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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93화 (94/230)

< 93화.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

93화.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퇴근 후, 집에 있던 허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태용한의원의 박 원장.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박 원장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통화 괜찮으시죠?”

“네. 무슨 일이죠?”

“이번에 저희 혜민서 행사에 지원한 사람 중에, 한의대생들이 신청해 왔더라고요.”

“한의대생이요?”

“네. 총 3명인데, 어떻게 할까요?”

허준이 잠시 고민했다.

졸업하는 마지막 학년이라고 하더라도, 아직 국가고시를 패스한 한의사는 아닌 상황.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의대생 시절에도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일도 있었으니,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까요?”

“아, 물론 선생님께서 괜찮으시면 미리 신고도 하고 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의료행위보다는 한의사 선생님들 옆에 붙게 할 생각이고요. 게다가-”

“게다가?..”

“이번에 가려는 곳이 굳이 의료봉사가 아니어도 다른 일들도 함께하는 곳이어서요.”

“그래요?”

행사 장소 선정은 거의 박 원장이 담당했기에, 행사 당일 또는 그 전날의 단톡방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알기 어려웠다.

굳이 묻는 사람도 없기도 했고.

“어디인데요?”

“가보시면 아실 겁니다. 저희 쪽에 도움을 요청해왔거든요. 그래도 다행스럽게 가까운 곳이에요.”

“알겠습니다. 박 원장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죠.”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할게요. 참, 행사 끝나고 첫 녹화도 준비되어 있으니 허준한의원 선생님들께도 알려주세요.”

그렇게 토요일.

허준한의원 식구들이 태용한의원으로 향했다.

“모두 오셨네요. 출발하죠.”

한 대의 차량으로 이동하는 일행들.

이번에 가는 곳이 서울 안에 있는 곳이었기에, 참여자들도 각자가 오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어제 톡방에 올리신 거 보니까, 별로 안 멀던데.”

“네. 저도 그쪽 동네는 가보질 않았는데, 이렇게 가볼 줄은 몰랐네요.”

“이번에 참여하는 선생님들 숫자도 스무 명이 넘어가던데. 오래간만에 쉬엄쉬엄해도 되겠네요.”

뒷좌석에 허준과 유도진사이에 앉은 고요한 선생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뒤로는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며 일행이 탄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두 한의원 모두 환자들이 많았으니, 진료를 보며 생긴 이런저런 에피소드부터, 증상과 치료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그러다가 어느새 멈춰선 자동차.

차에서 창밖을 바라본 고요한 선생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서울에 이런 곳도 있네요?”

허준도 창밖을 바라봤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미 경험해본 적 있는 풍경의 모습이었다.

고무 타이어, 여기저기 조잡하게 걸려있는 전선, 요즘에는 거의 지붕으로 사용하지 않는 슬레이트 등등.

‘예전 영등포와 비슷한 느낌이네.’

물론, 그 크기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영등포 때 갔던 판자촌의 20여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

다만, 그 집 중에는 종종 X 표시로 페인트칠이 되어있었다.

‘빈집들도 생각보다 많고.’

차에서 내린 일행을 맞이한 것은 또 다른 봉사활동 단체였다.

“혜민서 선생님들이시죠?”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중계동에서 작은 한의원을 하고 있는 고영웅이라고 합니다.”

“이허준입니다.”

허준이 사람 좋게 생긴 고영웅의 손을 맞잡아 가볍게 악수했다.

얼굴이 훤해 보이는 것이, 마치 서울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선생님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곳은 처음 와보시죠?”

“네. 그렇네요.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럴 겁니다.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이상에는 잘 안 보이니까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다행히 보이는 것에 비해서 사람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저희만으로는 무리가 있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곳에서 봉사를 꽤 오래 하셨나 보네요?”

“그럼요. 벌써 5년 가까이 된 것 같네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생각했던 그대로의 사람인 듯싶다.

“참, 이쪽으로 오시죠. 여기는 저희 단체의 ···.”

혜민서 식구들과 고영웅 선생님의 단체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자, 슬슬 행사 시작시각이 돼감에 따라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차에서 내린 김형서 원장도 있었다.

