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혜민서 선생님들 있는 곳 맞죠 >
100화. 혜민서 선생님들 있는 곳 맞죠
시사회장 안.
앞쪽에 설치된 무대 위로 감독과 배우들이 앉아 있었다.
옆에는 진행을 맡은 남자가 인사와 함께 간단한 인터뷰를 시작으로 시사회가 진행되었다.
“안녕하세요. 최우중 씨.”
“안녕하세요. 이번에 백도경 역을 맡은 배우 최우중이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뵙는데, 그때보다 더 멋있어지신 거 같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
가벼운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이어지며 강수연에게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극 중 이지연 역을 맡은 여배우 강수연 씨를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셨는데, 최우중씨의 부인역할로 나오는데 어떠셨나요?”
“네. 일단 여기에 계신 많은 동료에게 도움을 받아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그렇게 차례차례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영화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들에 이어서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나타난 좀비들과 뛰어다니는 최우중의 모습.
그리고 그 장면의 배경을 허준이 단번에 시장 골목에서 촬영했던 장면임을 알 수 있었다.
‘영화로 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네.’
매일같이 지나다니던 그곳이 저런 느낌이 날 줄이야.
게다가 정말 배우는 배우인 것을 증명하듯 최우중은 완전히 다른 백도경의 모습을 한 채로 화면안을 누비고 있었다.
물론, 허준은 몰랐지만, 본인이 만들어 준 보약으로 인해 각성한 최우중이었다.
어찌 됐건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과 함께 불빛이 켜지면서 사람들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와, 최우중. 이번에 장난 아니네.”
“그러게. 거의 신들린 것 같던데? 특히, 액션 신나올 때 진짜 소름...”
“야 이거 천만 찍는 거 아니야?”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허준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의사에게 환자가 진료 이후에 완치되어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보다 기분 좋은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허준의 옆에 있던 윤 선생님 부부는 서로 신나게 팬심을 부리느라 바빴고,
반대쪽에 앉은 김예진 선생도 영화를 보고 짜릿한 전율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게 시사회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로 향했는데.
최우중의 매니저가 허준을 불렀다.
“선생님!”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혹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다들 오랜만에 만나고 싶어 하셔서요.”
“누가요?”
“그야 저희 우중 형님이랑 이번에 영화 촬영하신 감독님들이죠.”
“아~”
그의 말에 촬영팀이 왔던 때가 떠올랐다.
매일같이 카메라 팀부터 소품 팀까지 돌아가면서 진료를 받던 그 날의 모습.
’아직도 눈에 생생하네.‘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오래 진료를 다닌 것은 최우중 씨 혼자였지만, 촬영 내내 스텝들부터 각 파트의 감독들까지 고루고루 들렸었기 때문.
그들 모두가 잘 지내는지 궁금한 허준이었다.
그렇게 매니저를 따라간 곳에는 주연 배우들과 함께 감독들이 모두 모여있었는데,
“어? 선생님!”
최우중이 가장 허준을 반기며 다가왔고,
허준을 알아본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모두 안녕하셨어요? 최우중 씨도 좋아 보이시네요.”
“다~ 선생님 덕분이죠. 참, 이쪽은 아시죠? 이번에 주연배우 강수연 씨.”
최우중이 옆에 있던 강수연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강수연이에요.”
“이허준이라고 합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저희 촬영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고.”
“아니에요. 그저 진료를 봤을 뿐이죠.”
강수연이 대답하는 허준을 마주 봤다.
모난 곳이 없어 보이는 선하게 생긴 얼굴과 눈.
‘이 사람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촬영하는 내내 종종 들려온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치 무용담을 뽐내듯이 자랑하던 이야기들.
“아, 그때가 좋았지. 아무리 피곤해도 딱 가서 침 한 방 맞으면서 누워 있으면 그냥~”
“그러게, 난 뜸이 좋더라고. 그때 날도 추웠잖아.”
“그러고 보니 거기 선생님들도 정말 친절하셨는데, 그리고 또 알지? 거기 쌍화탕 하나 딱 덥혀서 먹으면 크~ 그립다 그리워.”
등등의 말들.
