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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10화 (111/230)

< 110화. 염라대왕이 아닌 게 다행이네요 >

110화. 염라대왕이 아닌 게 다행이네요

놀란 것은 유민정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이 신생 사업팀의 팀장을 맡은 지희영.

그녀가 보기에도 이곳이 진짜 맞나 하는 의문이 든 것이었다.

이 세계에 몸담은 지 어언 15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정보를 보고 들었겠는가.

그중에서 이런 동네에 있는 한의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대표님이 보내셨으니 이유가 있겠지.

뒤를 돌아보니 민정이가 자신과 한의원 간판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아직 어린 나이.

‘내가 자신없어 하는 모습을 보이면 저 아이도 흔들리는 거야.’

“민정아. 들어가자.”

“네.”

그렇게 가슴을 쭉펴고 당당하게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하얀 가운을 입은 선생님이 그 둘을 맞이했다.

갈색빛의 머리카락.

새하얀 피부 그리고 2미터는 되어 보이는 큰 키와 파란 눈.

밥 선생이었다.

지희영과 유민정 둘이 밥을 보고 놀라 눈이 커졌다.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유창한 한국어에 어이없어서 풉- 하고 웃음이 터진 두 사람.

밥이 그런 그녀들에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의사 밥이라고 합니다. 원장님께서는 입원실에 잠시 진료를 보러 가셨는데, 곧 내려오실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물론이죠.”

둘이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유민정이 지희영에게 속삭였다.

“여기는 뭐 볼 것도 없나봐요.”

일반적으로 대부분 한의원에는 대기실 공간에 여러 가지 볼 것들을 제공한다.

신문이라던가, 잡지, 하다못해 한의원의 치료나 한약에 관련된 팸플릿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흔한 신문 잡지는 고사하고 광고 전단이나 포스터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인테리어가 절대 비싸 보이지는 않지만, 잡다한 것이 붙어있지 않아 깔끔한 느낌.

동의한다는 듯이 지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이런 한의원의 모습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 흔한 피부나 미용에 관련된 것도 안 붙여놨네.’

그때, 한의원 문이 열리며 허준이 들어왔다.

허준이 앉아있는 두 여자를 확인하고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허준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원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팀장 지영희입니다.”

“네. 지영희 팀장님. 그럼, 이쪽이...”

“안녕하세요 유민정이에요.”

허준이 인사를 하는 유민정을 얼핏 살폈다.

모자에 마스크도 쓰고 있었지만, 이미 앉아있던 모습도 범상치 않았다.

‘확실히 문제가 있겠는걸.’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가자 민정아.”

그렇게 원장실.

허준이 평소처럼 자리에 앉고, 그 옆으로 밥 선생이 앉았다.

본래라면 퇴근할 시간이었지만, 안면 비대칭 환자 이야기를 듣고는 굳이 남아서 참관하고 싶다고 열정을 불태운 결과였다.

“유민정 씨. 모자랑 마스크 벗고 이리로 와서 앉아 줄래요?”

“네.”

이제야 제대로 유민정을 마주 본 허준.

그냥 보기에도 턱이 한쪽으로 심하게 삐뚫어져 있다.

허준이 천천히 얼굴을 좌우로 돌려가면서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것 같아요. 선생님?”

뒤에 서 있던 지영희가 물었지만,

“아직 확인이 더 필요하니, 잠시만 저 뒤로 가서 앉아 계시겠어요?”

“아, 죄송합니다.”

“저쪽입니다.”

밥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은 지영희.

그리고 다시 이어진 진료.

이번에는 허준이 양손의 손가락을 각각 턱과 광대 사이에 있는 교근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입을 천천히 벌렸다 다물었다 해보시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유민정이 허준의 말대로 입을 벌리자,

모래를 씹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마지막에는 살짝 두득 거리는 소리가 손가락을 타고 올라온다.

벌렸던 입을 닫을 때, 또한 마찬가지.

그러면서 입을 벌리며 한쪽으로 돌아갔던 턱은 제자리를 찾았다.

‘턱관절이 많이 틀어져 있어. 이랬으면 꽤 통증도 있었을 텐데.’

“입 벌렸다 닫았다 할 때. 아프지는 않았어요?”

“가끔 아프긴 했는데, 그냥 뭐 막 엄청 아프지는 않아서... 입 다물고 있으면 또 괜찮아 지기도 하니까요. 계속 아픈 것도 아니고.”

“그렇군요.”

