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그때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
114화. 그때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한국 면적의 약 27배.
현재 인구 수는 약 14억 명.
역사에서 흔히 등장할 만큼 과거에서부터 우리나라와 연을 이어온 중국의 의학.
그것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한의학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 중의학은 땅덩어리가 워낙 크고 사람이 많았기에,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발달하며 처방되고 있었는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왕문원 교수라는 중의사가 새로운 혈 자리를 발견하면서 국가의 비밀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침술이 바로 평형침.
하나의 병을 하나의 침으로 치료하는 엄청난 고효율이 특징인 덕에 ‘일침요법’이라고도 불린다.
고효율이라는 단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평형침은 군사적인 용도로 개발되었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요즘같이 평화로운 시대에서도 이 평형침의 이름이 날리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침 하나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 침을 사용할 때의 치료시간조차 매우 짧다는 것.
이 두가지 이유로 인해서 의학적인 치료 원리는 둘째치고, 평형침으로 치료하는 모습은 환자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평형침에 나름대로 자신 있는 중의사 왕걸륜이 미팅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교수도 아닌 젊은 한의사. 그 한의사가 여러 치료 사례를 가지고 자연스레 발표하던 모습.
‘아무래도 이상해.’
분명 비슷한 또래인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마치 자신의 스승과 같이 수많은 경험을 거친 백전노장의 느낌이 아니던가.
혹시, 잘못 느낀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믿을 수 없다는 말에, 웃으면서 보여드리겠다고 답하는 그의 모습이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그였다.
그때, 같이 저녁을 먹던 다른 세 명의 중의사 중 한 명이 왕걸륜을 불렀다.
“왕 선생. 꽤 심각한 얼굴이네요? 아까 그 젊은 한의사가 신경 쓰이나 봐요?”
“아닙니다. 장 선생님.”
“보나 마나 다 허풍이에요. 한의학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우리 중의학에서 파생된 작은 학문일 뿐인걸요.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난다긴다해봐야 우리 중국의 의학에 비교해보면 새 발의 피라고요.”
그러자,
동의한다는 듯이 그 옆에 있던 선생이 이어받았다.
“뭐, 일부는 진짜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래봤자 우리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을걸요. 왕 선생께서 자침하는 모습만 봐도 바로 드러날 테니까요.”
“참, 왕 선생. 아까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바로 이야기한 것. 아주 좋았습니다. 스승님께서 왕 선생을 괜히 추천하신 게 아니었군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나저나 내일이죠?”
왕걸륜의 되물음에,
장 선생이 답했다.
“예. 내일 아침에 한국의 도 교수님이 와서 함께 가기로 했어요. 그나저나 아직 시간도 많은데, 우리끼리 미리 축배라도 한잔하는 게 어떨까요?”
“드시고 오시죠. 선생님들. 저는 먼저 올라가 있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왕걸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 다른 선생들이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럼, 편히 쉬세요~”
“내일 봅시다.”
돌아서며 올라가는 왕걸륜.
자꾸만 한국의 한의사가 신경 쓰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게 다음 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한 허준이 이미 출근해 있는 한의원 식구들에게 말했다.
“죄송한데, 아무래도 오늘 손님이 올 것 같아요.”
“손님이요?”
“네.”
“어떤 손님이요?”
허준이 대충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중의사들과 미팅 그리고 미팅의 사례발표를 하면서 있었던 일까지.
그러자,
“그러니까, 뭐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 말이죠?”
“네. 우리는 그냥 평소처럼 진료 보면 됩니다. 다만, 중의사 선생님들이 오면 입원실은 밥 선생님께서 도와주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아무래도 진료를 봐야 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장님.”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처럼 진료 준비를 시작하는 식구들.
허준이 가져간 사례들은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일상에 불과했기에 이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물론, 가장 최근에 합류한 밥 선생은 예외였지만.
밥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의원 사람들을 바라봤다.
‘역시 다들 믿음직스러워.’
그때, 허준이 밥을 불렀다.
“밥 선생. 그럼, 우리도 진료 준비할까요?”
“네.”
진료 시작과 함께 허준한의원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 * *
“여깁니다.”
“여기라고요?”
“네. 여기가 맞답니다.”
따라온 통역사가 중국어로 답한다.
그 옆에 서 있던 왕걸륜이 눈앞에 있는 조그마한 한의원을 봐라봤다.
분위기는 중의원과 얼핏 비슷하지만,
규모 면에서는 아무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더 작네.’
그때, 코끝으로 느껴지는 약초 냄새.
탕약도 직접 제조하나 보군.
얼핏 들렸던 중국말 때문이었을까.
시장 사람들이 허준한의원 앞에 서 있는 무리를 보며 수군거렸다.
“여기에 웬 중국인이 다 왔댜?”
“글세, 중국인이야? 일본인이야?”
“중국인 같은데? 그런데, 저거 허준네 들어가는 거 아니여?”
그렇게 입장한 허준한의원.
“어서 오세요?”
“아, 저는 도준혁 교수라고 합니다.”
“아~ 교수님이시군요? 아침에 원장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잠시만요. 지금, 원장님께서 진료 중이 시라서요.”
김예진이 원장실로 메시지를 보내놓고는, 평소처럼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왕걸륜의 옆에 있던 중의사가 중얼거리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제 과음을 한 탓에 몸이 안 좋다면서 자신만 이곳에 보냈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4명의 중의사 일행은 2명이 되어있었다.
그 불평을 들은 채 말은 채,
왕걸륜은 자리에 앉아 천천히 한의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분명 규모는 작은데,
환자의 숫자는 제법 많다.
‘그리고...’
잠깐 눈이 마주친 작은 아이.
