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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17화 (118/230)

< 117화. 정말로 끝내주는 하루였죠 >

117화. 정말로 끝내주는 하루였죠

다음 날.

허준한의원에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원장님.”

“네~ 좋은 아침이에요. 특별한 일은요?”

“입원실 도영철 선생에게 인계받았는데, 특별한 사항은 없었어요.”

“그렇군요. 그럼, 바로 진료 준비 시작할까요?”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무언가 떠오른 허준.

“참, 오늘까지 고요한 선생님이 휴가죠?”

“네. 맞아요.”

“그러면 남은 진료실에 밥 선생님이 들어갈 테니, 데스크 선생님들에게 전달해 주시겠어요?”

“어? 그럼, 오늘부터 밥 선생님. 단독진료 시작하시는 거예요?”

“그럼요. 아마, 간단한 증상은 충분할 겁니다.”

허준의 대답에 김예진과 윤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요한 선생이 첫 진료를 시작했을 때처럼, 처음에는 가장 간단한 질환부터 시작할 테니까 말이다.

방으로 들어서자,

밥 선생이 깍듯이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원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입원실에 다녀왔나 보네요?”

“네. 아침에 유도진 선생님따라서 다녀 왔습니다.”

“잘했어요. 그보다, 오늘부터 진료를 시작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요...?”

밥이 살짝 머뭇거렸으나,

이내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할게요.”

“좋아요. 유도진 선생님 옆 진료실로 가면 될 거예요.”

“넵!”

힘차게 답하며 나서는 밥 선생의 뒷모습을 보며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고 옆에서 참관만 할 수는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실제로 실력을 썩히기에는 아깝지.’

물론, 당연히 경험이 많은 유도진 선생이나 고요한 선생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동안의 노력은 절대 그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진료와 교육에 참여해 왔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허준한의원의 진료 시작.

밥의 첫 환자는 가벼운 발목염좌 환자로, 단골 환자였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이고~ 우리 밥 선생님이시네. 이제 진료도 보시나 봐요?”

단골 환자였기에 이미 밥 선생과 안면이 있는 환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저도 한의사 인걸요.”

그렇게 밥이 허준에게 배운 대로, 환자에게 상황과 통증의 정도 그리고 직접 손으로 염좌의 상태에 진맥까지 확인한 뒤,

“침 맞으면 금방 좋아질 것 같은데요?”

간단하게 처방을 내렸다.

그래서 치료실.

밥이 침을 꺼내 들고 호흡을 가라앉혔다.

본인도 모르게 허준이 하던 모습 그대로를 따라 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며 침을 찔러 넣었다.

생각했던 자리에 모두 자침을 마친 밥.

알람에 15분을 세팅하고는,

“알람 울리면 돌아올게요.”

라며 진료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단골 환자가 중얼거렸다.

“침놓는 모습도 완전 허준 선생님 판박이네?”

그렇게 두 번째 환자.

어린아이 화상 환자였다.

“화상 때문에 오셨다고요?”

“아, 네.”

아이 엄마 최연주가 밥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외국인 한의사였기 때문이리라.

그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한국말.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잠시만요.”

최연주가 딸 미희의 손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일반 화상보다는 크고 심한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아주 가벼운 화상에 지나지 않았다.

‘이정도면 침과 연고만으로도 금방 낫겠는걸.’

화상 치료를 잘한다고 소문이 나다 보니, 심각한 화상이 아니어도 찾아오는 환자가 있기 마련.

때문에, 허준과 함께하며 이런 화상을 수없이 봐온 터라, 바로 견적이 나온 밥이었다.

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정도면, 침하고 우리 한의원에서 직접 만든 화상연고 한 통을 처방해 드릴게요. 연고는 자기전이랑 아침에 발라주시면 금방 좋아질 겁니다.”

이 부조화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에 최연주가 빤히 밥을 바라보다가 답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우리 애가 침을 조금 무서워해서 그러는데, 그냥 연고만 처방해주시면 안 될까요?”

환자의 요구에 고민에 빠진 밥.

원장님께서 그러셨지.

화상은 몸 안에 침투한 화기를 침으로 사하는 것이 회복속도의 핵심이라고.

‘그러니, 침은 필수일 터.’

