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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07화 (108/230)

< 107화. 오늘은 괜찮다고 하시네 >

107화. 오늘은 괜찮다고 하시네

“치료라니요? 괜찮습니다. 그저 이야기하러 왔을 뿐인데요.”

“걸을 때...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허준의 말에 김강현의 눈이 커졌다.

“들어오실 때보니까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더라고요. 보아하니, 오른쪽 무릎인 것 같은데...”

젊었던 시절, 쿵쾅거리며 울리는 신나는 음악이 좋았고.

그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춤이 좋았다.

이끌리듯이 시작한 댄서라는 직업.

그런 댄서들에게도 말 못 할 직업병이 있었으니, 바로 관절염이었다.

기획사 대표로 살아가는 김강현에게 아직 남아있는 과거의 훈장과 같은 것으로,

약으로 관리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무의식적으로 바뀐 걸음걸이까지는 신경 쓰지 못한 것이었다.

허준이 그런 김강현의 걸음걸이를 보고 단번에 알아차린 것이었다.

이미 수많은 환자를 보면서 익숙한 모습이었으니까.

“그걸 어떻게...?”

“그게 제 일이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진료.

허준이 김강현의 반바지 아래에 드러난 무릎을 누르며 확인했다.

“생각보다 많이 굳어있네요.”

보통 급성 관절염은 붓거나 열감이 동반된다.

이렇게 딱딱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오래된 만성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무릎을 다쳤던 적이 있나 보죠?”

“오래전에요. 제가 어릴 때 춤을 좋아했었거든요.”

“춤이라면?”

“브레이크 댄스라고 하죠. 요즘에는 비보잉이라고 하는.”

김강현이 그때가 떠오른다는 얼굴로 답했다.

“한때는 정말 춤에 빠져서 살았죠. 그냥 좋았거든요. 밥 먹고 종일 춤만 춘 적도 있을 정도로요.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히 미친 짓이죠. 멍청하게 몸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이야기하는 김강현이 씁쓸하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심장이 뛰는 것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리라.

대답을 들은 허준이 생각을 바꿨다.

만약 그의 말대로라면, 무릎만의 문제가 아닐 터.

브레이크댄스. 흔히 비보잉이라 불리는 이 댄스에는 여러 가지 동작들이 있는데.

결코, 평범한 사람들이 따라 할 만한 쉬운 동작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만큼 멋은 있었지만,

그 덕에 희생되는 것이 바로 관절이었으니.

‘브레이크 댄스를 췄는데, 무릎만 망가졌을 리는 없겠지.’

이것이 허준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된 진료.

그러자, 무릎뿐 아니라 팔꿈치 그리고 어깨와 목에 더해서 요추가 뒤틀린 것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약 드시는 거 있으시죠?”

“아, 예. 소염제 먹고 있습니다.”

예상대로였다.

이 정도로 여기저기 만성 염증이 있으면 몸 상태가 조금만 나빠져도 곧바로 여러 증상이 나타날 터.

안은 괜찮은 건가?

“손을 이리로 올려보시겠어요?”

허준이 두 손으로 맥을 잡고 눈을 감으며 천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장부의 맥은 안정적이네.’

아무래도 몸에 좋은 것들을 먹으며 관리를 한 덕이겠지.

손끝에서 나온 한 가닥의 실과 같은 감각에 집중하자 몸 곳곳으로 퍼지며 정보들을 가져온다.

그렇지만, 몸 곳곳에 남아있는 염증들을 없어지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무리한 각도로 움직이면서 생겨난 염증들이 워낙 오래되고 주변의 근육들이 단단하게 굳어있었으니,

‘직접적인 치료가 필요하겠어.’

침으로 관절에 붙어있는 굳은 근육들에 먼저 자극을 줘 풀어준 뒤에, 뜸과 병행하여 면역력을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비틀어진 요추의 경우에는 추나를 진행하여 제대로 된 몸의 균형을 잡으면 되겠군.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나 탕약.

전체적인 몸의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회복 빠를 터.

조금 비싸지만, 역시 공진단이 최고겠지.

생각을 마친 허준이 맥을 잡았던 손을 떼며 말했다.

“아무래도 워낙 오래되어서 하루 이틀 만에 낫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래서 일단 침과 약침 그리고 추나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대답을 들은 김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의원을 그리 잘 알지는 못해도 여기저기서 듣는 게 많은 위치라, 어떤 치료인지는 대충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봐야. 별거 있겠어? 병원에서도 못 고쳤는데.’

