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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18화 (119/230)

< 118화. 내 이야기 좀 들어봐 >

118화. 내 이야기 좀 들어봐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영희 팀장이 내민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에 문제는 전혀 없었다.

재개발로 이사를 하더라도 파트너십이 깨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파트너십과 VIP 환자는 실상 이름만 다들뿐이지, 결국에는 비슷한 맥락이 아니던가.’

라는 것이 허준의 생각이었다.

지금, 허준이 몇몇 배우들을 비롯해 아이돌 연습생의 진료를 정규 진료시간 외에 보는 이유는 하나.

찾아오는 환자들의 진료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바꿔말하면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순간, 허준한의원에서는 하지 않던 미용 치료를 시작해야 할 것이고, 그로 인해서 분명히 다른 환자들의 진료에 영향을 미칠만한 변수가 많아질 것이다.

그것이 공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영향력일 터.

때문에,

허준은 이 복잡한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생각이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여~ 어서 와. 오랜만이야.”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항상 잘 지내지. 자네도 신수가 훤해 보이는군?”

“다 대표님 덕분이죠.”

최인호 대표였다.

“이 친구, 여전히 말은 잘하네. 일단 이리로 앉게.”

“감사합니다.”

“그보다 웬일이야? 자네가 먼저 같이 밥을 먹자고 연락을 다 하고. 요즘도 진료 보느라 바쁘다면서? 그쪽 동네에서 자네에 대한 소문이 아주 자자해.”

“별말씀을요.”

“사람 겸손하기는. 그래, 날 만나자고 한 걸 보니 무슨 일인데 그래? ”

최인호가 능구렁이 같은 눈빛으로 물었다.

이미 어떤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허준이 그동안 자신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을 때는 언제나 무언가를 부탁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그런 부탁이 부담스럽다거나 거북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반갑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과거 한의원 간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얼굴을 붉힌 적도 잠깐 있었지만, 봉사활동과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친해지기 시작했고, 나아가서는 자신에게서 추나요법을 배우기도 한 사이였다.

물론, 아직도 말하지 못한 아들 수능 때의 총명탕 건도 있었으니,

어찌 그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마음의 병이라 할 수 있던 집착이라는 병을 고쳐준 장본인이었으니,

아무래도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는 것은 당연할 터.

‘게다가 같이 일한 적은 없어도 의외로 나와 호흡이 잘 맞는 느낌이었단 말이지.’

그런 허준한의원이 확장해 나가는 모습은 과거 자신이 한의원을 확장해 나가는 모습처럼 보이면서 공감이 되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챙겨 주고 싶은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별일은 아니고...”

허준이 잠시 망설였다.

일종의 긴장이었다.

최인호 대표는 무려 한두 개가 아니라, 최근까지 확장에 성공하면서 여덟 개의 한의원을 운영 중인 상황.

그런 상황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고 덥석 오케이 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대충, 태용한의원 선생님들에게 매출을 듣기는 했는데.

그것도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정확한 자료는 아니겠지.’

뜸을 들여서일까.

최인호가 답답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허, 이 친구. 말 잘하던 친구가 웬일로 이렇게 말문이 막혔어? 그러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봐. 뜸 그만 들이고.”

그래.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는 게 아니다.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에 우리 한의원이 있는 구역이 재개발되는 것은 아시죠?”

“당연하지. 내가 김태식 원장에게 가장 먼저 알려준 정보인데. 왜? 개원 자리라도 알아봐 달라고? 자네 실력이면 자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최인호가 웃으며 답했다.

실제로 허준의 실력 정도라면, 자리가 어디건 환자들이 알아서 찾아올 테니까 말이다.

그건 아마 허준도 이미 알고 있을 터.

그런데 굳이 재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은,

“최 대표님과 함께 일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때 들려온 허준의 대답.

최인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와 함께 하고 싶다고?”

“예.”

“계속 말해봐.”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

허준이 현재까지 알고 있는 한방병원의 규모와 목적, 그리고 함께하기로 한 멤버들까지.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한방병원의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져 달라 이 말이지?”

“네.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이쪽으로는 대표님이 가장 먼저 생각났거든요.”

“자네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새롭군. 왜, 자네가 안 하고?”

