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으어어어- >
87화. 으어어어-
다음 날 아침.
출근하며 허준이 메시지들을 확인하며 하나씩 답장을 날리기 시작했다.
- 네. 사진으로 보니, 많이 좋아졌네요.
- 어머니께서 다그치기보다는 옆에서 잘 케어해주셔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
화상과 동상 등의 외상환자들로 꾸준히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한테서 온 메시지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 어머니 약 오늘 도착한다니까, 잘 받아서 드려. 참고로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씩 꼬박꼬박 드셔야 한다. 알았지? 그리고 너 퇴근하고 나서 운동도 잊지 말고.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출근한 허준.
그리고 그런 허준을 맞이한 한의원 식구들.
“좋은 아침입니다. 원장님.”
“굿모닝입니다. 그런데, 김 선생님. 유도진 선생님이 안 보이네요? 설마 지각을?”
“그럴 리가요~ 입원실 진료 돌러 가셨어요.”
“아~”
아 참, 그렇지.
고요한 선생님이 안 계시지.
있다가 없으면 빈자리가 느껴지기 마련.
오늘따라 유달리 고요한 선생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왔다.
“별다른 일은 없죠?”
“네. 바로 진료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진료 준비를 하러 들어간 원장실.
어제저녁에 전달받은 세무사의 번호가 메모지에 적혀있었다.
‘최 대표님 소개로 연락드렸다고 하면 된다고 했었지.’
일단 진료시간이 다 되어가니,
평소처럼 외투를 벗어 걸고 가운을 입은 허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윤 선생을 비롯한 한의원 직원들의 출근이 완료되었고,
곧이어 환자들이 하나둘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출근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첫 진료를 시작할 때의 느낌이 그날 하루를 좌우하는 법.
허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쭉쭉 뻗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이어서 손가락도 풀어주고 양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눈을 감자,
원장실 안의 따듯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야말로 최상의 컨디션.
좋아. 오늘 하루도 시작해 볼까.
그렇게 시작된 진료.
신속, 정확, 그리고 언제나 중요한 친절까지.
“그러니까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한의학적 관점으로 볼 때, 침과 약 그리고 연고로 몸이 가지고 있는 회복력을 끌어올려 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이가 침을 잘 맞을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최대한 안 아프게 놓을 테니까요.”
연휴 기간 동안 잠시 한눈을 판사에 불상사가 벌어졌다고 한다.
뭐, 이 정도면 심한 편은 아니니 금방 나을 수 있을 터.
“다이어트 프로그램 보고 오셨다고요.”
“네. 개강 전에는 꼭 성공하고 싶어서요.”
“알겠습니다. 진맥 잡아볼게요.”
허준이 집중하며 맥을 잡았다.
위가 약한 체질.
고로 다이어트 한약에서 위장과 비장에 영향을 주는 약재의 비중을 줄여서 맞춰야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다이어트 프로그램 보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네.’
수능이 끝나고 이제 곧 대학생 새내기가 시작되는 시즌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찾아오는 환자들의 진료를 정신없이 해나가다 보면 모니터에서 사라진 차트.
이는 곧 점심시간이라는 뜻이다.
허준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에 최 대표에게 소개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경희한의원 최 대표님 소개로 연락 드렸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번 세금신고 때문에 그런데요.”
“제가 주소 보내드릴 테니, 이쪽으로 방문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뵙도록 하죠.”
그렇게 약속도 잡은 뒤,
식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또다시 진료를 보다 보면 어느새,
“고생하게.”
가장 먼저 칼같이 퇴근하는 김정우 선생님.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들어가 볼게요~”
데스크 팀 선생님들도 전부 퇴근을 한다.
저녁에는 허준이 입원실 진료를 돌 차례.
손에 들린 침이 거무튀튀한 환자들의 환부를 찌를 때마다,
한쪽에서는 신음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는 풍경이 펼쳐지지만,
“선생님. 정말로 저렇게 아픈가요?”
간혹 이렇게 묻는 환자에게는 허준이 친절하게 답해준다.
“곧,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그렇게 진료 끝.
허준이 탕약을 달이고 있는 유도진 선생과 합류했다.
“일찍 끝나셨네요?”
