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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78화 (79/230)

< 78화.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

78화.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1주일 만에 다시 만난 김우열 담당관과 함께 의료봉사를 출발하는 일행들.

허준의 건너편에서,

“군대로 가는 의료봉사라니, 생각도 못 했습니다.”

김형서 원장이 약간 놀란 얼굴로 허준에게 물었다.

막연하게 동네 한의사들이 모여서 그저 친목을 다지거나, 서로 한의원 운영에 대한 정보교류 또는 고찰을 나누는 자리일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 버스를 봤을 때 얼마나 당황했던가.

군인이 직접 마중을 나올 줄이야.

게다가 인원수 또한 생각 이상이었다.

인근의 한의사들뿐만 아니라, SNS를 보고 신청한 젊은 한의사들까지 합쳐서 지난번보다 더 많아졌으니,

‘내 생각보다 더 똑똑한 사람일지도.’

어쩌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허준한의원의 원장은 더 수완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겠지.

허준이 물음에 답했다.

“원래는 동네 근처 위주로 다녔는데, 지난번에 우연히 한 번 부대로 가보니 이쪽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래요?”

“네. 게다가 요즘에 혹한기 훈련 시즌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아마 저희 진료를 받고 싶어서 기다리는 친구들이 꽤 많을 겁니다.”

버스 안에서 제대로 된 혹한기 훈련을 겪어본 사람은 운전병과 담당관뿐이겠지만, 그렇다고 그 악명까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아마, 정형외과 선생님이 딱 좋은 타이밍에 오신 걸지도 모르겠네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어진 허준의 말을 들은 김형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이야기를 더 이어가고 싶었으나, 처음 만난 두 사람이 할 이야기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은연중에 진료과목이 겹친 잠재적 경쟁상대라 생각 중이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때, 버스 뒷자리에서는 와- 하는 감탄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의사 선생님들을 앞에 두고 박 원장이 혜민서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살을 엄청 많이 붙여서.

“진짜 간단하게 침 몇 방만 놨거든. 그런데, 환자가 갑자기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를 하더라고. 그 순간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거야. 그때부터 이렇게 따라다니기 시작했지. 그러다가 지금의 혜민서가 만들어진 거고.”

“그럼, 허준 선생님과는 어떻게 만난 거예요?”

“허준 선생님? 글쎄... 운명적인 만남이었다고나 할까? 우리의 인연은 작년 시장 골목의 탕약 대첩에서부터···.”

대충 그런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줌에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오는 사람들 몇이 쭈뼛거렸지만, 이미 한 번 이상 참여해본 선생들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료봉사 시작.

허준의 눈앞에 300포인트짜리의 퀘스트가 나타났다.

‘이거 금방 끝나겠는걸?’

얼핏 들어보니 중대급 막사라 인원이 적다고 한다.

그 덕분에,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대의 전병력에 대한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역시나 인원수가 깡패인데다가,

정형외과 선생님들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줬기 때문이다.

한의사들의 진료와는 다르게 처방 자체는 약이나 간단한 주사 정도였지만, 그 이후에 이어진 관절이 아플 때 응급처치라던가, 붕대로 압박을 하여 관절에 무리를 덜어주는 등의 방법으로 훌륭히 진료를 해주었다.

그것을 본 한의사 선생들도 이에 질세라 침과 뜸 그리고 약침뿐만 아니라, 건강관리법 등등을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하나를 더 배운 것이었다.

동시에, 처음 참여한 김형서와 그의 후배가 속삭였다.

“선배님. 여기 선생들 보통이 아닌데요?”

“나도 그렇게 느꼈어. 올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준비도 많이 한 것 같아.”

둘이 본 것은 이 행사가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꽤 많이 준비된 약침과 간단한 약들이었다.

자신들이 준비한것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차례 의료봉사가 끝나고,

“여기서 끝인 줄 아셨죠? 한 타임 더 있습니다~ 자, 모두 탑승하세요. 빨리빨리~!”

그전에 시간을 보고 허준이 여러 군데를 돈 것처럼, 이제는 박 원장이 솔선수범하여 사람들을 이끄는 모양새였다.

박 원장님이 잘 배운다니까.

