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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22화 (123/230)

< 122화. 맡아주시겠어요 >

122화. 맡아주시겠어요

툭-

놀란 김태현이 손에 든 노트와 펜을 놓쳤다.

동시에,

“저, 저길 전부요?”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와 상반된 느긋한 김정우의 모습.

“그건 아니지만...”

김태현이 눈앞에 있는 빌딩의 골조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한다.

총 18층으로 이루어진 빌딩.

어르신의 소개로 다른 빌딩에 한 층을 작업해본 경험은 있어도, 이렇듯 건물 통째로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엿하게 작은 업체를 이끄는 사장이 아니던가.

오히려 이 기회에 기존의 직원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도 될 수 있을 터.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자네라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

“그런데, 어떤 용도로 사용하실 건지요?”

“아~ 한의원.”

“한의원이요? 이렇게 크게요?”

“요즘으로 따지면 한방병원이라고 해야겠지.”

김태현이 다시 한번 놀란 눈으로 빌딩을 바라봤다.

한방병원이라니,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크기의 한방병원이 있던가.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한 중년인이 들어왔다.

최인호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차가 좀 막혀서요.”

“아니야, 아니야. 신경 쓸 것 없어. 딱 시간 맞춰서 왔는데 뭘. 그보다 인사하게. 이쪽은 김태현 팀장이라고, 자네가 소개해달라던 바로 그 친구일세.”

허준한의원의 입원실을 비롯하여 공사한 사무실 몇 개를 둘러본 결과, 마음에 쏙 들었던 최인호였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고.

“반갑습니다. 최인호라고 합니다.”

“김태현입니다.”

가볍게 악수하는 두 사람.

김태현이 최인호를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 친구와 같이 작업을 하면 될걸세. 그가 실무를 맡은 원장이니까 말이야.”

“그러시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그럼, 난 이만 가볼테니. 둘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게.”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어르신.”

김태현이 90도로 꾸벅 숙여 인사했고,

최인호도 묵례로 고개를 꾸벅였다.

“그래. 모두 수고해주게.”

그렇게 김정우가 떠나고,

최인호가 김태현에게 말했다.

“일단, 현장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할까요?”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원장님.”

김태현이 떨어진 노트와 펜을 주워들고 최인호의 뒤를 따라 현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1층에 도착한 둘.

“현재 골조와 기본적인 시설은 9월이 되기 전에 완공된다고 합니다. 견적은 언제까지 받아볼 수 있을까요?”

“며칠 내로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역시, 생각했던대로 일 처리가 빠르시군요.”

최인호의 칭찬에 김태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야말로 견적을 뽑기 위해서 며칠 동안은 자신을 갈아 넣는다는 표현보다 좋은 표현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건물을 통째로 한다는데.’

“감사합니다. 혹시, 디자인은 어떤 느낌으로 하실지 생각해두신 컨셉이나 그런 게 있을까요?”

“디자인은 전적으로 팀장님께 맡기겠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한방병원이니 어두운 느낌보다는 밝고 따듯한 분위기가 나오면 좋겠네요.”

김태현이 노트에 받아 적었다.

분위기는 밝고 따듯하게.

“1층은 로비로 사용할 겁니다. 이쪽으로 데스크가 그리고 이쪽으로는 환자들이 편하게 기다릴 수 있는 장소로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2층과 3층, 4층은 검사실로, 10층부터 진료실로 사용할 계획이고.”

“네. 그럼 그쪽은 사무실처럼 만들면 되겠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입원실이 있는 층은 조금 더 안락한 느낌이면 좋겠군요.”

···

둘은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만큼 세세하게 꼼꼼한 부분까지 체크한 김태현의 노트에는 빼곡하게 글자가 들어서 있었다.

*   *   *

태용한의원.

원장 김태식이 막 진료를 끝냈는데, 전화가 울렸다.

과거 경희한의원 시절 다른 지점 동료원장이었다.

“김 원장. 통화 가능해?”

“어. 지금 간단하게 가능해. 막 진료 끝냈거든.”