“네.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오늘은 비염 환자를 대비하기 위해서 약을 만들어 볼 차례.
본래 정우한의원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탕약과 침, 뜸으로 치료를 했다고 하지만.
유도진은 젊은 한의사였다.
최근에 TV를 타면서 유행한 배농 치료.
직접 제조한 약을 면봉에 발라 코에 꽂으면,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환자들이 숨을 쉴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다고 했으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거기에다가 다른 치료까지 함께하면 분명 효과가 더 좋을 겁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한 유도진 선생으로 인해 시작된 한약 제조.
“재료는 역시 이게 좋겠군요.”
유도진이 한약재인 신이, 과체, 세신을 꺼내왔다.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는 백목련의 꽃봉오리로 맛은 맵고 따듯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겨자처럼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을 주는 약재다.
과체는 참외 꼭지로, 맛은 굉장히 쓰다. 다만 향은 없다. 이는 항산화 항염에 좋다.
그리고 세신 이 녀석도 맵다.
“좋네요. 이제 잘 배합만 해서 만들면 되겠는데요.”
그렇게 유도진 선생이 만든 첫 연고.
허준이 면봉에 연고를 살짝 발라 코끝에 가져다 대자, 찌릿한 느낌에 벌써부터 코가 확 뚫리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거 너무 독한 거 같은데?’
비염 환자가 어디 성인들만 있던가.
만약에 어린아이들이 왔을 경우에는 거부감이 심할 것 같다는 생각.
동시에,
“으어어어-”
이미 코안에 연고를 바른 유도진 선생의 코에서 허연 콧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저.. 괜찮으시죠?”
“괘, 괜찮습니다으어-”
“아무래도 조금 독한 거 같은데, 제가 손 좀 대볼게요.”
그렇게 머릿속으로 약재들을 떠올리는 허준.
효과는 분명한데, 문제는 너무 자극적이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익숙한 향이나 달콤한 느낌을 추가해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면.’
한약재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거부감이 없는 약재들.
허준이 약재 함으로 향해 감초와 계피를 꺼내왔다.
달짝지근한 향과 맛 그리고 익숙한 향이었으니,
이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유도진 선생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허준이 만들어져있던 연고에 약재들을 가감했다.
그렇게 완성된 연고.
면봉으로 살짝 찍어 향을 맡자,
‘이 정도면 되겠어.’
분명히 화한 느낌은 살아있지만, 달큰하면서도 익숙한 냄새 탓인지 훨씬 부드럽다.
화장실에서 코를 풀고 되돌아온 유도진에게,
허준이 연고를 묻힌 면봉을 건넸다.
“원장님...?”
“제가 새로 만들었는데, 한 번 해보시겠어요?”
유도진이 허준이 건넨 면봉을 받아 들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냈으니, 차마 안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
그렇게 면봉을 콧속으로 넣자.
이게 웬걸.
이전과는 다르게 화한 느낌은 분명하지만, 거부감이 없었다.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
그리고 그 부드러운 느낌과 함께 콧물도 부드럽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원장님!”
“유도진 선생님. 가까이 오지 마세요.”
“죄, 죄송 하빈다.”
감격스러워 하는 유도진과 그런 유도진에게서 거리를 둔 허준은,
이렇게 비염 치료에 대비한 한약을 완성할 수 있었다.
* * *
그 시각.
퇴근한 윤 선생은 허준한의원 인근에 있는 MH GYM으로 향했다.
허준이 내린 처방 때문이었다.
“치료의 시작은 투- 트랙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투- 트랙이요?”
“네. 난임 치료의 핵심은 부부 모두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임신의 확률도 올라가게 되겠죠.”
“그 정도야 저도 알고 있죠.”
“여기서 최상의 컨디션이란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해당하죠. 그래서 저는 한의학적인 치료와 운동을 함께 진행하려 합니다.”
“운동이요?”
“네. 이쪽으로 한 번 가보시죠. 남편분과 같이요.”
애증의 관계.
사랑이 컸던 만큼 상처를 입어 파인 감정의 골도 깊은 법이었으니, 윤 선생의 물음은 당연했다.
대뜸 같이 운동을 시작하라니?
윤 선생의 표정을 읽은 허준이 말을 이었다.