“그리고 뭉쳐있던 근육이 풀리면 뜸을 병행하여 염증을 다스려볼 생각입니다. 물론, 여기에 선택사항이 있습니다.”

“선택사항이요?”

“아무래도 바쁘신 분 같으니 치료 기간을 짧게 하시려면 공진단을 같이 복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공진단이라는 말에 김강현이 코웃음을 쳤다.

이미 선물로 몇 번 받아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결국 장사하겠다는 거네?’

해결하려 했던 일도 끝난 상태였으니,

오늘 진료만 받아보고 안 오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치료부터 시작해보죠.”

그렇게 시작된 치료.

가장 처음은 당연히 추나였다.

안내에 따라 신발을 벗고 카이로베드 위에 올라간 김강현.

허준이 누워 있는 김강현의 몸을 보니, 그 모습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다.

“편하게 누우신 거죠? 이쪽으로 다리 들어 올릴게요.”

가장 간단하게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골반교정이 시작되었고,

“숨 내쉬세요.”

“후~”

우두둑-

김강현의 몸에서 무언가 부러진 것 같은 소리가 함께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굳어있던 근육과 관절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몰려오는 짜릿한 느낌에,

“커흑.”

묘한 신음이 흘러나왔고,

허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무릎, 팔꿈치 그리고 대망의 요추까지 끝낸 허준이 이마에 맺힌 땀을 스윽 닦으며 말했다.

“이제 치료실로 가시죠.”

치료실에서 약침에 이어서 침까지 모두 맞고 난 뒤에,

한의원에서 나온 김강현.

‘몸이 날아갈 것 같다.’

한의원에서 이런 치료가 가능할 줄이야.

솔직히 처음에 찌릿찌릿한 불쾌한 느낌과 뼈 소리가 났을 때는 고민이 되던 차였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마치 내가 참을 수 있는 기준을 아는 것처럼 교묘하게 경계선을 타면서 이어진 추나.

분명히 전기가 오른 것처럼 찌릿한 느낌이 들어서 불쾌했지만, 추나가 끝나고 앉아있는데 어마어마한 시원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었다.

마치, 그 부위에 파스라도 바른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이어진 치료실에서의 치료.

그곳에서 허준의 침을 맞은 김강현은 한의학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침과 약침이라 불리는 주사를 맞고 나니,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꼈던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기분 좋은 느낌.

그것이 안쪽에 관절과 연결되어 단단하게 굳어있던 근육이 풀어지면서 느끼는 감각임을 알 리 없는 김강현이었다.

그렇게 한의원을 나서며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혼잣말.

“공진단 먹으면 빨리 낫는다고 했었지?”

어느새 강수연의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찾아온 것을 잊어버린 김강현이었다.

*   *   *

그날 저녁.

한의원 진료가 끝난 뒤, 허준이 탕전실로 올라가 유도진을 찾았다.

의논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도진 선생님. 오늘도 탕약 달이시는 건가요?”

“네.”

유도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허준이 그런 유도진에게,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될 것 같아서 말인데, 쑥뜸 주문 좀 넉넉하게 넣어 주시겠어요? 쑥뜸을 조금 다양하게 처방하고 싶어서요.”

장마.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도 주듯이 틈만 나면 비가 쏟아지고, 덕분에 습도가 올라가면서 불쾌감이 치솟는다.

한의학적 관점에서도 장마는 꽤 골치 아픈 기간이다.

이렇게 높아진 습도는 신체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습도가 높으면 먼저 몸의 면역력을 떨어트린다.

소화도 덜 되는 것 같고, 속이 더부룩하면서 몸이 스펀지라도 되는 듯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가령 이 습도를 없애기 위해서 에어컨을 가동하다 보면 감기나 냉방병에 쉽게 노출되기도 했다.

당연히 무좀이라던가 식중독 같은 것은 덤이다.

이렇듯 여러모로 이 장마 때 병을 얻은 환자들을 위해서 허준이 생각한 방법이 뜸이었다.

뜸은 떨어진 면역력을 올려주는 효능이 있으며 혈액을 비롯한 기혈의 순환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쑥이란 한약재는 또 어떤가.