이번에는 얼굴 옆쪽이 아니라 목 쪽에 손을 가져다 댄 허준.

이복근이라 불리는 근육이 있는 자리였다.

다시 한번 입을 벌렸다 닫아달라고 말했고,

‘역시 한쪽의 근육이 뻣뻣하게 긴장이 되어있다.’

아니나 다를까.

비틀어진 만큼 한쪽의 근육은 늘어나 있었고, 그에 반해 다른 쪽은 긴장되어 딱딱하게 굳어있는 상태.

이번에는 턱관절 끝에 붙어서 관자놀이 쪽으로 이어진 측두근을 지긋이 누르자,

“아~”

유민정의 입에서 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통증 속에 숨어있는 시원함의 소리였다.

대충 진단을 끝낸 허준.

사람의 얼굴이 완전히 대칭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나, 유민정 환자의 경우에는 잘못된 습관이나 자세 또는 어떤 요인에 의해서 발생한 안면 비대칭이라 볼 수 있었다.

허준이 한의원에 들어오면서 본 유민정의 모습을 떠올렸다.

한쪽으로 치우쳐 꼬인 모습.

‘아마 그 자세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

인간의 몸은 신기하게도 무의식적으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

골반과 척추 그리고 경추나 어깨등이 어떤 요인으로 인해서 삐뚤어지면, 얼굴에 비대칭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반대로, 안면 비대칭에서 시작하여 다른 관절들이 삐뚤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으니,

‘침으로 뭉친 근육을 풀고, 턱관절을 비롯해 경추와 요추 골반 쪽을 추나로 맞춰줘야 겠어.’

하지만, 그전에 먼저 평소 유민정의 습관을 확실히 알아보는 것이 중요할 터.

허준이 유민정에게 말했다.

“편하게 앉아 보시겠어요? 지금처럼 긴장한 모습 말고요.”

“편하게요?”

“네. 아까 밖에 대기실에 앉아있던 모습처럼요.”

유민정이 뒤에 앉아있는 지영희를 바라봤다.

지영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금세 자세가 달라지는 그녀.

골반은 앞으로 쭈욱 내밀고, 한쪽 다리를 반대편 다리 위로 올려 꼬았다.

당연히 다리가 꼬여서 올라갔으니, 허리와 등도 그 방향으로 따라 움직였고,

마지막에 목은 그 방향에 저항이라도 하듯이 반대로 꺾여서 앞을 바라보는 자세.

‘확실히 영향을 미쳤겠네.’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이 자세가 안면 비대칭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했다.

화룡점정으로 마지막에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좋아요. 자, 이번에는 다시 제대로 앉아서 손 좀 줘보시겠어요?”

유민정이 두 손을 내밀자,

허준이 눈을 감아 집중하면서 진맥에 들어갔다.

그런데,

‘뭐야 맥이 팔팔하지가 않아.’

10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맥이 허한 것이 아닌가.

종종 다이어트 부작용으로 찾아온 환자에게서 느껴본 적이 있는 그런 맥이었다.

허준이 살짝 놀라서 눈을 뜨고는 유민정을 쳐다봤다.

아이돌 연습생이라고 했었지. 어릴 때부터 몸을 혹사하는 그녀.

잘 먹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것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으니,

아무래도 보약이 필요할 듯 싶었다.

‘마침, 김 대표님이 낫게 할 수 있으면 마음대로 처방해도 된다고 하기도 했고.’

진료를 마친 허준이 지영희 팀장을 불렀다.

“지영희 팀장님.”

“네?”

“이쪽으로 와서 같이 들으시죠.”

허준의 설명이 이어졌고,

그렇게 오늘 치료는 침과 추나.

카이로 베드 위에 누운 유민정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허준을 바라봤다.

허준이 경추를 잡아 살포시 힘을 주자,

“아윽-”

누워있던 유민정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신음이 흐른다.

허준이 손끝에 감각을 집중하면서 왼손으로는 턱을 잡고 가볍게 힘을 주어 회전시켰다.

두둑-

경쾌한 소리와 함께 유민정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허준은 무심하게 반대쪽으로 한 번 더 돌렸다.

그러자 경추에서부터 척추로 시원한 물이라도 흐르는 것 같은 청량감이 꼬리뼈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느낌의 유민정.

“시, 시원해요.”

그렇게 경추와 척추 그리고 요추의 추나를 끝내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밥 선생님.”

허준이 부르자, 밥 선생이 장갑을 건넸다.