“오케이. 다른 게 아니라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또 뭔데?”

‘보나 마나 환자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겠지.’

혜민서 활동 탓인지, 또는 실력이 늘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과거와 비교하면 요새 들어 부쩍 동료들의 연락을 종종 받는 그였다.

“우리 대표님 말이야. 혹시, 어디 아프셔?”

“에이 그럴 리가, 그 양반이 어떤 양반인데. 지난주에 같이 술 마셨을 때도 멀쩡하던데.”

“그래? 이상하네.”

“왜? 무슨 일인데?”

“아니, 갑자기 대표님한테 전화가 오길래 긴장하고 있었거든. 요즘 매출이 조금 떨어져서 말이야. 근데, 갑자기 한의원 인수할 생각 없냐고 하시더라고.”

“한의원을?”

“응. 우리가 막 전국적인 체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병원급도 하나 있고 나름대로 매출도 건실하게 나오는 중이잖아. 그래서 조금 이상해서 물어봤지.”

“그래? 알았어. 일단 끊어. 나 지금 환자 왔거든?”

이 전화를 시작으로,

다른 지점의 원장들에게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뭔가 있긴 있나 본데?

한두 군데도 아니고 이렇게 여러 군데라면.

그렇게 점심시간.

배달음식을 기다리며 박 원장에게도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설마, 무슨 일 있겠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 대표님이신데.”

“그렇겠지...?”

이미 체인점에서 벗어났으나,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사이였으니.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김태식.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니야?’

체인점 중에서 유일하게 넘긴 것이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곳은 나름대로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던 곳이었고 다른 지점은 아니었다.

평소 매출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격대로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었으니,

그렇게 그날 저녁.

김태식이 최인호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

한의원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 술집.

“미안, 조금 늦었네.”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요즘 바쁘신가 봐요?”

최인호가 웃으며 되물었다.

“왜, 나는 바쁘면 안 되나?”

“아니요. 그런 뜻은 아니고요."

김태식이 그런 최인호의 얼굴을 살폈다.

안색도 멀쩡하고, 오히려 눈빛은 총명해졌다.

‘아무리 봐도 멀쩡한데.’

그때,

“뭘 그리 뚫어지라 쳐다봐? 사람 무안하게.”

“아닙니다. 혹시 어디 안 좋으신가 해서요.”

“그럴 리가.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좋으니 걱정하지 말게.”

“그럼 다행이고요.”

“왜? 다른 지점 원장들이 자네한테 연락해서 물어보기라도 하던가?”

“그걸 어떻게...?”

최인호가 피식 웃었다.

본디 업체의 사장이나 대표의 위치쯤 되면, 아랫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이는 법.

과겨 경희한의원시절에도 이런 일이 종종있었으니,

최인호가 보기에는 손바닥 위의 김태식이었다.

“걱정하지마. 그냥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을 뿐이니까 말이야.”

“새로운 일자리요?”

김태식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되물었다가,

“허준 그 친구가 나를 스카웃했거든.”

“네!?”

이어진 대답에 들고 있던 오돌뼈를 놓쳤다.

허준한의원이 돈을 꽤 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같은 규모의 한의원 기준에서 많이 버는 편일 뿐.

체인점이나 한방병원 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매출이었다.

그런데, 체인점과 병원급 한의원까지 가지고 있는 최인호 대표에게 같이 일하자고 했고,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야?’

이는 허준이 그저 동업하자는 말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당연히 사람들 대부분이 한의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직 못 들었나 보네? 그럼, 나중에 직접 듣게. 아마 기대할 만할 거야.”

최인호가 웃으며 답했고,

김태식은 여전히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같은 시각.

강남의 한 고깃집.

최은진이 고기를 굽고 있었고,

이제 막 들어온 사촌 동생 김예진을 보며 손을 들어 반겼다.

“왔어? 좀 늦었네?”

“오랜만~ 요즘 일이 바빠서. 그런데, 웬일이야? 언니가 먼저 고기를 다 산다고 하고?”

“웬일이기는? 우리 사이에. 일단, 한잔할까?”