그 옆으로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또 그 뒤에는 젊은 청년이 스마트폰을 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 일부의 모습일 뿐이었지만,
이는 대기실 전체의 모습과도 크게 다른 것이 없었으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게다가 끊임없이 들락날락거리는 환자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한의원이 여유가 있어 보이는 것은 바로.
‘데스크 업무를 보는 저 사람 때문이군.’
그녀가 능수능란하게 환자들의 흐름이 끊이지 않도록 이어 나가고 있었다.
왕걸륜이 통역가에게 말했다.
“하루 진료 보는 환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통역가가 데스크로 다가가 말했다.
“저기요. 죄송한데, 여기 하루에 환자가 몇 명정도 찾아오냐고 물어보십니다.”
“환자요?”
“네. 저쪽에 선생님께서...”
“그걸 제가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은데요. 나중에 원장님께 직접 물어보시죠.”
그때, 치료실에서 시침을 끝내고 나온 허준.
허준이 도준혁 교수와 중의사 일행을 알아봤다.
“어서 오시죠. 다른 두 분은 안 오셨네요?”
“아, 몸이 안 좋아서 여기 왕 선생과 장 선생만 왔네.”
“그렇군요. 그럼 2층의 입원실부터 다녀오시겠습니까? 밥 선생님.”
허준이 밥을 불렀다.
“교수님과 선생님들께 입원실 안내 좀 해드리세요.”
“알겠습니다. 원장님.”
그렇게 밥 선생을 따라간 일행들.
입원실로 올라가니,
왕걸륜과 장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로 시커멓게 죽은 살점들을 가진 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장춘이 왕걸륜에게 물었다.
“이거 진짜입니까?”
“네. 전부 진짜입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왕걸륜도 동상을 치료해 본 적이 있었기에, 단번에 그들의 상태를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동상은 치료해 본 적이 없었는데.
“왕 선생. 아직 인정하기엔 일러요. 자세히 봐주시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왕걸륜.
직접 진료를 보기 전까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왕걸륜이 뒤따라온 통역사에게 내려가서 진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자, 밥 선생이 오케이 라고 손으로 표시하며 그들을 안내했고,
갑작스럽게 들려온 중국말에 입원실 환자들이 밥 선생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웬 중국인들이래?”
그렇게 다시 내려온 일행.
허준이 진료를 보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밥 선생이 들어왔다.
물론, 그 옆에는 왕 선생이라 불리는 중의사도 함께였다.
평소처럼 진료를 시작하는 허준.
환자에게 묻고, 직접 눌러보고 맥도 잡아 본 뒤에.
처방을 내린다.
급성허리통증으로 방문한 환자였으니,
처방은 추나와 침 정도면 충분할 터.
허준의 안내에 따라 환자가 카이로베드위에 올라갔고,
추나치료가 시작된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왕 선생.
치료하는 허준의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힘의 방향 또한 정확하다.
‘보통이 아니야.’
이어진 치료실에서의 침 치료.
왕걸윤의 눈이 더욱 매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침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으니까.
그런데,
‘아...’
일말의 망설임 없이 찔러 들어가는 허준의 침.
그 침을 놓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침을 놓는 한의사에게서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이건 침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경지가 다른 것일 뿐.
이어진 허준의 손길.
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숨죽여 지켜보는 왕걸륜.
‘이건...’
침 치료를 마치고, 치료실에서 뒤따라 나온 왕걸륜이 입을 열었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선생님 같은 분을 몰라보고.”
허준이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중국말에 통역가를 바라보자,
“오해해서 죄송하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을 몰라봤다고.”
“괜찮다고 전해주세요. 그나저나 곧, 점심시간인데 같이 식사라도 하시겠어요?”
허준의 답을 통역가에게 전해 들은 왕걸륜.
그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허준한의원에 방문하여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을 마친 중의사 둘.
허준이 둘과 악수했다.
“선생님의 환대에 감사하답니다.”
그들에게서는 예전처럼 거만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허준의 진료를 참관했던 왕 선생뿐 아니라, 장 선생이 느낀 감정 또한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리라.
“언제든 환영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인사를 하는데,
도준혁 교수가 허준을 불렀다.
“허준 선생.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물론이죠.”
“내가 우리 허준 선생 덕분에 아주 속이 다 시원하네. 지난번에는 어찌나 으스대던지. 어쨌건 덕분에 아주 잘 풀릴 것 같아. 이제야 제대로 된 교류의 물꼬가 트인 것 같거든.”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장기적으로 보면 좋은 일일 것이다.
중의사들은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진료를 보지 못하지만, 그들이 가진 의학적인 지식과 경험은 한국에 있는 한의사들과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잘됐네요.”
“다, 자네 덕분이야. 그래서 말인데. 올해 말고 내년에도 강의를 좀 부탁해도 되겠나? 이런 말을 꺼내기에는 시기상조겠지만, 나는 자네를 겸임교수로 추천할 생각이네.”
“겸임교수요?”
겸임교수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돈은 아니었지만,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자리.
허준에게는 겸임교수로서 할당된 강의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포인트를 얻게 해주는 강의는 무조건 옳았으니까.
‘게다가 혜민서의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이는 허준 개인의 이득뿐만이 아니라 혜민서에도 큰 이득이 될 것이었으니,
대답이 곧바로 이어졌다.
“저야 감사하죠.”
“아니야. 자네 정도면 충분히 자격이 되고도 남아. 아마, 다른 교수들도 내 의견에 모두 동의할 걸?”
그때, 왕 선생이 허준에게 다가와 말했다.
통역사가 그 말을 대신 전해준다.
“선생님과는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쌓아가고 싶습니다. 언제 한번 중국에 들러 주십시오. 그때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훈훈하게 중의사들을 보내고 난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이 진료를 보던 허준의 눈앞에,
* 보상 : 포인트 10000
새로운 환자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