박 원장의 외침에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으니, 공기 좋고, 배운 의술도 사용하고, 여럿이서 하니 없던 힘도 덜 든 데다가, 환자들도 좋아하니.

이것이 누구하나 인상쓰는 사람이 없는 이유였다.

그렇게 도착한 두 번째 부대.

이곳도 포인트는 똑같이 300이었다.

이번에는 허준과 김형서가 한 조가 되어서 같은 생활관으로 들어섰다.

“제가 이쪽부터 시작할게요.”

“네. 그럼 제가 이쪽에서 하도록 하죠.”

허준이 평소대로 진료에 들어갔다.

묻고, 눈으로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진맥까지.

“족저근막염이네요. 여기에 약한 염증이 생겼는데, 약침 맞고 주말에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게 꺼내든 약침을 장전하고는,

순식간에 발바닥을 향해 찔러 넣었다.

김형서가 그 모습을 흘끔 쳐다봤다.

아까도 느꼈던거지만, 진료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렇게 빠르지?’

게다가 처치 또한 신속하다.

정형외과에서도 족저근막염으로 찾아온 환자에게 하는 치료와 똑같기에 저 주사를 놓을 때 환자의 반응이 어떤지는 이미 알고 있다.

환자의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확하고 신속하게 주사를 놓고 말을 걸어 신경을 분산한 뒤에 다시 또 놓고 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처치하는 모습.

그만큼 이 치료에 능숙하다는 뜻이었다.

‘생각보다 실력도 뛰어나잖아?’

그때, 허준이 다음 환자로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가방에서 기다란 침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대체 뭘 하려는 걸까.

그 낯선 모습에 다음 환자에게로 가던 김형서가 허준에게 다가가 물었다.

“원장님.”

“네?”

“지금, 뭐 하시려는 겁니까?”

“아, 이 친구가 혹한기 때 무리를 해서 그런지, 허벅지에 무리가 왔더라고요. 그래서 장침으로 치료하려고요.”

“장침이요...?”

“네. 속에 있는 근육까지 자극이 들어가려면 호침으로는 조금 짧을 것 같거든요. 아시다시피 허벅지 근육은 두꺼우니까요.”

대답과 함께, 허준이 꺼내든 장침을 엎드려 있는 병사의 허벅지에 망설임 없이 찔러넣었다.

증상은 불편감과 종종 담이 걸린다는 것.

장침으로 근육을 자극해 풀고, 주말 동안 푹 쉬면 금방 괜찮아질 터.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에 집중하며 허준이 손을 움직이자, 장침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우.. 선생님 느낌이 뭔가 뭉친 것 같아요.”

“제대로 들어갔다는 증거니 조금만 참아봐요.”

그렇게 이어진 치료.

장침이 장소를 옮겨 두 번의 춤사위가 더 끝난 뒤에 병사가 허벅지를 움직여보고는 놀라 외쳤다.

“어?”

옆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병장이 그것을 보고는 물었다.

“진철이 왜 그래? 괜찮아?”

“네... 이거 괜찮은 정도가 아니고 당장 축구도 할 수 있겠는데요?”

그 말을 듣고 신경이 쓰인 것은 바로 뒤에서 진료를 보고 있던 김형서였다.

허벅지와 축구. 이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꽤 깊었기 때문이리라.

때문에, 김형서가 고개를 돌려 허준을 바라봤는데,

그가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 멍하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허준이 고개를 흔들고 눈을 비볐다.

「업적 ‘만인 놓기’를 달성하였습니다.」

「‘침술 Lv. 6’이 ‘침술 Lv. 7’이 되었습니다.」

[침술 Lv. 7]

- 보사의 효능이 증가한다.

*   *   *

감사합니다-!

촌스러운 색의 운동복을 입은 군인들이 일행들에게 인사했다.

그 인사를 뒤로하고 버스가 떠나가고 있었다.

“선생님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걸요.”

“사단 내에서도 선생님들에 관한 이야기가 매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들 자기네 부대로 먼저 와달라고 말이죠.”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좋은 포인트 획득 처를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규모가 더 커지고 인원수가 늘어나면 더 큰 부대에서도 활동할 수 있을 터.