의료용 라텍스 장갑이다.

그것을 낀 허준이 이번에는 유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입을 아~ 하고 벌려주세요.”

“입이요...?”

이미 다른 한의원에서도 받아본 적이 있던 치료.

다른 사람의 손가락이 입안으로 직접 들어오는 이 치료에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창피한 기분만 느껴질 뿐이었으니 거부감이 들던 유민정이었으나,

좀 전에 막혔던 무언가가 뚫린 듯이 시원한 느낌은 그녀의 입을 벌리기에 충분했다.

허준이 손가락을 천천히 집어 넣어 입 안쪽에 날개근이라 불리는 외익상근과 내익상근을 차례대로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시원한 느낌이 관자놀이를 타고 머릿속으로 올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유민정.

바로, 이 녀석들이 턱의 움직임에서 좌우를 담당해주는 녀석들이다.

이번엔 반대쪽.

이쪽은 아주 딱딱하게 긴장이 된 모습이었다.

살포시 힘을 주자,

유민정의 눈이 질끈 감긴다. 통증이 있다는 뜻.

허준이 그대로 힘을 뺀 채, 가볍게 누르는 것으로 마무리.

그 자리에서 장갑을 벗고, 이어서 곧바로 침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앉아있는 유민정의 얼굴에 침을 찔러 넣는 것이 아닌가.

놀랄새도 없이 순식간에 들어간 침.

침은 턱뼈와 두개골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그 안쪽에 있는 날개근을 정확하게 자극했다.

“기분이 이상해요. 선생님.”

“시원하면서도 알싸한 느낌이죠?”

“네.”

“원래 그런 자리에요. 시원하기도 하고 알싸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시원해질 거예요.”

그렇게 오늘 치료 끝.

옆에서 치료하는 모습을 본 지영희 팀장이 확실히 이전에 갔었던 한의원과는 무언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 치료를 받은 민정이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원장님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별말씀을요. 당분간 알려드린 대로 자세 교정해주시고. 시간은 이 시간대로 그대로 오시면 됩니다. 주말은 제외하고요.”

“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유민정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허준에게 인사했다.

허준이 그런 유민정에게 답했다.

“아까 말한 대로, 자세가 진짜로 중요하니까 꼭 신경 써 주세요.”

“물론이죠!”

그렇게 한의원을 나선 두사람.

그리고 이 치료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밥의 눈도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   *   *

허준한의원에서는 재미난 상황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주인공은 시장의 아기보살이 한의원에 진료를 받으러 다니면서부터였다.

아기보살이라고 특별히 대우를 해주는 것은 아니었으니,

당연히 대기실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하기 마련.

그러다 보면 종종,

대기실 사람들 사이로 아기보살이 끼어드는 탓이었다.

“에잉~ 쯧쯧. 굴러들어온 돈이 날아갈 팔자야.”

“아이고~ 보살님.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이 동네 싫다고 다른 동네로 이사하려고 한다면서?”

“그걸 어떻게...?”

“어떻게긴? 보살님이 알려 주셨지. 지금 그러시는데, 몇 년을 여기 살았는데 조금 더 살다가 가라고 하셔. 괜히 굴러들어온 복 걷어차지 말고.”

그 이야기를 듣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줌마.

“다음에 올게요! 제 진료 좀 취소해주세요!”

라고 소리치며 그대로 한의원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비단 이런 이야기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에는 김숙자가 윤 선생의 배를 바라보더니,

“아이고~ 듬직한 사내자식이 나오겠네.”

“에이~ 아니에요. 병원에서 딸이라고 했어요.”

어느새 임신 12주 차.

초음파 사진으로 기형아 검사와 함께 각도법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추론할 때에, 딸이라고 답을 받은 윤다희였다.

“아니라니까? 보살님이 아주 덜렁덜렁하고 튼실한 게 달려 있다는데?”

그렇게 원장실.

허준이 김숙자 씨를 반겼다.

<병과 병 그 미묘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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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하루아침에 낫는 병은 아니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요새는 어떠세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보살님이 여전히 잘 삐져요. 그래도 많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예전처럼 선생님을 무서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요? 잘됐네요. 그런데, 대체 저는 왜 무서워했대요?”

“아~ 그거요? 선생님한테서 무서운 삼신할매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그러던데요?”

뜬금없는 소리에 웃음이 터진 허준.

“염라대왕이 아닌 게 다행이네요. 치료받으러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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