“이야~ 이거 옛날 생각 나는구만.”

“원장님 오셨군요.”

허준과 김형서가 서로 인사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도착한 사람은 바로 최승원과 두 친구.

아직 자동차가 없는 대학생이었기에, 지하철을 타고 버스에서 내려 여기까지 걸어 온 것이었다.

“뭐야, 여기 서울 맞아?”

“헥, 헥,”

“완전 힙한데?”

그들을 알아본 허준,

“최승원 학생?”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언제나 붙어 다니는 낯익은 두 학생까지.

“너희들이 왜 여기에...?”

“그야 저희도 혜민서 행사에 신청했으니까요.”

그제야 허준이 대학생 중에 신청했다는 학생들이 최승원의 일행인 것을 알아챘다.

이 녀석들이 대체 여기는 웬일이지.

‘뭐 어쨌든 상관없으려나.’

“일단, 따라와.”

*   *   *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되자,

허준의 눈앞에 퀘스트가 나타났다.

<서울의 달>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0

* 남은시간 : 9시간 23분

그리고 각자 선생들에게 맡긴 세 명의 대학생.

박 원장이 실무를 담당했기에 제외됐고, 나이순으로 끊어서 고요한과 유도진 선생 그리고 허준에게 각각 한 명의 대학생이 함께했다.

일종의 감시이자, 도우미 같은 역할이었다.

최승원이 허준의 뒤를 따라 언덕을 올랐다.

“선생님. 같이 가요.”

언덕에 올라 보니, 원래 이쪽에 계신 봉사단체에서 지원을 요청한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이 연탄 지게를 지고 연탄을 나르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허준의 옆에서 같이 올라온 고영웅 선생이 말했다.

“이 동네가 가스가 안 들어와서요. 그래서 연탄보일러를 많이 사용합니다. 특히, 요즘같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의 꽃샘추위에 어르신들이 많이 앓아누우시거든요.”

“그렇군요. 그런데, 진료는 선생님 혼자 보시는 겁니까?”

“네. 아쉽게도 그렇네요. 이쪽에서 의료봉사를 할 만한 선생님이 안 계셔서요. 그래서 제가 혜민서 선생님들께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선생님. 진짜 대단하시군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연으로 인해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마음도 동하고, 부가적인 이유도 있어서 이렇게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던 허준이었다.

하지만, 만약에 자신이 이런 기연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면, 과연 눈앞에 있는 선생님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을까.

그때,

“아닙니다. 저보다는 허준 선생님이 더 대단하시죠.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움직여주시지 않습니까?”

고영웅의 칭찬에 허준이 묘한 느낌을 받았다.

부끄러움과 함께 이전에 느꼈던 책임감 비스름한 감각.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가슴에서 울렸지만,

허준이 헛기침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어느새 다 올라왔으니, 바로 진료 시작해보도록 하죠.”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그렇게 양쪽 집으로 찢어진 허준과 고영웅 그리고 최승원.

첫 진료환자는 나이가 많이 드신 할머니셨다.

“할머니, 어디 아프세요?”

“에이 아프기는 무슨, 그냥 여기저기 다 쑤시지. 그런데, 고 선생은 어디 가고 첨보는 선생이 왔어?”

“고 선생님은 옆집에 진료 보러 가셨습니다.”

할머니가 허준과 최승원을 한번 훑어보고는 혀를 찼다.

너무 어려 보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미 이런 경우는 수없이 많이 경험한 허준은 능숙하게 달래가면서 진료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허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최승원.

처음에는 허준이 낮게 숙이며 들어가는 모습에 놀랐고, 그 뒤에는 진료를 받은 환자가 처음과는 너무 달라진 태도에 놀랐다.

“최승원 학생. 이쪽으로 와서 할아버지 허리에 침 좀 놔주겠어?”

“자네가 놔주는 거 아니여?”

“저 친구도 침은 좀 잘 놓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에이 저렇게 어린 친구를 어떻게 믿어?”