봉사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군대는 그야말로 최적화된 훈련장소였다.

‘무엇보다 중환이 없으니까.’

그렇게 각자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허준이 포인트를 확인했다.

보유 포인트 : 4538

오늘 두 곳의 퀘스트를 마치고 얻은 포인트에다가 최근에 달인 보약들과 진료.

그리고 허준이 뿌린 씨앗들이 피어나며 모아온 포인트.

하지만 지금은 포인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업적 달성이란 메시지와 함께 올라간 침술의 레벨.

늘 그래왔듯이 찔러보면 효능을 체감할 수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보사는 말 그대로 ‘도울 보’에 ‘쏟을 사’자를 사용하는 단어. 허증과 실증에 각각 더하고 덜어내 균형을 맞추는 한의학적 치료법이다.

때문에, 가벼운 근육통이나 염증들이 대부분인 군인들에게서 실증과 허증에 대한 처방인 보사를 할만한 경우가 없었으니,

아무리 뛰어난 감각을 가진 허준이라도 차이를 모를 수밖에.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한의원의 입원실에서 자신의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어서 가서 확인해 보고 싶다.’

허준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뒤로 떨어져 앉은 김형서와 그의 후배 유재원이 속삭였다.

“선배님. 아무래도 잘 온 것 같죠?”

김형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힘들지도 않았고, 보람도 찼으며, 같이 사진도 찍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전부 달성한 셈이었다.

다만, 한가지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은,

“재원아. 너 우리 찬용이 알지.”

“그럼요. 선배님 조카를 제가 모를 리가요. 우리 병원으로 치료도 받으러 오잖아요? 완치되면 우리 홍보 모델도 하기로 하셨다면서요.”

“그래. 네가 볼 때 찬용이 상태가 어떻게 보이디?”

유재원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햄스트링 파열로 인해 치료 후 재활. 그리고 재파열 이후 치료와 재활의 반복.

직접 상태를 눈앞에서 본 것은 아니나, 의학적인 검사결과의 자료들로 판단하자면 아마 일반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 확실했다.

물론, 그렇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운동을 조금 무리하게 하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다시 예전처럼 활약할 수 있을 만큼의 회복이었으니.

“결과는 모르겠지만, 전성기 폼을 되찾으려면 방법은 수술밖에 없지 않을까요?”

“역시 그렇겠지? 내가 의사로서 판단하면 같은 소견인데, 또 수술이 잘못되면 그대로 은퇴해야 하잖아.”

“그건 그렇죠...”

말을 줄이는 유재원과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김형서.

그러다가 김형서가 한 번 더 유재원에게 물었다.

“내가 아까 햄스트링을 다친 친구를 봤는데, 저 허준 원장이 이만한 침으로 몇 번 쑤시더니 감쪽같이 일어나더라고.”

“그래요?”

“응. 내가 똑똑히 봤어. 침이야 의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입증되어 있잖아. 논문도 꽤 나와 있고.”

“그렇긴 하죠. 그렇다고 조카분의 증상에도 효과가 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때, 유재원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일단 보내보죠.”

“그래서?”

“아니, 선배.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예요? 치료되면 되는대로 좋고, 안되면 안되는 대로 좋은 거죠.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수술 말고는 답 없잖아요.”

그 말에 김형서가 유재원을 노려봤다.

그러자,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나만 나쁜 놈인 것 같잖아요. 선배. 잊었나 본데, 우리도 병원 인생 걸고 차린 거잖아요. 망하면 둘 다 빚더미만 남는 다고요.”

후배 유재원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원장의 마음가짐으로 돌아온 김형서가 허준을 바라봤다.

그래. 재원이 말대로야.

고치면 어쨌든 우리 병원과 계약이 되어있으니 전속모델이 될 테고, 못 고치고 은퇴를 하게 되면 그 여파로 한의원이 구설수에 오르게 되겠지.

한 마디로 손해 볼 것은 없다는 뜻이다.

그런 김형서의 눈빛이 한 번 더 바뀌었다.

이번엔 원장이 아닌 환자의 가족으로 보는 시선이었다.

물론, 그런 시선을 알아챌 리 없는 허준은 그저 빨리 돌아가서 진료를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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