다행스럽게도 밥은 어린아이를 좋아했다.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뭐를 좋아하는지는 이미 훤히 꿰고 있었으니,

“이러면 어떨까요? 어머니께서 스마트폰으로 펭돌이 조금만 보여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화상 치료에는 침을 치료의 차이가 꽤 있거든요.”

“그래요?”

“네. 경험상 침 맞는 게 압도적으로 빨리 낫습니다.”

“그럼, 그래야겠네요.”

그렇게 치료실.

아이의 눈앞에 스마트폰이 대령 되었고,

밥은 그 틈을 타 하나씩 침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알람 설정까지.

‘휴, 다음 진료 보러 가야겠네.’

홀로 진료를 시작하는 첫날.

정신없이 밥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시각.

허준의 방에서는,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1000

새로운 환자가 나타났다.

포인트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위중한 질환은 아닌 것 같다.

환자의 이름은 김옥순.

차트에는 무릎이 아파서 찾아오셨다고 한다.

“무릎이 아파서 오셨다고요?”

“예. 이상하게 요즘 들어서 다리가 자주 붓고 무겁고 찌릿찌릿 아파요. 무릎부터 시작해서 아래까지요.”

“혹시, 어디 넘어지시거나, 하신 적은 없으신 거죠?”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준이 손을 뻗어 환자의 무릎을 살짝살짝 눌러가며 진단했다.

‘무릎은 정상 같은데?’

손끝에서 느껴지는 촉감이나, 환자의 반응을 봐도 무릎과는 관계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대체 뭘까.

하체가 자주 붓고 저리다. 다리가 무거워진 것 같다.

증상들을 다시 한번 곱씹자, 문득 스쳐 가는 하나의 질환이 떠오른다.

하지정맥류.

다리의 정맥 안에 있는 판막의 기능 이상으로 심장으로 가야 할 혈액이 올라가지 못하고 고여서 생기는 질환.

초기에는 외관상으로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서 발견이 어렵기도 하며,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질환이었다.

“어머님. 잠시, 이쪽으로 엎드려 보시겠어요?”

“엎드리라고?”

무릎이 아픈데 엎드리란 말에 갸우뚱하면서 엎드리는 환자.

이어서 바지를 올리자,

꼬불꼬불하게 뒤엉켜 부푼 정맥들이 눈에 들어온다.

‘찾았다.’

“무릎이 아니라, 하지정맥류에요.”

“하지정맥류? 그게 뭔데?”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피가 하체에서 위로 순환이 되어야 하는데, 제대로 올라가지 못해서 여기에 쌓인 거죠.”

“그거 한의원에서 치료는 할 수 있는 거여?”

“그럼요.”

허준이 자신 있게 답했다.

굳이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하지정맥류는 한의학과 꽤 궁합이 잘 맞았으니까 말이다.

현대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정맥 판막의 고장으로 생긴다고 하지만, 한의학적 관점으로는 어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어혈이란 몸 안에 피가 제대로 순환이 되지 않아 뭉치는 것.

‘그 치료법은 어혈을 제거하고 몸 안의 기혈을 제대로 순환시키게 만들어 주면 되지.’

피를 뽑는 사혈을 통한 치료법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보다는 몸의 제2 심장이라 불리는 종아리의 가자미근을 강화하고 적절한 운동으로 순환을 촉진시켜 어혈을 제거하면 될 터.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질환이나 지병이 나타날 때는 장부와의 연관성을 따져봐야 했으니,

“이리로 오셔서 진맥 한 번 잡아 볼게요.”

이어진 진맥.

전체적으로 맥이 평온하다.

이정도면 장부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겠어.

물론, 연세가있으시니 어느 정도의 영향은 있겠으나, 원인의 시작은 이곳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동시에 손끝에서 느껴진 감각은 온몸을 휘도는데 하체에서 올라오는 길이 막히기라도 하듯 약해진다.

‘하지정맥류는 이런 느낌이로군.’

허준이 눈을 떴다.

다행히 장부에서 시작된 원인은 아니었으니,

혈액순환을 개선해주는데 좋은 계지복령환을.

침으로 종아리가 갈라지는 지점의 승산혈과 그 위에 승근혈을 자극하여 종아리 근육을 풀어주고, 족삼리 혈을 보해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면 되겠네.

“간단하게 환약과 침으로 처방해 드릴게요.”

