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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97화 (98/230)

< 97화.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네요 >

97화.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네요

“으잉? 저거 아기보살 아니여?”

“맞네. 맞아.”

“보살이 허준네는 웬일이랴?”

시장 골목 아기보살.

김숙자가 조심스럽게 한의원을 두리번거리며 데스크로 다가갔다.

김예진이 부리부리한 눈과 허연 얼굴을 한 그녀를 친절하게 응대했다.

“어서 오세요. 처음이시죠?”

김숙자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한 번 더 주변을 살피더니,

“네. 진료 좀 받고 싶어서요.”

“어디가 안 좋으신데요?”

“그냥 요새 몸이 좀 피곤한 것 같아 보약이나 한재 지으려고요.”

“마침, 잘됐네요. 오늘 김정우 선생님이 진료 보시는 날이거든요. 바로 접수해드릴까요?”

“네.”

“그럼, 이것 좀 적어주세요.”

그렇게 강의하러 간 허준 대신에 원장실에서 진료를 보고 있던 김정우는,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김숙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잘 지내셨죠?”

“그럼 그럼, 일단 이리로 앉으시게.”

문이 닫히며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김예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분이 아는 사이신가 보네?’

하긴, 아기보살과 정우한의원 둘 다 이 시장 골목에 자리 잡아 세월을 같이 보내왔으니 모르는 게 이상할 법도 했다.

그렇게 원장실 안.

김정우가 김숙자를 위아래로 훑더니,

“옛날 그대로네? 늙지를 않는 것 같아. 신수가 훤하니 보기는 좋은데... 한의원에 찾아온 것을 보아하니 문제가 있나 봐?”

“아이고~ 선생님 말도 마요. 요새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기보살님이 한번 왔다 가면 아주 몸살이 그냥...”

김정우가 애정이 어린 눈빛으로 김숙자를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만약에 누가 김정우에게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묻는다면, 단연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환자가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아기보살 김숙자였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어느 날,

당시, 어렸던 김숙자가 한의원으로 찾아왔다.

처음 찾아왔을 때의 증상은 급체.

그리고 급체로 인한 몸살이었다.

뜸과 탕약으로 간단하게 고치는가 싶었는데,

이게 웬걸.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그것을 시작으로 여러 증상이 돌아가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먹은 것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억지로 먹기라도 한다면 다시 또 급체하기 일쑤.

여기에 더해서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는데,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당시 용하다는 정우한의원으로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으면서 쌓인 인연이었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당시 그녀는 흔히 말하는 신병을 앓고 있었다고 전해 들었고,

그 증상들은 김숙자가 무당의 길로 들어서자 귀신같이 사라졌다.

그 뒤로는 가끔 보약이나 침을 맞으러 오곤 했는데,

“그래. 어디가 어떤데?”

“그냥 뭐, 관절도 여기저기 쑤시는 것 같고, 잠도 많아진 것 같고. 그래요.”

“그럼, 한번 봐볼까?”

김정우가 김숙자의 맥을 잡았다.

그녀의 말대로 잠도 많아지고 여기저기 쑤실 만한 흐름이었다.

눈을 뜬 김정우가 꾸짖었다.

“아니. 왜 이리 늦게 왔어? 몸이 아주 축났구먼. 진즉에 좀 찾아오지.”

“저도 오고 싶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아기보살님이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면 자꾸 떼를 쓰셔서요. 그렇다고 다른 한의원에 가자니 유도진 선생님도 안 계시고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어째서?”

“저도 몰라요. 다행히 오늘은 아무 말도 없으시네요.”

김정우가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무속신앙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꽤 익숙한 탓이었다.

“그럼, 오늘이 날인가 보구만?”

“그런가 봐요.”

“좋아. 바로 보약 한재 맞춰 주도록 하지. 내일모레 와서 찾아가면 될 거야.”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난 김정우는 원장실을 나서는 김숙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처방전을 적었다.

*   *   *

한의대 강의실.

허준의 강의가 이어졌다.

‘준비할 때마다 한 번씩 보게 되니 느낌이 새롭네.’

너무나 당연했기에 잊고 지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복습하게 된 허준이었다.

그렇게 침구학 강의가 끝나고 질문시간.