최승원이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허준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 친구가 그래도 침은 좀 놔요. 내년에 졸업 예정인 학생인데, 침 잘 놓는다고 소문이 나 있거든요. 여기저기 대학병원에서 데려가려고 난리라니까요?”

“아~ 그래? 어디 그럼, 한 번 맞아볼까?”

최승원이 숨을 고르고 엎드려 있는 할아버지의 허리에 침을 가져다 댔다.

이윽고 손끝에 감각을 집중하면서 정성을 들여 하나하나씩 찔러 넣었다.

허준이 옆에서 할머니의 침을 다 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역시 손재주가 좋네.’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어진 잠깐의 휴식시간.

최승원과 친구들이 모여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 경치 죽이네.”

“그러게.”

“참, 승원아 너 허준 선생님이랑 같이 갔잖아. 어땠어? 강의했던 그대로였어?”

그 물음에,

최승원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게임에서 지긴 했어도, 강의만 들었을 때는 그냥 침 잘 놓는 한의사 선생님이구나. 이 정도였거든?”

“그런데?”

“그런데, 실제로 진료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까, 이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더라고.”

“그래? 왜?”

“너희도 비슷하지 않았냐? 처음에 여기 환자들 막 어리다고 무시하면서 막말도 하고 그러잖아.”

두 친구가 동감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까지 겪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맞아. 나랑 같이 가셨던 고요한 선생님도 다 맞춰주면서 진료하시더라고. 솔직히 조금 놀랐어. 그렇게까지 자존심 버려가면서 진료를 봐야 하나 하고 말이야. 그렇다고 돈 버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나도 놀랐어. 나는 유도진 선생님이란 분과 같이 갔거든. 그런데, 진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얼굴로 묵묵하게 진료 보시더라고.”

세 친구가 각자의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답했다.

“그런데, 그다음에 딱, 진료 끝내고 나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웃으시더라.”

“맞아. 나도 같이 가신 선생님이 진료 끝내고 나니 환자들이 웃으면서 인사해주더라고. 그거 보니까 분명 처음에 기분이 나빴는데, 나중에는 되게 가슴이 벅차올랐달까?”

“너도? 나도 그런데.”

같은 경험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 친구들.

최승원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보니까, 그 맛에 다들 봉사하러 다니시나 봐.”

“하긴, 선생님들 체력도 장난 아니더라. 무슨 기계처럼 진료해. 옆에서 그냥 보조만 하는 데도 지칠 정도야.”

그때, 박용준이 세 대학생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후배님들 여기 계셨네? 반가워. 박용준이라고 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말 편하게 하십시오.”

박용준은 이들과 같은 대학교를 나온 하늘 같은 선배였다.

"그래. 그럼 그럴까?"

"물론이죠 선배님."

"그럼 말 편하게 할게. 행사는 어떻게 할 만해?”

“아, 네. 진짜 좋아요. 보람찬 것 같고, 막 진료 끝나고 환자들이 웃으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아요.”

“그래? 처음에 적응 안되지 않았어? 막 처음에 뭐라 하고 그런 분들도 계시고, 현자타임도 좀 오고 말이야. 나 처음에 할 땐 그런 분들 진짜 많았거든.”

“어... 그게..”

“괜찮아.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다가 진료 보고 나면 다들 웃어주시잖아.”

“맞아요. 그 맛에 다들 봉사하러 다니시나 봐요. 허준 선생님도 진료 끝날 때마다 환하게 웃으시더라고요.”

학생들이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유도진 선생님과 고요한 선생님도 전부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 모습에 박용준이 되물었다.

“너네 선생님들이 왜 같이 웃는지 알아?”

“그야 당연히 환자들 웃는 거 보고 기분 좋아서겠죠. 막 보람차고, 가슴 벅차오르고.”

그 질문에 답한 최승원.

박용준이 학생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미안해하지 말라고 웃는 거야. 괜찮다고. 대부분 어르신들 진료 끝나고 웃는 게 미안해서 그런 것이거든.”

생각도 못 한 대답에 최승원의 일행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박용준이 인사했다.

“그럼, 조금 더 힘내. 파이팅.”

그 시각.

허준은 같은 노을을 보면서.

보유 포인트 : 20003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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