민서란 단체를 파악해가면서 김예진이 미소짓기 시작했다.

애초에 다른 사람을 돕고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그녀가 보기에 이 혜민서란 단체가 가진 잠재력은 어마어마했으니까 말이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자리같아.’

그 시각.

허준한의원에는 허준에게 통풍의 진단을 받았던 박철웅이 쩔뚝이며 들어서고 있었다.

*   *   *

어제저녁. 동네 술집.

근처에 살던 친구들이 모여 시원한 맥주로 여름을 달래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등장한 박철웅.

쩔뚝거리던 걸음걸이는 완전히 나아 평범하게 돌아와 있었고,

친구들을 만난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야~ 너 무릎 아프다더니, 다 나았냐?”

“당연하지. 내가 누구야? 박철웅이잖아.”

“그래도 우리 나이 정도면 슬슬 조심해야 해. 언제까지고 젊었을 때 그 몸이 아니라니까?”

“그러게 말이야. 철웅이 너도 술좀 줄이고 운동도 좀 하고 그래 봐.”

“에이, 술맛 떨어지게. 그런 이야기 그만하고 시원하게 한잔해.”

그렇게 기쁘게 이어진 술자리.

어릴 적부터 친한 사이인 데다가 최근에는 동네의 재개발 호재까지.

더해서 아팠던 무릎은 며칠 만에 감쪽같이 없어졌으니,

“마셔~!”

“너 그러다가 또 무릎 아프면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 아프면 또 그 용하다는 한의원 가면 되지.”

“그런데, 거기가 그렇게 진짜 잘해?”

한 친구의 물음에 박철웅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침 하나는 진짜 기똥차게 잘 놓더라고. 그런데, 이게 또 한의원들 가보면 알잖아? 약 팔려는 거. 나한테 자꾸 통풍이라고 약을 파는 거야. 한약을 먹어야 한다나? 그래서 내가 바로 한마디 했지. 아 나는 괜찮으니까 침만 놔달라고. 하고 그래서 침만 맞고 나왔잖냐.”

“오~ 역시 철웅이 아직 죽지 않았어?”

그때, 또 다른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도 동네 주민이었으니, 허준한의원에 대한 소문은 아내에게 익히 들었던바.

“그래? 이상하네. 거기 선생님 약 팔고 그런 분 아니라고 하시던데.”

그 말에 박철웅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기는, 뭘. 다 똑같더니만.”

그렇게 신나고 재미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

무릎과 발가락에서 어마어마한 통증에 잠에서 깬 박철웅이 신음을 흘렸다.

“으...”

“여보? 왜 그래?”

“무, 무릎...”

소파에서 자던 박철웅의 앓는 소리에 방에서 나온 아내가 불을 켜고 살폈다.

“이거 왜 이래? 어제 술 먹고 들어오다가 넘어져서 어디 부러진 거 아니야?”

“아니야.”

“빨리 병원부터 가보자.”

“이 시간에 무슨 병원이야. 괜찮으니까 얼음 팩이나 하나 줘.”

그렇게 얼음찜질 이후에도 이어진 통증.

박철웅의 머릿속에 허준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통풍 같네요.’

그래서 다시 찾은 허준한의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되어 들어간 진료실.

허준이 진료실로 들어오는 박철웅에게 다가가 부축하여 앉혔다.

“다시 오셨네요?”

“그게...”

호기롭게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쥐죽은 듯이 작게 들려온다.

그 익숙한 모습에 허준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앉았다.

“어제 술 드셨나 보죠?”

“네...”

“그리고 다시 무릎하고 통증이 생겨서 오셨고요.”

“아, 네...”

“진맥 한 번 더 잡아볼게요.”

똑같은 맥을 느끼고,

역시 그전과 똑같은 처방이다.

사묘탕과 침.

그리고 금주와 금해야 할 음식들.

“일단, 침하고 탕약 처방해 드릴게요. 그리고 술은 약을 드시는 동안에는 절대로 드시면 안 되고요. 음식 중에서도 당분간은 육류랑 가공식품류 그리고 등푸른생선을 조심해 주세요. 물론, 채소류를 많이 드시는 게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치료실로 가실까요?”

그렇게 통풍환자의 진료를 끝내고,

다음은 김옥순 환자.

하지정맥류로 내원한 그녀의 다리는 처음과는 다르게 탄력을 띠고 있었다.

수술한 것처럼 보기 싫은 핏줄들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차 사라져갈 터.

“운동은 계속하고 계시죠?”

“물론이죠. 선생님. 선생님이 알려준 운동도 꾸준히 하고, 약도 꾸준히 먹고 있어요.”

“잘하고 계시네요.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시면 아플 일 없으실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지금 서서 일하지도 못하고 있을 거예요.”

“오늘도 그럼 침 맞으시고 가시죠.”