그야말로 질긴 생명력의 표본인 그것은 엄청나게 따듯한 성질을 가진 약재였으니,

‘민감한 사람은 쑥 전이나 쑥국을 먹고 뱃속이 따듯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지.’

덕분에 감기와 냉방병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덤이요.

장마 기간에 몸을 괴롭히는 습기를 날려 가벼운 증상들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도록 하죠.”

유도진이 허준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면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거기다가 한 가지만 더요.”

“말씀하시죠.”

“정우한의원 때 이 옹기탕약기 주문제작 하셨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혹시-”

허준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유도진에게 건넸다.

“이런 것도 만들 수 있을까요?”

유도진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뜸기였다.

일명 왕뜸기라 불리는 커다란 뜸기.

그 사진에 허준이 말을 보탰다.

“이것보다 두 배 정도 큰 뜸기가 필요해요.”

“두 배나 더 크게 말입니까?”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허준을 확인하고는,

재차 물었다.

“정말로 이렇게 큰 걸 사용하시려고요?”

“네. 뜸이 면역력과 순환에 좋잖아요. 왕뜸은 일반 뜸보다 더욱 효과가 좋고요.”

“그건 그렇죠.”

“그러니,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에 습기의 영향을 받는 장마철에 이 정도로 큰 뜸이라면 효과가 더 좋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화상의 위험이...”

게다가 이미 왕뜸기를 이 정도로 크게 만들어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렇게까지 크게 만드는 것이 정말 치료에 도움이 될까.

잠시 고민하던 유도진.

하지만 허준 원장이 어디 보통 사람이던가.

여태까지 그가 했던 일을 떠올리자 답은 금세 나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연락해서 샘플부터 하나 받아보도록 하죠.”

그렇게 며칠 뒤 도착한 샘플.

점심시간에 도착한 이 왕뜸기를 허준이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괜찮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모르는 법.

직접 사용해보는 수밖에.

허준이 눈을 감고 봉지에 담긴 쑥뜸을 커다랗게 뭉치기 시작했다.

탕제술과 구술 중 어떤 능력에 영향을 받을지 모르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크기다.’

손끝에 닿아있는 쑥뜸의 양을 육감이 말해주는 대로 뭉치고, 이어서 왕뜸기에 올려 불을 붙인다.

그리고 그것을 원장실에 누워서 배 위로 올려두자,

‘따듯하다.’

시작은 따듯하다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마치, 사우나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의 땀구멍이 열린 느낌.

그리고 뜨거움이 아니라 시원한 느낌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 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허준한의원 대기실.

“최 쌤. 아까부터 어디서 자꾸 쑥뜸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요?”

“아침에 뜸 치료받으신 분들 있잖아요. 그래서 그럴 거예요.”

“그런가? 그러기엔 너무 진한 거 같은데.”

그때, 원장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땀이 범벅된 허준이 나타났다.

아주 개운한 얼굴로.

“원장님...?”

“별거 아니에요. 그보다 오후 진료 시작해야죠?”

*   *   *

한복을 입은 여인이 향을 피우며 홀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보살님, 보살님.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온몸에 힘이 없고, 머리도 어지럽고, 이러다 진짜로 쓰러져요.”

그러자 순식간에 바뀌는 표정.

그리고 말투 또한 바뀌면서 중얼거린 혼잣말에 답하듯 또다시 중얼거린다.

“시러~ 시러~ 가기 시러~ 거기 가면 무섭단 말이야.~”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정말? 뭐 사줄 건데?”

“보살님 먹고 싶은 거 다 사드려야죠~ 그러니, 약 한 번만 더 맞추러 가도 될까요?”

“정말이지?”

허억, 헉.

시장 골목 아기보살 김숙자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이거 한의원 가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그래도 다행스럽게 보살님께서 허락하셨으니,

내일은 한의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아봐야겠어.

아무래도 몸 상태가 심상치가 않아.

그렇게 찾아간 허준한의원.

“김정우 선생님이 진료를 안 보신다고요?”

“네.”

“유도진 선생님은요?”

“오늘 휴무세요.”

모시는 아기보살님이 그토록 싫어하는 허준 원장뿐.

용하긴 하다는데,

잠시 고민하던 찰나에 치료실에서 나온 허준과 눈이 마주친 김숙자.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원래대로라면 보살님이 벌써 난리를 치셔야 했는데, 아무 일도 없이 조용한 것이 아닌가.

‘오늘은 괜찮다고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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