같이 연기를 하는 최우중 뿐만 아니라, 보조하던 사람들까지도 전부 저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그걸 들은 강수연은 그저 운 좋게 촬영장 옆에 붙어있었다는 특수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경우가 꽤 있지 않던가.
전국을 누비며 촬영을 하다 보면 가끔 밥 먹을 곳이 없어서 그곳에서만 밥을 먹었을 뿐인데, 나중에는 어느 순간부터 맛집이 되어 있는 그런 일.
물론, 그런 그녀의 생각을 바꾼 것이 바로 최우중이었다.
그가 직접 눈앞에서 연기로 증명해 보였으니까.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괜스레 짜증이 올라오는 강수연.
허준이 그런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어디, 안 좋으세요?”
“아, 아니에요. 제가 조금 피곤해서.”
강수연이 대답과 함께 홀연히 뒤돌아 사라졌다.
허준이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잠깐 눈으로 쫓다가 이내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덕분에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일행들.
당연히 가장 기뻐하는 것은 윤 선생과 그의 남편인 김민준이었고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저희 이제 회식하러 갈 건데, 혹시 같이 가시겠어요?”
“아쉽지만 안될 것 같네요. 저쪽은 약 먹는 중이고, 저는 내일 출근이 있어서요.”
허준이 윤 선생님 부부를 가리키며 답했다.
두 사람의 흥이라면 기어코 따라가려 하겠지만, 아직까지 두 사람은 허준에게 있어서 환자였다.
“역시, 선생님이시라면 그러실 줄 알았어요.”
허준이 최우중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우중 씨도 너무 많이 드시지는 마세요. 공진단도 효과가 반감될 수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에 또 한 번 찾아뵐게요.”
그렇게 시사회는 끝이 났고,
며칠 뒤.
강수연이 허준한의원을 찾았다.
* * *
흔히 그런 말이 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어떻게 보면 그리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또 어찌 보면 맞는 말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동종업계의 사람이 아니라면 공감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을 테니까 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배우란 직업은 더욱 그러했다.
몇 번 만나면서 친해질 만큼 오래 배우 생활을 하는 사람이 극소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라마나 영화, 광고를 촬영할 때마다 본래의 자신이 아닌, 배역에 맞춰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배우의 삶이었으니,
그 고충을 이해하는 이는 같은 배우밖에 더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의 두 주연인 최우중과 강수연.
이 둘은 같은 회사에 소속된 배우인데다가, 이번에 촬영하면서 친해진 동료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최우중이 오지랖을 조금 부려봤다.
배우들이 종종 겪는 증상인 슬럼프. 그것이 그녀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 슬럼프를 깨고 촬영에 나선 그녀의 모습은 칭찬해 마땅할 일이었지만,
“형. 제가 그쪽 매니저한테 들었는데, 요즘에 병원에 자주 간다던데요.”
“그래?”
들리는 이야기가 썩 바람직 하지 않았다.
슬럼프에 빠진 배우는 보통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
돌연 은퇴나 잠적을 한다거나, 술에 빠져 산다던가, 또는 약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것.
그중에서 아마도 병원을 자주 다닌다는 것은,
‘가장 후자에 속할 확률이 높겠지.’
보나 마나 스트레스로 인해 제대로 잠도 못 자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을 테고, 음식을 먹지 못해서 수액을 맞으면서 촬영을 강행했을 확률도 높았다.
그래서 후배이자, 동료인 그녀를 불러서 말했다.
슬럼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몸소 겪어 봤으니까 말이다.
“수연아. 너 그러다가 몸 망가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걱정하지 마세요. 약 먹고 있으니까.”
“그게 더 문제야. 너도 배우 하루 이틀 한 거 아니니까 잘 알잖아? 지금 네가 어디쯤 와 있는지. 나도 이해해. 지금 너처럼 힘들었을 때가 있었으니까.”
“그럼... 선배는 어떻게 극복했는데요?”
강수연이 물었다.
같이 주연을 맡았던 만큼, 이번에 폼이 올라온 최우중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여기로 한번 가봐.”
그래서 도착한 곳이 바로,
허준한의원.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채,
문을 열자.
대기실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어서 오세요. 처음이시죠?”
김예진이 그녀를 맞이했는데,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강수연?’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
저렇게 얼굴을 다 가리고 있어도 일단 실루엣부터가 일반인과는 차이가 컸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네. 진료 좀 받아보려고요.”