그렇게 치료실.

허준의 눈에 옆에서 집중하며 침을 놓는 밥 선생의 모습이 들어왔다.

‘제법 자세가 나오는 걸?’

이어서 준비된 침을 들고,

손끝에 감각을 집중하여 엎드린 환자의 종아리에 막힘없이 찔러 넣었다.

*   *   *

그날 저녁.

허준한의원에 유민정과 지영희가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밥 선생님. 원장님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2층에 진료 보러 올라가셨거든요.”

“그러시구나. 그런데,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지영희가 밥을 보며 물었다.

그의 얼굴이 평소와 달라 보였기 때문이리라.

“아, 별일 아니에요.”

“아닌데, 분명 무슨 일 있는데?”

그때, 퇴근하던 유도진이 한마디 내뱉었다.

“진료 첫날이라서 그렇습니다.”

“아, 유도진 선생님 지금 퇴근하시는 거예요?”

“네. 내일 뵙죠.”

그렇게 유도진이 사라지자,

“선생님이 진료를 보셨다고요? 정말요?”

“아, 그게...”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는 밥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오늘 하루가 어땠던가.

정신없이 환자들 진료를 보다 보니,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점심을 먹고.

다시 진료를 보다 보니 어느새 이 시간이 되어있었던 것.

그런데도 밥이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은 것은 진료를 받은 환자들이 대부분 만족해했다는 이야기를 데스크 선생님들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완전 축하해요. 우리로 따지면 오늘 데뷔하신 거네요?”

“그런 셈이죠?”

그때, 입원실 진료를 마치고 내려온 허준.

“원장님. 안녕하세요.”

“오셨군요. 바로, 들어가실까요?”

치료실로 향하고,

허준의 진단이 이어졌다.

이전처럼 입을 열었다 닫으면 모래가 비벼지는 소리가 난다거나, 잡음이 들리지 않았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몸의 균형도 제대로 돌아왔어.’

한쪽으로 치우쳤던 몸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 앞으로의 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터.

허준이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뭐, 더는 치료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정말요?”

유민정이 되묻고,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진짜 감사해요. 선생님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럴 리가요. 나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서 한 겁니다.”

자세를 고친다는 것.

생활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대부분 사람이 포기하는 그것을 유민정이란 어린 친구는 본인의 의지로 해낸 것이었다.

그야말로 대견하다고 할 수 있겠지.

“다만, 자세는 틈틈이 신경써줘야 하는거 잊지 말고요.”

“물론이죠!”

그때, 옆에 있던 지영희가 속삭였다.

“저, 원장님. 잠깐 시간 되실까요?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그건, 지 팀장님 치료 끝나고 하도록 하죠.”

“민정아 나 치료받을 동안 밖에서 잠깐만 기다려 줄래?”

“네. 쌤.”

허준도 밥을 바라보며 말했다.

“밥 선생님도 잠깐만 자리를 비워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원장님.”

그렇게 밖으로 나온 밥과 유민정.

한의사인 밥 선생님이 오늘 첫 진료를 시작했다고 해서였을까.

자신의 데뷔가 한 걸음 더 다가온 느낌이 든 것은.

“선생님.”

“예?”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오늘 첫 진료 어떠셨어요?”

맥락 없는 질문이었지만,

오늘 하루를 떠올린 밥이 명쾌하게 답했다.

“정말로 끝내주는 하루였죠.”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밥의 눈을 보며 유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대기실에서 각자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는 감정에 취해있는 동안,

치료실의 허준과 지영희 팀장.

간단한 치료였기에,

어느새 치료를 마치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선생님과 계약을 맺고 싶어서요.”

“계약이요?”

“네. 이번에 대표님께서 애들 달라진 모습을 보고, 파트너십을 맺고 싶으신가 봐요.”

“파트너십이라면?”

“그야 당연히 지금처럼 우리 회사에 소속된 연습생이나 배우들을 케어해주시는 거죠.”

어떤 원장이 들어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돈도 돈이지만, 파트너십으로 인한 홍보 효과는 단순하게 숫자로 계산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죄송한데, 그건 안될 것 같은데요?”

“물론이죠. 저희와 함께-”

당연히 동의할 거로 생각했던 지영희가 말을 이어나가다가,

“네?! 왜요?”

“곧 없어질 한의원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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