최승원 일행으로부터 시작된 소문 탓인지,

이전보다 많은 양의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재미난 것은 몇 차례 강의가 이어지면서 거리감이 줄어서인지,

현실적인 이야기의 질문들도 날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생님. 요즘에는 전부 특화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한의학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결국 모든 것이 다 연결된 것이 특징인데, 정말 특화를 해도 괜찮은 걸까요?”

“오~”

뭔가 일리 있는 질문에 학생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좋은 질문이네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바로 여러분들이 한의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매일같이 공부하고 임상 경험을 거쳐도 전부를 알 수는 없다는 거죠. 게다가 현대의학은 체계적으로 세분화 되어 있으니, 한의학도 그에 따라서 가게 된 것이죠.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허준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다만,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중에는 결국 모두가 만나게 되어있으며 그때가 되면 특화로 시작을 했다고 해도 다른 것들도 저절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을 거예요.”

“질문 있습니다. 그럼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한의사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업계로 따지면 저희가 메이저보다는 마이너일 수밖에 없잖아요. 당장, 생명이 위급하면 병원으로 가는 게 현실이니까요.”

이는 허준도 한때 의문을 가졌던 질문이었는데, 기연을 얻고 나서야 완벽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답했다.

“의사가 사람을 살린다. 모든 과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기본 전제가 그런 느낌이 들죠. 그렇다면 한의사는 어떨까요?”

“그야... 건강관리를 해준다? 경증을 치료한다? 그런 거 아닐까요?”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의사들이 생명을 살린다고 하면, 우리 한의사들은 찾아온 환자들에게 일상을 돌려줄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닐까요?”

허준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그럼, 여기서 마치도록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열렬한 환호와 함께 끝난 강의.

그리고 허준은,

퀘스트 ‘널리 퍼져 이롭게 하라. 2’를 완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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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확인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허준 선생.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

누군가 허준을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이곳 한의대의 도준혁 교수님이셨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늘 강의도 훌륭하더군. 학생들이 좋아할 만해.”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아니야. 허준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거든. 특히, 내가 강의를 부탁한 박진석 선배한테도 말이야. 그 선배가 사람을 잘 안 믿는 스타일인데, 이상하리만치 자네는 믿더라고.”

“그러셨군요.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아~ 별건 아니고. 자네한테 부탁 하나 하고 싶어서 말이야.”

“부탁이요?”

도준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요즘에는 우리 때와 다르게 교수들 사이에서도 외국 중의사들과 교류하거든.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니까. 그래서 외국에서 중의사가 오기로 했는데, 그때 자네도 함께해 줬으면 해서 말이야.”

“제가요?”

허준이 미간을 지긋이 짚었다.

이거 귀찮은 일을 나에게 떠넘기겠다는 말인가?

그 표정을 읽기라도 한 걸까.

도준혁이 손사래를 치며,

“아~ 오해는 말아. 예전에 이렇게 중의사들과 미팅이 몇 번 있었는데, 꼭 특유의 자부심 같은 게 있더라고. 그래서 이것저것 논문부터 임상경험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막 하기 시작했는데-”

굳이 뒷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중의학과 한의학은 같은 뿌리를 가진 학문인 데다가, 그 숫자가 압도적이었으니 논문이나 경험 측면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터.

“- 알아보니까, 자네 이력이 아주 화려하더라고. 그러니 이렇게 부탁 좀 해도 될까?”

허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중의사라,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중의학과 한의학이 바라보는 관점이나 치료법 그리고 차이 등등에 대해서.

게다가 이번에 강의를 준비하면서 다시금 느끼게 된 것들도 있었으니,

‘하루정도야 괜찮겠지.’

어차피 한의원에 식구들도 있고.

“알겠습니다. 날짜 정해지면 알려 주십시오.”

“고맙네. 그럼, 나중에 연락하지.”

그렇게 한의원으로 돌아온 허준.

허준이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현관문이 확 열리면서 한복을 입은 여인이 후다닥 뛰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저 사람은..?’

허준이 그녀를 알아보고는 뒷모습을 눈으로 잠시 쫓았다.

뒤이어 대기실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또 저런다. 보살님이 아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네.”

“그러게. 저러다 다치는 거 아닌지 몰라. 아이고 허준 선생님 오셨네.”

“안녕하세요.”

허준이 한의원으로 들어서자.

김예진이 반갑게 맞이했다.

“원장님. 오셨어요?”

“네. 별일 없었죠?”