그런 허준의 눈앞에는,

「퀘스트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을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000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를 완수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고,

한쪽 구석에는 보유 중인 포인트가 나타났다.

보유 포인트 : 7324

그런 와중에도 1~10포인트씩 하나씩 오르고 있었으니,

하루에 평균적으로 600~700포인트 정도 오르는 것 같네.

진료와 탕약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포인트까지.

허준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치료실로 가실까요?”

그 시각.

서울역의 노숙자 센터.

“어? 이게 누구야?”

“안녕하세요. 센터장님!”

“어이구~ 우리 센터의 자랑 김태현 사장 아니야? 이 시간에 웬일이야?”

“아, 별일은 아니고 그전에 같이 낯익은 아저씨들이랑 형님들 얼굴 좀 보러왔죠.”

“그래? 난 또, 기부하러 온 줄 알았는데 좋다 말았잖아?”

넉살스러운 센터장의 말에,

김태현이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또 제가 빵빵하게 기부해드릴 테니까.”

아무래도 이곳 출신이기에 애틋한 감정이 남아 있던 터라,

사업체를 만들면서부터 꾸준히 기부해온 김태현이었다.

어찌 됐건, 노숙자 센터에서 나와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찾아다니기 시작한 김태현.

“어, 박 씨 아저씨?”

“이게 누구여? 우리 태현이 아니야? 요즘 잘나간다면서?”

“그 정도는 아니고요.”

“아니기는 확실히 너는 여기에 왔을 때부터 어울리는 놈이 아니었어.”

“그런 말씀 마세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하여간 말은~ 그보다 웬일이야?”

“아저씨 찾으러 왔죠.”

“나를?”

“네. 저와 함께 새롭게 시작해보지 않으시겠어요?”

그렇게 한 명, 한 명.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론처럼, 허준이 만들어 낸 작은 변화가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   *   *

“나이스!”

김예진의 연락을 받은 최은진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안될 거로 생각했던 사람이 촬영에 응해 온 것이다.

“PD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응? 아니. 일 봐. 나 잠깐 미팅 좀 갔다 올 테니까.”

“참, 지난번에 출연자들한테 연락해봤는데, 현재 반 정도는 오케이 한 상황이에요.”

“그래? 나머지는?”

“몇 사람이 아직 연락이 제대로 안 돼서요. 이번 주 중으로 끝내 볼게요.”

“알았어.”

그렇게 허준한의원을 찾은 최은진.

‘와 여기가 이렇게 변했어?’

촬영 당시에는 2층에 있었고 작은 한의원이었는데,

지금은 1층과 2층을 같이 사용하면서 입원실까지 보였다.

그렇게 한의원으로 입장.

김예진이 최은진을 반겼다.

“어서 와.”

“이야... 완전히 달라졌네?”

“내가 말했잖아. 엄청 바쁘다고.”

그때, 한의원 여기저기에서 마주치는 선생님들을 보며

최은진이 인사했다.

“이게 다 몇 명이야?”

“지금 한의사 선생님들까지 한 10명 조금 넘을걸?”

“허준 선생님 진짜 능력 있으시구나?”

“당연하지. 들어가 봐. 원장님 기다리고 계셔.”

“너는?”

“난 일해야지.”

“아, 오케이.”

그렇게 진료실에 들어온 최은진을 허준이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최 PD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의원이 몰라보게 달라졌네요?”

“다, PD님 덕분이죠.”

“그럴 리가요. 기껏 해봐야 며칠 정도였을 텐데.”

“커피 드시죠?”

미리 준비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건네는 허준.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촬영하고 싶으시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이번에 기획이 작년에 출연했던 출연자들의 1년 후의 모습이거든요. 선생님이 사실상 가장 비중 있는 주연급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취지가 좋네요. 그때 나왔던 다른 분들도 모두 촬영하시는 거죠?”

“그럼요. 이미 반 정도는 연락이 끝난 상황이에요. 특히, 기억나시죠? 선생님과 친분이 있으신 김진수 원장님.”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 김진수. 과거 촬영으로 광고효과를 노리고 왔다가 통편집 당한 슬픈 사연이 있었다.

물론, 허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미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기에는 진료를 포함한 다른 일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랐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다시 한번 나올 줄이야.

“진수는 잘 지내나요?”

“그런 것 같던데요? 이번에는 꼭 편집하지 말고 내보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그보다, 촬영은 어떤 느낌으로 하실 생각입니까?”

“저야 당연히 여기 한의원에서 진료 보는 모습이 좋지 않을까요? 이렇게 확장도 하고 한의원도 잘나가고 있다. 그때 선의를 베푼 주인공이 이렇게 잘살고 있다는 식으로요.”

최은진의 답에,

“저는 조금 다른 방향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다른 방향이요?”

“네. 혜민서라고 제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있는데, 거기가 어떨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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