최인호의 물음에 허준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직 병원급 경험도 없고, 매출에 휘둘리지 않고 그냥 진료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표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진료만 보고 싶다라. 그 성격은 여전하군.”

“자세한 제안서는 여기 있습니다.”

허준이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내 넘겼다.

최인호가 제안서를 한번 스윽 훑더니 그대로 봉투에 넣었다.

“일단, 당장 대답하기는 그러니, 시간을 좀 주게.”

“물론입니다.”

*   *   *

한의원에서는 은근히 택배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

예전에야 직접 약을 배달해주는 곳도 있었지만, 요즘같은 시대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택배기사가 오늘도 태용한의원으로 향했다.

평소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서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안녕하세요.”

“아, 오늘은 이거 가져가시면 돼요.”

“네~ 수고하세요~”

상자를 받아 나와 차에 싫으면 끝.

그런데 평소와 달랐다.

가벼운 여러 개의 상자들.

대체 여기에 뭐가 들은 걸까.

평소에는 한약이기에 소리가 나거나 무게가 무거웠는데, 이 상자는 너무나 가볍고 작았다.

게다가 보내는 곳을 보아하니, 지방 곳곳의 주소가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그 궁금증은 잠시뿐.

뭐, 나야 무거운 한약보다는 가벼운 게 좋지.

그렇게 전국으로 흩어진 택배 상자 안에는,

혜민서의 배지를 비롯해, 왕뜸기와 그 사용법이 들어있었다.

대전의 약수한의원.

“오, 이제 도착했네요.”

“이게 그 배지 맞죠?”

“네. 이거 달고 활동하면 된다던데요?”

대구, 부산, 강원, 충청, 광주 등등.

곳곳으로 퍼진 이 배지들이 사람들의 가슴에 달리기 시작했다.

토요일. 종일 차도 몇 대 다니지 않는 시골.

그곳의 마을회관에서는 부채질하며 이 더운 여름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고, 아주 죽겄네. 뭔, 여름이 이리 덥댜?”

“여름이 다 그렇지, 뭐.”

“그나저나 오늘 무슨 봉사 하러 온다더니, 왜 안 와?”

그때, 등장한 한 무리의 사람들.

촌장이 그들을 맞이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쪽은 처음이라서 조금 늦었네요.”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오히려 늦어서 죄송하죠. 바로, 진료 시작하겠습니다.”

같이 의기투합한 세 명의 한의사가 진료를 시작하고,

“뭔, 뜸이 이렇게 크데요?”

“할머니, 소화 잘 안 되신다면서요? 그게 여름에 덥다고 찬 거 너무 많이 드셔서 그래요. 속이 냉해져서. 이거 뜨고 나면, 아주 개운해지실 거예요.”

그러면서 한의사가 사용법에 적힌 양과 모습을 보고 따라 모양을 잡았다.

이어서 불을 붙이자, 피어나는 쑥뜸의 냄새.

그렇게 하나둘 마을회관에 있는 어르신들의 진료를 보다 보니,

어느새 4시.

대충 진료가 끝나자,

한 할머니가 먹기좋게 썰은 수박을 들고 와 권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우리가 감사하지.”

“잘 먹을게요. 할머니.”

“그런데, 그 가슴팍에 달린 그거는 뭐여?”

“아~ 이거 우리 혜민서에서 사용하는 배지에요.”

“혜민서? 그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거?”

“어? 잘 아시네요?”

“당연허지. 여기 사람들이 그 드라마 할 때, 우리 전부 티브이 앞에 붙어서 있었을 텐데. 안 그래?”

“맞지, 맞지.”

혜민서란 이야기가 나오자,

옛날 생각이 난다는 듯이 시끌벅적해지는 마을회관.

그때, 촌장이 수박을 먹는 한의사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찾아와서 진료도 봐주고 진짜 고마워요. 선생님 같은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에요...여기서 병원 가려면 차 타고 1시간은 나가야 해서 여간 곤란한 게 아니거든요.”

“에이~ 저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짜 대단하신 분들은 따로 계시거든요.”

“그래도 이 동네에서는 선생님들이 최곱니다. 최고.”

“앞으로도 틈틈이 찾아뵐게요.”

무더운 날씨임에도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

회관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각각 달랐지만, 모두가 미소짓고 있었다.

누구는 고마움에,

또 다른 누군가는 뿌듯함에.