최은진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여기 소주 한 병이요!”

그렇게 고기와 함께 시작된 이야기.

“뭐?”

“이번에 내 마지막 다큐 촬영하기로 했거든. 서울역의 사람들 그 1년 뒤.”

제목만 들어도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은 김예진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의원이 얼마나 바쁜데, 촬영한다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비규환.

“안돼.”

“뭐? 뭐가 안돼?”

“촬영 안 된다고.”

“어라? 너 웃긴다. 그걸 왜 네가 정해? 허준 원장님이 정하는 거 아니야?”

최은진의 물음에 김예진이 코웃음을 쳤다.

“원장님도 아마 똑같이 답할걸?”

“그, 그래?”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최은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김예진의 지금 저 모습은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바로 그 모습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럴 땐, 작전 변경.’

직구가 안되면 변화구지.

그리고 김예진은 변화구에 약한 편이다.

“에이~ 그러지 말고, 네가 허준 선생님께 한번 물어봐 줘. 너 맨날 나한테는 한의원 에이스라고 자랑했잖아.”

“싫어. 그냥 언니가 직접 물어봐. 선생님 번호 알고 있다면서?”

“너 정말 나한테 이럴 거야? 허준 선생님 소개해준 것도 나인데, 벌써 잊었어?”

“아, 아니 그건... 아니고.”

“게다가 말했잖아.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그냥 대신 물어만 봐줘. 응?”

그렇게 다음날.

허준한의원의 아침.

여느 때처럼 출근한 허준을 향해 식구들이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입니다!”

“모두 좋은 아침이요. 참, 윤 선생님. 오늘 퇴근 전에 진료받고 가세요.”

“네~”

그때, 김예진이 진료실에 들어서는 허준을 따라 들어오면서 말했다.

“저,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마침, 잘됐네요. 저도 할 말이 있었는데, 먼저 말씀하시죠.”

“다름이 아니라, 혹시 작년에 최은진 PD라고 기억나세요?”

“물론이죠. 김 선생님 사촌이시잖아요. 다큐멘터리 찍어주신 분이기도 하고.”

허준의 머릿속에 작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잘 지내고 계시죠?”

“그럼요. 그런데...”

“왜요? 혹시, 어디 아프세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이번에 다큐멘터리를 새로 찍는다고 하는데, 원장님 촬영 협조 가능하냐고 연락이 와서요.”

“촬영이요?”

“네. 작년에 다큐에 출연했던 사람들의 1년 뒤 모습을 내보내고 싶나 봐요.”

갑자기 다큐멘터리라니.

시청률은 낮았지만, 어쨌든 그것 때문에 몰려든 사람들이 어마어마했었지.

‘가뜩이나 지금 환자들도 많은데, 그런 상황이 되면 분명 환자들의 진료에 영향을 미칠 터.’

아무래도 거절하는 게 좋겠네.

그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

잠깐. 1년 뒤의 모습이라면 굳이 한의원에서 진료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허준의 눈앞에,

[침술 Lv. 8] 필요 포인트 50000

[구술 Lv. 7] 필요 포인트 20000

[탕제 Lv. 5] 필요 포인트 20000

[추나 Lv. 3] 필요 포인트 10000

[진맥 Lv. 3] 필요 포인트 50000

···

이전과는 숫자가 많이 바뀐 능력들이 나타났다.

가장 쉽게 올릴 수 있는 것이 1만 포인트의 추나, 그리고 그 위로는 2만, 5만 씩 쭉쭉 포진해 있는 모습.

지금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혼자서 포인트를 모으는 것보다, 다른 여러 사람이 함께할수록 빨리 모을 수 있다는 것을.

‘혜민서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면.’

지금보다 월등히 높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터.

생각을 마친 허준이 답했다.

“좋아요. 최 PD님하고 약속 잡아주세요.”

“네? 정말요? 그럼, 환자들 진료에 영향이 미칠지도 모르는데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되묻는 김예진.

허준이 그런 김예진을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어서,

“그리고 김 선생님.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뭔데요?"

“혜민서를 좀 맡아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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