“강수연 씨 맞으시죠?”
“어, 네. 그걸 어떻게?”
“시사회에서 인사도 나눴잖아요.”
“아~”
그제야 강수연도 기억이 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할 때의 김예진과 아닐 때의 차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된 접수.
이어서 강수연의 차례가 되자 김예진이 직접 다가와 속삭였다.
“저리로 들어가면 돼요.”
“감사합니다.”
강수연이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허준이 반갑게 맞이했다.
이미 데스크에서 보내온 메시지로 미리 누군지 알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옆으로 퀘스트가 나타나 있었다.
<꽉 막힌 그녀>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3000
‘막혔다니?’
괜스레 강수연에 대한 온갖 루머들이 떠오른다.
성격이 더럽다느니, 이야기가 안 통한다느니 하는 안 좋은 이야기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편하게 마스크랑 선글라스는 벗으셔도 돼요. 밖에서 안 보이니까요.”
“아, 네.”
그렇게 시작된 진료.
몇 가지 질문으로 찾아낸 증상들은 전부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었다.
제대로 못 먹고 못 잘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니,
배우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처음에 데미지를 입기 시작하는 것은 위장일 터.’
그래서 속 쓰림이라던가, 소화불량이 동반되기도 하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진맥 한 번 잡아볼게요.”
“네.”
허준이 강수연의 두 손을 잡고 맥을 느꼈다.
맥이 혼란스럽다.
이미 장부들의 균형이 깨져있는 상황.
게다가 이건 또 무슨 느낌이지.
맥에 이어서 느껴진 기감으로 가슴에 단단하게 뭉친 무언가를 느꼈다.
위치는 위장이 있는 자리.
굳이, 복진을 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인지한 허준이었다.
‘위 담적?’
담은 노폐물이나 독소가 순환되지 않고 뭉친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쌓이는 것을 담적이라 한다.
위장의 주변에 이것이 뭉치면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몸의 기운도 자연스럽게 떨어져 간다.
이래서 꽉 막혔다고 한 것이었나.
게다가 비단 위장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의 몸은 건강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장부들이 제각기 날뛰는 상황.
쉽게말해 여기저기 전부 복합적인 문제를 나타내고 있었다.
허준이 그녀가 말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잠이 안 오면 병원에 가서 수면제를 맞고 잠자고, 너무 배고프면 저렇듯이 수액을 맞았다고.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양한방을 합쳐 건강의 기본 법칙이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아니던가.
‘우선 위담적과 숙면부터 시작해야겠군.’
일단은 이 두 가지를 먼저 손대기로 하였다.
이 두 가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그저 일시적인 처방일 터.
위담적에 좋은 중완 혈의 약침과 뜸.
그리고 숙면을 위해서 수면제라고 불리는 산조인탕을 처방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이 두가지가 제대로 역할을 해내기 시작한다면 다른 것은 금방 고쳐질 문제였다.
그렇게 두 번째 배우의 치료가 시작된 허준한의원이었다.
* * *
동상 치료에 관한 논문.
저자는 혜민서.
키 190은 될법한 남자가 논문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반이 사라져버린 시장 골목이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반쪽의 상점에 있던 사람들이 시선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왜냐하면, 그가 한국인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름은 밥. 그가 허준한의원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외국인이 여기는 무슨 일이랴?”
“글세.. 운동 선수 아니여?”
“그런데 움직이는 방향이 허준네 가는 길인디?”
“아파서 찾아왔나 보지. 왜 유투브인가 그런거 보니까, 요즘에 외국인들도 한의원 가서 침 맞는다더만.”
밥은 종종 겪었던 일이라, 씨익 웃으면서 그대로 한의원에 들어섰다.
그러자 데스크의 윤다희가 놀란 얼굴로 밥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엄청난 덩치의 외국인.
대기실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한의원을 찾아오는 외국인이라니.
신기하면서도 무언가 재미난 상황.
밥은 자연스럽게 그 시선들을 넘기며 그대로 데스크의 윤다희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 네.”
너무나도 또박또박 들린 완벽한 한국어.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커진 눈동자들.
“여기가 혜민서 선생님들 있는 곳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