이런 일들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

그 시각 허준의 눈앞에,

「포인트를 2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2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 획득하였습니다.」

···

포인트들이 빠르게 쌓이고 있었다.

‘역시, 왕뜸기와 사용법을 나누기를 잘했어.’

허준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허준한의원의 식구들을 비롯해 참여한 여러 선생과 학생들과 그들을 환영하는 환자들의 얼굴까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선순환의 시스템이 한 단계 더 나아가 확장한 모습.

그것을 몸소 느끼면서 허준이 다음 환자에게 향했다.

그렇게 그날 저녁.

모든 일정을 마친 허준은.

보유 포인트 : 10321

꽤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예전이라면 만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었는데,

‘요즘에는 확실히 체감될 만큼 주기가 짧아졌네.’

하지만, 그렇다고 5만 포인트가 필요한 능력들을 올리기에는 모자랐으니,

당장에 올릴 수 있는 능력은 구술과 추나.

허준이 망설임 없이 구술에 포인트를 사용했다.

요즘에는 아무래도 뜸을 많이 사용하니까.

「‘구술 Lv. 6’에 10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구술 Lv. 6’이 ‘구술 Lv. 7’이 되었습니다.」

[구술 Lv. 7]

- 보사의 효과가 증가한다.

- 온열의 효과가 소폭 증가한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본래 침술과 구술은 침구술이라 엮어 부를 만큼 밀접한 관계였으니,

그 사용법 또한 비슷하다.

때문에, 당연히 보사 법도 존재했는데.

기본적으로는 침은 보사 중 기운을 빼는 사법에, 뜸은 기운을 불어넣는 보법의 효능이 더 좋다고 알려져 있다.

‘침을 맞지 못하는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겠어.’

게다가 온열효과가 높아진다는 것은 같은 뜸을 뜨더라도 더욱 몸 안까지 온기가 흘러 들어간다는 것일 터.

그렇게 되면 현대의학에서 보는 뜸의 효과인 조직 세포의 기능 촉진, 보혈 작용, 면역력 향상 및 혈의 유도에 큰 도움이 되겠군.

허준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의원을 나섰다.

*   *   *

그 시각.

최인호의 집.

제안서를 꼼꼼히 살핀 그의 손에는 허준한의원에서 맞춰온 총명탕이 들려있었다.

이런 고민에는 이것만 한 게 없지.

그 어느 때보다 맑아진 머리가 날카롭게 돌아가며 계산을 해내기 시작한다.

시장한의원 식구들이 전부 함께한다고 했었지?

이허준 선생을 비롯해 유도진 선생과 한때 같이 일했던 김태식 원장과 박용준까지.

사사로운 감정은 제쳐두고 냉철하게 그들의 능력을 분석해 들어간다.

이허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인물.

만약 나에게 그와 같은 능력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쯤이면 떼돈을 벌고도 남았겠지.’

세상에 환자는 많고,

돈 많은 환자도 많았으니까.

그 다음 유도진.

김정우 선생님의 수제자.

탕약에서는 김정우 선생의 대를 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터.

불친절한 성격이라고 알려졌으나, 그 성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실력자다.

‘유도진 선생을 따라서 들어간 선생도 보통이 아니라던데.’

이어서 김태식 원장과 후배 박용준.

같이 근무를 할 때는 그저 그런 평범한 한의사였으나, 지금은 어느새 입소문이 돌만큼 실력 있는 한의사가 되어있었다.

‘애 엄마의 입에서 태용한의원 이름이 나올 정도면.’

이 모든 것이 반년 만에 일어난 일.

그런 멤버들과 함께한다면 매출을 올리는 것은,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가 아니겠는가.

다만, 결정하기에 앞서 먼저 설득을 해야 할 사람이 있었으니,

“여보. 뭘 그렇게 쳐다봐? 창 밖에 뭐 있어?”

“어? 아니.”

“뭐야? 표정을 보니, 고민이 있는 게 분명한데.”

아내의 말에 사례가 들린 최인호.

호흡을 진정시키자,

“고민 있으면 털어나 봐. 그렇게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그게... 사실은 나 경희한의원 접을-”

“뭐?! 이 양반이 미쳤어?”

“아니, 잠깐만. 그거 내려놓고 내 이야기 좀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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