“물론이죠. 지금, 원장실 비었어요. 정우 선생님 치료실에 가셨거든요.”

“그래요?”

허준이 자연스럽게 원장실로 들어가 겉옷을 벗고는,

가운을 걸쳤다.

‘역시 이게 나한테는 딱이라니까.’

괜스레 준비가 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찾아오는 마음의 평안.

그렇게 오늘 휴무인 고요한 선생의 진료실로 향하며 김 선생에게 말했다.

“진료 시작할게요.”

“네!”

*   *   *

그날 저녁

허준한의원 진료 마감.

“자네 강의 날에는 내가 대신 진료해주기로 했는데, 왜 들어가서 쉬지 않고 나왔어?”

“오늘 생각해보니 윤 선생님 부부 진료가 있어서요. 그래서 강의 끝나고 겸사겸사 왔죠.”

“못 말리겠구먼. 여튼 난 내 할 일 했으니, 이만 퇴근하겠네. 처방전은 다 써두었으니, 천천히 처리하도록 하지.”

“네. 들어가십시오. 선생님.”

그렇게 김정우 선생님이 퇴근하고,

원장실로 들어온 허준이 처방전을 살폈다.

‘많이도 보셨네.’

현역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꼼꼼하게 환자의 체질이나 특징까지 적어둔 것은 유도진 선생의 처방전과 똑 닮아 있었다.

가볍게 한의원의 기록을 훑어 보고 있었는데,

기다리던 윤 선생과 그의 남편인 김민준이 함께 원장실로 들어왔다.

‘오!’

허준이 그 모습에 잠깐 감탄했다.

윤 선생님이야 매일같이 출근하면 얼굴을 보는 사이였기에 그 변화가 크게 와닿지 않았으나, 김민준 씨의 경우에는 확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부부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두 남녀가 이제는 누가 봐도 부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당연히, 진행도 또한 많이 올라간 상태.

‘이제 마지막 단계의 처방을 내려도 되겠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김민준 씨. 얼굴이 아주 좋아 보이시네요.”

“다 선생님 덕분이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허준의 말과 함께 시작된 진료.

우선은 윤 선생님부터였다.

눈을 감고 집중하자, 윤 선생님의 맥이 허준에게로 들어온다.

동시에 손끝에서 실이 뻗어 나가는 것 같은 감각은 윤 선생님의 맥으로 흘러 들어갔고, 거기에 의식을 집중하니,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좋아. 이젠 보약을 사용해도 되겠어.’

허준이 눈을 뜨고 물었다.

“윤 선생님 따로 어디 아프시거나 한 곳은 없으시죠?”

“네. 요즘에는 뭐 운동으로 인한 가벼운 근육통 정도요?”

“다행이네요. 그럼, 오늘부터 처방을 바꿔볼게요. 추나치료랑 침 맞으시고, 약도 새로 지어드릴 테니 내일모레쯤에 가져가세요.”

“네. 알겠어요. 원장님.”

“자, 그럼 김민준 씨.”

이어서 남편인 김민준의 맥을 잡자,

솔직히 놀랐다.

‘이건 뭐 더 볼 것도 없겠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걸?

실제로 그 변화는 외모에서도 나타났으니, 이전에 나왔던 배는 온데간데없어졌고.

피부와 눈빛 또한 맑고 총명했다.

“김민준 씨도 추나와 보약으로 같이 가시죠.”

“네.”

그렇게 사이좋게 시작된 추나치료.

사실 난임치료에 왠 추나치료를 하냐고 물어볼 법도 했지만,

이미 두 사람에게 허준의 처방은 신앙이 되어있었다.

허준이 굳이 추나치료를 하고자 한 이유는 매일 앉아서 일하는 개발자인 김민준의 직업 특성상, 삐뚤어진 골반을 교정해서 그곳의 혈류를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윤 선생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으니,

“숨 들이마시고, 가볍게 내쉬고, 하나, 둘-”

뚜득.

“허윽.”

사타구니 안쪽에서부터 퍼지는 시원한 느낌에,

김민준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윤 선생도 마찬가지.

시원하게 들려온 소리와 함께 만족스러운 얼굴로 남편을 바라봤다.

이렇게 부부의 치료를 전부 마치고,

한의원을 나서려는 둘에게 허준이 말했다.

“여태까지 잘 해오셨으니, 앞으로도 잘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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