당연히 단번에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일일 터.
“윤 선생님. 이런 이야기 들어 보셨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그리고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멀어진다고.”
“네...”
“지금 윤 선생님과 남편분의 문제는 의학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관계도 포함된다는 말입니다. 같이 운동을 하는 것은 둘 사이에 남아있는 감정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내린 처방이니 따라주시겠어요?”
“원장님.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서로 제대로 된 대화도 없이 지낸 지 꽤 됐는데...”
그래서인지, 유난히 한의원에 출근하면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성이 좋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허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윤다희 선생님은 우리 허준한의원에서 가장 말을 잘하시는 분이니까요.”
그렇게 MH GYM에 도착한 윤다희.
이미 남편 김민준은 퇴근 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을 담당하게 된 김명훈.
귀가 접힌 그가 두 부부를 보면서 박수를 짝짝- 하고 두 번 쳤다.
“자자, 안녕하세요. MH GYM 김명훈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윤다희라고 해요.”
“김민준입니다.”
“허준 원장님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두 분이 부부시라면서요.”
“아, 네...”
말을 줄이는 김민준과 고개만 끄덕이는 윤다희를 본 김명훈.
싸늘한 분위기를 느꼈지만, 상관없었다.
‘빡세게 굴려달라고 그랬지?’
은인이자, 사업 파트너인 허준 원장님의 부탁은 저 한마디였다.
초대한 힘들게 굴려주세요.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요.
“마침, 잘됐네요. 오늘부터 두 분이 파트너입니다. 서로 잡아주고, 당겨주고 밀어줘야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혹시나 제대로 서포트를 못 해주면 파트너가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주세요. 자, 간단하게 스트레칭부터 시작해볼까요?”
그날부터 시작된 운동.
맨몸 스트레칭부터 기구를 이용한 운동에 허준의 부탁대로 크로스핏의 개념을 접목해서 만든 악마의 루틴.
그 고난 속에서 서로 몸을 맞대고 잡아주며 땀을 흘리니 이것만큼 금방 사이가 좋아질 일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보디 프로필같이 식단을 관리하면서 몸매를 드러나야 하는 운동이 아닌, 그야말로 체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루틴이었기에 식사에 제한이 없는 것은 덤이었다.
때문에,
1주일이 지나자, 둘 사이에 흐르던 차갑고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졌고,
“배고프지 않아? 간단하게 뭐 좀 먹고 들어갈까?”
“그러자. 정말 죽을 것 같아.”
“당신, 그거 알아? 요즘에 자면서 이빨 가는 거.”
“진짜?”
“코도 곤다니까?”
···
그 뒤로 또 1주가 지나자 이제는 서로 자연스럽게 대화까지 나누기 시작했다.
“버텨! 버틸 수 있어!”
“하나만 더!”
“할 수 있어! 자기는 할 수 있다고!”
운동으로 얻은 작은 성취감과 스트레스의 해소.
그리고 데이트와 같은 일상의 반복은 둘 사이에 깊었던 골을 빠르게 메우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김명훈이 씨익 웃었다.
‘역시 허준 원장님이야.’
몸의 아픔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도 치료하는 사람.
그것이 김명훈이 생각하는 허준이었다.
본인도 우연히 선배 소개를 받고 찾아간 작은 한의원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될 줄 몰랐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체육관도 운영 중이고.
“그러고 보니 직접 만난 지 꽤 됐네. 원장님은 잘 계시려나.”
* * *
진료를 마치고 탕약을 달이는 허준.
허준이 어느새 쌓인 포인트를 확인했다.
[침술 Lv. 7] 필요 포인트 20000
[구술 Lv. 5] 필요 포인트 5000
[탕제 Lv. 5] 필요 포인트 20000
[추나 Lv. 2] 필요 포인트 5000
[진맥 Lv. 2] 필요 포인트 20000
···
보유 포인트 : 13257
연휴가 끝나고 2주간의 혜민서 행사를 비롯해 모인 포인트들이었다.
‘사단장님이 한잔하고 가라고 할 때는 정말 골치 아팠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든 허준.
이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추나와 구술을 당장 올릴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다음 퀘스트를 확인하고 올리는 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